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몸은 알고 있다. Ⅱ

-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지역아동센터에 지급되는 급식비는 일식 당 3,500원이다. 정확히 말하면 결식아동에게 지원되는 급식단가가 3,500원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1989년 학생중식 지원사업은 1999년 IMF 시기 학교급식법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고, 2004년에는 방학과 토·일요일 중식지원사업이 교과부가 아닌 복지부의 사업으로 이관되었다. 2005년에는 지역사회 아동급식지원사업이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의 소관이 된다. 따라서 서울시의 아동들은 구비와 시비가 1:1 대응으로 재원이 조달되는 형식으로 급식비를 지원받고 있고, 그 아동이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할 때는 급식비가 단체급식소로 정산되는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온 나라가 6.2 지방선거의 폭풍 이슈인 무상급식으로 시끄러웠지만 결식아동 지원사업의 이런 시시콜콜한 상황은 진보진영에서조차 그리 잘 알고 있지 못하다. 실은 몇 년 전부터 지방재정 자립방안과 국가예산편성권은 전혀 없이 중앙 정부의 세금 나눠주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식으로 진행되는 허울뿐인 지방자치제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속에서 그나마 지방자치요 복지 자치라는 명분만으로 몇 십 가지 사업을 지자체에 떠넘겼는데, 급식지원사업도 그러지 말지 그랬어 하고 비판을 받고 있는 것들 중 하나다.

지역아동센터를 예를 들어 상황의 어려움을 이야기해 보면 다음과 같다. 급식사업이 지자체로 넘어와 버렸으니 현재 중앙단위의 단일한 기준 없이 지방정부마다 예산에 맞추어 알아서 사업을 해야 하는 실정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보니 똑같이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게 밥을 먹어도 정산되는 급식비는 일 식당 전남 무안의 1,667원부터 충남 계룡시의 5,000원까지 그 편차가 크다. 이는 그나마 얼마라도 주어서 다행이고 전남의 진도 같은 곳은 지역아동센터가 급식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이런 상황인데 학교 급식은 또 무상으로 실시하고 있어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은 정작 어려운 아이는 외면한다는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급식 사업일지라도 그 재원이 다른바에는 할 말이 없다. 말하자면 아무리 어려워도 돈이 흘러들어갈 길이 없다는 것이다.

길게 이야기를 했지만 지역아동센터의 급식은 생활의 꽃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스개 소리로 가끔 아이들에게 너희는 먹으러 왔냐고 지청구를 놓지만 어찌 꼭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이고 학교급식 아니면 센터에서 차려주는 밥이 그나마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에는 밥은 중요한 것이다.

파랑새도 친환경 급식을 하고 있지만 넉넉하지 않은 급식비로 이렇게 하기는 도전 정신이 필요했다. 물론 센터 운영 자체가 큰 도전이지만 급식은 아무리 식재료 사다 차려놓아도 아이들이 와서 밥을 먹고 친필사인까지 해주지 않으면 정산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자칫 출석률이 좋지 않으면 그야말로 피박을 쓰게 되는 까닭이다.

하지만 아이들 몸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때로는 친환경 식자재가 주는 어이없음이 있기도 하지만 슴슴한 본래 맛이 잘 간직된 재료의 맛을 그대로 전하려 애쓰는 교사들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일명 깨는 친환경 급식이란 이런 것이다. 아이들 학교 운동회 날 교사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샌드위치를 나누어 먹을 때 식빵의 질감이 하도 퍼석하고 풍미가 없어 분명 1,000원짜리 슈퍼에서 파는 ‘3O 식빵’을 사용했구나 직감이 들었다. 그래도 애들 운동횐데 애는 섰지만 이런 데 돈을 아낄 것까지야 하고 기분이 팍 상해 교사들에게 넌지시 잔소리를 할 참이었다. 낌새를 알아챈 교사들이 선수를 치며 자기들도 어이없이 우스며 그 빵이 그래 뵈도 값나가는 친환경 물품이란다. 자기들도 좋은 것으로 준비한 건데 역시 친환경 제품은 좀 하고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런데 친환경이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구나, 유연제와 조미료와 색소와 향료의 화학 산업은 어느 새 이런 정도는 우습게 뛰어넘어서 우리 입맛을 부드럽고 쫄깃하고 감칠 맛나는 식빵만을 찾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렇게 거칠고 푸석한 것은 본래 맛이 아닌 싸구려로 취급하는 맛의 세련됨을 찾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어찌되었던 세련된 맛에 철저히 중독된 나의 혀는 이렇게 때로 친환경을 환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센터에 들어올 때 아토피가 심했던 아이들이 조금씩 좋아지는 것과 시간을 가지고 잘 먹이고 천천히 접근하면 심지어 ADHD 등의 큰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도 많이 호전되는 것을 보면서 좋은 먹거리의 고마움을 다시금 느낀다.

개인적으로 올 해 외부 활동이 많아지면서 초기에는 커피랑 밥을 사먹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밤마다 문득 과자나 자극적인 음식이 먹고 싶어지고 안 그래도 땅하고만 친한 몸이 더 친해지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것 같아 나중에는 슬며시 두려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독한 마음으로 우선 커피를 끊고 가능한 센터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노력중이다.

센터에서 저녁을 먹고 일찍 자는 아이들은 거의 문제가 없다. 그런데 느즈막한 시간에 이상한 야식을 먹고 늦게까지 에너지가 남아 놀다가 아침에 못 일어나 지각을 하고 수업에 집중을 못하는 아이들은 이런 문제가 조금씩 쌓여 결국 학교부적응을 운운하게 되는 실정에 이르기도 한다.

단순하지만 좋은 음식을 잘 먹고 규칙을 잘 지켜 사는 일은 만사형통의 근원이 될 수 있다. 맛의 슴슴함을 견디고 삶의 슴슴함을 견뎌낼 수 있을 때 아마도 우리는 지혜를 터득했다고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좋은 음식은 거칠다. 좋은 인생도 거칠다. 좋은 음식은 자기 맛을 양보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좋은 인생도 나인 것을 양보하지 않는다. 나대로 사는 것, 나대로인 것을 먹는 일은 그래서 좋은 것이지만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향과 맛은 진한다. 당신도 한 번 길들여져 보시라.

응답 2개

  1. 지나가다말하길

    좋은 음식은 거칠다. 좋은 인생도 그러하다. 멋진 말입니다.

  2.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기픈옹달, 진보 뉴스. 진보 뉴스 said: [수유너머] 몸은 알고 있다. Ⅱ: 지역아동센터에 지급되는 급식비는 일식 당 3,500원이다. 정확히 말하면 결식아동에게 지원되는 급식단가가 3,500원이라고 하는 … http://bit.ly/c9Vq1L http://suyunomo.jinbo.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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