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놈들은 어떻게 자라는 걸까?

-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승때숙씨?”

느물거리는 놈 전화다. 천하의 원수다.

“누구세요?”

어쩌다 한 번 보는 얼굴이니 누군지 잘 몰라버릴 테다. 어젯밤에도 문자만 띡 보내서 졸리니 먼저 자야겠다고 했던 바로 그 놈이다. 집에도 안 들어온 놈이 그런 문자를 보내니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겨우 깨달았다. 아! 너무 졸려서 저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자겠다고…… 그러니 오늘도 못 오신다고…… 그렇게 한 주제에 전화를 해서리 흥흥거리고 있다.

“당신 아들이에요!”

기가 차고 코가 찰 일이다. 말이 안 나와 얼굴이 벌게진다. 이게 또 뭘로 날 벗겨 먹으려고 전활 했나, 시국도 어수선한데 성질이 살짝 나려 한다. 제 에미는 일요일에도 공부방에 나와서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데, 저는 실컷 놀다 와서 같이 온 친구하고 라면이나 끓여 먹으면 어떨까 하고 눈치를 보느라 전화를 건 것이다.

“야! 네 친구보고 내 집에서 한 발자국씩 움직일 때마다 천 원씩 내라 그래!”

돈만 밝히는 나는 달리 더 할 말이 없어 맘에 있는 소릴 해버렸다. 그러면서 친구를 바꿔 달라고 하니 정말 바꿔 준다. 친구란 아이에게도 같은 소릴 했더니 천연덕스럽게 그럼 저는 벌써 한 칠천 원은 내야 할 것 같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 준다. 우와! 정말 느물대는 놈들이다.

사실은 살짝 고민이 되었다. 둘째는 이렇게 자주 친구를 데려온다. 우리 집은 정말 조금 큰 코딱지만해서 작은 아이 방은 작은 아이가 누우면 머리끝과 발끝이 정확히 벽과 서랍장에 닿을 정도다. 그런 아이 둘이 누우면 방 안이 꽉 찰 정도의 작은 방인데 때로는 덩치 큰 아이 서넛이 작은 독방에 갇혀 있는 것처럼 뭐가 좋다고 그 작은 방에서 꿈쩍도 않고 같이 있겠다고 날 졸라댄다.

그러나 내가 고민을 하는 것은 꼭 집이 작고 허접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맞벌이를 하는 가정이나 나처럼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통 뭐를 하고 지내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사실 적지 않은 고민인데 나 역시도 마찬가지의 고민 때문에 망설였던 것이다.

아이들이 어디서 뭐를 하며 지내는지 모르는데 바로 우리 집과 같이 어른들이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은 시간이나 되어야 들어오는 일종의 빈 집들은 바로 이런 아이들의 아지트 노릇을 톡톡히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펄펄 뛰어서 아이들이 범접을 하지 못하게 해 놓지 않으면 이런 집들은 아예 내놓은 집 노릇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둘째 아이와 이미 여러 차례 선을 넘어버린 차라 사실 이제와 하는 이런 고민은 별 쓸 데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여러 차례 무수한 말로 날 홀려서 제 친구들을 무시로 드나들게 해 왔던 것이다.

처음에 진학했던 실업계 고등학교에 적응을 잘 못 해서 나중에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결국은 자퇴를 선택한 아들이 남긴 것은 그만둔 두 학교의 친구 아이들을 모두 봐야 하는 슬픈 나의 운명뿐이었다. 최근에는 실업계에서 같은 반이었던 여학생과 연애를 새로 시작하게 되어 새삼 살맛이 난다고 흥흥거리는 꼴까지 보고 있다.

나의 바람은 내 자식 내가 먹이고 재우고, 남의 자식 남이 먹이고 재우자는 간단한 것뿐이다. 물론 이미 공부방-혹은 지역아동센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 경계를 넘어선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아들아이가 보여 주는 이런 식의 경계 파괴는 싫다.

옛날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고루해졌다는 증거라고 하지만 난 원래 고루한 편이니 여기서 옛날이야기 한 편도 더 하련다. 예전에 내가 학교를 다닐 적에는 학교에서 징계를 먹거나 학교를 떠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학교를 짤리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인간 말종 취급을 받았고, 학교를 자퇴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해진 길의 양쪽은 절벽과도 같았고, 미친 게 아니라면 그 너머로 가는 것이 결코 허락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선진적으로 고등학교 때 자퇴를 하는 동급생을 목격하기도 하였었다. 내신을 고민하던 친구가 검정고시로 해결을 보겠다며 야무지게 학교를 그만두었던 것이다. 그때의 충격이 적지 않았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나는 스스로 살길을 찾을 수 있다는 당찬 각오를 보면서 진짜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고지식한 엄마 밑에서 어째 저런 아이가 태어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둘째가 학교를 그만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별 이유가 없다. 별 시시껍절한 이유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당시 한참 연애 중이던 누나와 결혼해서 카페나 차리고 살겠다면서 입시 중이던 누나 뒷바라지에 열을 올리더니 누나가 대학을 입학 한 후에는 보기 좋게 차이고 말았다. 그리고 계속 징징거리다 다시 예전의 한 반 여자 친구를 만나 사귀기로 했다는데, 가만히 꼴을 보아하니 이번에는 진학이 아니라 취업 뒷바라지를 하게 될 것 같다.

이런 식이다. 아들은 툭하면 집에 들어오질 않는데, 기가 막히게 제 인문계 고등학교 친구 하나가 부모님이 장기 해외여행 출장 중이셔서 어린 여동생과 단 둘만 사는 친구랑 함께 지내기 위해서란다. 거기에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친구는 잠깐 가출의 첫 밤을 우리 집에서 보냈고, 나도 누나를 알고 있던 어떤 친구 아이의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자리도 지켜야 했다. 연애 상담은 수시로 작은 아이를 바쁘게 했고, 아는 형 이사에 축구까지 정말 백수가 과로로 숨진다더니 작은아이는 책 한 줄 볼 사이도 없고 얼굴 보기도 힘들게 지내고 있다.

나는 가끔 이 모든 말들이 의심스럽다. 그래서 가끔은 동네 PC방을 불쑥 들어가 미친 듯이 작은아이를 찾는다. 물론 단 한 번밖에는 못 만났지만, 거길 가면 그 놈이 고독하게 담배를 피우며 화면을 응시하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간절하게 드는 생각은 여자라서 너무 괴롭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형님들의 세계를 모른다는 자괴감이다. 형님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애만 탄다.

갑자기 국정원이라면 이럴 때 형님들은 어디서 뭘 하며 지내시는지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물론 쓰잘데기 없는 소리인 줄 알지만 얼마나 답답하면 그런 소릴 하겠는가? 도대체 그 어린 형님들이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가 없으니 똥줄이 타서 하는 소리다.

며칠 전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는 자리가 있었다. 어쩐 일인지 며칠 있으면 수능 시험을 치르게 될 큰아이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너는 대학 진학은 안 할 거니?”하고 물었더니 그럴 생각이란다. 지금 배우는 바리스타 공부를 하면서 취업을 알아보다 나중에 돈을 좀 벌면 소믈리에 공부를 하고 싶단다.

에휴! 지 인생 지 꺼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마시는 데 어지간히 치중한다 싶다. 놈들이 정말 제대로 잘 자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딴 데 말고 국가는 이런 데 정말 신경을 써야 할 게 아닌지 모르겠다.

둘째나 둘째의 주변에서 흥흥거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국가 전복 세력이나 위협 세력이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나도 뭐 인생을 그렇고 그렇게 살았지만 그래도 둘째 아이나 그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저래도 되나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어쩨서 국정원 같은 곳에서 이런 놈들을 사찰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 국가의 안위와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불행한 한 가정과 불쌍한 한 여인을 위해 국정원 등은 이런 놈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놈들이 어디서 무얼 하며 어떻게 자라는지 소상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대응책을 짜야 할 것이다.

이들이 어디서 회합을 하며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그 꼼수를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앞날이 정말 걱정이다. 먹고 놀 궁리만 하다니 너무 괘씸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저렇게 매일매일 그것도 행복하게 먹고 노는가 말이다.

그러니 이런 국가 위협 세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위기의식을 좀 더 고취해야 한다.

응답 1개

  1. 말하길

    와, 이거 뭐. 풋. 후. 그러니까. 하! 참. 푸하핫. 이크.. 참 나. ㅎㅎㅎ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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