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외면하지 않는 정신

- 이계삼

다큐멘터리 영화 <마이 스윗 홈(My sweet home)>을 보았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부상을 입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끝내 법정 구속된 세 사람의 이야기다. 영화를 본 지 한 달이 다 되었지만, 지금도 거기 나온 세 사람, 김창수, 김성환, 천주석 님의 얼굴은 잊혀지지 않는다. 기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 길에 차창에 볼을 기대며 신록이 짙어가는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도 영화의 한 장면, 그들이 재판받으러 온 법원 뒤켠 나무그늘 아래 둘러 앉아 점심을 먹는 장면이 떠오른다. 밥 한 그릇을 쓱싹 비운 천주석 씨가 ‘이번에 들어가면 담배 끊어야지’라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구속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안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구속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만, 그래도 설마 들어가게 되겠나, 이리저리 엇갈리는 불안한 마음들일 것이다. 들어가게될 거라고, 그렇게 말이라도 해야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눅어질 것이다. 그런 그들의 불안한 점심상, 맨밥에 김치찌개를 설설 비벼 먹으며 웃고 떠드는 나무 그늘 아래의 밥상과 그들 위에 드리워진 짙은 신록, 저 앞에 버티고 선 거대한 콘크리트 법원 건물.

선고 공판이 있기 직전, 아마도 구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는지, 카메라는 그들이 보내는 사회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을 비추어준다. 김창수 씨는 성남 단대동 주택공사 아파트 현장 앞에서 먹고 자면서 버티던 봉고차로 카메라를 데리고 간다. 김창수 씨는 셋방살이하던 사람이었다. 전세금이 올라 이사 기회를 놓치고 속절없이 재개발과 맞닦드리게 되었고, 의로운 심성의 그는 물러서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았다. 영화 곳곳에서 그가 중얼거리듯 뇌까리는 소망이란, 두 딸과 함께 살아갈 내 집을 갖는 것. 눈매가 얼마나 선한지 모른다. 최후진술 때, 할 말 다 해서 마음이 후련하다고 했지만, 선고 공판정으로 들어가는 그의 다리가 약간 후들거리는 듯하다.

천주석 씨는 미싱일을 하면서 상도4동 재개발 지역에서 버틴 분이었다. 여기가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후미진 골목길과 점방을 그는 카메라와 함께 걷는다. 그리고 다 부서져가는 마을에서 끝까지 버티는 노부부에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점방 앞에서 ‘그냥 이대로 여기서 살게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사람 좋게 웃으며 담배를 빼문다. 용산 대책위 연대사업부장 김성환 씨는 고향인 충남 무창포로 내려가 부모님 산소에 벌초를 하고 절을 올린다. 그리고 그들은 선고 공판에서 4년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된다. 김형태 변호사는 재판 도중에 재판정을 박차고 나와버린다.

분노, 분노, 그리고 슬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위태롭던 젊은날의 실존을 분노와 슬픔으로 지탱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서푼어치의 정의감인지도 모른다. 내가 믿는 하느님은 ‘의로우신 분’이라고 배웠기에,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기에, 의로움에 목말라하는 내 모습이 하느님의 진리에 근사하다는 믿음이 나의 분노와 슬픔을 정당화해주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고르지 않다는 것, 선하고 약한 것들은 늘 이렇게 아름다운데 언제나 패배하기만 한다는 것. 고호의 <감자 먹는 사람들>보다 더 한 아름다움으로 슬픔으로 육박해오는 그들의 밥상, 김치찌개, 맨밥, 호물호물 씹어넘기는 할머니와 입가심 사과 한 조각, 끔찍한 누명을 쓰고, 아비규환의 지옥도를 거쳐나온 이들에게 다시 펼쳐진 가혹하기 이를데 없는 수사와 재판, 과연 누가 심판을 받아야 하나, 누가 지금 이 시간 이곳에서 구속수감의 공포와 싸워야 하는 것인가. 선하고 약한 이들은 늘상 패배해왔었지, 이 비겁한 세상에 올라타 이들에게 채찍을 가하는 이들은 저들의 슬픔을 고통을 모르지, 절대로, 절대로 모르지.

‘스승의 날’이라고 아이들이 찾아왔다. 무직 백수로 지내니 좋으시냐고, 제법 컸다는 놈들이 옛 담임 앞에서 낄낄 댄다. 고3의 나날을 보내는 녀석들, 떡볶이 배불리 먹고 맥주 한잔씩 건배하고 난 뒤에 묵혀둔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떻게 살아갈지, 아무 생각도 없고, 그냥 막연하고, 그냥 불안하다’며 풀이 죽은 녀석들이 뇌까리는 이야기는 결국 이 소리다.

내 삶을 지금껏 이끌어준 것은 김창수, 천주석, 김성환 씨 같은 분들, 그리고 이 아이들의 풀죽은 얼굴들이었다. 나는 이들이 좋다. ‘자기애’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인생은 인생이 아니라는 생각, 그들의 고통을 작게나마 나누어 겪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이 내 삶을 이끌어왔다. 세상의 속살을 알면 알수록, 세상이 감춘 비참과 야만의 더께는 두터웁기만 하고, 거기에는 제 살을 파먹는 흉측한 것들이 바글바글한다.

인생은 짧고 덧없다. 아름다움은 찰나일 뿐, 시간 앞에서 바스라진다. 영원한 것은, 약하고 힘없는 것들, 그들의 고통, 슬픔, 사랑과 우정, 이런 것들일 뿐. 나는 죽을 때까지 투쟁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천주석, 김창수, 김성환, 이 세상의 죄를 대속한 저 헤아릴 수 없는 이름들을 부르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도 한몫 거들고 있는 밀양 송전탑 싸움이 6월8일 경으로 예정된 한전의 공사 재개를 앞두고 긴장된 상태로 접어 들어가고 있다. 내게도 현장에서 물리적으로 부딪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성남 단대동 철거민 김창수씨가, 상도4동 철거민 천주석씨가 자기 동네도 아닌 용산 남일당 망루에 올라갔듯이,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도 저 79대 8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정신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 되고 싶다.

* 지난 1년간 보잘것없는 글쪼가리들을 읽어주신 <수유너머 위클리>독자들께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응답 4개

  1. 병아리말하길

    가끔 한 번 읽었던 선생님의 글을 다시 읽고, 또 읽고, 또 읽으러 오게 됩니다.
    어떤 말이든 선생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면치 못 할 것 같아 늘 주저만 하다 드디어 몇 자를 적어봅니다.
    외면하지 않는 정신.
    이번 글 한 자, 한 자가 저의 마음에 스며듭니다.
    그동안의 선생님 글 앞에서 느꼈던 부끄러움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2. 불완전한자유말하길

    외면당하지 않으려고 사는 삶입니다. 외면하지 않는 마음은 쉽지만, 함께 외면당하기는 어렵습니다. 외면하지 않는 정신이 아니라, 기꺼이 함께 외면당하겠다는 선생님의 행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3. 여하말하길

    외면하면 벗어날 것같이, 일이 없는 것같이 생각하는 어리석음에 빠져드는 그때쯤, 이계삼선생님 떠올려보겠습니다. 아니, 떠올리게 될 것같습니다.

  4. 고추장말하길

    심금이 우는 걸 느낍니다. 외면하지 않겠다는 말. 선생님께 많이 부끄럽고 고맙고 그렇습니다. 그동안의 원고 너무 감사하고 머지않은 날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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