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불이인폐언(不以人廢言)

- 오항녕

급훈

급훈이 중요하다. 학교 다닐 때 태극기 옆에 액자에 걸려 있던 교훈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시간표 옆이라든지 환경미화란에 나름의 권위를 과시하던 슬로우건. 정직, 성실 같은 하나마나한 말도 있지만, ‘담임이 보고 있다’는 매우 프라그마틱한 교훈도 있어서 웃음을 주기도 하나보다.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 모르겠다. 나는 정말 기억에 꽉 박힌 급훈이 있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진실로 아는 것이다.” 중2때 급훈으로 기억하는데, 담임선생님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비교적 긴 급훈 중에서 내가 방점을 찍은 데는 아무래도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었던 듯하다.

아무튼 이 말이 《논어(論語)》에 나오는 구절이라는 것을 안 것은 꽤 오래 뒤의 일이다. 온전하게 옮기자면 이렇다. 공자가 말하였다. “유(由)야! 내 너에게 안다는 게 뭔지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게 바로 아는 것이다.”[子曰:“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유(由)는 공자의 거친 제자, 공자와 별로 나이차이가 나지 않아 유일하게 공자와 맞짱뜨려고 했던 제자, 그 성질머리 탓에 제 죽음을 못했던 사내, 자로(子路)이다. 자로는 성질 급한 사람이 그렇듯이 모르고도 아는 척 나대기도 했던 모양이다. 나대고 싶어서 나대는 게 아니라 조바심이었겠지만.

한참 뒤에 나는 이 구절과 더욱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 구절이 대학 졸업하고 들어간 지곡서당 입학시험문제에 출제되었다. 꼭 이 구절 덕분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7:1(!)의 경쟁을 뚫고 나는 지곡서당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인가!

추억

위 구절은 그럭저럭 40년 가까운 인연을 맺은 구절이 되었다. 마흔 살이 되던 생일날, 나는 두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첫째,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언제인가? 둘째, 앞으로 이렇게 살고 싶다는 게 있으면 한 마디. 첫째 질문을 생각하다가 나는 다소 황당함을 느껴야 했다.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없는 것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뛰놀던 그 시절, 할머니가 그리웠지만, 리턴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이 더 좋다. 29살 때 마흔살의 나이를 떠올리며 절망, 정말이지 죽음과 같은 절망을 떠올리던 나의 어리석음을 통탄하고 또 통탄했다. 이거 분명 나만 그런 거 아니라는 거, 안다. 나이 먹는 거 두려워하는 무지한 어린 것들, 잘 새겨들을지니!

둘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위의 급훈과 상관이 있었다. 나이 먹어서도 다른 사람에게 내 말이 틀렸다, 내가 잘못했다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마치 무슨 도덕교과서에 나오는 듯한 다짐을 했는데, 그 배경은 물론 그 급훈이었다. 당연히 이 다짐을 실천하는 거, 쉽지 않다. 뭐가 필요할지 맞춰 보라.(참고로 체력이 첫째다.)

이인폐언(以人廢言)

20년 전, 비록 공동 저술이었지만 처음 내 이름이 실린 책이 나갈 때, 서론-본론-결론이라는 상투어가 싫어서, 서론을 ‘불이인폐언(不以人廢言)’으로 정한 일이 있었다. 역시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말이 그럴 듯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쓰지 않으며, 그 사람이 변변치 못하다고 해서 그가 하는 말을 버려두지 않는다.”[子曰:“君子, 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 서론을 ‘불이인폐언’으로 한 것은 겸손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쭈삣거림도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제 넘는 말을 하니까 봐 달라는 뜻으로.

최근 어떤 정당에서 국회의원 후보 당내 경선 과정에 부정이 있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모종의 조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진상조사위원회는 두 차례에 걸쳐 조사결과를 발표했고. 이때 당시 그 당 대표였던 사람은 “진상조사위원회가 불신에 기초한 의혹만 내세울 뿐 합리적 추론도 초보적인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조사방식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진상조사위원회가 특정 후보를 타겟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진상조사위가 특정 후보를 겨냥했는지 어떤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당시 내가 맡은 냄새는 이정희씨 역시 진상조사위원회를 불신했다는 것이다. 이내 엄습하는 경험적 불길함. 저 밑에서 떠오르는 말씀, ‘불이인폐언(不以人廢言)’. 일은 공자의 말을 업신여기는 상황으로 진행되었다. 이인폐언(以人廢言). 실제로 그곳의 사태는 그렇게 전개되었고, 전개되고 있다. 길이 있겠지만.

남 얘기 할 수는 없어서 내가 당원인 데를 예로 들었을 뿐 이와 비슷한 사례는 많다. 역사학계도 예외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내가 ‘콩쥐-팥쥐 프레임’이라고 불렀을까. 인물과 사건에 대한 평가에서 수시로 이인폐언(以人廢言)한다. 자신도 이인폐언 당하고. 별로 아는 것도 없기 때문에 논쟁 같은 거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논의가 생산적으로 진행될지 아니면 이제 그만두어야할지 판단하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공자의 이 말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네가 하는 말이니까 믿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오면 끝이다. 그 전에 끝내야 한다. 지혜롭다면 그런 논쟁은 시작하지 않는 편이 백 배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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