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 성태숙(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엄마가 가끔 밤마다 사라진다. 아빠는 알콜 중독에서 헤어져 나오지 못하고 수개월째 병원에 입원 중이다. 아이들 둘과 엄마만 살고 있는 집에서 가끔 밤에 슬그머니 없어지는 엄마를 아이들은 애가 타서 찾곤 한다. 첫째나 둘째나 엄마가 방세나 공과금을 벌기 위해 밤일을 나가는 것을 받아들이려 애쓰면서도 공연히 몰려오는 불안감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엄마와 아버지는 단추 등 옷의 부속재를 만드는 사출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마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처럼 둘은 한 때 성실하게 소박한 삶을 일구어왔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IMF의 한파에 공장은 날아가고 소심한 성격의 아버지는 취업을 못하고 급기야 술에 입을 대기 시작했다. 술만 입에 들어가면 사람이 변해버리는 것은 정해진 수순의 이야기다. 아이들과 엄마를 잠도 재우지 않고 밤새 괴롭히고 때리고 쫓아내고 제정신이 아닌 행패가 계속된다. 돈도 안주고 술을 사오라고 애들을 괴롭히고 난리를 부린다. 그런 모습을 어랫동안 겪어온 아이들은 아버지라면 치를 떠는 모양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아이는 자기는 커서 반드시 술을 많이 먹어볼 심사란다. 그래서 아버지처럼 절대 술에 지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제 몸으로 증명해볼 참이란다.

사출 공장이 망하고 수년째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지 못하던 부모는 조그만 분식 가게를 시작했다. 하지만 장사가 잘 되질 않자 결국 술장사를 겸하게 되었다. 이제 가게는 분식집 보다는 술과 안주를 파는 포장마차 비슷한 꼴이 되어 버렸다. 무엇을 해서라도 돈을 벌고 집안이 화평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들은 아무 군소리 없이 이런 변화를 받아 들였다. 새벽까지 술손님들이 방을 차지하고 술을 마시면 새벽까지 아이들은 잠을 설치지만 아무 불평이 없다. 자정이 다 된 시간까지 날씨가 허락하면 놀이터와 동네를 돌아다니고 PC방에서 게임을 한다. 골목에 지붕을 얹고 얼기설기 놓은 방은 제대로 집 구실을 못한다.

날이 갈수록 아이들과 엄마, 아버지는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모습이다. 엄마와 첫째 아이는 우울 진단을 받고 약을 먹고 있다.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도 자주 학교를 지각하거나 빼먹는다. 제대로 빨아놓은 양말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집에서는 몸을 씻을 형편이 안돼 공부방 화장실에서 두 아이는 목욕을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더 엄마가 간절하다. 아버지가 집 안의 골칫거리로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엄마만이 집 안을 살릴 수 있는 기둥으로 여겨지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이에 맞지 않는 짓을 한다. 초등학교 2학년인데도 캠프를 가서 엄마와 떨어져 자는 것을 몹시 불안해하고,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고 울먹거린다. 초등학교 5학년인 첫 아이는 가장 노릇을 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학교에서는 급우들에게 학교 폭력으로 시달리고 약으로 달래지 않으면 엄마랑 함께 집 안에만 있으려 한다. 최근에 엄마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새벽일을 다니고 있다. 새로 차리는 PC방의 청소일이라는 것이 언뜻 들을 수 있던 설명이었지만 정확히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일을 하러 나가면 연락이 끊겨서 스스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아무런 방도가 없다. 집 안에는 넋을 놓고 엄마를 기다리는 두 아이만 남아 있을 뿐이다.

지역사회는 수년째 가능한 선에서 이 가정을 도와왔다. 하지만 희망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담임교사가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문자를 보내, 아이들 집에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를 가면서 결국은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것도 필요하다면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마 아이들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동네가 온통 난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 대한 학대나 방임 사실이 발견되면 지역아동센터는 의무적으로 이를 신고하게 되어 있다. 물론 이 아이들에 대해서도 이미 방임으로 신고를 마친 상황이다. 공부방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비슷한 처지이다, 꼼꼼히 신고를 하자 치면 거의 대부분이 대상이 될 정도다. 오히려 최근에는 호들갑을 떤다 할까봐 스스로 자제를 하고 있는 편이다. 흔히 아이들만 밤을 보내는 집들도 적지 않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되는대로 홀로 자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신고체계는 애매하기 짝이 없다. 뚜렷한 신체적 학대 증세가 없는 한 명확한 조치가 들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방임이란 애매하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정말 밥을 굶고 학교를 보내지 않는 등 확정하기 쉬운 증거들이 없으면 판단과 조치가 어렵다. 그러나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때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 것일 뿐인데, 아이들은 잇몸과 이뿌리까지 완전히 망가지고 눈은 고도근시가 되어 버려 건강을 잃어가고 있다. 새벽까지 컴퓨터 게임에 매달려 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은 탓이다. 물론 학교를 가려고 일어나는 일은 너무 힘들고 학교 가서는 잠만 자다. 아무도 책 한권 읽어라 소리를 안 하니 기초 상식이 모자라 나중에는 지적장애 진단까지 받게 된다. 충동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니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이런 방임일지라도 솔직히 딱히 방법은 없다. 부모의 친권을 법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뿐더러 그런 일은 인권과 관련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정치적으로 득은 안 되면서 돈도 많이 들고 말도 많은 골치 아픈 일들 중 하나란 뜻이다. 그나마 지금 가장 가능한 방법이 바로 지역아동센터에서 가능한 가장 늦은 시간까지 최대한 아이들을 돌보다 집에 가서 잠만 잘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달리 말하면 보육기능의 일부를 지역사회로 들여온 형태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지역아동센터들이 이런 일을 할 만한 여건이나 역량이 갖추어져 있는가는 물론 생각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가능성 여부를 따지는 것 보다는 필요한 아이들을 닥치는 대로 돌보는 일에 더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을 더욱 올바르게 반영하고 있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다보면 ‘어떻게 아이들을 이런 식으로 돌보는가?, ’왜 꼭 이 일을 해서 먹고 살려고 하는가?‘, ’어쩌려고 계속 그러는가?‘ 등등 묻고 싶은 말들이 많아진다. 물어야 할까? 혹은 물을 용기나 자격이 있을까? 묻는다면 그리고 묻지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그러나 그 많은 질문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쩌면 다음 순간으로 질문을 할 찰나를 넘기는 것일 뿐일 수 있다. 그저 다음 순간까지 함께 참고 넘겨보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하다하다 안되면 생각했던 그 순간은 오고야 말 것이다. 언젠가 아이들이 우리 곁을 떠나게 될 수밖에 없는 순간, 그들의 보호자는 더 이상 자격이 없다는 선고가 내려질 순간, 그래서 우리들도 더 이상은 도움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질 그 순간이 오고야 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때까지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란 저 무거운 질문에 짓눌리면서 꼼짝없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그것이 내 스스로 결정한 나의 삶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은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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