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먹거리 혹은 어떤 ‘구분짓기’에 관하여(1)

- 권용선(이본의 다락방 연구실)

건강한 삶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위한 휴식과 운동, 그리고 먹거리를 향유할 만큼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최상위 1%에 부가 집중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미국의 사회복지제도는 제 나라 국민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끼니를 거르도록 방치하지는 않는다.

극빈자나 실업자를 위한 푸드 스템프(food stamps)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밖에 어떤 형태로든 수입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라면, 그 소득 수준에 맞춰 한 끼 식사를 사먹거나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한 끼의 식사를 구성하는 식탁은 1달러짜리 버거나 피자조각에서부터 수백 달러짜리 정찬이 제공되는 최고급 레스토랑의 그것까지 구매자의 지불능력에 따라 참으로 미세하게 세분화되어 있다.

건강한 식사를 위해서라면 각종 화학약품으로부터 안전하며 유통과 보관상 위생이 최대한 고려된 신선한 재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외식을 할 때에도 비싼 유기농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고급 식당을 주로 찾고, 집에서 요리를 할 때에도 홀푸드(whole food)나 트레이더 조(Trader’s Joe)에서 공수한 신선한 유기농 재료만을 사용한다.(여기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산지의 농민들이 자신이 가꾼 야채와 과일, 낙농 제품들을 직접 판매하는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이 있다. 이 부분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이어서 하겠다.) 그들은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 건강을 위해 각종 비타민과 건강보조 식품을 챙겨먹는 습관의 힘은 값싼 정크 푸드나 고칼로리 음식을 멀리 밀어 놓는다. 뉴욕의 거리 곳곳에 있는 한 쪽에 1달러하는 값싼 피자 가게는 가난한 노동자들이나 배낭족, 학생들이나 찾는 곳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물론 일반 마트에서도 다양한 식재료들이 마련되어 있지만, 각종 농약과 GMO로부터 안전한 식품, 신선하고 위생적인 재료에 대한 강박이 이들을 유기농 마트 쪽으로 발길을 돌리게 한다. 이들 마트에는 대체로 제법 고가의 식재료와 생활용품들만 전시되어 있고 판매된다. 특히 매장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상품에 유기농 마크를 달고 있는 것만 판매하는 홀푸드는 뉴욕에서도 가장 비싼 식료품점이다. 이곳에서 파는 모든 상품들은 일반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대체로 1.5배에서 2.5배까지 비싸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는 ‘권장소비자가격’이라는 것이 없고, 지역과 건물임대료, 마트의 브랜트 가치에 따라 똑같은 상품에도 각기 다른 가격이 매겨진다. 이를테면, 타겟(Target:월마트보다 약간 더 비싼 마켓)에서 한 봉지에 9달러 정도 하는 어떤 브랜드의 커피빈은 같은 지역의 홀푸드에서 15달러 정도 한다. 우리 정서대로라면 가장 싸게 파는 가게를 찾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는다. 신선하고 안전한 유기농 제품인지의 여부와 함께 오래된 습관의 힘으로 대체로 가던 곳에만 가고 먹던 것만 먹는다. 하지만, 동일한 물건에 대한 차별적 가격에 동의한다는 것은 그것이 부와 문화적 취향을 표시하는 하나의 ‘구분짓기’라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홀푸드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은 단순히 식생활용품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유기농과 환경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시하는 셈이다. 홀푸드를 밴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서울의 타워 펠리스와 부산 해운대 고급 아파트 밀집 지역에 있는 유기농 식품매장도 이른바 중산층의 과시적 욕망과 유기농 제품에 대한 계층적 선호를 잘 포착한 것일 터이다.

트레이더 조는 홀푸드 마켓 보다는 약간 저렴한 유기농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파는 상점이다. 그래서 어떤 수다쟁이들은 트레이더 조를 이용하는 주 고객층이 ‘고학력 저소득층’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파는 상품들은 대부분 유기농이거나 트레이더 조 마크가 붙은 것들이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트레이더 조’라는 브랜드 자체를 신뢰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품에 대한 신뢰도와 함께 그 회사가 고용이나 이익에 대한 사회 환원 면에서 긍정적이라는 점을 높이 산다. 주말의 트레이더 조는 부모를 따라온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각종 시식행사로 시끌벅적하다. 뉴욕-뉴저지 지역의 한인마트에서 할인행사 하는 상품들이 주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이거나 재고상품들인데 반해, 이곳의 특별 할인 상품들은 주로 그 계절에 나온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식재료들인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 쇼핑한 재료들은 계산원들이 다시한번 꼼꼼하게 그 상태를 확인한 후에 판매한다. 그들 나름의 물건을 파는 자의 윤리이기도 하겠지만, 뉴욕의 소비자들이 한국의 소비자들처럼 너그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판매한 물건에 하자가 있어서 구매자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 항의하고 교환하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겉으론 예의바르고 속으론 냉정한 어떤 뉴요커들은 조용히 자신의 변호사와 문제를 상의한다. 예전에 맥도널드에서 뜨거운 커피를 주문한 할머니가 약간의 화상을 입은 것을 빌미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엄청난 배상금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이와 비슷한 크고 작은 사례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곳이 또한 뉴욕인 것이다.

뉴욕 나아가 미국은 소송의 나라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들 ‘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길 좋아한다. 개인들 간에 혹은 개인과 집단 간에 크고 작은 분쟁이나 다툼을 각자의 힘으로 조정하고 해결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변호사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지나치게 고착화된 탓이기도 하다. 아무튼 유기농이든 아니든 먹을 걸로 장난치는 일이 한국보단 훨씬 적다는 느낌은 든다. 적어도 USDA(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 마크가 붙은 식재료들은 대체로 믿을 만하다. 이따금 유통 상의 사고나 등급이 낮은 식재료들에서 문제가 생겨 시끌벅적 할 때도 있지만, 등급이 높은 재료들은 언제나 이런 시끄러운 문제들로부터 제외된다. 문제는 시스템을 통한 안전이 완벽하지 않고, 소비자의 지불능력이 이러한 위험들로부터 얼마나 자신을 노출시킬 것인지 결정한다는 점이다. 예전에 광우병소 수입문제가 한국에서 첨예하게 벌어졌을 때, 미국에 살고 있는 어떤 속없는 한국인이 “이렇게 맛있고 좋은 미국산 쇠고기를 한국 사람도 먹을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니냐”고 말해서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 사람은 아마 고급 유기농 마켓에서 파는 최고급 고기만 먹어본 사람이었을 것이다.

트레이더 조(위)와 홀푸드 마켓(아래)에서 쇼핑하는 사람들.

응답 2개

  1. 고추장말하길

    뒤늦게 수정했어요. 죄송합니다.

  2. 케이말하길

    맨 앞에 한 단락이 빠져 있네요!?
    첨부합니다.

    건강한 삶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위한 휴식과 운동, 그리고 먹거리를 향유할 만큼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최상위 1%에 부가 집중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미국의 사회복지제도는 제 나라 국민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끼니를 거르도록 방치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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