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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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공부방은 방학이 힘들다. 날씨가 추워 실내에서 머물러야 하는 일이 많은 겨울방학은 더 힘들다. 여러 가지 묘안을 내보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다툼이나 칭얼거림도 늘고 하다못해 꽝 하고 문 여닫는 소리마저 신경에 거슬릴 때가 있다.

그럴 때 묘책은 잠시 아이들에게 놀 시간을 주는 것이다. 교사들도 그 때 잠깐 한 숨 돌릴 틈을 찾을 수 있지만 아이들 역시 나름 기분을 전환시킬 틈을 발견하게 된다. 에너지가 많고 활동적인 아이는 밖에서 적당히 활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고, 시끄러운 분위기가 힘에 겨운 아이들은 잠시 조용한 시간 속에 자기를 추스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니 모두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다.

사실 주변 환경이 좋으면 이럴 때 산보를 나가면 딱 좋을 것 같다. 마음에 드는 길로 사시사철 소리 없이 빛과 색이 서로를 탐하는 그 안으로 말없이 걸어 들어가 훌쩍 세상의 시름을 잊고 자박자박 걸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어느 틈에 얼굴도 마음도 슬며시 풀어지리라.

공부방은 치유적 환경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또 많은 아이들이 작은 일에 서투르다 보니 늘 다툼이나 불평이 적지 않아 교사들도 일거리가 많다. 그러나 아이를 낳아 놓았다고 다 어미가 되는 것은 아니듯 공부방에서 일한다고 다 교사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늘 스스로를 지켜보는 일이 필요하다. 내 영혼은 늘 30센티미터쯤 떠서 스스로를 돌보느라 바쁘다. 그래 애들인데 무얼 알겠니 하고 위로도 건네고, 정말 좋은 방법이다 칭찬도 건넨다. 하지만 더 많은 순간 너 지금 화났다, 조심해 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마음이 바쁘다보면 사람이 쉬 지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아무 생각 없이 무심히 있을 수 있는 순간인 것이다.

하지만 이 때 약간의 다른 시공간이 필요하다. 다른 곳보다는 약간 그늘진 빛의 차분함이어도 좋고 사시사철 변치 않는 회색 콘크리트색이 아닌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태양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그런 빛과 색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파랑새가 있는 구로동 일대는 그런 곳을 찾기가 너무 힘들다. 아무리 길을 걸어도 전혀 땅을 밟을 수가 없다. 꽃은 꽃집을 가야 볼 수 있고 비둘기를 빼고는 심지어 참새를 보기도 어렵다. 언제까지 나비를 볼 수 있으려나 걱정스러운 곳이다.

눈길을 줄 곳이 없는 곳이다. 거의 사면이 벽과 벽으로만 되어 있어 오로지 먹고 사는 일에만 집중하라는 지상명령을 받은 동네처럼 보인다. 아이들의 놀이터로는 PC방이 일순위다. 심지어는 강아지조차 그저 즐거움을 위해 힘차게 뛰어다니는 짓을 하지 않는 딱 먹고만 사는 동네다.

그런 동네에서 유일하게 땅을 밟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학교 운동장이다. 동네 놀이터도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폼 나는 우레탄 바닥을 쫙 갈아놓았기에 학교 운동장을 가지 않으면 빗물이 땅에 스며드는 것을 전혀 볼 수가 없다.

그렇게 귀한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슬금슬금 쫓겨 나오기 시작한 것이 지난 가을의 일이다. 첫 기억은 전래놀이 선생님과 아이들이 학교에서 전래놀이를 하러 놀러갔다가 학교지킴이로 일하시는 할아버지께 쫓겨 나왔다는 하소연이 첫 시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방학에는 내 쫓겨나오고 일이 거듭되고 있다. 처음에는 의례 파랑새 아이들이 무슨 개구진 짓을 해서 쫓겨 나오게 되었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알고 봤더니 이것이 일종의 학교와 교육청의 정책인 듯싶어 약간은 어처구니가 없어 하고 있다.

물론 저간의 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그래도 안전하다고 믿어 왔던 학교에서 여러 번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그것이 매스컴을 통해 자극적으로 보도가 되고 하다 보니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는 교장 선생님들은 당연히 염려가 되실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열 사람이 도둑 하나를 못 지킨다는 말이 있듯이 그렇다고 학교 문을 걸어 잠근다고 일이 과연 해결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현재 파랑새 인근의 초등학교는 4시까지 아이들의 출입만 허용하고 있다. 어른은 일절 동행을 못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만약 파랑새가 학교 운동장을 사용하고 싶으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4시부터 아이들을 모두 내보기 시작하여 4시 30분 이후는 아이들의 출입이 금지되는 것 같고 이후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학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그냥 교장 선생님만 제일 안전하시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처음에는 이 아이들이 모두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하고 사정도 말씀 드리고, 학교 사회복지사를 통해 이야기도 넣어 보고 했는데 이건 그렇게 해결할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자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더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살아서 일이 이 지경이 되었나 하는 장탄식을 하기 전에 우선은 내 손으로 뽑은 교육감과 교육위원과 함께 이 일을 의논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 학교와 작은 충동들이 없지는 않았다. 지난해 신종 플루로 급하게 휴교령이 떨어졌을 때 아무도 오지 않는 학교에 급식을 지원받던 아이들이 점심을 먹으러 등교를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딴 친구들은 한참 놀고 있는데 누가 볼 새라 살금살금 학교로 밥을 먹으러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잘못했다 싶어 학교에 전화해서 최소한 공부방에 다니는 아이들만은 저희가 먹일 터이니 학교 급식비를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이야기했다가 교장 선생님과 작은 마찰을 빚었던 것이다. 행정상 그리 하는 것이 어려운 점이 있다고 좋은 말로 알려주실 수도 있었을 텐데 다짜고짜 뭐냐는 취급을 받으니 나도 부아가 났고, 무엇보다 아이들한테 이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작은 소동이 났었던 것이다. 일제 고사 문제나 작은 일로 번번이 학교와 부딪히는 것이 힘들어 이번에는 어찌되었던 좋게 끝내고 싶은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 혁신 학교나 교육복지 사업을 하는 학교들은 지역사회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와 소통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런데 한편에서 학교는 문을 닫아걸고 있으니 이건 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학교 운동장에서 조기 축구회나 동네 야구팀이 시합을 벌이고 할 때는 당연히 사용허락도 받고 운동장 사용비도 내고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 돈은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운동장을 지켜주기 위해 또 학교에 수고로움을 끼친데 대한 작은 성의의 표시인 줄도 잘 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잠시 이용하는 것을 막고 아이들과 함께 다닐 수도 없이 하는 이런 식은 곤란하지 않을까? 물론 그럼 어쩌란 말이냐 답이 없다고 하실 것이다. 일이 생겨도 책임질 일 없으면 아무 소리 말라고 하실 줄 잘 안다. 하지만 학교가 문을 닫아걸고 이렇게 지역에서 계속 고립을 좌초하는 것이 정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일까 고민스러운 것이다. 또 우리는 학교가 내리는 결정에 그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는 그런 성역으로 남겨놓아야 할지 의문이다. 자신만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 또 자신의 직업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로부터 스스로 담을 쌓는 학교가 과연 얼마만큼 안전하고 옹호 받을 수 있을지 너무 근시안적이라는 염려가 앞선다.

이렇게 문을 닫는 것만으로 진정으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아니다!

응답 6개

  1. cman말하길

    어디 학교만의 문제인가요? 안전이라는 핑계로 무책임할려는 이들의 폭력적인 폐쇄성과 함께 교회처럼(전 기독인입니다^^) 공용공간으로 활용가능한 시설까지 개방에 소극적이다보니 중복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이고 저예산 공용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기회까지 박탈당하는 우리 사회의 아주 매우 모자란 모습입니다. 참으로 관계자분들의 혁신적인 사고와 발성의 전환을 촉구합니다.

  2. 행복한샘말하길

    에공~그러게 슬픈현실입니다. 전 초등학교 교사인데….우리 동네는 시골이라 공부방두 멀리있어요. 그래서 우리반아이들 5학년 몇명이 교실에 남아서 공부하는데, 수업끝나면 얼른 보내라고 하십니다. 물론 억지로 남기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이 남아서 공부하고 숙제하고 책읽고하는걸 좋아합니다. 전 바빠사 제대로 봐주지도 못하는데…그래두 좋다고합니다. 그러나…교장샘 빨리 보내라고 하십니다. 작년내내 교장샘 눈치보며 살았습니다. 시말써쓰게 한다는 말도 여러번 들었습니다. 학교교사에게도 이런데….아동센타샘들한테 오죽하겠습니다. 구데기무서워 장못담근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러가 가장 큰 문제는 학교에서 사고가 나면 그저 교장샘, 담임샘등 학교탓으로만 돌리는 학부모님과 언론입니다. 모든 아이들을 다 쫒아다닐수 없는데….얼마전 체육시간에 안경쓴 여학생이 공에 맞아서 안경이 망가지고 좀 다쳤습니다. 학부모님 교장 교감한테 큰소리치시고 교육청에 전화하시고. 학교샘들도 뭘 할 맘이 안생깁니다. 모든게 교사탓이라고 돌리니…슬픕니다. 난 우리아이들과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은데~(=,.=)

    • 말하길

      그래서 체육시간에 공 차는 걸 금지시켰나요? 아님, 아예 체육시간 자체를 없애 버렸나요? 무섭습니다. 그렇게 나올까봐. 도대체 이 사회가 미쳐 돌아가나 봅니다. ‘위험’을 박멸하려고 모든 삶의 공간을 치안의 공간으로 ‘청소’하려 합니다. 위생학적 광기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텅빈 삶의 공간을 ‘돈’과 ‘치안’으로 채우려 합니다. 어지됐든 막아야 할텐데 말이죠. 지혜를 모읍시다.

  3. 아아말하길

    요즘은 학교마다 보안업체의 경비시스템 아래 있으니 유동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어 하다못해 잔업 때문에 남아있으려해도 관리인 아저씨 눈치가 보이고 학교마다 연결되어있어 중앙에서 점검이 일정해야 한다고 잔소리 듣기 일쑤입니다. 관리자의 이해를 구하려해도 절차가 복잡하죠. 관리를 우선시하면 활동에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로서의 교육 현장이 정해진 시간안에 어떻게든 몰아치다가 방과후는 적막강산이니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일 수 있지요. 전시행정의 표본이자 온상 같은 곳입니다.

  4. beforesunset말하길

    하다못해 꽝 하고 문 여닫는 소리마저 신경에 거슬릴 때가 있다..–> 첫줄부터 동감합니다. 방학 때는 이런 상상을 해요. 아이들 입을 (전원스위치처럼) 끌 수 있으면 좋겠다. -.-;

    운동장 못 쓰게 하는 것, 동아리내에서 폭행사건 났다고 전 동아리 폐쇄명령 내린 경복고등학교교장이 생각나는군요. 관료주의의 극한을 봅니다.

  5. 말하길

    어디가나 ‘안전security’를 명목으로 이뤄지는 일은 ‘추방’과 ‘돈벌이’군요. 밤 늦도록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농구하던 기억이 생생한데, 요즘엔 안 되나 보죠? 도대체 그 넓은 운동장 국끓여 먹을려고 비워놓나? 정말이지 황당하네요. ‘사고 위험’ 때문이라고? 그런 식이면 교통사고 무섭다고 길거리 나오는 것도 금지해야겠네. 아니, 집에서도 얼마나 사고가 많이 나는데, 그럼 집도 비워둬야겠네? 사는 게 다 위험 투성인데,,,,그럼 자궁도 비워둬야겠네?..운동장에 대한 예의도 아닙니다. 교육감한테 진정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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