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지역아동센터 무엇을 하는 곳인가?

-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1. 지역아동센터가 어떤고 하니……

A와 그 동생이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지역아동센터로 의뢰된 것은 A와 동생이 아버지에게 끔찍한 학대를 당하는 것을 동생의 담임이 신고를 한 후이다. 위기 상황에 개입하여 아버지와 아이들을 분리하기는 하였지만 아이들의 어머니가 문자해독능력이 없을 정도로 지체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일상을 챙길 수 없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이들과 어머니의 일상을 챙길 수 있는 지역아동센터로 사례를 의뢰한 것이다. 이제부터 지역아동센터는 조용한 것 같지만 매우 분주하고 끈질긴 과정에 들어가야 한다.

이혼 후에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놓은 부분에 대해 파산신청 과정을 지켜보고, 아이들과 엄마의 상담과 치료를 챙기고, 학습이나 교복지원 등 학교생활이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원 방안을 알아봐주고, 가족이 가장 원하는 이사 등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서 지원해 주어야 한다. 또 아이들이 계속 성장해 가는데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불합리한 고집이나 체벌 등으로 아이들과 갈등을 빚으며 지적 기능이 떨어져 사람들 속에서 소외되고 있는 엄마를 지지하고 가족 기능을 잘 할 수 있도록 가족 각자를 지지해야 한다. 어느 정도 그 가족이 홀로 설 수있을 때까지 옆에서 버팀목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지역아동센터의 몫이다.

그런 역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밥을 챙겨 먹이고, 학교를 잘 다녀왔는지 다른 아이들과 별일 없이 잘 지내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무언가 힘든 일은 없는지 묻고,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관찰하고, 기다리고, 말을 건네고, 같이 놀아주고, 걱정하고, 기뻐하고, 야단도 쳐주는 것 등과 같은 바로 곁에서 함께 하는 소소함이다. 거친 바위를 가다듬는 것은 보이지 않게 불어대는 바람과 무심히 스쳐가는 물살인 것처럼 꼭 나에게만 기울이는 것인지 알 수도 없는 그 말들과 몸짓들이 어느덧 아이들이 허리를 곧추 펴게 만드는 그 무엇으로 어느 틈에 변해가는 원리가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어서 지역아동센터와 같은 시설이 존재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에 잠긴다. 무언가 어렴풋이 잡히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제대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 지역아동센터란 것이 왜 지금 생겨야만 했을까가 궁금한 것이다.

10월 2일은 정부가 국회에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하는 날이다. 온갖 사회복지시설들과 마찬가지로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도 내년도 예산안에 온 신경을 모으고 있다. 정부 쪽 의견이 지난 해 예산 그대로인 동결로 가닥이 지워지고 있기에 더 마음이 무겁다. 아직은 신고시설이라 시설자격과 종사자 자격만 갖추고 나면 지자체장은 지역아동센터의 설립신고를 특별하게 거부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시설의 개소수가 얼마나 될지를 그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도 또 통제할 수도 없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다 보니개소수가 줄어드는 일은 절대 없이 한 해에 대략 500여 개씩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실정에 예산의 동결은 즉 한 센터에 들어오는 운영비가 실제로 삭감된다는 말이다. 든든한 배경이 없는 지역아동센터들이 와락 겁이 내는 순간이다.

누구야, 아무개야 하고 허물없이 몇 년을 같이 살면서 물고 빨고 하다보면 아무리 남의 집 자식이라도 남다른 정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더욱이 집이나 학교에서는 별로에요 하던 애가 센터에 와서 생글거리며 살 맘을 낸다던지 늘 어쭙잖던 아이가 무어라도 해내는 것을 보면 내가 정말로 지상에 낙원을 만들었구나 하는 헛된 망상이 생겨 이 세상에서 이 일이 최고다 라는 묘한 중독현상까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니 내 자식을 어디 갖다 버리겠느냐 하는 엉뚱한 마음이 이상한 데까지 뻗쳐서 ‘모르것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냥 같이 있어야지, 그래도 저것들한테 어찌 나오지 말고 딴 데 가라 소릴 하랴’ 이렇게 한숨을 쉬면서 또 그냥 한 해를 넘기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자, 지역아동센터를 도대체 왜 하는지……..

2. 지역아동센터를 왜 하는고 하니…..

지역아동센터를 하는 이유로 이미 몇 가지 밝혀진 부분이 있다.

첫째, 선교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역아동센터의 %가 종교시설과 관련되어 있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종교는 참 논하기가 어려운 문제이다. 특히 지역아동센터의 전신이랄 수 있는 공부방 시절에는 정부나 공적 영역에서의 지원이 전무하였으므로 이 때 민간의 자원을 모아 아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분야가 종교계였다고 할 수 있다. 이때의 공부방 활동은 헌신과 희생의 의미로 종교적 사명을 다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당시는 절대 빈곤선에 있는 아동들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기본적인 지원을 해나가기에도 벅찬 시절이었다. 종교계의 활동은 너무도 척박한 곳에서 너무도 순박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행하여지는 일이었기에 당시의 선교는 그야말로 서로의 깊은 마음이 만나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그 가장 핵심적인 지점을 일컫는 말과 다름아니었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종교 시설에서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를 보면 양상이 전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미 아이들이나 부모 중 대부분이 자신이 받고 있는 그 무엇을 공적 영역이 당연히 해야 할 서비스로 인식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다만 종교시설은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좀 더 나은 자세나 태도를 갖춘 곳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선교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내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란 생각 앞에서 예전과 같은 깊은 감동과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수급권 가정의 아동들인 경우 지역아동센터 외에 다른 방과후 돌봄 시설에서 유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으므로 더 이상 서비스 자체가 깊은 무엇으로 다가오기는 힘들고 따라서 종교시설에서 그런 서비스를 받더라도 그 종교에 감화되는 비율도 훨씬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휴일도 돌봄이 필요한 아이라면 그런 이유에서 오히려 종교시설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어쩌면 종교 시설들이 아동들에게 더 철저히 이용되고 있다고 역설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는 아동복지 혹은 말하자면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지점은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는 구석들이 많아서 심리학자들이 한 번쯤 연구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대목이다. 어떤 사람들이 아이들을 돕고 싶어 할까가 사실은 궁금함의 요체이다. 왜 그 사람들은 어른이 되었는데도 아이들 곁에 남아 있고 싶어 할까? 왜 그들은 그것도 가장 어려운 아이들, 남에게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혹은 이해받지 못하는 아이들 곁에 남아 있고 싶어 할까? 왜 그 사람들은 그런 아이들을 돌보는데 힘들지 않다고 하는 것이며, 어떻게 변화시켜낼 수 있다고 희망을 품는 것일까? 그들이 예전에 했던 경험은 무엇일까?

섣부른 이야기일 수도 있어 긴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눈치가 있는 사람들은 벌써 질문을 하는 것에서 답을 이끌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예는 어떨까? 만약 당신 앞에 늘 생글거리며 ‘죄송해요’ 혹은 ‘아, 그렇구나’를 연발하는 아주 키가 작고 옷차림도 허름하고 얼굴도 별로요 공부도 별로인 어린 소녀가 있다고 치자.

그 아이가 밥을 먹다 말고 얼굴을 빤히 보며 어렵사리 ‘근데요 누가 자꾸 괜히 찐따라고 그러면 나쁜거죠’ 하고 말을 꺼낸다. 무언가를 알 법한 당신이 ‘왜 누가 너한테 찐따라고 그러니?’하고 되물으면 그 애는 달팽이처럼 금방 ‘아, 아니에요’라고 또 웃는다. 그러면 안쓰러워진 당신이 ‘누구든지 우리 OO를 괴롭히면 난 가만 안 있을거야’ 하고 짐짓 화를 낸다.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이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지면서 ‘근데 제가 아무 것도 안했거든요, 근데 자꾸 oo이가 저더러 찐따라고 하면서 놀리고 뭐라고 해요’ 하고 그 동안 겨우겨우 품고 있었던 설움을 토해낸다. 선택할 수만 있었더라면 소녀는 절대로 그런 몸과 그런 부모와 그런 재능은 가지고 태어나지 않고 싶었을텐데…… 자기 잘못이 아닌 그 무엇으로 눈에 띄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아이를 보면서 우리는 먹먹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또한 어떤가? 세상에서 늘 좋은 대접만 받고 시는 것은 아니다. 대접이 안 좋은 것은 물론이고 어디 한 군데 도움은 커녕 위로나 하소연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처지도 못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는 것을 의미해서 나 또한 아주 딱 잘했다고만 할 처지가 아닌 경우도 많아 참 어쩐다 싶을 적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최소한 잘잘못은 분간할 수 있을 듯 싶은 생각에 안도감이 느껴진다. 이게 잘못되고 지나치면 마치 전지전능한 신처럼 애들 일에 왈가왈부하는 심판자 노릇을 하는 교사가 되어 횡포를 부리게 되지만 그 점만 조심하면 못난이들이 마치 지혜로운 사람처럼 성도 안내고 일도 잘 분간하고 알아듣게 이야기도 하는 손쉽게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는 참 세상 맘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아이들과 사는 세상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의젓하게 위로나 격려도 해 줄 수 있고 조금 더 노력하면 아이들을 기쁘고 행복하게도 해줄 수 있다.

어쩌면 지역아동센터를 하는 가장 이기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매일매일 남을 기쁘고 행목하게 해주는 그 기분 좋음을 맛보고 싶은 것, 아이들이 변해가는 뿌듯함을 맛보고 싶은 것, 매 순간을 희망과 소망으로 기다릴 수 있는 즐거움이 때문에 센터를 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가장 말하기 싫은 비밀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 때로는 아이들이 아무 일도 아닌 것에 엄청나게 절망하는데 그 때 짠하고 애들한테 도움이 되어주면 진짜 끝내주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는 굉장히 유치하지만 중요한 이유 때문에 센터를 그만둘 수 없다. 그렇다. 실은 나도 아직 덜 자란 것이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마지막으로 지역아동센터를 하는 이유는 소위 ‘먹고 살기 위함’에서라고 한다. 2006년 보건복지가족부에서 행한 지역아동센터 운영모델에 관한 연구를 보면 당시 29명을 돌보는 센터의 이상적인 운영비를 600만원으로 밝히 적이 있다. 그 후로 600만원은 통일 다음의 우리의 가장 큰 소원이 되었다. 물가인상율도 반영하지 않고 몇 년째 6000만원만 외우고 있다. 정말 이런 운영비를 한 번 받아볼 날이 과연 올까 아득하기만 하다.

2009년에 이어 2010년 연속으로 보건복지부는 지역아동센터 평가를 감행하였다. 운영비 300만원 받고 3,000만 원짜리 평가를 받을 수는 없다고 차라리 내 손으로 그만 못 둘 거 이번 참에 복지부 덕에 그만두어 보자라며 지역아동센터들은 운영 보조금을 받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평가를 받지 않겠다고 성을 내었다. 2009년 평가를 받아서 지자체별로 쭉 줄을 세워 점수가 어떠하든지 무조건 하위 5%에 해당하는 센터에는 운영비 지급 중단을, 그 위의 5~15%에 해당하는 센터들에게는 운영비 삭감을 단행하였고 그런 평가를 연이어 또 하겠다고 밝혀왔기 때문이다.

지역아동센터들에 대한 관의 불신은 뿌리가 깊어서 워낙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늘 지적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평가를 하게 되니 더욱 난리가 난 것이다. 더욱이 지역아동센터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아서 평가를 하러 오신 분들마다 의견도 각양각색인데다 센터의 업무가 아이들 일이라면 손을 안대는 일이 없는 지경이라 평가지표도 녹록치가 않았다. 심지어 2010년 지표를 수정하기 전에는 후원금의 액수와 자원봉사자의 수마저 평가를 하겠다고 밝혀 영업력이 없는 시설장들은 퇴출당할 위기에까지 처해질 판이고, 학교 생활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학습부진아 지도계획과 여타 교과 관련지도 계획은 무엇인지 등 아동기를 잘 살려부고 싶어서 하는 지역아동센터를 학교생활을 위한 해바라기로 만들려고 하는구나 하고 생각게하는 지표들이 나와서 한숨짓게 하였다. 그런데 이런 지표가 가득 찬 평가를 잘 받지못하면 운영비를 못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시고자 한다. 시설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어 자비든 후원금을 받아서든 시설 마련과 유지는 전적으로 시설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29명에 300만원 정도 받으니 아이들이야 어느 정도 돌보겠지 하고 생각 하겠지만 아까 말했듯이 평가를 일단 받아야 나오는 돈이다. 300만원이 나와도 그 중 25%인 75만 원 이상을 아이들 프로그램비에 쓰도록 되어 있고 그 나머지 225만원으로 2명의 종사자 인건비와 4대 보험, 지역아동센터 종합보험, 공과금, 운영비 등을 쓰게 되어 있다.

시설에 대한 지원은 없지만 평가 때 시설이 좋은지 여부를 반드시 점수를 낸다. 지난 해에는 법정 종사자를 갖추면 보통이고 탁월을 받으려면 그 이상의 수를 갖추어야만 했다. 그렇게 평가를 받아서 탁월한 기관이 되면 다른 곳보다 월 30만원이 더 지원되고, 우수한 센터들 은 20만원이 더 지원된다.

그것도 올 해는 알 수 없다. 300만원이면 어떻게 알뜰하게 써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접는 게 좋다. 왜냐하면 모든 돈은 규정대로 써야만 하기 때문이다. 괜히 알아서 알뜰히 섰다가는 보조금 위반에 걸릴 수 있다. 어떻게 먹고 살 셈법이 나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최저임금이 채 안되는 인건비를 받는 종사자들은 비정규직인 아동복지교사나 학교의 방과후 돌봄교실의 보육교사로 이직하는 경우도 많다. 정규직이 비정규직 보다 별로인 우스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 지역아동센터인 것이다.

29명의 식자재를 다 사서 지지고 볶아 밥을 해놓으면 아이들이 먹고 싸인을 해야 비로소 급식비를 받을 수 있다. 그마저도 못 믿어 식당에서나 쓰는 카드단말기를 설치해놓고 아이들에게 급식카드를 한 장씩 쥐어주고 카드를 긁으면 비로소 결재가 되는 시스템으로 바꾸고 싶어 지자체는 안달을 하고 있다.

너무하다 입이라도 달싹할라치면 ‘누가 하라고 했냐, 봉사하실 생각으로 하신 거면 그냥 봉사하셔야지 원하는 게 너무 많다, 국민의 세금인데 한 푼이라도 허투루 쓰면 되겠냐 카드 설치하자, 눈만 뜨고 나면 생기는 게 지역아동센터다 얼마나 더 지원을 해야 하냐…..“ 그렇게 무슨 소리를 들어도 무슨 신파조처럼 ”정말 내가 애들 봐서 그냥 참고 산다“고 한마디 하며 입술을 깨물고 만다. 못난 여편네도 아닌데 정말 애들 때문에 맨날 그냥 주저앉아버리고 만다. 그래도 눈치 없이 애들은 뭐가 먹고 싶네, 어디가 가고 싶네, 심심한데 뭐하고 놀았으면 좋겠네…늘 와글와글 사람을 볶아댄다.

사실 어지간한 지역아동센터들은 1년 365일을 매일 아이들에게 평가 받는 것이나 진배가 없다. 더욱이 아이들이 어디 말을 가려서 하나, 입장을 봐주길 하나, 어떤 의미에서는 그야말로 고약하기가 이를 데 없는 평가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새로 들어온 아이들은 우리는 뭐뭐 해봤다 라는 기존 아이들 자랑에 우리는 언제 하나요 하고 눈을 빠꼼히 쳐다보고, 이런저런 것을 실컷 해본 아이들은 뭐 또 좀 새로운 것은 없나 하고 두리번거린다.

교사들은 다른 시설에 간 친구들 월급 얘기에 기가 죽어오고, 교육에 가서는 어느 결에 급여를 서로 맞춰보고 괜히 쌩 찬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렵사리 후원 이야기를 꺼내면 그래도 거기는 정부지원 받지 않나요 하는 눈치나 받기 일쑤고, 임대료가 걱정인데 쌀이 남아돌아서 그런지 들어오는 것은 쌀이기 일수다. 산 곳을 모르니 하다못해 잡곡으로 바꿔 먹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무얼 그리 큰 벌이가 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런 벌이는 되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눈 뜨면 나가서 저녁 9시가 넘어야 들어오고 토요일까지 센터를 지키다보면 일요일에는 아무 것도 안하고 그저 누워 있고만 싶다. 여가나 쇼핑을 할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니 그런 의미에서는 돈을 적게 쓸 수 있다. 아이들과 지내니 깨끗하고 단정하면 되었지 굳이 비싼 옷이 필요 없으니 그것도 절약이다. 공부 뒷바라지를 그럴 듯하게 해서 크게 잘하지 못하더라도 네 몸 건강하고 마음 착하면 되었다 하고 내 자식에게도 소박한 마음에 절로 행복이 생기니 어쩌면 이것도 비용 대비 효과 극대화란 점에서 어부지리가 된다. 돈도 없지만 돈을 쓸 시간도 없는 생산적인 구조가 되어 나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끼리는 저승사자도 일요일에는 쉬어야 되니까 절대 못 만나고 다음 주나 그 다음 주쯤 일정을 확인해 보고 미리 연락해야 만날 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지역아동센터도 벌이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3. 지역아동센터의 하루는 어떤고 하니…..

지역아동센터는 분명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들부터 얼떨결에 시작해 도저히 접지를 못하고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종사자들의 유형이 다양하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람들이 한결 같이 말할 수 있는 지역아동센터의 어떤 공통된 모습은 무엇일가?

아마도 그 답은 ‘지역아동센터는 사회적 가정이다’가 아닐까 싶다. 방과후 돌봄 시설의 하나인 지역아동센터가 다른 돌봄 시설인 방과후 보육이나 방과후 학교 돌봄 교실과 달리 사회적 가정을 감히 자기 정체성으로 내놓을 수 있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근거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직 명쾌하게 정립된 의견은 아니지만 지역아동센터의 전신인 공부방의 어원이 ‘나도 내 공부방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란 아이들의 생활상의 바람에서 비롯되었고, 그런 바람을 실현하는데 힘을 쏟고자 했던 당시 공부방 정신이 지역아동센터에도 고스란히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지역아동센터는 ‘사회적 가정’이란 정체성에 힘을 쏟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체성은 바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추상적인 담론보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이 평범하게 보내는 하루를 스케치해보면서 그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도록 하자.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집으로 가기 위해 학교를 나선다. 지역아동센터도 일단 학교를 나서서 가는 곳이다.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이 우선 바라는 것은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과 잠시 숨을 돌릴 여유와 그 여유 끝에 찾아오는 허기를 달랠 약간의 간식이다. 센터도 돌아오면 언제나처럼 웃으며 맞아주는 선생님들이 계시고 일단 풀썩 가방을 내려놓고는 한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있다. 3,500원의 급식비가 빠듯하여 늘 간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어라도 먹는 것이 아이들에게나 교사에게나 좋은지 알기에 가능하면 간식을 마련한다. 먹고 힘이 난 아이들을 교사는 살살 구슬려서 숙제를 하게 하려고 하지만 아이들은 벌써 남의 일에 참견을 하고 있다. 보통 저학년이 아니면 숙제가 없는 경우가 많아 아예 맘 멈고 잠시 놀다 오겠다 교사에게 청을 넣기도 한다.

대락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3~4시까지 돌아오리라 굳은 다짐을 하고 애들 하고 후다닥 공부방을 나서 자유를 맘끽 한다. 잠시의 자유는 보통 싸움으로 이어져 교사에게 불려 가거나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가기 일쑤다. 이래저래 겨우 민원을 처리하고 나면 오늘의 프로그램이다. 문화예술교육이나 상담, 학습 관련한 프로그램에서 나들이나 자치회의 까지 보통 날마다 프로그램이 다르기 마련이다. 공부는 학교에서 실컷 하고 왔으므로 가능하면 시늉만 하기로 한다. 하지만 어떤 날은 진짜 열을 내기도 하는데 보통은 프로그램 보다는 어른들 상대로 장기를 두거나 그 애를 붙들고 어제 못 다한 이야기를 할 때 더 그런 편이다. 교사들은 늘 기웃거리고 아이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낄낄거리거나 심각해진다. 정 심각하면 교사들 보다는 일단 아주 나이 차가 나는 형이나 누나에게 먼저 가기도 하는데 결국 교사들에게까지 알려질 경우가 많고 어떤 아이들은 유독 교사와 의논하기를 즐겨한다.

6시부터 저녁을 먹고 이를 닦고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는 아이들은 조금 놀고 들어오기도 한다. 책을 좀 보고 자기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도 되지만 언제든지 책을 좀 더 보다 가겠다, 누구를 기다려 함께 돌아가겠다, 심지어 남아 공부를 하련다 등의 갖가지 이유로 얼마든지 늦게 집에 갈 수 있다. 어차피 일찍 나서도 한 걸음 가고 이야기하고 한 걸음 가고 이야기 하고 그러다 또 싸우기도 하느라 언제든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찍 가봐야 집에는 아무도 없다.

보통 지역아동센터는 동네에서 애들이 많은 집 쯤으로 취급된다. 이미 누가 공부방 아이인지 다 알고 있다. 말썽을 부려도 이미 동네 애들이 공부방 아이인지 다 알고 있어서 도망갈 수도 없다. 낯모르는 아이도 실은 공부방 누구 친구인지라 아는 척을 하며 곧잘 인사도 한다. 남들이 밥을 지어먹을 때쯤 우리도 밥을 먹는데 하루의 중심으로 그 밥 먹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 아이들은 따뜻하게 지은 밥, 돈가스 등 몇 가지만 빼고는 양껏 먹을 수 있는 밥, 둘러앉아 도란거리며 먹을 수 있는 밥, 날마다 찬이 바뀌는 밥,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진 밥, 안 먹거나 적게 먹을까봐 교사들이 신경을 쓰는 밥을 먹으며 자란다. 배고플 염려가 없다. 무엇보다 잘 먹고 잘 놀고 마음을 선하게 쓰는지에 마음을 쓴다. 부디 일찍 잠자리에 들 것과 늦은 밤 나가서 돌아다니지 말 것을 당부하며 아이들을 집으로 보낸다.

실은 별것 없는 것 같은 이 상활을 아이들은 몇 년씩 한다. 봄에는 새 학년에는 새 사람들에 적응을 하느라 마음을 쓰고 여름에는 캠핑을 다니며 놀이를 맘껏 하고 가을에는 공부를 좀 하려고 하고 겨울에는 쑥 몸이 자라는 그런 세월들이 흐른다. 별 일이 없으면 지역아동센터를 떠나는 일은 없다. 곁의 친구들도 아웅다웅하면서 함께 자라 어떤 아이들은 친 형제보다 더 친근한 사이가 된다. 누가 발달장애인지 지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곯려먹을 것이 있으면 곯려먹고 맘이 맞으면 논다. 잘못한 일은 거의 교사에게 걸려 경을 치고 실수는 늘 용서받을 수 있다. 엄마나 아버지 걱정도 털어놓고, 해결을 못하면 하소연이라도 한다. 어쩌면 남 아닌 남이기에 고맙다란 말을 하란 소릴 들은 후에 고맙다란 말을 하기도 한다 무얼 가르치려 아이들을 기다리지 않고 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오지 않으니 아이들을 기다린다. 몇 해가 지나도 그 교사는 거기에 그대로 있다. 어려움이 생기면 그냥 찾아가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잘 살면 그대로 잊어도 된다. 어쩌면 아이들은 함께 자란 누군가를 더 강렬히 기억할 것이다. 우리들은 그 풍성한 추억의 그저 바탕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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