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나는 어떤 노동자인가?

-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아, 안 오셔도 돼요, 괜찮아요, 진짜 괜찮다니까요.”

어머니는 수년째 이런저런 병을 앓고 계신다. 급기야 한쪽 눈의 시력도 약해져 밖을 나다니시는 것도 힘겨워하실 만큼 이제는 기력을 다하셨다. 그런 노모가 일삼아 다니시는 곳이 있으니 바로 우리 집 일을 해주시러 오는 것이다. 청소에 빨래에 먹을 것 사다 나르시는 일에 심지어는 마흔 살이 훌쩍 넘은 딸년 속옷 챙기시는 일까지 어머니의 손이 미치지 않는 구석은 없다.

그러시던 어머니가 행여 몸이 편찮으셔서 며칠 집에 못 오시는 날이면 크게 걱정하시며 꼭 먼저 전화까지 주신다. 대개는 몸이 아파 오늘까지는 못 가겠으니 아무 일도 건드리지 말고 그냥 두라는 당부를 하시기 위함이다. 내일 엄마가 가서 다 해 준다고 그냥 두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면 나는 화들짝 놀라서 안 오셔도 된다고, 괜찮다고 팔짝팔짝 뛰지만 어머니는 그럼 내일은 꼭 가마하고 전화를 끊으신다.

어머니께 오시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것은 어머니가 안 오신 며칠 동안 집 안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오시는 내일까지 이런저런 일정을 헤아려 보면 도저히 청소를 할 짬을 낼 길이 없어 아예 오시지 말기를 당부드리는 것이다. 어머니가 집안 꼴을 보시고 한숨을 있는 대로 들이쉬고 내쉬고 하시다가 날 보자마자 한바가지 잔소리를 퍼부으실 것이 뻔한 일인지라, 미리 그 뜨거운 것을 어떻게든 피해보자 꾀를 낸 것인데 어머니가 전화를 하실 때쯤이면 사실 이런 꾀는 아무리 내어도 소용이 없다.

우리 어머니께 나는 못난 자식이다. 하나밖에 없는 딸년이 야무진 구석은 하나도 없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 데다 자식들도 제대로 보살피지 않고 집안을 팽개치고 미친 짓거리만 해대며 돌아다니니 생각하면 할수록 속이 쓰린 자식이 바로 나인 셈이다.

이런 나는 뭐하는 사람인고하니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 돌보는 일을 하는 돌봄 노동자다. 잔소리를 푸지게 하지만 결국은 어머니께 살뜰히 사랑하는 것만은 보고 배운 지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어머니께서는 늘 야무지지도 못한 자식이 그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늘 걱정이 많으시다. 더욱이 제 자식들도 제대로 못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영 못 미더우신 것이 많으신 것 같다.

어머니께서 도와주셔서 그런지 어쩐지 나는 점점 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새해를 맞이해서는 신정 연휴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집안에서 하루를 쉬어 본 것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집보다는 센터에 나가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평일 10시나 11시 넘어 퇴근하는 일은 다반사이고 토요일이나 일요일까지도 9시나 10시가 넘도록 최근하지 못하고 일에 매달리고 있다.

남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지만 센터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청소나 행정 일 등에 보낼 때가 많다. 8시나 9시쯤 아이들이 돌아가고 나서 이런저런 남은 일들과 남은 것들을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12시가 쉽사리 가까워온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일에 매달리다보면 도무지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매달려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집안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남은 기운이 없다보니 그대로 팽개쳐두기 일수여서 그런 일들이 고스란히 늙은 노모의 몫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살면서 돈을 버는 것도 물론 아니다. 정말 어쩌다가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되어서 발도 못 빼고 하고 한숨을 내쉴 때도 솔직히 없지는 않다. 이제는 도망도 못가고 꼼짝없이 스물 대여섯 명 아이들의 또 다른 엄마 노릇을 해야만 하는 팔자가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은 까닭이다.

그렇게 나름대로는 직살나게 일을 하는 지역아동센터인데 올해는 또 다른 대박이 터졌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총이랑 단체교섭안으로 주5일 수업제를 실시하기로 하여 갑자기 지역아동센터가 토요 돌봄이 필요한 아동들을 위한 대책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보건복지부 담당 공무원들이 우리들하고는 의논 한 마디도 없이 교과부랑 몇 마디를 나누었는지, 여기저기 언론 지상에 주5일제를 실시하면 지역사회 방임아동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는데 이에 대해 지역아동센터가 버티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내용이 실린 것이다.

이런 젠장, 왜 우리가 대책이야! 우리보다 연봉도 서너 배나 많은 학교 교사나 공무원들은 다 쉬는 토요일에 왜 우리는 대책이 되어서 일을 해야만 하는가 말이다. 그 유명한 낙수효과를 왜 우리가 경험해야 한다는 말인가?

낙수효과도 낙수효과 나름이다. 토요일에 근무하고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하도 적어서 어디 가서 받았다고 창피해서 말도 못할 돈이다. 서울시는 한 달 내내 토요일마다 지역아동센터가 운영을 하면 월 15만원에서 25만원 사이의 운영비를 추가 지원하겠다는 안이다. 많이 잡아 25만원이라고 하더라도 토요일 내내 4주 동안 일한다고 치면 하루에 6만2천5백원의 운영 지원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돈으로 운영비와 인건비 및 프로그램비까지 다 써야하니 정말 그냥 창피한 생각이 든다. 지역아동센터를 무슨 호구로 알아서 요정도 돈으로도 찍 소리 없이 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정부는 아니 할 말로 돈 안 받고도 운영을 하였는데 약간이지만 지원을 더해주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그런데 글쎄 그게 다르다. 선물처럼, 마음이 나서 일을 하는 것과 남한테 같잖은 돈을 받고 돈 받았으니 일을 하라고 하는 것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지난 시절의 주말 근무는 노동이나 근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과 그 날 놀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갔던 것이었다. 학교 교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팽개친 아이들을 우리가 적은 돈을 받고 대신 돌보고 있으려고 나갔던 것이 아니란 말이다. 지난 토요일은 그냥 우리의 삶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토요 근무는 허탈하게 다가오고 있다. 아이들에게 아직 물어보지 않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스럽다. 아이들의 상황을 잘 알면서 아이들의 처지를 외면할 수도, 그렇다고 대책으로 짐을 지겠노라 나설 수도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OECD 최장의 살인적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조국에서 나는 토요 근무를 거부해야만 했다. 특히 지역아동센터에 종사하는 교사들로 아직 어린 자녀들을 키우고 계신 분들이 많음을 생각할 때 지역아동센터는 절대 토요 근무를 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어야만 했다. 누구는 쉬고 누구는 일하고, 누구는 아이들과 지내고 누구는 아이들을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그런 주5일제가 되어서는 아니어야 한다고 단호히 말해야만 하는데…….. 우리 어머니가 더 이상 애쓰시지 않도록 꼭 그렇게 말했어야 하는데………

아이 참 나는 힘이 약한 노동자인지라, 주중에 버는 것만으로는 생활이나 센터의 운영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인지라 뻔히 독인 줄 아는 이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지 못한다. 아 성질나, 나 참 어떤 노동자냐?

응답 2개

  1. 말하길

    선물을 노동으로 만들어버리는 25만원 지원, 점말 치사빤스다. 기왕 지원하는 김에 동그라미 하나 더 붙이든가, 암튼, 주 5일제 수업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군요. 찬찬히 돌아봐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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