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사라지지 않는 무한대-우리‘들’ – 6.11 야숙자 추방에 항의하며 –

- 신지영

* “아… 또야.” 가 아니라 “몇 번이건 콜!”

상황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6월 29일 오키나와 히가시마을에 신형 군용기 Osprey 설치가 통보된다. 이 군용기는 미국에서도 추락사고가 빈번이 일어나 안전성에 계속해서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분노했다. 결국 7월 1일 오키나와 지사는 대규모 시위의 위험성을 시사하며 이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다. 연이어 노다 총리는 원전 재가동을 강행한다. 분노한 사람들은 6월 29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수상 관저 앞에 모여 원전 재가동 반대를 부르짖었다. 모인 인원은 15만명이 넘었고 1960년 안보 투쟁 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고들 입을 모은다. 이후 매주 금요일마다 휴일마다 대규모 원전 반대, 원전 재가동 반대 데모가 일어나고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2kkYDWi7qZc&feature=related). 이후에도 16일에는 <안녕 원전 10만인 집회http://sayonara-nukes.heteml.jp/nn/wp-content/uploads/2012/05/716.pdf>가, 29일에는 인간 쇠사슬 국회포위 행동(http://coalitionagainstnukes.jp/)이 준비 중이다.

야숙자 추방 반대 호소!

야숙자 추방 반대 호소!

이 일련의 상황은 한달 전 야숙자(홈리스)들에 대한 추방에서 이미 예견되어 왔다고 말하고 싶다. 6월 11일, 시부야구는 세 곳에서 동시에 갑자기, 야숙자(홈리스)들을 추방했다. 미타케 공원(美竹公園), 시부야 구청 지하 주차장, 시부야 구청 앞 공중 화장실이 그곳이다. 미야시타 공원에서의 추방, 타테강 주변에서의 추방, 그리고 이번. 살아가는 일에 내성이 생길 리가 없는데도, 솔직히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 “아… 또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었다. 오히려 보이지 않게 지속되고 있었던 사건들이자, 막 드러나기 시작한 사건이자 우리가 일으켜야 할 또 하나의 사건을 예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라고,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다.

미야시타 공원을 돌려줘!

미야시타 공원을 돌려줘!

“아… 또야!”라는 푸념과 분노와 질문은, 야숙자들 뿐 아니라, 오키나와 주민들이 1879년 류큐 처분 이래 반복해온 푸념과 분노와 질문이며, 원전과 같은 국책에 희생당해 온 수많은 주변인들의 푸념과 분노와 질문일 것이었다. 이 푸념과 분노와 질문 속에서 거리에 사는 야숙자들은 오키나와인들을 오키나와인들은 탈원전을 부르짖는 사람들과 후쿠시마와 동북민들을 서로가 서로를 1년 넘게 보아오고 있다. 1~2주 사이에 분위기가 급변했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아 왔던 이 1~2년 사이에 탈원전 집회는 이른바 일본 국민이나 시민만의 집회인 것처럼 강조되는 경향을 띠기도 했고 깃발을 들거나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거나 행렬을 탈선하는 것에 대해서 주최측 안에서 규제하거나 하는 탈원전 집회도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재일조선인과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나 야숙자나 빈곤의 문제가 잊혀지는 상황도 있었다는 점 또한 지적해 두고 싶다. 그리고 내 입에서 나온 “아… 또야”라는 말 속에는 이 기억과 망각의 반복 앞에서 혹은 진보 진영에도 존재하는 배제와 포섭의 반복 앞에서 슬쩍 고개를 든 허무주의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이런 허무주의의 모습을 한 보수성은 나 뿐 아니라 일본 전체에 거센 데모와 함께 슬쩍 퍼져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오랜만에 만나 이치무라씨

오랜만에 만나 이치무라씨

7월 7일의 미야시타 공원에서 열린 야숙자 3군데 동시추방에 대한 항의 집회에서 만난 이치무라씨가 내게 했던 말은 정확히 내 속의 이 지점을 보게 했다. “야숙자들이 추방당하는 건 당연하다는 그런 분위기가 있고, 야숙자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다는 그러한 분위기가 있어요. 음… 그게 정말 무섭지요” 요 며칠 사이 가장 뜨겁고 급박한 이슈라면 모두들 재가동 반대 대규모 집회를 들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탈원전 데모에서도 허무주의와 배타주의가 고개를 들고 서서히 목을 졸라오던 그 3주 전의 분위기로 돌아가서 쓰고 싶다. 짜라투스트라를 깊은 병에 빠지게 한 그 질문, 다시 한번 너의 삶이 똑같이 반복된다고 해도 너는 “다시 한번!”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그 질문이 병처럼 스멀스멀 가슴 속에서 퍼져갔던 그 때로 말이다. 그러한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아니야, 이번은 다를 거야!”라고 외쳤던 힘들이, 현재 재가동 반대에 대한 대규모 집회를 일으키고 있는 예비된 사건들이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에도 대규모 탈원전 집회에 “국민 혹은 시민들의 항의”라는 타이틀이 붙을 때 그 속에서 배제되어 버리고 마는 비시민들/비국민들(야숙자, 오키나와인, 재일조선인, 이주 노동자 등)의 문제를 생각하고 국민과 비국민 사이의 연결고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탈원전 운동이 가장 뜨겁게 일어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오키나와 문제나 야숙자 문제가 함께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야숙자는 재해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야숙자 추방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246표현자 회의>에 따르면 시부야구의 야숙자 추방은 2007년부터 본격화되고 있다. 2007년 국도 246호선의 <시부야 아트 갤러리246>에 대한 추방, 2008년부터 2010년에 걸친 미야시타 공원에서의 추방과 미야시타 공원의 나이키 파크화, 2011년 아동회관에서의 추방이 그것이다. 이 추방의 배경에는 시부야구와 시부야 시민이 일체가 되어 추진 중인 대규모 재개발 100년 계획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6월 11일부터 일어난 3군데에서의 갑작스런 야숙자 배제는 여태까지와는 또 다른 특질을 띠고 있는 듯하다.

야숙자 배제가 아니라 잘 곳과 먹을 것을!

야숙자 배제가 아니라 잘 곳과 먹을 것을!

첫째로 이번 야숙자 추방의 특성은 동시에 3곳, 그것도 야숙자들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3곳에서의 추방이라는 점에 있다. 미타케 공원은 야숙생활자들의 블루텐트가 있고 오랫동안 야숙자들의 공동취사가 이뤄져 온 곳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매주 토요일 <노지렌(渋谷・野宿者の生存と生活をかちとる自由連合)>이 무료급식을 실시해왔고, 이번 행정 대집행 대상에는 야숙자들의 블루텐트 뿐 아니라 노지렌의 취사창고 등도 포함되어 있다. 시부야 구청 지하 주차장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많은 야숙자들이 밤동안 잠자리로 이용해 왔고, 시부야 구청 앞 공중 화장실 차양에도 적잖은 야숙생활자가 있었다. 즉 야숙자들의 잠자리와 식사공간을 갑자기 봉쇄하고 1주일 안에 다른 곳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단순히 공간에서의 추방이 아니라 생존권과 직결되는 장소에서의 추방이라는 점에 이번 추방의 심각성이 있다. 그만큼 구호도 격렬해졌다. “야숙자 추방, 무료급식 짓밟기 NO! 구청 지하주차장 봉쇄를 용서할 수 없다! 미타케 공원의 행정대집행을 막자!

재해 방지와 야숙자를 대립시키지 말라! 야숙자의 생존을 망가뜨리는 재해 방지라니 당장 그만둬!

재해 방지와 야숙자를 대립시키지 말라! 야숙자의 생존을 망가뜨리는 재해 방지라니 당장 그만둬!

보다 심각한 문제는 야숙자 추방의 이유가 2011년 3월 11일의 재해를 겪으면서 미묘하게 변화한 듯하다는 점이다. 공중 화장실의 폐쇄는 개수공사를 한다는 이유였지만, 미타케 공원에서의 추방이유는 “재해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일시 피난 장소 확보/정비”를 위해서였고 구청 지하 주차장에서의 배제는 “내진 공사의 자재를 두는 곳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재해시에 왜 야숙자가 그곳에 사는 것이 피난의 장애가 되는 것일까? 야숙자 추방 반대 활동가들은 재해 대책을 빌미로 야숙자를 추방하는 논리 속에는 시민만을 재해의 피해 대상자로 설정하고 야숙자들을 재해의 피해 대상자로서 인정하지 않는 차별의식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다고 분노한다. 더구나 이러한 이유들은 재해의 경험으로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마치 야숙자가 재해 대책을 방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처럼 시부야구는 재해로 인한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해 시민과 야숙자가 마치 서로 적인 듯이 보이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 추방이유들은 면담을 할 때마다 조금씩 변화해, 현재는 재해 대책 운운은 사라졌고, 폐쇄된 지 몇 주가 지나도록 지하철 주차장에도 공사 자재가 운반되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지하 주차장의 쥐들을 내쫓지 말라!

지하 주차장의 쥐들을 내쫓지 말라!

야숙자 배제를 위한 구실임에 분명한 이러한 이유들은 그간의 탈원전 운동이 수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봉착하고 있는 문제지점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재해 직후 <재해 유토피아(레베카 솔닛)>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항시적 재해 상태에서 살아가는 야숙자, 빈곤층, 식민지인, 비정규직들에게 <재해 유토피아>는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을까? 오히려 재해 이후 강화되고 있는 <쇼크 독트린(나오미 클라인)-좌파단체나 시민들의 저항을 누르기 위해 전쟁, 테러 살인 재해 등으로 불안을 조장하여 신주유주의의 논리를 정당화시키고 확산시키는 것> 속에서 시민들의 불안은 정부의 억압적인 정책추진, 타자에 대한 배제의 논리로 이용될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민”과 “국민”이 탈원전 집회의 주체로서 호명될 때, 수많은 비시민 비인간 비국민들은 다시금 배제되어 버린다. 지난 1~2년 사이에 일본에서는 수많은 데모와 집회와 모임이 이루어졌고 후쿠시마와 오키나와의 상황을 함께 파악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탈원전 운동에서 반빈곤 문제, 비정규직 문제, 동북 지방의 조선학교의 피해, 오키나와 반기지 운동, 후쿠시마 주민들의 실제 삶과의 관련성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분리 혹은 탈원전 운동이 호명하는 ‘시민’이라는 논리는 야숙자에 대한 추방을 명령하는 시부야구의 태도와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 ‘311=911’이란 명명법을 전복하는 ‘611 노숙자 추방 반대’

쿠와하라 시부야구청장은 야숙자를 추방하는 악마!

쿠와하라 시부야구청장은 야숙자를 추방하는 악마!

2005년부터 시작된 시부야역 주변의 <도시재생긴급정비지구지정>에 의해 앞으로 야숙자에 대한 추방은 더욱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야숙자 추방 속에서 영특해지는 것은 권력자들뿐이 아니다. 야숙자들과 활동가들은 미야시타 공원에서의 추방과 2011년 아동회관에서의 추방을 겪으면서 시부야구의 수법을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행정대집행이나 봉쇄 이전에 고지를 하게 되어 있지만, 시부야구는 잘 보이지도 않는 구청 게시판에 고지문을 붙였을 뿐이었다. 미타케 공원의 텐트들은 6월 11일로 갑작스럽게 울타리로 둘러쳐져 봉쇄당했는데, <행정 수속법상의 변명기회 부여 통지서>는 이미 봉쇄가 이루어진 6월 15일에서야 각 텐트에 도달했다. 이런 수법들은 이미 미야시타 공원에서 추방할 때에 사용되었던 수법이기 때문에 이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간사이에서 올라온 활동가, 멋진 드러머다.

간사이에서 올라온 활동가, 멋진 드러머다.

이번엔 야숙자의 배제가 여러 곳에서 진행됨에 따라서 집회 참여자들도 각지의 야숙자와 활동가들이 몰려들어 연대하게 된다. 이들의 구호는 이러했다. “~와 ~의 동료들과 함께 싸우자!” 행정의 추방이 여러 곳에서 일어날수록 우리들의 연대도 확산되어 가고 친구들도 늘어간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611 야숙자 추방 반대라는 슬로건이다. 2011년 3월 11일부터 지속된 지진, 12일부터 지속된 원전 사고는 이후 ‘311’이라는 말로 불리곤 했다. 그러나 311이라는 말에는 재해와 불행조차도 아메리카 식으로 하려는 중심지향성, 도쿄의 피해를 후쿠시마나 동북 지방의 피해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는 도시 지향성 등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빈깡통 무기들, 소리도 요란해요!

아름다운 빈깡통 무기들, 소리도 요란해요!

그런데 이러한 “국가적/수도권적 재해”의 피해자로서 세어지지 않는 야숙자들이 이 명명법을 따와 2012년 6월 11일 세 군데에서의 야숙자 동시추방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이 순간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611 야숙자 추방 반대 라는 명명법은 311이라는 명명법이 담고 있는 중심을 향한 욕망을 거꾸로 세운다. 그들은 바로 도시의 중심이 아니라 도시의 주변이며, 국민이 아닌 비국민이며, 이번 추방이유가 보여주듯이 재해시 조차 관청에 의해서 세어지지 않는 잉여들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이름과 대상이 기묘히 빗나가는 “611야숙자 추방 반대”라는 명명법은 311이라는 말이 감추고 있는 어떤 균열면을 드러내는 듯하다. 311의 피해 속에서 피해자로 세어지지 못한 자들, 야숙자, 재일조선인을 비롯한 이주 노동자, 원전 노동자, 빈곤층들을.

 미야시타 공원에서 밥짓기

미야시타 공원에서 밥짓기

* 자주 지는 것 같겠지만, 우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아.

7월 7일의 긴급 집회 후에는 모두들 미야시타 공원에 모여 공동으로 밥을 지어 먹었다.철조망으로 휘감겨 저녁 10시 반이면 문을 닫는 곳이 된 미야시타 공원에서. <사진 9, 사진 10> 나는 일이 밀려서 밥을 먹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혼자 휘휘 시부야 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전과는 뭔가 다른 풍경이 느껴졌다. 시부야 역으로 가는 큰 대로변에 그날따라 꽤 많은 블루텐트가 눈에 띠었다. 원래의 거주지가 봉쇄되자 결국 그들은 텐트를 들고 거리로 나온 것이었다. 행정의 추방이 야숙자들로 하여금 거리를 쏟아져나와 거리를 점령하게 한 것이 아닌가? 사실 야숙자 추방에 대한 항의 운동은 늘 거대한 것과의 싸움이다. 미야시타 공원을 나이키 파크 유료 공원으로 만들려는 거대 자본과의 싸움이거나, 구 전체를 재개발하려는 행정과 정부 전체와의 싸움이거나. 따라서 이 거대한 것과의 싸움에서 야숙자들의 항의는 표면상으로는 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야시타 공원 주변으로 나온 블루텐트들

미야시타 공원 주변으로 나온 블루텐트들

그러나 이렇게 도로변으로 나온 야숙자들의 블루텐트가 그들이 또 다른 곳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항변하듯이, 우리는 질지언정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툭 치면 무한대로 늘어나는 미지의 생물들처럼, 무한대로 지면서 무한대로 이동하고 무한대로 점령지를 늘려가는, 사라지지 않는 삶에 대한 무한대의 에너지인 것이다. 따라서 야숙자 추방 반대 운동은 자주 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운동이며 오히려 추방당하는 순간 무한대로 늘어나는 운동이다.

7월 16일에 대규모 재가동 반대 집회가 예정된 가운데, 7월 17일에는 611 야숙자 추방에 대한 항의 집회가 열린다. 최근에는 미타케 공원 야숙자들의 짐을 모두 치우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행정집행도 예고되고 있으며 인근 진구통 공원(神宮通公園)에 예방적으로 울타리를 친다든가, 야숙자가 자고 있는 지하도에만 냉방을 끈다든가 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7월 11일의 선동문에는 야숙자 추방 배경에 행정과 시민이 일체가 된 추방분위기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진다. “2011년 후쿠시마 원폭 사고 이후, 시민사회적인 것이 무엇인지 노골적으로 드러난 지금, 반원전 운동/재가동 반대 운동과 홈리스 추방 반대 운동은, 과연 어떤 점에서 닮아 있고 또 어떤 점에서 다른(背反) 것일까? 또한 그것들이 서로 섞이지 않는 물감처럼 선을 긋고 있는 것은 왜일까? 이런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면서 어떤 표현을 해 나갈 수 있을까?”

매번 지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야숙자들이 온 몸으로 제기하는 이 질문은 탈원전/재가동 반대운동이 결코 사라지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던 정치적인 원동력을 똑바로 가리킨다. 또한 결코 사라지지 않고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는 에너지가 무엇인지 힌트를 던져주고 있다.

응답 2개

  1. 이경말하길

    미야시타 공원이랑 블루텐트촌을 낙타님 안내로 다녀온게 벌써 2년 전이네요. 그동안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만.. 우경화 되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보여주네요.. 국가가 가지고 있는 국민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요…흠.. 글 잘 읽었구요 ^^ 제 누리집에 감사히 담아갈게요!

    • 낙타말하길

      아, 이경씨, 답장이 늦어서 죄송해요. 답글이 달린 줄을 몰랐네요. ^^
      한국의 두물머리 이야기는 이곳에서 은선씨랑 지로씨를 통해서 전해 들었어요.
      같은 형태로 반복되는 폭력을 어떻게 삶 속에서 끌어들여 생각하고 일해가야 할지 요즘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이경씨 답글 고맙구요, 여러 곳에서 또 마주치길!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