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지역아동센터 평가 거부 – 우리들의 불복종 운동

-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지역아동센터는 예전의 공부방을 말한다. 2004년 아동복지법을 개정하면서 아동복지이용시설로 전환된 후 주로 지역사회에서 빈곤아동을 돌보고 있다. 말하자면 복지시설이 된 셈인데 그런 시설치고는 정부의 지원이 참으로 박하다. 구로파랑새의 경우 29명 시설로 월 운영비 300만원을 받는다. 지난 해 평가 우수시설로 인센티브 명목의 30만원을 합쳐 운영비가 되는데, 이중 25%인 80만원은 강사비나 프로그램 재료비 등으로 반드시 아이들을 위해 써야 하고 나머지 250만원으로 두 사람의 인건비와 4대 보험, 공과금, 사무운영비로 지출을 하게 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격 있는 종사자를 구하라는 법적 조항은 있는데 막상 인건비 책정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센터마다 인건비가 들쭉날쭉하고 최저생계비 이하를 받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역아동센터의 고난은 다만 이렇게 운영할 돈이 적음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시설들이 소규모이고 표가 안 되는, 그것도 가난한 아이들이 있는 시설이다 보니 동정심 이외에는 진정한 정책적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종합적인 실태조사는 겨우 최근 1, 2년 내에 막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세계적으로 80여개 국 이상에서 시행하고 있는 아동수당도 아직 도입이 되어 있지 않고, 아동예산도 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 출산 파업이란 말이 도는 것은 이미 아이를 낳았을 때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고, 어떻게 비용을 감당한다 해도 실직이 아닌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하는 우리 사회의 암담함이 초래한 사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출산장려금 한 방으로 어찌할 속셈만 내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다시 평가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지역아동센터는 2009년 첫 평가를 받았다. 전국의 3,274개소가 7월에 나온 평가지표를 가지고 방학 동안 쌔빠지게 준비를 해서 9~10월에 현장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평가 준비는 시험 문제로 나온 평가지표에 자기가 한 일들을 일일이 증명 가능한 서류 형태로 만드는 작업으로 100여 가지 이상의 서류를 준비해야만 했다. 우리 지역아동센터도 때빼고 광내고, 서류 늘어놓고, 평가를 받는데 어찌나 긴장이 되든지 말하는 서류를 재깍 갖다 바치기만 하는 데도 덜덜 떨리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복지부는 별 말을 안했지만 이 평가를 해서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준다니 너무 간이 오그라들었던 것이다. 늘 무시와 억압을 당해오던 차이고 일이 터지면 제대로 하소연할 곳도 없이 살아왔던 처지라 그저 책 안 잡히는 수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평가를 받았다. 어떤 곳은 30분짜리 헐렁한 평가, 어떤 곳은 몇 시간에 걸쳐 이 잡듯이 빡빡한 평가, 똑같은 상황에서 달리 채점되는 황당한 평가가 진행되었다. 여기저기서 억울하다는 아우성이 몰아치는데 복지부는 돈이 없어 이의신청을 받아줄 수 없었고 현장들은 자기 점수를 몰라서 이의제기를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일어났다. 평가를 하기 전부터 말하자면 지표가 너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7월에 지표를 내고 1~6월 혹은 6~8월까지 상황을 평가하여 현장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정부에서 해주는 교육이 없으니 몇 사람들이 평가준비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는데, 그 강사였던 나도 전국에서 4대 보험 가입방법, 원천세 내는 법, 각종 서류 등으로 밤낮없이 전화를 붙들고 살아야 했다.

그렇게 힘겹게 2009년을 보내고 2010년은 끝나지 않은 악몽의 그림자와 함께 밝아왔다. 신년 초에는 지역아동센터의 운영지침이 내려왔다. 복지부의 지침에서는 09년 평가 중 하위 5%에 해당하는 기관은 운영비 지원 중단, 5~15%에 해당하는 센터는 운영비 삭감이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우리는 두려움 속에 긴가민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을 놓고 그런 센터들의 운영비가 잘려나가는 것들을 보아야 했다. ‘운영이 후지다’라는 복지부의 비난은 거셌고, 하지만 ‘아이들이 왜 피해를 입어야 하나’라는 우리들의 저항은 힘이 없었다. 아이들은 피난민처럼 낮은 평가를 센터를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그런데 그런 평가를 또 한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10% 예산 절감과 문제 있는 센터를 색출해내는데 재미를 보겠다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가 했던 것은 ‘의심해 보는 것’, ‘공부하는 것’과 ‘토론해보는 것’ 이었다. 그리고 어떤 사회복지시설도 평가를 통해 운영비를 주고 안주고를 정하는 법은 없다는 것과 평가란 원래 더 잘하는 곳을 격려하고 못하는 부분을 서로 노력하여 질을 높일 필요가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좋은 도구임을 알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평가도 운영비도 모두 잃은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현재 복지부의 평가에 대해 불복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자격 있는 교사가 아이들을 위해 정상적으로 센터를 운영을 하는 곳은 모두 운영비를 받아야 한다는 것과 현장의 의견이 수렴된 제대로 된 평가를 만들어 다른 사회복지시설들과 차별 없이 3년 마다 실시하자는 것, 그리고 지역아동센터 곳곳에 지뢰처럼 숨어 있는 문제들을 더 이상은 미루지 말고 해결해 달라고 싸우고 있다. 복지부는 갖은 협박을 다하고 있다. 아니 사실은 간단한 협박 하나면 충분하다. ‘그러면 운영비 안 주겠다’ 이 말이면 충분하고, 이 말이 너무 두렵다.

전남의 작은 시골 마을에는 아이들과 센터만을 생각하며 평생을 사신 노목사님 부부가 계신다. 경남의 한 센터장님은 자판기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가며 1년 내내 하루도 못 쉬고 센터를 운영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밉다. 무엇하러 바보 같이 남의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단 말인가? 무엇하러 그 힘든 데 운영비를 못 받아도 지역아동센터의 불합리한 평가를 개선하겠다고 뜻을 모은단 말인가? 복지부는 평가 예산으로 내려온 5억 원을 이미 지출했고 평가하려고 계약까지 맺었으니 어떤 희생을 치루고 라도 Go!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데 어쩌자고 더 이상 우리들의 연대를 해치고, 아이들에게 이롭지 않은 평가는 거부한다고 자기희생을 각오한단 말인가?

내일(21일)은 복지부의 평가신청을 마감하는 날이다. 오늘 밤 많은 시설장들은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복지부는 이미 신청서를 세며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는 것이 있다. 우리는 이번 평가 거부를 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서로의 비전과 전망을 비교해 보아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히스테릭 해졌는가 하면, 뜻밖의 사람이 우리를 이글기도 하였다. 곳곳의 동지들이 나타나 우리를 울게 만들었다. 원치 않게 복지부는 우리에게 큰 정치적 교육을 시켜주었고, 그 속에서 단단한 신뢰와 현명한 판단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 해주었다. 이미 이런 것들을 얻은 것만으로도 승리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탐욕스러울테다. 완전한 승리 즉, 운영비와 평가가 분리되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그 날까지 우리는 불복종한다. 우리들 곁의 동지들이 하나하나 무너져가는 것을 가슴 아프게 지켜봐야 하는 가장 마지막 남은 자의 슬픔이 바로 내 것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전의를 다지고 있다. 어느덧 굴레처럼 이 아프고 어렵고 힘든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나의 숙명이 되어버린 줄 알았다. 하지만 정부에서 그 굴레를 벗겨주겠다는데 바보 같이 나는 왜 망설이는지 모르겠다. 복지부가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것으로 믿는다.

“구로파랑새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2010년 지역아동센터 평가에 불복종합니다.
내년에 운영비 주시면 복지부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성 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응답 4개

  1. 민지말하길

    불복종운동을 지지합니다. “평가란 원래 더 잘하는 곳을 격려하고 못하는 부분을 서로 노력하여 질을 높일 필요가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좋은 도구”라고 하기엔, 정부의 평가라는 것이 너무 협소하고 작위적인 경우가 많지요. ‘정부 지원을 받는 복지시설’이 됨으로써 얻는 것과 잃는 것들이 있게 마련인데, 말씀하신 상황은 참으로 비상식적이네요. 그것이 오히려 ‘정치적 교육’의 기회가 된 셈이니 독을 약으로 쓴 셈인가요.. 정부의 협박을 넘어 현장에서 더욱 힘을 나누고 잘 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2. 고추장말하길

    고맙습니다. 선생님께 힘을 보태야겠는데, 오히려 선생님 글에서 힘을 받습니다.

  3. 말하길

    우리는 탐욕스러울테다….탐욕이란 단어가 이렇게 뭉클하게 쓰일 줄이야. 멋지십니다. 탐욕스럽게 승리를 쟁취하는 날을 위해…앞으로도 멋진 글 멋진 소식 많이 많이 전해 주실거죠?

  4. 비포선셋말하길

    가장 마지막 남은 자의 슬픔이 내것이 되도록 싸운다는 말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불복종운동에 마음 보태며…성태숙선생님,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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