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가족, 그 신화와 정치경제학

-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가족과 관련한 이야기를 더할 필요는 사실 없다. 가족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꺼낸다 할지라도 한 번은 누군가 성질을 내듯 울음을 터뜨리며 했을 법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또 꺼내는 것은 아무래도 참 힘들기 때문이다.
가족이 힘든 이유는 누구나 알듯이 대개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사람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운명공동체가 되어버리는 난감한 시츄에이션 때문이다. 남이라면 코빼기도 절대 보고 싶지 않을 위인들이 가족이어서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봐야하는 괴로운 상황이 연출된다. 게다가 보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요, 안 참으면 어떡할 건데 하는 사태도 수시로 벌어진다.
오늘 자정이 넘는 시각에 들어와서 새벽 3시로 내 가족의 하루는 마침내 종을 쳤다. 몇 번이나 울컥하고 치받는 성깔을 삼키고 또 삼키며 파국으로만 치닫고 싶은 내면의 격정을 달래고 또 달래어 나는 이제와 거울 앞에선 심정으로 컴퓨터 자판을 열렬히 두드린다.
그러나 실은 그 전에도 난 이미 또 다른 가족 문제로 한바탕을 해치우고 온 참이었다. 공부방의 4학년짜리 초등학교 남학생 한 명이 얼마 전 겨울방학이 되자마자 이혼한 아빠 집에 다녀왔다. 돌아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하루는 아이가 설이 되면 자기는 아버지 집이 있는 지방으로 아예 거처를 옮기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왔다. 그러기를 한 이틀 하더니 아이 엄마가 그 문제로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고 하여 오늘 만나게 된 것이다. 이야기를 제대로 알기 전에는 아이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아이를 아버지한테 보내기로 했는가보다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한참이었다.
그런데 슬슬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아버지 집으로 가겠다는 하는 것은 아이 생각이고, 엄마와 할아버지는 그걸 말려볼 요량으로 ‘한 번 가면 다시는 못 돌아올 줄 알고 신중히 생각하라’며 엄포를 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아버지 집으로 가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안 그래도 의아스럽던 참인데 마침 아이 어머니가 오신 것이다.
원래 내가 했어야 하는 일은 의젓하게 상담을 하여 현재 이 가족이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함께 잘 풀어나갈 수 있는 힘을 스스로 찾도록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절대 남 일 같지 않은 일’에 상담에서 쓰는 용어로는 ‘역 전이(counter-transference)’가 되어서 아이 엄마랑 함께 눈물 콧물을 빼고 왔다. 한마디로 좀 한심하고 찌질하게 군거다.
아이는 부모가 모두 그립고 안타깝다고 하였다. 원래가 그런 것인지 이혼한 충격으로 그런 것인지 아이는 심하게 먹을 것에 집착하고 자의식도 작지 않아서 절대 공부방 안에서도 자신의 신체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무척 예민하게 굴었다. 그런 아이를 이번 겨울방학 때 아이 아버지가 보고 ‘네 엄마가 애를 어떻게 키워서 이 모양이냐, 차라리 나랑 살자’고 했던 것이 도화선이 된 듯하다. 아버지 집으로 간 첫날부터 마음의 결심을 하고 엄마에게 허락을 받아낼 때까지 제 딴에는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고 한다.
긴 고민 끝에 아이는 아무래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여건이 나은 아버지에게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심한 가정폭력으로 이혼만 해줘도 다행이란 식으로 위자료나 양육비 한 푼 못 받고 나온 엄마가 간호조무사직을 구해서 친정집에 의지해서라도 살 길을 구하는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더 이상 엄마를 힘들게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에게 자기는 잊혀지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도 두려웠고, 엄마가 궁상스런 살림에 이것저것을 제대로 해주기 못하는 것을 참기도 힘들며, 엄마의 열등한 사회적 지위도 불안하고 그로 인해 받아야하는 수모를 지켜보며 같이 사는 미래에 대해 나름 진지한 고민을 한 모양이다.
실은 딱 그런 말들을 듣기 시작한 무렵부터이다. 처음에는 엄마더러 자리를 좀 피해 달라는 아이를 보고 ‘오늘 여기서 한 이야기는 모두 여기서 끝내는 걸로 할 거고,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안 해도 좋다’고 까지 했지만 좀 주저하다 ‘솔직이 이런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하는 서두와 함께 하나씩, 둘씩 털어놓기 이야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나는 아이 엄마보다 더 섭섭한 마음에 휘둘리고 있었다.
남의 처지를 잘 안다고 하면 안 되는 줄 잘 알지만 이미 꼭지가 확 돌아버린 뒤라 “선생님이 이혼을 안 했으면 모를까. 또 이혼하고 아들을 키워보지 않았으면 모를까”하고 이미 너네 일이 아닌 내 일이 되어 이야기의 전면에 나섰다. 자랑은 아니지만 굳이 숨길 것도 없다싶어 난 공부방 아이들에게 내가 이혼하고 홀로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밝혔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난 공부방 교사로서는 빵점이다. 제 가정도 잘 못 지켜, 제 자식도 잘 못 키워, 뭐 하나 잘한 게 있다고 남의 가정을 돕겠다고 하는 건지 개도 웃을 일이다. 나도 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부족한 노력이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서 내 딴에는 할 수 없어 포기한 일이니 누가 무어라 하면 그냥 들을 수밖에 없다. 그저 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라, 나같이 안하면 될 것 아니냐 그렇게밖에 할 도리가 없다. 지금도 같이 살고 싶지는 않지만 아이들 때문에 이혼한 것은 분명 후회한다, 나도 어렵고 내 자식들은 더 어려워한다. 후회는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이혼한 사람이 후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혼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이혼한 사람들은 그냥 당연히 하는 후회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건 해도 되고 아니 해야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나라도 돈과 사회적 지위 앞에 무참히 무너져 내리는 가족에 대한 신화, 정확히는 모성 신화가 무참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흥분을 했다. “너희 엄마나 다른 가족들 마음을 네가 좀 더 잘 이해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께서 한 번 가면 끝인 줄 알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 일이 중요한 일이고, 네가 가질 않길 바라니 그런 말을 해서라도 널 붙들고 싶으셨던 게다. 너희 엄마는 어린 너를 의지하고 너를 키우는데 자기 삶을 바치겠다고 너 하나 바라보고 사는 사람인데, 갑자기 네가 다시는 못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 집으로 가겠다고 하니 너무너무 섭섭해서 그런 소리를 하신 게다. 자기 딸이 남편과 헤어져 사는 것도 안타까운데 이만큼 어려운 상황에서 자식을 키워놓았는데 갑자기 아버지한테 간다고 하니 자식에게도 버림받는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속상하셔서 하신 말씀이야. 보통의 아이들은 아무리 힘들고 가난해도 엄마랑 같이 살겠다고 하는데, 힘든 시절 다 버티고 이제 너도 철이 좀 들만 한 나이가 되어 한시름 놓으려는데 가겠다고 하니 엄마는 걱정도 되고 배신감에 속이 상하기도 하고 그러신 가봐.”하고 잘 이야기를 하다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한 마디 덧붙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하도 힘들어서 선생님이 오히려 아들들한테 아빠한테 가서 살라고 해도 자기들이 싫다고 하는데….”하고 말이다. “넌 왜 그 모양이니?”하고 분명 비난하고 질책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것이다. 엄마는 구구절절 자기 마음과 같다는 표시로 눈물 바람을 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4학년 꼬마는 있는 대로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하더니 “엄마한테 매일 아침저녁으로 전화하려고 그랬어요” 하는 말로 절대 버리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리고 “솔직히 이런 말은 안하려고 했는데”하면서 앞서 말한 것처럼 위층에 사는 직장 상사에게 당하는 엄마의 처지를 지켜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아이 엄마나 나는 그 기특한 마음이 느껴지면서도 세상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는 것이고, 일을 하다보면 마음에 맞는 사람들만을 상대할 수도 없고 그런 것쯤을 이미 알고 각오하고 있기에 우리는 어른일 수 있는 것이란 이야기로 응수를 하긴 했지만 결국 그 이야기는 다른 곳으로 또 이어졌다.
아이 엄마는 “네 전화야 받을 수 있지만 여기서처럼 네가 괴롭힘을 당하든지, 무슨 일이 생겨도 엄마가 예전처럼 금방 가서 도와줄 수도 없어. 너 그건 알고 있어야 해”라고 이야기를 꺼내자 아이는 자기 아버지의 직장 내 직위가 높아서 아이들이 함부로 때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여 그 치밀함을 엿보이게 하였다. 모성의 부재를 염려하는 자리는 정치경제적 대안 마련으로 봉쇄되는 듯 보였다. 게다가 어찌 부성이 없겠냐는 듯이 자기 아버지가 살뜰히 자기를 챙기는 모습을 살짝 덧붙였다. 이번에 올 때도 수십만 원 상당의 물건들을 이것저것 사 보냈다는 엄마 이야기까지 덧붙여지니 돈 있고, 힘 있는 아빠가 잘 돌봐주겠다는데 엄마의 모성 따위가 댈거냐 싶은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아이는 제 아버지가 나이 들어 외로움을 타는지 혼자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 말이 틀리지 않는 모양이다. 아이 엄마는 아이 아버지가 재혼 계획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며, 이제 너도 어디 갈 데 있으면 가도 된다고 이제야 재혼 허락을 해주었다는 어처구니없는 말까지 덧붙인다. 이쯤 하니 마음속에서 “보내라, 그래 저렇게 살고 싶다는데 보내야지 어쩌겠는가‘하는 포기가 두 어른이 절로 먼저 하게 되었다.
아무튼 아이의 의지는 확고했지만, 그만큼 아이 엄마의 허탈감과 염려도 적지 않아 딴에는 그럼 협상안으로 “그럼 일단 아버지하고 일정 기간 살아보고 네가 잘 적응을 해나가면 엄마가 계속 사는 것을 허락하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니?”하는 의견을 내보았다. 협상 조건을 듣자마자 아이는 크게 한숨을 쉬면서 “아빠가 한 번 살면 이제는 아빠랑 계속 사는 거라고 했어요. 다시는 엄마한테는 못 간데요” 하고 걱정하는 말을 내비친다. 아이 엄마도 양육지원을 하나도 해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문제를 상의하려 들면 제대로 듣지도 않고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다 없던 일로 하자고만 한다는 전 남편에 대한 답답함을 아이가 오기 전 이미 털어놓았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퇴근만 하면 뭐 조르듯이 아버지랑 살게 해달라고 졸라대니 한 번 가면 이제는 다시는 얼굴도 못 보는 사이가 될까봐 엄마는 도저히 아이 손을 놓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전남편은 불통이고, 아이는 아버지를 핑계대면서 엄마를 보러 오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벌써부터 아버지 심기를 건드릴 이야기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투는 이 부자 사이에서 엄마의 자리가 남아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여지껏 널 낳고 책임지고 기른 엄마인데 그런 권리는 엄마에게 당연히 있다고 봐, 이혼을 한 건 미안하지만 이혼을 하고 어려운 시기 너를 다 돌본 것도 엄마뿐이고, 그 힘든 것 다 이겨내고 이제 겨우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하는데, 네 아버지가 그 동안의 엄마의 공을 무시하고 무조건 보낼 거면 보내라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아, 엄마도 네가 잘 자라는지 확인하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는 거고, 그러니 한 학기를 아빠랑 지내보고 더 계속 살지 엄마랑 이야기를 해서 엄마가 허락하면 아버지랑 계속 사는 것으로 정하는 게 어떻겠니?”하고 다시금 신중하게 중재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이의 대답은 “그런데 그 대답 꼭 엄마한테 와서 해야 해요? 차멀미가 심해서 그냥 전화로 하면 안돼요? 이번에 올 때도 계속 토할 뻔 했단 말이에요.” 하는 것이었다. 순간 “아, 멀미가 심하구나, 그럼 멀미가 심하면 아무래도 오기가 힘들지. 뭐 그럼 직접 오는 것보다는 물론 전화를 하는 게 더 낫겠지” 하는 허탈한 반응 외에 뭐 별로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더니 아이는 다시 “그런데 지금 이런 얘기하면 좀 그런데…”하고 조심스레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길래. 괜찮으니 어서 말해보라고 했더니 저녁 먹고 과일을 못 받아왔는데 지금 가서 그걸 좀 받아도 되겠는가를 묻는 것이다. 혹시 엄마랑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그 영향이 자기에게 어떻게 미칠까 하는 염려 때문에 저녁을 먹자말자 후다닥 올라온 모양인데.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보며 좀 안심이 되었든지 챙길 것 챙겨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나보다.
하지만 그래도 그 4학년은 확실히 뭔가를 알긴 아는 4학년이다. 오늘 제 엄마가 상담을 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는 내게 두 가지 부탁을 했었다. 첫째는 제 이야기를 잘(?) 해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제 엄마가 제가 가고 혹시 우울증 같은 것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이야기였다. 이미 그런 걱정을 하고 있어서였는지, 제 엄마와 단 둘이서 그냥 아이를 보내고 OO이 엄마도 재혼하라고, 그래서 한 번 좋은 가정 갖고 다시 예쁜 아이들 키우며 잘 살라는 충고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새 과일을 들고 오는 아이가 저도 그러라고 했다고 말을 거들고 나선다. 제 엄마 홀로 남는 것이 걱정이이서 저도 결혼해도 괜찮다고 했다는 것이다. 우울증보다야 그 편이 백 배 낫다는 것이다.
그렇게 멀쩡한 4학년이므로 “그래도 선생님이 네 이야기들 속에서 한 가지 정말 이해가 되는 점은 있어. 네가 얼마나 아빠랑 살고 싶은지 그건 정말 이해가 가, 우리 아들들도 아빠를 너무 사랑해서 어쩌다 아빠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만사 제쳐놓고 만나러 가거든. 우리 아이들은 아빠가 같이 살자는 말을 안 해서 못 사는 거지만 그래도 너희 아빠는 너랑 같이 살자고 이야기도 해주시고, 또 너도 간절히 아빠랑 같이 살고픈 마음은 선생님이 너무 이해가 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를 키우시는 건 엄마야, 엄마는 네가 너무 아빠를 보고 싶어 하고 같이 살고 싶어 하니까 그냥 양보하시는 거야, 네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너를 아빠한테 보내주고 네가 충분했을 때 돌아오기를 언제까지나 기다리려고 하시는 거야. 그러니까 엄마는 어떤 경우에도 널 책임지시는 거야. 네가 아빠랑 살다가 무슨 일이 있어서 돌아오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지 널 책임지는 엄마에게 돌아올 수 있는 거야. 다만 선생님이 아쉬운 것은 엄마는 네 행복을 위해 이렇게 모든 걸 스스로 먼저 양보하려 하는데, 너나 아빠는 ‘엄마가 괜찮다고 했다’란 것을 구실로 세워서 너무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못쓴다는 말이야, 엄마는 너의 행복을 위해서 큰 양보를 한 거야, 그러면 너나 아빠도 엄마 입장을 좀 더 생각해 주고 함께 좀 양보하는 마음이 있어야 될 것 같아.” 하는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선뜻 할 수도 있었다.
이야기 끝에 아이 엄마와 나는 한 번 가면 끝이라는 등의 이야기의 끝을 절대 정하지 말고, 일단 아이를 원하는 대로 아버지와 살게 해주자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아이를 보니 벌써 그리운 얼굴이 되어버려 주책 맞은 눈물이 그칠 줄을 몰르고 흘렀다. 그러나 아이는 영특하게 평소에 저를 많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나였음을 잊지 않고 그리 우는 것을 보고 “저한데도 무슨 좋은 점이 있어요? 보고 싶을 만큼요?”하고 물어 왔다.
주저하지 않고 “너한테 좋은 점이 많지. 네가 절대 잊지 않게 가기 전에 네 좋은 점을 몽땅 적어 줘야겠구나, 무엇보다 너는 영특해, 이런 이야기를 어른들과 함께 척척 나눌 수 있고, 이 복잡한 것들을 다 이해할 만큼 너는 영특해, 그리고 섬세하고. 그래서 나는 너랑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너라면 속 시원히 알아듣고 맞장구를 치고 그랬는데…… 이제 네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니 벌써 네가 보고 싶은 것 같다.”고 훌쩍거렸다. 아이는 그리 좋은 점이 많은 나를 왜 좀 더 잘 대해주지 못해서 이리 놓치고 후회하나 하는 표정이 살짝 엿보이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앉았다. 영원히 같이 있을 줄 알아서 그랬다. 가족은 말할 나위도 없고, 가족 비슷한 공부방에서도 설마 하던 일인지라 언제나 아이들은 늘 거기 있을 것 같이 여겨졌기 때문에 좀 더 잘해주지 못했다. 변명은 언제나 내일부터 잘 해 주자였는데, 그 내일은 한 번도 오지 않고 다른 내일이 와버린 것이다.
실컷 울기도 하고 이런저런 속내 이야기를 한참 나눈 뒤 엄마도 보낼 결심이 조금은 편히 선 눈치다. 아이는 갈 수 있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미련 없이 떠날 태세여서 하루가 여삼추 같은가 보지만, 원래 예정한 설명절도 실제는 두어주 있으면 금방 닥쳐오므로 엄마는 그 새삼 놀란다. 맨날 엄마가 그리워서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아이들만 보다가, 엄마는 됐다고 뿌리치고 가는 아이를 보니 기가 다 빠져 못 먹은 저녁 대신 무어라도 채워 넣지 않으면 일어설 기력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랬다. 공부방을 하면서 엄마 노릇을 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늘 고민을 해왔는데 오늘 일은 여러 가지로 충격적이다. 무엇보다 공부방 일이 실은 단단히 가족에 대한 신화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신화를 재현하는데 자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말로는 어린 민중들이 자라는 곳, 작은 계급의 학교가 되길 바래본다지만 낭만적인 목표의 근저에는 그런 신화가 어른거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신화까지 있는데 엄마가 실은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실은 별게 아닌 걸 그렇게 부려먹자면 신화까지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가 그런 본질을 통찰하고 있는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젠 아빠한테 가서 살테니 그러지 말고 어디 결혼이라도 해서 더 이상 눈물짓지 말고 행복을 찾아보라는 아이의 말을 우리는 그대로 들어야 할 터이다. 저 작은 아이도 세상을 맞추어 살려고 저리 애쓰는데 우리도 깨닫고 고집부리지 말 일이다. 쓸데없는 소리도 집어치울 일이다. 신화니 정치경제학이니 그런 어줍은 말도 말 일이다. 그저 “고맙다. 잘 지내라. 함께 있을 때 더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네가 이리 갈 줄도 모르고 그랬구나.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은 줄 알고 다음에는 꼭 잘 해 주려고 했는데 그랬구나.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이리만 말할 일이다. 잘 가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응답 2개

  1. 일다말하길

    글이 곧 마음이 되어 호흡의 박자를 드러내주는듯 합니다. 내가 너에게 해준게 얼만데, 하며 아이에게 모성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사랑은 철저히 일방향적인 것이고, 특히 피와 살을 섞어 자식을 내놓은 어미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어미의 사랑은 ‘사랑’의 원형일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뿐입니다, 사랑은 한쪽으로 흐르고, 사랑을 받은 이는 점점 더 멀리로만 갈 뿐입니다. 자식에게 부모의 은혜를 되새기라고 말해주는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씁쓸하게도 말이지요.

  2. 말하길

    항상 그래왔듯이 샘의 글은 심장을 후벼파는 데가 있어요. 몇 가지 개념으로, 몇가닥 논리로는 절대 담을 수 없는 삶의 원형질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할까? 먹먹하면서도, 후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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