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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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때숙씨?” 느물거리는 놈 전화다. 천하의 원수다. “누구세요?” 어쩌다 한 번 보는 얼굴이니 누군지 잘 몰라버릴 테다. 어젯밤에도 문자만 띡 보내서 졸리니 먼저 자야겠다고 했던 바로 그 놈이다. 집에도 안 들어온 놈이 그런 문자를 보내니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겨우 깨달았다.
  • 지역아동센터는 요즘 한창 긴장 중이다. 내년부터 전체 초등학생들을 위한 학교 중심의 방과 후 무상 돌봄이 전면화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돌봄‘이 전적으로 가정과 특히 여성이 부담해야 할 몫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짊어져야 할 몫으로 인정받고, 정책적으로 배려 받는 현실에 대해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지역아동센터들은 스스로가 오랫동안 주장해 왔던 이 정책의 실현에 앞서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일 생길 때마다 찾는 마음을 모른 척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할머니와 함께 입원해 있다는 동생을 찾아가보니 아픈 기색이 역력한 초로의 아저씨셨다. 아저씨는 열여섯 넘어 돈 벌러 고향 전라도를 떠나와 여기저길 떠돌았다고 한다. 그렇게 식구들과 소식이 끊기고 어찌 여자 하나를 만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살았는데, 그 마누라도 벌써 십여 년 전에 집을 나가고 그 뒤로 자식들도 차례로 집을 나갔다고 한다. 그리곤 위암에 걸렸다고 한다.
  • 내가 알기로 그 할머니는 손주 아이 둘밖에 아무도 없다고 했다. 명절에 어디 갈 곳이 없는 내가 임대단지에 사는 그 아이들을 명절날이면 꼬박꼬박 보곤 했으니 그로써 할머니 말을 믿을 증거도 충분하다 싶었다. 그런 날 아무데도 갈 곳 없고, 아무도 찾아줄 이 없으니 그런 할머니
  • 만약 공부방을 하다 죽는다면 십중팔구는 울화통이 터져 죽거나 어처구니가 없어 죽을 경우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애들하고 있다 보면 겨우 그 따위 일로 이렇게 난리를 부리나 싶은 것투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밑바닥을 매일 봐야 하는 공부방 교사의 삶은 그런 의미에서 힘겹다.
  • 가족과 관련한 이야기를 더할 필요는 사실 없다. 가족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꺼낸다 할지라도 한 번은 누군가 성질을 내듯 울음을 터뜨리며 했을 법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또 꺼내는 것은 아무래도 참 힘들기 때문이다. 가족이 힘든 이유는 누구나 알듯이 대개 죽일 수도 살릴
  •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생활복지분과 위원장님! 지난해와 올해 동네에서 짊어져야 했던 멍에였다. 뭐든지 참여, 민주, 자치, 민관 거버넌스 뭐 이런 게 들어가면 환장을 하고 보는 습성 때문에 지난 해 주민자치위원에 신청서를 내지 못한 것을 한탄하다가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생긴 것을 보고 단박 신청서를 내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시작하는 제도라 그런지 신청서를 내고 아주 쉽게 위원이 되어 버렸다.
  • 밤 10시 퇴근을 준비한다. 몸뚱이는 무감각해져 온다. 뇌의 신경회로는 간간이 접속에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들이 부은 커피의 카페인은 끈적하게 들러붙어있는 혈병들 속을 파고들지 못한다. 하나하나 컴퓨터의 전원이 내리면서 마침내 오늘도 전원 오프 중이다. 곧 끝난다.
  • 가만 보면 살면서 감사히 생각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다. 요즘같이 흉흉한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가는 것을 보면 그래도 험한 꼴 안당하고 이제껏 살아온 것에 다시금 감사한 마음이 생길 뿐이다. 최근에 특히 아이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잔인한 일을 두고 ‘인면수심’을 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공분들이 대단하지만, 난 왠지 괜히 짐승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뿐이다. 그건 짐승만도 못한 짓이지, 짐승들이
  • 별다른 찬이 없어서 김치랑 대충 뭐 한 가지를 갖다놓고 느직한 저녁상을 앞에 둔 자리였다. 11시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KBS 공영방송에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TV 토론회를 하고 있더란 말이다. 서너일 전쯤 MBC의 ‘100분 토론’에서도 만형만제를 가졌다는 김태호 후보가 박후보를 누님으로 모시는 걸 잠시 보다가 코를 골며 잠이 들었는데, 오늘은 밥도 앞에 둔 참이라 좀 눈 여겨 보았다. 그러고 보니 런던 올
  • 드디어 오늘 아들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는 날이다. 다른 날 같으면 아침부터 안 일어나고 빌빌거리고 사람 속을 있는 대로 긁어 놓았을 녀석이 학교를 그만둔다고 하니까 신이 나서 일찌감치 활기차게 등교했다, 쩝.
  • 아침마다 눈이 번쩍 떠진다.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하여 뭐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나 싶어서다.당원도 아닌 주제에 흘끗거리는 것조차 자격이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평생 소신으로 ‘진보’를 삼아 왔기에 구경할 자격 정도는 있겠지 하고 혼자 허락을 구해 버렸다. 이제부터 쇼 타임!
  • 최근에 거기 다니는 아이들이 공부방에 들어왔다. 새로 들어온 아이들 각자의 열심이 모두 다르긴 하지만 아무튼 거기에 다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 아이들이 다섯이나 한꺼번에 들어오고 보니 조금 정신이 없기도 하다.
  • 그냥 한 시간만이라도 학교를 늦추면 어떨까? 아니면 최소한 9시 30분에라도 학교를 시작하면 어떨까? 조금 늦게 일어나도 아이들이 여유를 가지고 준비할 수 있도록, 그러면 아침 돌봄을 하는 사람들도 너무 일찍부터 서둘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하루가 당황스럽게 시작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 “아, 안 오셔도 돼요, 괜찮아요, 진짜 괜찮다니까요.” 어머니는 수년째 이런저런 병을 앓고 계신다. 급기야 한쪽 눈의 시력도 약해져 밖을 나다니시는 것도 힘겨워하실 만큼 이제는 기력을 다하셨다. 그런 노모가 일삼아 다니시는 곳이 있으니 바로 우리 집 일을 해주시러 오는 것이다. 청소에 빨래에 먹을 것 사다 나르시는 일에 심지어는 마흔 살이 훌쩍 넘은 딸년 속옷 챙기시는 일까지 어머니의 손이 미치지 않는 구석은 없다.
  • 새해가 밝았으니 새 결심을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 누구의 말마따나 엄청 지루할 수도 있는 우리네 삶에 시간이라는 장치를 들여 시작과 종결, 그리고 말끔히 reset을 누를 수 있는 뚜렷한 체계가 구축되어 있는데 따른 매력을 진정으로 맛볼 수 있는 딱 제철에 와있다. 참으로 거듭 생각해도 훌륭하기 짝이 없는 장치다. 누덕누덕 낡을 대로 낡은 일정한 습속들을 한 꺼풀 벗어 던질 수도 있는 적당한 변명을 마련하기도 쉽고 혹은 이만한 겹의 시간에 걸쳐 반들반들 윤나게 닦여진 분자들이
  • 아이들의 엄마가 가끔 밤마다 사라진다. 아빠는 알콜 중독에서 헤어져 나오지 못하고 수개월째 병원에 입원 중이다. 아이들 둘과 엄마만 살고 있는 집에서 가끔 밤에 슬그머니 없어지는 엄마를 아이들은 애가 타서 찾곤 한다. 첫째나 둘째나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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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오후 예기치 않은 만남에 화들짝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오늘도 공부방을 열거냐’고 매달리는 1학년 아이를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바람 부는 비탈길 한 쪽에 치우쳐 얇고 허름한 옷차림에 신발을 질질 끌며 하릴없이 혼자 걸어오던 아이가 밥만 먹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훨씬 반가운 얼굴로 아이를 대했을 것이다. 학교도 안 가고 공부방도 열지 않는 일요일이니 오늘은 무조건 집에
  • 두 쌍둥이가 동시에 필사적으로 외치는 소리다. 엄마는 그 옆에서 언제나처럼 웃고만 있다. 괜히 아무 말이나 붙여 볼 심산으로 말을 꺼냈던 나는 살짝 엄마 눈치를 보았다. 파탄 난 엄마의 결혼생활 같은 것을 자기들에게 하라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는 듯 두 딸이 동시에 외치는 소리를 그녀는 어떻게 듣고 있을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 sungtaesuk
    요즘 공부방에 일찍 간다. 예전과 달리 넓고 한결 쾌적해진 환경에 아침에 눈만 뜨면 공부방을 가고 싶은 마음에 궁뎅이가 들썩인다. 너무 커서 횅한 느낌을 지우려고 업싸이클링-기본적으로 재활용의 의미를 깔고 있지만 단순한 재활용의 의미를 넘어서 아름다운 쓸모를 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sungtaesuk

    공부방에 다니는 친구들은 속상함을 많이 안고 산다. 부모님들 때문에 혹은 어려운 학교 공부 때문에 또 친구나 좁은 집 때문에 여러 가지 속상한 일이 늘 많다. 그래서 사실 누가 누가 더 힘들까를 생각해 보는 일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모두가 힘들고 속상하다.

    그런데 공부방에 다니는 친구들 중에 늘 해맑게 웃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생글거리는 친구들이 있다. 늘 마음만은 …

  • sungtaesuk
    다가오는 선거를 앞두고 온 나라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각계각층의 이유가 저마다다르겠지만 집권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정치권의 열기가 그 중 제일 뜨겁다.
  • sungtaesuk
    아들 둘이 만화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괴짜 가족’이란 일본 만화로 조금 내용을 훑어보다 하도 어이가 없어 단숨에 에피소드 몇 개를 앉은 자리에서 보게 되었다. 1편부터 차분히 본 게 아니라서 내용을 설명하기에는 이해가 부족하다. 하지만 ‘괴짜’라는 말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엄청나게 끈적거리는 빠워’를 지닌 만화라 강한 인상을 받았다.
  • sungtaesuk
    유혹 (0)
    살면서 큰 요령을 부려본 기억이 별로 없다. 요령 따위가 필요 없을 정도로 어쩌면 사는 게 민숭민숭한 탓이 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 밋밋함과 헛함을 꾹 참고 견디는 것을 제일의 미덕으로 알고 여태껏 살아왔다.
  • sungtaesuk
    !! (6)
    . . .
  • sungtaesuk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인문학은 그 유효기간을 다한 듯 보였다. 누구도 인문학을 찾지 않고 사회적 처세술과 어학이나 재테크 관련 서적들이 그 빈자리를 빈틈없이 메워가고 있었다. 입시를 위한 논술을 필요한 어린 학생들만이 아직 명목적 교양을 인정하고 무미건조하고 반 조리된 식품으로 인문학을 시장에서 겨우 유통시켜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sungtaesuk
    옛말에 말이 씨가 된다더니 맨 날 청소년전용 지역아동센터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더니 드디어 개소식을 하게 되었다. 센터를 하나 만드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실제는 늘 상상을 초월하기 마련이다.
  • sungtaesuk
    온 나라가 6.2 지방선거의 폭풍 이슈인 무상급식으로 시끄러웠지만 결식아동 지원사업의 이런 시시콜콜한 상황은 진보진영에서조차 그리 잘 알고 있지 못하다. 실은 몇 년 전부터 지방재정 자립방안과 국가예산편성권은 전혀 없이 중앙 정부의 세금 나눠주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식으로 진행되는 허울뿐인 지방자치제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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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아이가 아닌데 내내 기운 없는 얼굴로 머리를 싸안고 며칠 동안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아이의 모습이 이상하다. 물어봐도 그저 잠을 좀 못자서 피곤하다고만 할 뿐 별다른 대답도 없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른 교사랑 아이를 데리고 수다나 떨자며 도너츠 가게 밖에 자리를 잡고 앉아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한 때 아이의 그였던 공부방 녀석의 철없고 철면피한 연애 행각이 도마에 올라 우리 셋은 입에 침을 튀어 가며 비난과 야유를 쏟아 내었다...
  • sungtaesuk
    A와 그 동생이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지역아동센터로 의뢰된 것은 A와 동생이 아버지에게 끔찍한 학대를 당하는 것을 동생의 담임이 신고를 한 후이다. 위기 상황에 개입하여 아버지와 아이들을 분리하기는 하였지만 아이들의 어머니가 문자해독능력이 없을 정도로 지체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일상을 챙길 수 없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이들과 어머니의 일상을 챙길 수 있는 지역아동센터로 사례를 의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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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으니 좀체 기운이 오르지 않는다. 한창 땡볕에도 불타오르는 정념에 더위도 모르고 정신을 불사르고 다녔건만 고갱이가 사라진 지금 무너져 내리는 허무감을 달랠 길 없어 애꿎은 더위 탓이 점점 심해진다. 보건복지부를 향해 지역아동센터가 겨누었던 칼날이 이제 내려진 탓이다. 사실은 겁탈이라도 당하기 직전의 음전한 처녀마냥 제 목에 제대로 거누었던 칼날을 겨우 끌어 내려지고 이제 막 속울음을 삼키고 있는 중이다...
  • sungtaesuk
    지역아동센터는 예전의 공부방을 말한다. 2004년 아동복지법을 개정하면서 아동복지이용시설로 전환된 후 주로 지역사회에서 빈곤아동을 돌보고 있다. 말하자면 복지시설이 된 셈인데 그런 시설치고는 정부의 지원이 참으로 박하다. 구로파랑새의 경우 29명 시설로 월 운영비 300만원을 받는다. 지난 해 평가 우수시설로 인센티브 명목의 30만원을 합쳐 운영비가 되는데, 이중 25%인 80만원은 강사비나 프로그램 재료비 등으로 반드시 아이들을 위해 써야 하고 나머지 250만원으로 두 사람의 인건비와 4대 보험, 공과금, 사무운영비로 지출을 하게 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격 있는 종사자를 구하라는 법적 조항은 있는데 막상 인건비 책정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센터마다 인건비가 들쭉날쭉하고 최저생계비 이하를 받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