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평화와 희망의 상관관계- 평화비행기 참가 후기

- 들깨

“85호 크레인으로!”

평화비행기 탑승객들을 비롯한 1000여명의 외부세력들을 맞이한 경찰버스에 써 있던 문구이다. 이 버스는 그러니까 영도에서 수천명의 탑승자를 막아선 그 버스였던 것이다. 영도에서 김진숙을 ‘지키고’ 있던 경찰들이 강정에서도 구럼비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 무관하지 않았듯이 그들과 마주한 외부세력도 결국엔 한통속이었다. 그 장소가 명동이든, 영도이든 강정이든 말이다.

물질하던 해녀, 귤농사 짓던 농부, 자동차 만들고 배 만들던 조끼 입은 아저씨들, 미사 드리던 신부, 기타치고 트윗질하던 날라리들 그리고 대통령 출마했던 정치인.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의 조합이 이제 결코 낯설지 않다. 편리한 이동 수단, 지루하지 않은 문화 공연이 제공되며 저렴한 가격까지 자랑한다. 어딜가나 검은 방패를 든 경찰들과 취재진 그리고 우리를 걱정하시는 어버이들이 우리를 기다려준다. 잘 짜여진 ‘패키지 집회 여행’은 하나의 유행이자 상징이 됐다. 절망의 시대가 희망의 버스를 낳는다면 갈등과 싸움이라는 상황은 평화의 비행기를 띄운 것이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만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고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노동자의 문제는 노동자의 단결로만 해결할 수 없으며 해군기지도 마을 주민들만의 반대로는 막을 수 없음을 안다. 그 이유와 논리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노동문제와 기지문제와 철거문제가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혼자서는 버텨낼 수 없기에 우리는 외부세력을 부르고 또 스스로 외부세력이 되는 것이다.

4년이 넘는 세월동안 강정의 주민들은 철저하게 외로웠다. 정부는 그들을 무시했고 경찰들은 해군들은 그들을 짓밟았다. 육지의 언론과 사람들은 제주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국회도 찾아가고 여기저기 순례를 하며 그들의 싸움을 알리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자, 물리적인 충돌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겨났다. 강정마을을 찾아오기 시작했고 같이 살면서 함께 저항하는 이들이 생겼다. 주민들이 육체적으로 물적으로, 그리고 심적으로 지칠 때 그런 연대의 손길은 그들이 싸움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되 주었다. 수백대의 버스를 영도의 85호 크레인으로 불러 모은게 김진숙이라는 ‘사람’의 절실한 외침이었다면 평화의 비행기를 강정으로 부른 것도 강정 주민들의 애타는 절규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제주 공항에 발을 딛었을 때, 평화 올레의 시작점인 법환 포구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평화콘서트와 평화난장 행사장에 왔을 때 이들이 전해준 꽃에서, 함성 속에서 우리를 반가워하는 것이 열렬하게 전해져왔다.

공항에서 강정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우리가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 얘기할 때 많은 이들은 미안함에 대해서 얘기했다. 지켜줘야 하는데, 가봐야 하는데, 무언가 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해 미안했다는 것이다. 생판 본적도 없는 김진숙에게, 또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심지어 바윗덩어리에 불과한 구럼비와 붉은발말똥게에게 왜 미안한 감정이 드는지 나는 아직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의 우리 모두가 연결 돼 있음을, 너의 고통과 갈등이 나와 무관하지 않음을, 나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서서히 느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어렴풋이 말해볼 뿐이다.

부채의식 외에도 우리는 자발성에 대해서 얘기했다. 일개 트위터 유저도, 시민단체 활동가도, 회원도, 해고노동자도, 심지어 취재차 동행한 기자도 저마다 자신이 이곳에 ‘일’로써, ‘의무’로써 온 것이 아니라 오고 싶어서, 스스로 왔다고 그 순수성을 말했다. 언론에 취재를 ‘당하’거나 단체나 조직에 동원되기 보다는 자원해서 참여하고 스스로의 생각과 느낌들을 트위터를 통해서 각기 중계하는 사람들이었다. 평화비행기는 스스로, 미안해서 온 사람들에게 하나의 계기였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평화비행기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평화비행기가 온다는 소식에 바짝 긴장한 경찰이 바로 전날 새벽 사고를 치게 만들었다. 서른 명이 넘는 활동가와 주민들을 연행하는 무리수를 두면서 경찰은 구럼비와 해군기지 건설 부지를 완전히 격리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경찰들로, 버스들로 성을 쌓고 평화비행기를 맞았다. 우리는 높은 펜스 앞에서, 바닷가에 쳐진 철조망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말로만 듣던 구럼비는 대충 저기 어딘가 쯤 있다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힐끗 보았을 뿐이다. 작은 충돌도 거의 없이 조용히 행사를 치루고 다시들 제주를 떠나야 했고 며칠 후 구럼비는 부숴지기 시작했다. 공사는 계속 진행되고 몇 개의 기사가 났고 이내 안철수니 박원순이니 하는 서울시장 선거 소식들에 묻히고 있다. 평화비행기는 참 무력했던 것이다.

아마도 평화비행기를 탔던 사람들은 느꼈을 것이다. 우리들의 약함을. 하지만 약한 것은 결코 슬프거나 절망스러운 것이 아니다. 도착한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평화를 누리러 왔다고 외쳤다. 그것은 결코 말장난이 아닐 것이다. 평화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의 차이일 것이다.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사람들도 평화를 말한다. 그들의 평화도 똑같이 우리의 약함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약함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남보다 더 강해지려고 한다. 힘의 우위, 힘의 균형으로 약함을 극복하는 것이 그들의 평화이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평화는 관계의 단절이다. 긴장의 연속이다.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평화는 우리의 약함을 긍정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보듬고 관계 맺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해고 노동자가, 비정규직과 철거민들이 농부와 해녀와 뭉치는 것은 우리가 약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생겨도 정부와 언론은 관심이 없고 경찰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앞날은 불안하기만 하다는 느낌에서 우리의 연대는 출발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경찰이나 해군이 아니다. 바로 남보다 강해지려는 욕망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약함을 발견하고 무력함을 느끼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관계 맺는 것은 쉽고 명료하지 않다. 왜 노동자들이 강정마을에 가고 날라리들이 크레인 앞에 가야하는지는 잘은 모르지만 일단 우리는 만나서 놀고 본다. 희망버스가 계속되면서, 강정마을의 저항이 계속되면서 수 많은 낯선 사람들이 어울린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어색한 상황들이 연출된다. 제주에 오면 흑돼지를 먹어야 하는 사람들과 채식주의자들이 함께 식사를 한다. 잡초가 자라면 제초제를 뿌려야 하는 농민들과 고엽제 문제를 다루는 활동가들이 함께 잡초문제를 논의한다. 노동운동에서 잔뼈가 굵은 어떤 이는 평화활동가들이 너무 나약하다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한다. 철거 농성장에서 잡년 행진이 시작되듯, 정동영이 평화콘서트에 와서 스탠딩으로 환호하듯, 이러한 어색하지만 다양한 만남들 속에서 새로운 질문들과 생각들이 싹튼다. 농사를 짓던 강정의 주민들은 이제 해군기지를 저지하는 일이 세계평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하며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희망버스가 새로운 세상을 열것이라 말한다.

고백하자면 희망버스 현상을 지켜보며 나에겐 미숙한 고민들이 있었다. 한진 해고노동자들이 복직하면 좋은 것일까. 한진은 군함을 만드는 회사인데 그들이 복직해서 정규직으로 군함을 만들면 좋은 것일까?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 공장이 가는 것이 공평한 것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이러한 딜레마들이 해결 될 수 있을까. 여전히 나의 질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희망버스라는 공간이 나에게 이러한 질문을 만들어 줬다는 것이다. 희망버스, 평화비행기와 같은 투쟁의 만남들은 그러한 질문과 딜레마들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던질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에 답하기 위해 사람과 자연, 그리고 그 관계를 들여다볼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논리와 이해만이 아닌 배려와 감수성을 발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평화화 희망은 도달할 지점이 아니라 추구해야 할 지향일 것이다.

비싼 비행기 티켓값 때문에 2차 평화비행기가 언제 뜰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름나름 비행기와 배를 타고 강정을 찾는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연대와 만남도 계속되고 있다. 꼭 비행기를 전세내야 평화비행기가 아닐 것이다. 미안함과 고민을 가진 단 한명의 사람이라도 타고 있다면 그곳이 바로 평화비행기일 것이다. 평화비행기는 희망버스는 계속 강정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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