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우리들의 일그러진 소영웅

-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여름이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으니 좀체 기운이 오르지 않는다. 한창 땡볕에도 불타오르는 정념에 더위도 모르고 정신을 불사르고 다녔건만 고갱이가 사라진 지금 무너져 내리는 허무감을 달랠 길 없어 애꿎은 더위 탓이 점점 심해진다. 보건복지부를 향해 지역아동센터가 겨누었던 칼날이 이제 내려진 탓이다. 사실은 겁탈이라도 당하기 직전의 음전한 처녀마냥 제 목에 제대로 거누었던 칼날을 겨우 끌어 내려지고 이제 막 속울음을 삼키고 있는 중이다. 어리석은 신념일지라도 이미 버려진 몸과 마음을 하염없이 탓하며 두려움에 무릎 꿇고만 스스로를 용서하기에는 전에 깨물었던 입술의 멍울이 아직도 선명히 아프기만 하다.

처음부터 제 몸에 피를 보는 것 외에는 별로 길이 없는 싸움이었다. 더욱 결심을 야무지게 하고 상대를 똑바로 정신 차려 노려보았어야 한다. 누가 당신들더러 애들 돌보라고 했냐, 뭐가 생기니까 저러고 버티고 있지,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면서 모아만 놓으면 장땡이냐…. 누가 아무소리 하지 않아도 환청처럼 비웃음과 조롱이 귓전을 맴돈다. 왜 이러고 사는가 하는 깊은 자괴감과 우울감에 마음은 어디 깊은 동굴을 찾아 벌써 숨어 들어버렸다.

나는 두려움만을 이겨내면 되는 줄 알았다. 운영보조금을 받을 수 없어 엄청 힘들어질 것이라는 것과 복지부와의 관계가 제대로 뒤틀어져버릴 것이라는 생각들이 초기 두려움의 주된 이유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무너져 내리게 한 것은 두려움 보다는 켜켜이 쌓여가는 피로감이었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적은 야비하고 무자비해졌다. 힘이 없는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희망들을 절실히 찾았고 그 때마다 희망은 한 방울이라도 피 맛을 보기 전에는 자취도 엿볼 수가 없었다. 신념은 마치 독음송이 되어 어느새 무거운 장막처럼 미리 위에 드리워졌다. 돌아선 사람들을 차마 붙잡을 힘이 없었기에 그리고 더 이상 돌아서서는 안되겠기에 우리도 남은 사람들과 차라리 등을 돌리는 길을 택했다.

뻔한 거짓말들이 오가고 속이 훤한 대의명분들이 불나방처럼 날아 다녔다. 차차 보이던 길은 더욱 아득해지고 거기까지 갈 일이 있으랴 싶었던 바로 그 길이 성큼 다가와 계속 어쩔거냐고 시비를 건다. 무르고 변변치 못한 몸뚱이들이 아우성이다. 저쪽은 이런 식으로 치욕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고 하고, 이쪽은 이만하고 뒷일을 기약하자고 붙든다. 그러나 너무나 힘들지만 모두의 뜻이 그렇다면 하겠단다…. 그리고 그는 한참을 뒤돌아보다 그 모두의 뜻을 세우러 어느새 저만큼 앞서 뛰어가 버린다. 이 순간 아무에게도 푸념을 해서는 안 된다. 나를 사랑하던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사랑하게 된 모든 이들은 이미 뜻을 세우러 뛰어가 버려 아무도 곁에 남아 있지 않다. 나도 어딘가로 뛰어가 새로운 사랑과 믿음을 시작해야 하건만 그 전에 단 한순간만이라도 그들의 품에 안겨 그저 목 놓아 울고만 싶다. 피로감에 몸을 가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개, 돼지가 되어 살기로 했다. 동지들은 누가 날 살리라고 했냐며 으르렁거렸다. 다시는 네 꼴을 보지 않겠노라며 결코 네 잘못은 아니지만 다시는 그저 널 보지 않겠다는 냉정한 고별사를 올린다. 왜? 라고 천만번도 더 물어온다. 여기까지만 싸우면 왜 안되는데 하고 백만 번도 더 소리 지르고 싶다. 나 혼자만의 결정도 아닌데 나는 코를 석자나 빠뜨리고 다음 일을 태만히 하고 있다. 부끄럽기 때문일 것이다. 실은 정말 부끄럽다. 그리고 화가 난다. 이리저리 바뀐 일들이 다른 사람들 말처럼 우리의 성과물인지 복지부의 더 지능적 술수인지 가늠도 할 수 없다. 그런 속에서 우리는 갑자기 입장을 바꾸어 평가를 수용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항복인지, 전략인지, 타협인지 사실 우리조차도 규정할 수 없는 속에서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다.

스스로 모여 투표로 결정을 했지만 결과는 비등했다. 사회자가 어떤 판단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쉽지 않은 순간이었다. 모두들 웅성거렸고 거친 항의가 이어졌다. 사실 고함과 분노가 가득한 사이로 작은 안도의 한숨들이 조용히 새어나오고 있었다. 직전에 복지부는 호들갑스럽게 올해 정부의 예산 편성에 엄청 신경을 쓰고 있는데 현장이 이렇게 소란스러우면 자기들이 어떻게 집중해서 일을 할 것이며, 다된 밥에 코 빠지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엄포를 해대는 통에 현장들의 마음이 한참 심란했던 탓이다. 나도 내는 돈인데 하면서도 결국은 남의 돈 받아먹고 사는 처지에 별수 있나 하는 허탈감이 안개처럼 우리 마음을 적셔 그 단단함을 무너져 내리게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개, 돼지가 되기로 하였다. 주인이 던져 주겠다고 한 그 약속만을 철석같이 믿는 바보가 다시 되어보기로 하였다.

그런 우리들을 보며 인천의 지역아동센터들이 남기로 결정을 하였다. 물론 100%는 아니다. 하지만 연초 경찰들의 성과주의 수사 대상에 올라, 인천 지역 전체가 경찰들에게 습격을 당하는 것처럼 수사를 받고 난후 지역 전체가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다 평가거부 투쟁으로 겨우 마음을 추스렸던 차여서 돌아서기가 다른 곳들보다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한 선생님은 전화 통화에서 ‘우리 인천은 버리고 가라, 우리는 짐이다, 우리는 그저 혼자 가겠다’ 라고 말을 해서 심장을 짓이겨 버렸다. 가고 싶어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해주지 않는다. 자기 마음이 흔들릴까봐서도 더 냉정히 돌아선다. 나도 막 전에는 그렇게 냉정하고 처연했었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떠나보낸 사람들도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모두가 상처뿐이라는 사실이 선명히 느껴졌다. 끝까지 갈걸, 그냥 끝까지 잘 것을 하는 맥없는 후회만이 밀물처럼 몰려온다. 피로감을 이겨내고 굳건히 이야기를 했으면 아무 희망이 없더라도 우리는 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 바라던 희망이 없더라도 최소한 새로운 삶은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정말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도 없는데 죽을 수도 없는 나의 동지들은 삶이 고통스러워 저렇게 아우성을 친다. 그리고 인천이 남을 줄 알았으면….하는 아쉬움에 몸을 떤다.

우리는 지금 살아보려고 다시 애를 쓰고 있다. 복지부가 죽어도 하겠다는 평가는 마치 천덕꾸러기인냥 아무도 제대로 된 관심을 쏟지 않고 있다. 평가도 하고, 제언도 하고, 감시도 해야 하는데 나 역시 거들떠보기가 싫어 이러고 있다. 우리의 정치학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별의별것을 다 가르친 복지부의 지역아동센터 평가는 9월에 시작을 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소영웅은 이 연극의 저편에서 희미하게 웃고 있다.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아직 제대로 모른다.

응답 2개

  1. 조훈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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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포선셋말하길

    끝까지 갈걸 하는 후회가..글을 읽는 제 발목도 잡는 거 같아요. 밤새 내리는 빗줄기가 선생님 아픔을 씻어주면 좋겠네요. 성태숙선생님, 부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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