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그들이 산책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

- 권용선(이본의 다락방 연구실)

발터 벤야민은 어떤 도시를 잘 알기 위해선 그 도시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연 그렇다. 도로의 표지판, 지도, 유명한 랜드 마크들에 의지하는 방문객에게 어떤 도시가 보여주는 건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무엇, 어쩌면 그 도시를 방문한 목적일수도 있는 유명한 지형지물, 딱 거기까지이다. 어떤 낯선 도시를 방문했을 때, 우리가 즐겨하는 행동은 유명한 건축물과 지역 그리고 먹거리를 찾아 도시의 끝에서 끝까지 오가며 부지런히 인증샷을 찍어두는 것 이상이 되지 못할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준비된 감동으로 숙제하듯 도시의 이곳저곳을 ‘찍고’ 다니는 한 우리는 잘 만들어진 여행상품의 소비자일 뿐이다. 이에 반해,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는다는 건, 지도와 안내책자와 도로 표지판들, 친절한 가이드와 카달로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아무런 목표도 지향도 없이 무작정 헤매고 다니는 자에게만 감작스럽게 우연히 마주치는 그 도시의 맨얼굴과 대면하는 행운을 맛보는 것이다. 그것은 바쁜 도시의 생활에 저항하는, 천천히 걷는 걸음의 속도로만 포착된다.

하지만 뉴욕은 길을 잃는 것조차 쉽지 않은 도시다. 모든 길은 남북으로 나있는 큰 길 avenue와 그보다 작고 촘촘하게 동서로 나있는 street의 격자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종 건물들은 그 격자의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우리가 특정한 공간의 이름으로 오해하고 있는 broadway(맨해튼 미드 타운에 있는 뮤지컬 극장가를 뜻하는 것으로 주로 사용되지만, 본래 브로드웨이란 격자로 나 있는 가로(街路)를 가로지르는 길을 가리키는 말이다)가 단정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 모든 길들은 친절하게 방향과 속도에 관한 명령어들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뉴욕의 도로는 길을 잃으려고 해도 쉽게 잃어버릴 수도 없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대륙의 오래된 도시들처럼 크고 작은 길들이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사라지며 보여주는 역사와 그것의 흔적을 뉴욕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뉴욕의 길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만들어졌고, 도시의 시작과 함께 생겨났던 그 모습 거의 그대로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뉴욕의 길들은 자본주의와 도시가 요구하는 속도에 맞춰 구획되어 있고,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은 바쁘게 오간다.

이러한 길들, 자본주의와 도시의 속도에 저항하는 하나의 방식은 전혀 다른 속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목표 없는 이동, 사물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헤매며 그것들을 관찰하기. 폴 오스터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은 마침내 도시에서 산책하는 비결을 터득한 자이다. “뉴욕은 무진장한 공간, 끝없이 걸을 수 있는 미궁이었다. 아무리 멀리까지 걸어도, 근처에 있는 구역과 거리들을 아무리 잘 알게 되어도, 그 도시는 언제나 그에게 길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주었다….산보가 가장 잘될 때면 그는 자기가 아무 데도 아닌 곳에 있다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다.”(폴 오스터, 「유리도시」 중에서) 도시가 요구하는 속도를 거절하고 자기만의 속도를 창안해내는 자에게 도시는 낯선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길을 잃고 있다는 느낌’ 그것은 결국 새롭고 낯선 무엇뿐만 아니라, ‘아무 데도 아닌 곳’이라는 도시의 ‘몰개성적’ 이면과 동시에 대면하게 한다.

한 도시의 진정한 모습과 대면하려는 여행자가 아니라 그 도시에 살고 있는 거주자에게 산책은 어떤 의미일까? 그들에게도 물론 ‘산책’은 중요한 삶의 활력이다. 산책자의 ‘천천히 걷는 속도’는 그들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도시의 풍경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19세기 파리의 풍경을 묘사하는 글에서 벤야민은 “1839년에는 산책 나갈 때 거북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 우아해 보였다. 이것은 아케이드를 어떤 속도로 산책했던가는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중에서)고 말할 적 있다. 19세기 중반 파리지엔에게 거북이가 산책길의 친구였다면, 21세기 뉴요커들에겐 애완견이 있다. 이 도시 어디에나 크고 작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들은 가로수 밑에 실례를 하거나 거리 한 귀퉁이에 세워놓은 쓰레기 봉지의 냄새를 맡기 위해 걸음을 멈추는 애완견의 속도에 맞춰 길을 걸어가고, 전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걸음을 멈춘다. 자주 그들은 애완견을 산책 시키는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이때 그들의 애완견은 낯선 사람과 경계심 없이 대화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메신저가 된다. 삭막한 도시에서 파편화된 삶을 사는 뉴욕 사람들, 특히 가족과 친구로부터 떨어져 외톨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애완견에게 강한 애착을 갖고 있으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타인과 잠깐 동안 길 위에서 내밀한 동류애를 교환한다. 자신의 애완견에게 관심을 보이는 누구에게라도 너그러운 그들 덕분에, 뉴욕은 다른 어느 도시보다 팻 산업이 발달해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사람들과 공들여 사귀는 것보다 애완견에게 애정을 쏟는 일에 더욱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애완견을 산책시켜야 한다는 정당한 목표 하에서만 자신에게도 산책과 휴식을 허락하는 그들에게서 무의미한 시간을 용납하지 못하는 바쁜 도시인의 강박이 느껴진다.

애완견을 데리고 강변을 산책하는 사람

애완견을 데리고 강변을 산책하는 사람

버스와 택시와 승용차 그리고 자전거가 복잡하게 엉켜있는 8th AV 뉴욕타임즈 건물 앞.

버스와 택시와 승용차 그리고 자전거가 복잡하게 엉켜있는 8th AV 뉴욕타임즈 건물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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