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몸은 알고 있다.

-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그런 아이가 아닌데 내내 기운 없는 얼굴로 머리를 싸안고 며칠 동안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아이의 모습이 이상하다. 물어봐도 그저 잠을 좀 못자서 피곤하다고만 할 뿐 별다른 대답도 없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른 교사랑 아이를 데리고 수다나 떨자며 도너츠 가게 밖에 자리를 잡고 앉아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한 때 아이의 그였던 공부방 녀석의 철없고 철면피한 연애 행각이 도마에 올라 우리 셋은 입에 침을 튀어 가며 비난과 야유를 쏟아 내었다. ‘내 참 어이없어, 개념 없는 남자들이랑 살기 엄청 힘들어 죽것네.’ 우리가 아는 몇몇 남자들이 아스라이 우리들의 입술 위를 올라 간단히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우리들 속에서 청청한 웃음이 밤바람 속을 갈랐다.

“혹시 지금이 그 때니?”

그렇단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우리 공부방을 온 것이 이런 가을의 한창때였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을 모두 다 치루고 아이는 공부방엘 왔더랬다. 어찌 해야 좋을 바를 몰라 했던 나는 의외로 의젓하고 얌전한 아이 모습에 안도를 하며 별 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관계를 시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주 드물게 ‘너 진짜 잘 하고 있어, 정말 나라도 너 만큼은 못했을 거야’ 드문 격려와 찬사를 고백하기도 했지만 정말 속이 어쩐지 하고 사뭇 걱정스러울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아이가 처음으로 힘들어 한다. 머리가 아프고 피곤하단다. 잠을 못 잔단다. 지난 해 이맘때에도 그랬었나 되짚어 보지만 별 다른 기억이 없다. 햇빛이 옅어지고 살갗에 닿는 바람이 달라지면 아이는 그걸 느끼는 걸까, 지금이 그 때라는 것을 말이다. 아직도 그 집, 그 방, 그 벽을 마주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인데 다른 시간을 다 잘 이겨내도 몸이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아 보인다.

조금은, 아주 약간은 이해할 것 같다. 나도 가끔은 어떤 실루엣에 가슴이 철퍼덕 내려앉고 발걸음이 딱 멈추어지며, 머리 속은 이미 재빨리 시간을 거슬러 달려가 온통 복도를 울리는 구두 발자국 소리로 가득 메워질 때가 있다. 문이 곧 열릴 것이다, 문이 곧 열릴 것이다. 잠시 진정하기까지 숨소리조차 거칠어진다. 굳어진 어깨가 가까스로 떨고 있는 마음을 달래어 보지만 가던 걸음이 새로 힘겹다. 내 마음은 양쪽 어깨로 올라앉아 고단한 내 몸을 짓누르고 가슴을 텅 비게 한다.

그러니 아이는 응시하는 눈을 갖게 된 것이다. 사실 무엇으로 그 아이를 아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용서가 숙제로 주어진 그 아이의 몸은 이 바람소리를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나보다. 그래도 밥을 먹고, 학교를 가고, 공부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방을 쓸면서 세월은 갈 것이다. 그 속에서 이 바람을 기억하는 피 한 방울까지, 살 점 하나까지 속속들이 바뀔 그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그래도 그 날이 오기까지 이 바람에 그 아이의 몸은 치를 떨 일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