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의 뒤편. 무굴제국의 최고의 건축물인 타지마할. 우리는 타지마할을 보며 뭄타즈 여왕에 대한 샤자한 황제의 사랑에 감탄하지만 따지고 보면 타지마할은 한 황제 부부의 로맨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착취당했는지 보여 주는 곳이기도 하다.
열려 있던 방문을 밀치고 원숭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나의 눈치를 살살 보며 유유하게 말이다. 나가라는 손동작을 취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난 어찌할 줄 모르고 넓지도 않은 방 맞은편에서 지켜봤다. 제법 덩치가 컸는데, 어쩌다 물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않은가.
인도의 동해안 뿌리라는 도시에서 난 벵갈만의 일출을 보러 새벽 일찍 바닷가로 나갔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해안가를 걷는데 사람들이 잔뜩 앉아서 나와 같은 동쪽 방향을 보고 있었다. 난 그때 현지인들도 일출을 감상하는구나 하며 신기해 했다. 잔뜩 낀 구름 때문에 일출 장면은 볼 수 없었지만 해는 떴고 주변이 밝아진 덕에 난 사람들이 뭘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바닷물이 밀려오는 해변가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장엄해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올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나왔지만 숙소로 돌아갈 때는 뭔지 모를 꺼림칙함을 감내하며 발밑을 조심하며 해변을 걸어야 했다. 이후 나는 ‘똥’에 대한 느낌의 다름에 대해서 종종 생각하게 됐다.
미누를 인터뷰 하기 전에 미리 머릿속에 그려놓은 구상에선, 이진경 선생님이 쓴 글의 마지막 구절을 비판하면서 이 글을 시작하려 했다. 네팔에서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유령’이 아니라 엄연히 살아있는 실체이며 그와 함께 여전히 어떤 연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유령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의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가 죽은 사람도 아니고 엄연히 네팔에 살아있는데 그를 ‘유령’이라 부르는 것이 강제추방이라는 것을 어떤 끝으로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원래 이주노동자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기분이 몹시 나쁜 일이 생겼고 산에 가고 싶어졌다. 말하자면 도피하고 싶어진 것이다. 한 2주쯤 떠나고 싶었는데 중간에 마감일이 있었다. 아직 쓰려던 글에 필요한 만남들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왜 갑자기 산에 가고 싶어졌는지 쓰는 것으로 이번 글을 대신하려고 한다. 그냥 감정적 투정에 불과한 글일 수도 있겠지만(그런 점을 감안해서 삐딱하게 읽어주시
또, 하나의 유령이 이번 여행을 따라왔다. 인도의 야간열차에서였다. 인도 동부의 오디샤에서 가장 가난한 주인 비하르의 보드가야로 가는 기차였다. 활짝 열려 있는 침대칸의 창 밖이 깜깜해졌을 때 갑자기 장총을 든 경찰들이 소란스럽게 올라탔다. 강도라도 들었나 했다. 옆의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낙살라이트 구역을 지나는
하나의 유행이 이번 여행을 따라왔다. 8월에 한국을 떠나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내내 곳곳에서 나는 그와 마주쳐야 했다. 거리에서, 상점에서,식당에서 언제나 오빤 강남스타일이었다. 수억이 봤다는 뮤직비디오도 캄보디아 시엡립에서 묵었던 숙소의 직원 덕에 처음 봤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의 공연도 어떤 인도인이 스
다른 한 공간은 군대였다. 이곳에선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웠다. 90년대 민주캄푸치아 정권이 사라진 후 이곳은 학교이자 하나의 마을이 됐다. 처음에는 지뢰와 확산탄 등 전쟁으로 인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기술을 배우는 학교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점차 그런 사람들이 줄어들자 이제는 좀 더 문을 넓혔다. 프놈펜에서 10키로쯤 떨어진 반티에이 뿌리웁이라는 학교이다. 뿌리웁은 캄보디아말로 평화를 상징하는 비
냉전은 사기였다. 실제로 전쟁을 치루지 않은 전쟁이라는 뜻의 냉전이었지만 어떤 곳에서는 역사상 가장 많은 양의 폭탄이 뿌려졌고 근대에 들어 가장 잔인했던 학살이 이뤄졌다. 미국과 소련, 중국 등 열강들이 개입했고 그것은 누구나 알았지만 비밀이라 했다. 이 전쟁엔 한국도 참여했다.
평화비행기 탑승객들을 비롯한 1000여명의 외부세력들을 맞이한 경찰버스에 써 있던 문구이다. 이 버스는 그러니까 영도에서 수천명의 탑승자를 막아선 그 버스였던 것이다. 영도에서 김진숙을 '지키고' 있던 경찰들이 강정에서도 구럼비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 무관하지 않았듯이 그들과 마주한 외부세력도 결국엔 한통속이었다. 그 장소가 명동이든, 영도이든 강정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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