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업싸이클링 중인 아이들

-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요즘 공부방에 일찍 간다. 예전과 달리 넓고 한결 쾌적해진 환경에 아침에 눈만 뜨면 공부방을 가고 싶은 마음에 궁뎅이가 들썩인다. 너무 커서 횅한 느낌을 지우려고 업싸이클링-기본적으로 재활용의 의미를 깔고 있지만 단순한 재활용의 의미를 넘어서 아름다운 쓸모를 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의 경우에는 버려진 폐품들을 가지고 이런저런 소품거리를 만드는 것이 드문 취미다, 다만 잘 만들 줄 모르고 목수가 연장 나무란다고 기가재자 없어 맘껏 못하는 것이 늘 안타까울 뿐이다-에 조금 심취하다보니 집구석은 개판인데 공부방에는 인형 옷을 만들어 놓고 버려진 화분들 입양(?)해다 키우고 난리를 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 내가 공부방을 일찍 나가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숨겨진 다른 이유는 아침에 학교를 안 가고 공부방을 오는 아이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 달쯤 전 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인근의 중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받은 것이 일의 시작이었다. 그 분은 그야말로 ‘부드럽고 인자하신 선생님’의 표본으로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는 분이신데, 인근 중학교로 전근을 가셔서 학생주임 직을 맡으셨다. 정말 그 ‘학주!’말이다. 하지만 학주를 맡으셨을 때의 충격만큼 학주를 해나가시는 모습도 충격적이었다. 아주 인자하고 자애로우신 학주, 사랑스러운 학주 선생님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옛말로 치면 정학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이 있어 사회봉사를 해야 하는데 공부방에서 좀 지낼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해오신 것이다. 그 분의 부탁이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정학을 받을 정도로 ‘포스’가 쎈 아이들은 어떨까 하는 순전한 호기심에 선선히 응했다.
첫 아이는 ‘폭행 가해자’였다. 키가 큰 아이는 실수로 때렸는데 친구 코가 그냥 부러졌다는 말이 절로 믿길 정도로 순해 보이는 아주 키가 큰 아이였다.
둘째 여학생 언니는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압수하려는 교사에게 걸쭉하게 욕을 하고 후배들 삥을 뜯는 등 소소한 과거 전력이 있다고 해서 잔뜩 겁을 먹었는데 그냥 매사가 귀찮은 언니였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그 언니는 우리도 무척 귀찮아했다는 기억만이 남는다.
세 번째 아이는 너무 심하게 좋은 일을 하다가 문제가 된 경우였는데 그 학주 선생님께서 부끄럽게도 진짜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여 주겠다고 우리에게 보내신 경우였다. 공부를 꽤 잘 하는 친구였는데 친구가 학업 문제로 고민하며 자기도 열등반을 벗어나 보고 싶다고 매달리는 것을 차마 못 본 채 할 수가 없어 시험 시간에 정답을 몰래 알려 주었던 것이다. 사건의 전모가 이미 이 친구들 사이에서 공모자로 번뇌를 거듭하던 성직자의 아들이기도 한 급우로 인해 이미 1교시에 전모가 다 밝혀져 경고 조치를 당했는데, 그럼에도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여 2.3교시에도 굳건히 돕기를 그만두지 않았던 갸륵한 심정의 소유자였다. 그 친구는 괜찮은 외모와 스마트한 지성의 소유자로 사랑의 마음으로 사회봉사에 임해 공부방 여중생들의 가슴을 분홍빛으로만, 분홍빛으로만 물들이다 가셨다.

그렇게 모두가 가고 지금은 세련된 스모키 화장을 뽐내는 언니가 오셨다, 완벽한 메이크업 베이스에 피부 톤에 걸맞는 허연 파운데이션을 꼼꼼히 바르고 눈 위, 아래를 포스 있는 아이라인을 살짝 올려 그리고 옅은 립스틱으로 마무리를 하신 늘 깔끔한 외양을 자랑하시는 분이다. 가엽게도 후배들에게 삥을 뜯으려 하였으나 간덩이가 부은 후배들이 교사에게 직발로 가서 이르는 바람에 삥마저 못 뜯은 불운한 주인공이다. 그래서 사회봉사를 하는 그 순간마저도 내가 정말 벌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계신다.

그렇게 공부방에는 새로운 아이들이 다녀가게 되었다.
한 명씩, 한 명씩 차분한 모습으로 다녀가는 아이들을 겪어보면서 공부방 교사들은 비교적 ‘괜찮은 아이들’이라는 평이다. ‘생각만큼 나쁘지 않네’의 정도가 아니라 ‘정말 괜찮은 아이들’이어서 사회봉사가 끝나고 학교에 아이들을 빼앗겨야 하는 순간이 오면 무척 섭섭하기까지 하는 당돌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큰 변화를 겪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스스로를 깨치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비교적 많이 겁을 내며 아이들을 받아들였던 터라 다루기도 살살, 말도 조심조심 해온 터라 아마도 그 친구들과 큰 마찰이 없이 지내다 보니 나온 평이 아닌가 싶다.
이런 친구들이 오가는 공부방들이 몇 군데 있다. 교사들의 내공이 훌륭한 곳에서는 나름대로 108배도 하게하고 아이들에게 새로운 순간을 맞이하게 하기도 한다는데 아직 우리는 그런 면에서 서툴다. 보통 3시 무렵이면 학원을 가야 한다고 학교보다 학원을 더 챙기는 아이들 탓에 전날 몇 시에 공부방이 끝나더라도 늦어도 10시까지는 다시 공부방을 나와서 이 친구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것을 힘겨워하는 그렇고 그런 수준이다.
그 중 어떤 아이도 공부 아니 최소한의 학습마저도 학교에서 한다고 표현한 아이는 없는 것 같다. 학교는 철저하게 평가만을 담당하는 기구로 전락한지 오래고, 평가의 시간이 다가오기까지, 그 준비에 필요한 학원을 가기 전까지 아이들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며 무료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은 소소한 즐거움도 찾고 의미도 발견하며 잘 견디고 있지만 이들처럼 담배나 후배들을 얼러 대는 일 등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들은 학교는 또 다른 의미에서 스릴 만점의 장소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두려운 것은 예전에 어떤 아이에게도 고백한 적이 있지만 그 아이를 어찌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연락도 없이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도 않고 뒤늦게 와서는 한 소리 듣는데 잔뜩 짜증이 난다는 투로 눈을 옆으로 째고, 외로 고개를 꼬고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삐딱이 앉아서 ‘아, 왜요~’라든지 막무가내로 ‘싫어요’를 연발하는 사람 앞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은 -나같이 욱하를 잘 하거나 툭하면 ‘너를 고쳐주겠어’라는 식의 쓸데없는 인성(人性) 전문 엔지니어링 기사 같은 마음을 곧잘 먹는 사람들은 특히-극도로 차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겉모습에 현혹되어 화를 내면 안된다. 정 견디기 힘들면 내가 본 모습 정도를 묘사하고 그 때문에 상대방에게 심하게 무시당하는 기분이 되어 많이 상처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는데 마음을 집중하는 편이 낫다. 그런 일인 있던 날 특히 우리의 스모키 언니는 매우 강성으로 보여서 다음 날까지 그런 태도에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여 서로 간에 좀 시간을 벌어 기분을 좀 가라앉힌 다음, 다시 이야기를 하는 날에는 자세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몸이 하는 말’도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해 타인이 많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타인이 전날에는 바로 나여서 나는 더욱 심각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였다.

이렇게 가능하면 아이들과 절대 대결 구도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이것은 대단한 교육 철학이라도 있어 하는 말은 아니다. 실은 나라는 인간의 밑바닥을 알기에 하는 소리라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나, 애들한테 꼭 잘난 척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여서, 대결 구도가 되면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꼭 그 아이한테 할 소리 못할 소리를 다 해가며 ‘봐라, 이러니 너도 네가 나쁜 애라는 것을 인정하겠지, 그리고 내가 진짜 애쓰고 있으니 난 괜찮은 사람이지’ 하고 이 따위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더러운 근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 중에는 공연히 뻗대는 아이들도 있어 모든 것이 생각대로만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에는 생각과 달리 ‘너랑 다투기 싫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어땠든 우리는 다투었고 그런 다툼에서 네가 이겼다, 다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고 잘잘못을 따질 일이 있었는데, 그 중 일부는 나에게도 잘못한 점이 있어 네가 이긴 것 같다, 나에게 조금 시간을 주면 마음을 내어 잘못한 부분을 생각해보고 진심으로 느껴지면 잘못을 빌겠다’ 하고 솔직히 다툼을 인정해야 하는 아이들도 만나기도 한다.

그런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친구가 알 것 같았는데 실은 잘 모르는 사소한 일들과 사정을 잘 모를 수도 있는 일들을 함께 찾아내고 같이 생각해볼 작은 시간을 갖는 것이다. 지금 사회봉사를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방에서 무료하게 홀로 있으며 귀찮은 청소 따위의 일을 돕고 있다. 그 아이가 나쁜 짓을 했으니 벌을 주기 위해 시키는 일은 아니고 싶은 것이 우리 마음이다. 오히려 공부방에는 할 일이 수두루한데 교사 수는 적다보니 저절로 이것저것을 부탁하게 되고, 점심시간이 지나면 1학년 꼬맹이들이 몰려와서 또 사람을 괴롭히는 힘든 일상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우리는 짝이 되어 함께 일한다는 느낌을 갖기도 한다.

이 모든 경험들이 자신을 업싸이클링 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버려져야 할 학교에서의 사건과 그 기억들은 공부방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되돌아보고 잘 가다듬어 마음 한 구석에 의미 있는 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
아이들을 만나보면서 그저 호기심으로만 이 아이들을 맞이했던 첫 순간이 나라는 사람이 지닌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리고 언제나 돌출적인 결정을 부드러운 물결처럼 함께 잘 견디어주는 공부방의 동료 교사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사회봉사가 끝나고 학교에서는 ‘구로파랑새는 너무 힘드니 절대 가지 마라’는 소문이 슬금슬금 퍼지고 있다고 한다. 그냥 우리도 동네 사람들이니 아이들에게 무관심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서 시작한 일인데 다시금 악명을 떨치고 있다니 조금은 씁쓸하다. 다만 마음과 달리무언가를 잘 모르는 동네 사람이라 서툰 탓이 큰 때문이리라.

그래도 아이들의 인생에서 작은 순간을 그저 버려져야 할 것이 아닌 무언가 아름다운 것으로 탈바꿈하는데 작은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늘 새로 오는 친구들이 긴장되지만 함께 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 인생을 함께 업싸이클링하고 싶다. 우리도 같이……….

응답 2개

  1. 제비꽃말하길

    우리의 아름다운 태쌤의 글 너무 감동적이네요.
    ‘업사이클링’ 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니 정말 가슴이 뭉클해 옵니다.고맙습니다.

  2. 말하길

    재밌고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몸이 말을 한다’는 걸 아는 건 참, 오랜 시간의 인내를 요하는 지혜인 것 같아요. ‘업사이클링’ 참 좋은 말이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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