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오늘 아들은 학교를 그만 둔다.

-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드디어 오늘 아들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는 날이다. 다른 날 같으면 아침부터 안 일어나고 빌빌거리고 사람 속을 있는 대로 긁어 놓았을 녀석이 학교를 그만둔다고 하니까 신이 나서 일찌감치 활기차게 등교했다, 쩝.

대안교육을 꾸준히 소개하는 민들레 같은 잡지를 보면 예전에는 비장한 각오로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가끔 소개되곤 하였다. 치열하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겠노라는 다짐에 학교를 박차고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열정과 패기가 남달라 보이기도 하였다. 또 어느 날엔가 홈스쿨링을 하는 부모들의 글이 실리면서 스스로 자라는 인간을 지켜봐야하는 늙어가는 인간의 고달픔이 가슴 절절이 다가오기도 해서 그냥 싼 맛에 보내는 공교육에 만족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사실 우리 같은 처지에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은 감내해야할 비용이 만만치 않아 보여 선뜻 내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뭐 뚜렷한 결과물을 바라기 보다는 그저 싼 맛에 아이들을 맡길 수도 있고 또 혹시라도 그 와중에 정신을 차리면 대박이 날 수도 있으니 공교육을 선호해왔던 것이다. 아무래도 배팅하는 비용이 적게 들어가니 한탕 잘 하면 대박치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노무세키(우리 둘째 아이 이름을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이렇다)가 고등학교를 들어가자마자 학교를 그만두네 마네 설레발을 치더니 급기야 오늘 둘이서 그만 두기로 전격 합의를 본 것이다. 사실 제가 굳이 학교를 그만두고 제 인생 제가 알아서 살겠다면 내가 어쩔 것인가? 할 말은 없다. 그런데 그 동안 결론을 못 보고 씨름을 해왔던 것은 이노무세키가 얍삽하게 가능하면 나의 윤허에 의해 학교를 그만두는 일련의 절차와 확인의 과정을 거쳤으면 하는 술수를 부렸기 때문이다. 아니, 그만두고 싶어서 안달을 부렸던 것은 저면서 어째서 나중에 원망을 들을 수도 있는 최후의 결정타는 나보고 날리라는 건지 그 약은 술수가 미워서 계속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것이다.

한 때는 또 한 반 여자 아이 하나와 잘 지내며 자기가 그만두면 그 아이가 울 것 같아 못 그만 두겠다고 안심을 시키기도 하였다. 그 뿐이랴. 여러 아이들을 친구로 사귀었는지 이노무세키 어머님은 참 괜찮으신 것 같다며 이 아이, 저 아이가 하룻밤을 의탁하러 왔다며 떼거지가 집을 방문하기도 하는 등 어떻게든 학교에 좀 정을 붙이는 듯도 보였다. 그래서 네 인생도 이렇게 재미없이 순탄하게 자리를 잡는구나 하고 안심 반 실망 반 마음을 좀 접던 참인데 난데없는 물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어제 아침부터 조짐이 좋지 못했다. 허겁지겁 갈 길을 재촉하고 있는데 아이 담임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우리 이노무세키가 허리가 아프다며 학교를 못가겠다고 전화를 걸어 왔는데 어디가 심하게 아프냐고 물어 오신 것이다. ‘어디가 아프긴’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그 분은 전전날 토요일부터 집을 나가 내내 달리시다가 일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집으로 복귀하셔서 늘어지게 주무셨던 전력이 있으신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일찌감치 깨우고 나왔는데 ‘갑자기 왠 허리병’하고 뜨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를 그만두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왕이면 우리 이노무세키도 공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속에 고심에 찬 결단을 내리는 장한 모습을 보여주면 어디가 부러진단 말이냐? 고작 아침에 반짝 눈을 뜨고 “엄마 어떻게 하냐고? 학교 그만둬, 말어? 어떻게 할까?”하고 학교 그만두는 문제를 아침밥에 먹을 찬으로 계란을 부쳐 먹을까 쪄먹을까 하는 소리같이 하고 있으니 한숨이 날밖에 없다. 남편 복 없는 사람이 자식 복도 없다고 학교 다니면서 시원찮은 우리 이노무세키가 학교 그만두면서 그럴싸하길 바라는 내 소원이 오히려 과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나도 더럽고 치사해서 옛다 먹어라 하는 심정으로 “그만둬라, 그만둬”하고 손쉽게 말을 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둘이 한다는 말이 이 사실을 나의 친정어머님께는 들키는 그 날까지 최대한 비말에 부쳐서 시끄러운 일을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곤 저는 콧노래를 부르며 등교를 했다. 가기 전에 이천 원을 빌려준 건이 있는데 어쩌지 하는 소리나 하고, 이미 생활복은 삼천 원에 팔아 치웠는데 교복도 가능하면 팔아보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한 마디 남기고 떠나셨다. 그리고 제 에미는 글감을 찾지 못한 칼럼에다 제 아들 학교 그만 둔 이야기를 삼십분 만에 쳐대고 있는 것이다.

아이씨, 역사의 수레바퀴는 꼭 이렇게 나한테서는 10미터쯤을 비켜서 굴러가곤 한다. 참 우리 이노무세키는 좋겠다. 이렇게 개념 없는 엄마를 두어서…..쩝. 우리 엄마는 엄청 잔소리도 많고 집요한데…….

아 그나저나 내 인생이 녹록하다고 생각하는 신이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무언가가 잘못 보고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왜 그러냔 말이다. 그냥 싸게 곱게 학교 보낼라구 했는데……… 아이 인제 저 꼬라지를 어떻게 견뎌내고 봐야 한단 말이냐? 참 갈 길이 멀다.

응답 2개

  1. tibayo85말하길

    이거 뭐 웃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웃기고, 심각한데, 심오하면서 또 웃기고, 깊이 공감되면서도 참, 황당하고 그래서 또 웃고, 참 복잡하고 미묘하고 깊고도 가볍고,,아, 참, 간만에 한방 먹은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이노무새끼 화이링! 무개념 엄마도 홧팅!

  2. 박카스말하길

    ‘이노무세끼’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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