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아이들하고도 의미 있는 진보가 되고 싶다.

-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다가오는 선거를 앞두고 온 나라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각계각층의 이유가 저마다다르겠지만 집권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정치권의 열기가 그 중 제일 뜨겁다. 국민들이야 별 일 없이 멀건히 바라보고야 있지만 그래도 ‘기회만 와봐라 내 이것들을 그냥 두나 봐라‘하고 단단히 벼루고 있는 기운이 곳곳에서 느껴지기도 한다.

시민사회계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분주하다. 선거를 앞두고 서로 마음과 뜻을 모아 이 거꾸로 가는 듯한 세상을 끝장내보자는데 예전보다 쉽게 동의가 되기 때문인 듯하다. 보수가 무얼로 망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항간의 말이 있다는 것은 기억한다. 하지만 요 몇 년의 지독히 막돼먹은 보수의 시절이 진보의 단결을 어느 정도 촉진하는 견인차 노릇을 해 온 터라 지금 기운이 오르고 있는 복지국가 담론을 향해 진보세력들은 서로의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한 시민단체가 진보진영들을 모아 복지국가의 담론을 정리하고 내년 선거를 위해 진열을 가다듬는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자리가 참 불편하다. 도대체 낄 데가 없이 너무 약소한 기분이 드는 까닭이다.

일단 노동 부문이나 교육, 의료, 주거 등등 쟁쟁한 부문들이 사안 정리를 해오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어찌 그리도 큰 문제들이 많은지 그리고 어떻게 나라꼴을 그 따위로 해놓았는지 정말 한심하단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 이야기에 취해서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보다 우리 이야기를 할 차례가 오면 괜스레 부끄러운 마음에 온 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남들은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너무 작은 부분만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말을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다. 우리 이야기를 듣느라 괜히 시간낭비하시겠다 싶어 얼른 짧게 끝내고 만다. 그러면서 속으로 ‘난 뭘 믿고 이런 진보진영이나 시민단체들에 동지적 연대감을 느낀다고 생각했을까? 참 홀로 과대망상이다’하며 한껏 위축된 기분에 씁쓸하다.

정말 그렇다. 온 나라가 들썩거리게 무상급식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한 켠에서 ‘학교가 아니라 지역으로 돌아와서도 급식을 지원받아야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 결식아동 급식비는 지방재정으로 지원이 되는 지방이양사업이라 각 시도나 시군구마다 급식비가 천차만별이에요, 전라도 같은 곳은 아예 주지 않거나 1,000원 남짓 주는 곳도 있어요, 지역아동센터에서 급식을 하고도 급식비를 못 받는 곳들이 있어요. 아이들이 3,000원짜리 급식을 해보고 진수성찬이라고 한데요. 방학이면 중식이나 석식 중 한 끼밖에 지원을 못 받는 곳이 있어요’하고 살짝 다른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물론 무상급식에 전면 찬성하고 다른 시민단체들과 힘을 모아 무상급식 실현을 위해 노력을 가하지만 워낙 가난한 아이들의 문제는 여러 줄기로 뻗어 있고 쉽사리 해결이 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 이런저런 이슈들에 조금 다르게 연관된 현안들 함께 제기하는 것이 빠질 수 없는 일이다.

전세대란도 그렇다. 가난한 서민들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주는 주거 문제 역시 지역아동센터와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관련이 있다. 가난한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 일하고 있는 지역아동센터의 많은 곳들 역시 정부 지원도 부족하고 운영주체도 넉넉하지 않아 가난하다는 동일한 문제가 있다. 물론 법인시설이나 대형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안정된 곳들이 없지는 않지만 절반 정도 되는 개인들이 운영하는 시설들은 시설의 안정성 문제가 큰 골칫거리다. 정부는 시설의 설치는 물론 임대차 등으로 시설을 유지할 경우 이에 대한 지원을 전혀 하지 않고 있으므로 전세대란은 고스란히 지역아동센터에 타격을 주고 있다. 말하자면 서민들만 어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서민의 일부가 지원해서 만든 자조시설들도 어려움을 고스란히 함께 겪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설지원까지도 말고 하다못해 저리의 융자만이라도 지원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왜냐면 특히 현재 많은 시설들이 집주인에게 높은 월세를 내며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가능하면 전월세 자금에 공적 자원을 일부 보태어 가능하면 안정되게 시설을 운영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지역아동센터들의 큰 바램이기 때문이다.

반값 등록금도 그렇다. 현재 아예 가난한 아이들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거나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반값 등록금이 되면 상황이 좀 나아질지 몰라도 이미 그런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학업 중단과 진학 대신 취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반값 등록금도 큰 문제지만 그래도 대학까지 갈 수 있었다는 것은 확실히 우리 동네에서는 남다른 일이다. 대다수가 대학을 진학하는 이 시대에도 실업계를 지원하는 많은 아이들이 가난한 아이들이다. 보호자들은 아이가 어서 빨리 한 푼이라도 벌어오길 바란다. 그리고 워낙 부실한 양육의 질은 아동의 어휘력과 기초학습력을 부실하게 만들어 고도의 학력노동사회에서 도저히 배겨날 수가 없도록 하고 있다. 분명 누구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문제인데 그래도 우리는 왠지 약간 반값 등록금의 문제가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니 오히려 보수가 우리 편을 들고 나오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무상급식을 할 돈이 있으면 먼저 결식아동의 문제나 해결해야지, 정치적 포플리즘을 기대해서 그렇게 돈을 쓰면 되겠는가’ 하고 보수주의자들의 공격이 가해지면 갑자기 정신없이 ‘좀 그렇죠’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보수는 절대 그럴 마음이 없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만약 보수에게 진정 결식아동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었다면 무상급식이 거론되기 전에 즉 쓸데없이 예산을 쓸 일이 생기기 전에 이 문제를 진지하게 거론했어야 옳다. (심야토론을 보면 이런 공방이 자주 등장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서로 그럼 네가 집권했을 때 왜 안하고 이제 와 우리한테 이러냔 식으로 늘 남 흉을 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쓸데없이 돈을 쓰는 게 문제되는 것이라면 쓸데없는데 돈을 썼던 다른 순간들에도 그럴 돈 있으면 결식아동문제나 해결볼 일이라고 일관되게 주장을 했어야 옳다. 여태 나 몰라라 내버려 두었다 무상급식 문제가 불거져 나오니 결식아동들에게 큰 관심이나 쏟고 있는 것처럼 구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실은 아예 아이들 밥 문제는 관심도 없다가 무상급식 문제가 표심을 좌우할 정도로 큰 이슈로 발전했고 그 속에서 수세에 몰리게 되니 무상급식 이슈를 염치없는 짓으로 만들기 위해 보수가 꺼내 논 얕은 꾀가 결식아동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 솔직한 인상기이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렇게 무상급식이 온 나라를 뒤흔들지 않았으면 결식아동 즉 아이들의 밥 먹는 문제가 이렇게 어른들의 진지한 관심거리조차 되지도 못했을 것이니 이런 점에서 분명 결식아동에 대한 진보진영의 공이 확실히 있다.

즉,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결코 현재의 집권세력이 우리에게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안타깝지만 깨닫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일부는 혹 우리가 이 참에 보수의 마음에 들어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매일 너무도 큰 문제 해결을 위해 애를 쓰느라 지역아동센터와 같은 작은 문제들을 지닌 생활영역을 차마 돌보지 못하는 진보진영에 대한 거리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으로 가면 사실 지역아동센터는 자기 자리를 찾기 어렵다. 아동들을 위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지만 진보의 아동은 보육과 교육의 대상일 뿐이다. 보수는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아동이 보육과 교육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은 실은 어른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아동의 이슈가 그 정도일 뿐이라는 것이 좀 더 확실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그나마 복지 영역이 있다면 그 중 아동청소년 복지 영역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복지 부분도 기초생활보장 등등 해서 어른들의 굵직한 이슈들이 많아 아동청소년복지를 별로 따로 논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동과 청소년계가 진보진영에서 활동한 경험이 일천하고 또 그럴 이유나 여유가 없던 탓이 제일 클 것이다.

‘아, 그래도 우리도 전체에 복무하고 싶다!’ 그렇게 열심히는 아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촛불과 광우병과 총선과 대선의 고지를 함께 넘어왔지만 반값 등록금 투쟁 앞에 나는 한숨 쉬고 있다. 짝사랑하듯 진보를 염모하며 늘 뒤따라왔지만 때로 잠시 지치기도 한다.

물론 꼭 진보주의자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 진보주의자들은 삶이 던지는 주요 가치들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보주의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쉽게 저버리지 못하겠다. 따라서 부모의 처지에 관계없이 최소한 공교육과 지역사회에서의 돌봄이 보장되는 이중의 지원 구조가 이루어지고 성인이 되었을 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된다면, 아이들은 그나마 나름의 아동기를 누리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한결같은 백일몽의 내용이다. 지금의 진보가 조금만 더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세월이 어서 와서 정말 아이들은 부모와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지, 어떤 인권과 사회권 그리고 정치권이나 경제권이 필요한지 고민해줄 수 있는 그런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많은 어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아동들의 세계, 결국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당사자 운동으로 스스로를 해방하고 나서도 그 가능성이 가장 적어보이는 이들의 삶의 문제 말이다. 교육과정으로 구획되는 아동기가 아닌 진정 삶의 바탕이 되는 아동기를 우리가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그런 여명을 나는 지금 보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그나마 진보 진영에 말을 붙여보는 것이다. 아무런 선택의 자유 없이 모두에게서 배타적으로 지금의 것들을 지켜낼 또 하나의 파수꾼으로서의 삶만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보수에게는 그나마 아무런 가능성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자들이 좋은 아저씨, 아줌마의 틀에서 벗어나 아동들을 좀 더 동지적 연대감을 갖고 바라볼 그 날이 올까?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면서 보여준 그런 가능성을 전폭적으로 확대될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해 본다. 그래서 이들의 문제가 좀 더 진지하고 다차원적으로 다루어질 그 날이 꼭 오길 기대해 본다. 혹 세상 어디서는 이미 그럴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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