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여행이 일상에게, 일상이 여행에게

- 들깨

타지마할의 뒤편. 무굴제국의 최고의 건축물인 타지마할. 우리는 타지마할을 보며 뭄타즈 여왕에 대한 샤자한 황제의 사랑에 감탄하지만 따지고 보면 타지마할은 한 황제 부부의 로맨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착취당했는지 보여 주는 곳이기도 하다. 인도 전역에서, 그리고 세계 어디에서든 만나는 거대한 건축물들, 특히 국가 건축과 종교 건축물은 거의 언제나 그 시대 최고의 착취의 산물이다. 우리 시대의 착취는 고층 빌딩으로 상징되지 않을까?

타지마할의 뒤편. 무굴제국의 최고의 건축물인 타지마할. 우리는 타지마할을 보며 뭄타즈 여왕에 대한 샤자한 황제의 사랑에 감탄하지만 따지고 보면 타지마할은 한 황제 부부의 로맨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착취당했는지 보여 주는 곳이기도 하다. 인도 전역에서, 그리고 세계 어디에서든 만나는 거대한 건축물들, 특히 국가 건축과 종교 건축물은 거의 언제나 그 시대 최고의 착취의 산물이다. 우리 시대의 착취는 고층 빌딩으로 상징되지 않을까?

여행지에서 가이드북을 편다. 가장 큰 신전, 아름다운 왕궁으로 간다. 아, 인도의 종교란, 인도인의 신앙이란 얼마나 신성한가. 거대한 사원은 경이롭다. 황제의 예술적 안목은 얼마나 높은가. 물건을 사거나 교통수단을 탈 때 우리는 바가지를 쓰지 않기 위해 흥정을 하며 값을 깎는다. 한 푼이라도 더 싼 가격이어야 우리는 안심하고 뿌듯해 한다. 그리고는 가장 유명하다는 식당이나 까페에 가서 메뉴판에 적힌 가격을 보고는 한국에서는 이걸 사려면 훨씬 비싸다고 생각하며 기꺼이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

바꿔 생각해보자. 한국에 온 외국인이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순복음교회에 가서 감탄한다. 한국인들의 기독교적 신앙이란. 잘 단장된 청계천에, 사대강변에 가서 한국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나라라며 감탄한다. 광화문광장에 세워진 세종대왕 동상이나 이승만 동상을 보면서 한국인들의 애국심에 대해서 또 감탄한다. 맛있다는 집을 찾아 재벌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비싼 식사를 시키지만 명동에서 쇼핑을 할 땐 최저 시급을 받는 알바들이 파는 악세사리들을 산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라면 이 외국인들에게 무언가 다른 것들이 있다고 얘기하고 싶지 않겠는가. 순복음교회가 가진 어떤 문제에 대해서. 청계천, 사대강, 광화문광장, 이승만을 둘러싼 어떤 역사정치적 갈등에 대해서. 그리고 재벌의 독식 문제와 노동자들의 임금 문제에 대해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페트로나스는 석유부국인 말레시이사의 석유 재벌 그룹의 이름이다. 또한 이 건물은 삼성물산에 의해 지어졌고 많은 한국인들은 이에 자랑스러워한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페트로나스는 석유부국인 말레시이사의 석유 재벌 그룹의 이름이다. 또한 이 건물은 삼성물산에 의해 지어졌고 많은 한국인들은 이에 자랑스러워한다.

여행은 모순적인 공간이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낯선 여행지에선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고 애쓴다. 경찰력이 강화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권력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도 여행지에서 경찰을 마주하면 안도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한국에선 우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국가 정통성이나 배타적인 민족주의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다가도 외국에 가면 무언가 전통적인 것, 순수한 것, 역사적이고 거대한 스케일이 있는 행사들을 찾게 된다. 그리고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특별한 체험으로 간직한다. 내 몸 하나도 간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힘들고 두려울 땐 쉽게 돈으로 자신의 안정과 편리를 산다. 물가 차이가 심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우리는 쉽게 사치적인 소비에 젖어들게 마련이다.

여행은 일시적인 삶이고 우리가 꿈꾸던 무엇이기에 현실에서 눌러 둔 욕구들을 발산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아니, 현실에서 참아 왔던 욕심들을 마음대로 발산하는게 오히려 여행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봐야 하고 특별한 것을 해야 한다. 혹은 일상에서 벗어나서 마음의 평화를 누려야 한다. 여러 가지 스트레스들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껴야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추구하는 정치적 올바름은 그래서 여행에서는 잠시 잊어 둔다. 내 생활을 구성하는 것들이 옳은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대안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긴장은 거추장스럽다.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도시인 암릿사르에서 본 국경 폐쇄식. 매일 저녁, 국기를 내리고 국경을 닫는 행사를 인도와 파키스탄 양측에서 동시에 진행한다. 신나는 춤부터 경쟁하듯 벌이는 퍼포먼스 등으로 외국인들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높은 관광 코스다. 종교의 나라 인도가 정치에서만큼은 세속주의라고 주장하지만 내게 저 모습은 국가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가는 모습으로 보였다. 이뿐 아니라 여행자들의 눈을 자극하는 많은 행사들은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감정을 만들어 가는 스펙타클로서 기능하는 것들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도시인 암릿사르에서 본 국경 폐쇄식. 매일 저녁, 국기를 내리고 국경을 닫는 행사를 인도와 파키스탄 양측에서 동시에 진행한다. 신나는 춤부터 경쟁하듯 벌이는 퍼포먼스 등으로 외국인들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높은 관광 코스다. 종교의 나라 인도가 정치에서만큼은 세속주의라고 주장하지만 내게 저 모습은 국가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가는 모습으로 보였다. 이뿐 아니라 여행자들의 눈을 자극하는 많은 행사들은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감정을 만들어 가는 스펙타클로서 기능하는 것들이다.

여행이 가지는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말도 안 통하고 풍토가 다른 환경에서 내게 접해 오는 것이 낯설다. 관광지에 대한 정보는 가이드북에 있지만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몸에 익힌 자질구레한 것들은 알 수 없다. 정보는 부족하고 시간은 없다. 체력은 딸리고 위험은 산재해 있다. 안 그래도 이런 불편들, 두려움들로 긴장의 연속인 여행에서 혹여라도 아프거나 바가지를 한 번 쓰기라도 하면 게임 끝이다. 여행은 전쟁이며 나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살아서 스윗홈에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여행이 가지는 여러 가지 한계들이 있다. 어설픈 여행객을 노리는 바가지와 사기의 위험은 항상 주변을 배회한다. 병이든 강도든 사고든 실제적 위험도 실재한다. 여성의 경우엔 더 심하다. 진한 커피, 뜨거운 샤워, 빠른 인터넷 등 우리에게 어쩔 수 없이 익숙해진 것들이 없는 순간순간은 괴롭기 마련. 여행이 가지는 휴식이나 일탈적인 측면도 분명 있어야 한다. 여행은 언제나 우리의 고된 일상을 위로하는 역할을 해 왔다. 재충전도 필요하다. 사회와 사회가 만나는 것이 여행인 만큼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고 눈에 담는 것도 중요하다.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것도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제약과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나서 보다 나은 여행에 대한 고민은 출발해야 할 것이다.

방콕을 가로지르는 짜오쁘라야 강물 위에서 태국의 해군이 왕실을 위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뒤로 태국의 왕궁과 국가 사원이 보인다. 왕이 있는 국가의 국민은 어떤 느낌일까. 한국에도 100년 전까지 왕이 있었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방콕을 가로지르는 짜오쁘라야 강물 위에서 태국의 해군이 왕실을 위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뒤로 태국의 왕궁과 국가 사원이 보인다. 왕이 있는 국가의 국민은 어떤 느낌일까. 한국에도 100년 전까지 왕이 있었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천편일률적인 여행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도 찾아보면 꽤 많을 것이다. 여행에서 소비하고 관광지 일색의 여행을 하면서 불편한 사람도 꽤 있을 것 같다. 패키지 여행에 대한 문제의식은 더 커서 홀로, 혹은 둘이 자유롭게 여행하는 사람의 숫자는 이미 상당하다. 이미 여행자의 제국주의적인 위치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시각을 비판하는 책도 꽤 나와 있다. 계속해서 그런 책들이 나온다는 것은 그런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미 여러 가지 문제의식과 마주하며 나름대로의 여행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지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여행 준비를 해야 좀 더 다른 여행이 가능한지에 대한 정보를 알기는 쉽지 않다. 나아가 어떤 여행이어야 하는지, 어떤 방식이 좀 더 나은 여행일지에 대한 논의나 공유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조금 더 얘기하고 조금 더 나누고 조금 더 고민하면 우리의 여행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사진 속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한국과 연결돼 있다. 윗 사진 왼쪽 남자의 아내의 여동생은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한다. 그 여자는 한국에서 결혼을 했는데 그 남편은 가운데 있는 남자의 남동생이다. 그 둘이 낳은 자식은 한국에서는 키울 수 없어 네팔에서 친척들이 키운다. 가운데 남자의 또 다른 남동생은 남인도의 티벳탄콜로니에서 라마(스님)로 살아간다. 맨 오른쪽 남자의 남동생은 한국에서 티벳 식당을 하고 있고 그 막내동생은 그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한다. 한국에서 벌어서 보내온 돈으로 산 땅에 집을 짓는 것을 논의하러 이곳에 방문했을때 사진을 찍었다. 해외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는 네팔인들이 고국에 보낸 돈은 이렇게 부동산에 투자되고 포카라의 땅값이 덕분에 매우 비싸다고 한다.  아래 사진은 네팔 국경을 넘을 때 우연히 만난 친구인데 한국에 곧 일하러 갈 예정인 네팔 사람이었다. 나는 마을에 초대되어 며칠간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이 친구는 지금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와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 속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한국과 연결돼 있다. 윗 사진 왼쪽 남자의 아내의 여동생은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한다. 그 여자는 한국에서 결혼을 했는데 그 남편은 가운데 있는 남자의 남동생이다. 그 둘이 낳은 자식은 한국에서는 키울 수 없어 네팔에서 친척들이 키운다. 가운데 남자의 또 다른 남동생은 남인도의 티벳탄콜로니에서 라마(스님)로 살아간다. 맨 오른쪽 남자의 남동생은 한국에서 티벳 식당을 하고 있고 그 막내동생은 그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한다. 한국에서 벌어서 보내온 돈으로 산 땅에 집을 짓는 것을 논의하러 이곳에 방문했을때 사진을 찍었다. 해외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는 네팔인들이 고국에 보낸 돈은 이렇게 부동산에 투자되고 포카라의 땅값이 덕분에 매우 비싸다고 한다. 아래 사진은 네팔 국경을 넘을 때 우연히 만난 친구인데 한국에 곧 일하러 갈 예정인 네팔 사람이었다. 나는 마을에 초대되어 며칠간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이 친구는 지금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와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

여행은 어디까지나 삶의 연장이다. 사회와 사회가 이어지는 현실이다. 여행자는 여행이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시민이다. 여행은 단지 자랑거리나 환타지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 개입하는 것이다. 여행지에서의 내 시간들은 여행이라는 현실을 보다 내 가치에 맞게 꾸려 나가고자 하는 노력의 과정이었다. 정주하는 일상인과 떠나는 여행자 사이의 모순과 긴장 사이에서 고민했고, 괴로웠고, 때론 기뻤다. 내가 가진 정치적 올바름의 관념들을 여행에서의 시간 속에 녹여내 보려 발버둥쳤다. 모순되는 경계들을 넘으며 내게 있던 알량한 정치적 올바름들은 균열했다. 이것은 비단 여행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내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국경을 넘고 문화권을 넘나들며 이런 체험들은 보다 극적으로 변하고 감각과 상식은 뒤틀렸다.

얼마 전 캄보디아의 파업과 유혈 진압이 보도됐다. 캄보디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눈에 그려졌다. 그들은 추상적인, 그저 순박한 눈동자의 아이들 같은 그런 이미지로서 그려지지 않았다. 벙깍호수에서 강제 퇴거에 맞서 싸우던 활동가들이 연행됐다는 소식이 들렸고, 원탁에 마주앉았던 의류노조 활동가들이 떠올랐다. 캄보디아에서 내가 만나고 대화를 나눴던 이들의 안부가 걱정되어 몇 군데 연락을 해보기도 했다. 캄보디아 소식은 내게 구체적인 사건이었다. 이것은 여행이 내게 가져다준 어떤 감각일 게다. 이번 사건에서 그 연결이 특히 두드러졌듯이 캄보디아 사태는 결코 저 먼 어떤 외딴 나라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삶과 연결되고 있고 나의 책임을 어느 정도 요구하고 있었다. 나의 여행은 그 연결 고리를 찾는 시간이었다.

캄보디아의 철거 지역인 벙깍호를 방문했을 때 만났던 동네 주민이자 활동가들. 얼마 전 캄보디아 유혈 사태로 시끄러울 때 이들중 몇명도 연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의 목소리와 내게 베풀어 준 환대가 떠올랐다.

캄보디아의 철거 지역인 벙깍호를 방문했을 때 만났던 동네 주민이자 활동가들. 얼마 전 캄보디아 유혈 사태로 시끄러울 때 이들중 몇명도 연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의 목소리와 내게 베풀어 준 환대가 떠올랐다.

소위 ‘저개발국가’를 여행하며 나는 시간을 교역했다. 한국에서 내 한 시간을 5천원 정도에 팔아서 모은 돈으로 여행지에서는 불과 몇 천원으로 ‘현지인’들의 하루를 샀다. 저렴한 교통비,숙박비, 식비 등등은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돈을 벌었기 때문에 누리는 편리이기도 했다. 몇 명이 죽어 가며 캄보디아의 노동자들이 외쳤던 최저 임금은 한 달에 20만 원이 채 안 된다고 한다. 그 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캄보디아의 정부는, 한국의 기업들은 협상을 결렬하고 시위를 진압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한국에서 배운 것처럼. 나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까.

80년대의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나는 부잣집 아들에서 태어난 도련님이나 마찬가지다. 내겐 태어날 때부터 익숙해져 있던 위생 수준과 삶의 질, 생활의 편리들이 어떤 공간에선 사치이며, 파괴와 착취를 기반으로 하고 있던 것들임을 발견했을 때 괴로웠다. 누군가를 밟고 서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에 대해서, 그리고 또 그걸 알면서도 쉽사리 내려오지 못하는 내 자신을, 그리고 동류의 한국인 여행자들을 발견해서 괴로웠다. 내 몸에 새겨진 감각들은 우리의 멘탈 속에 깔려 있는 신자유주의적 심성과 자본주의적 무의식처럼 깊숙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공정 여행은 공정하며, 국제 원조는 ‘도움’이 될까? 한국인들은 그마저도 잘 하지 않지만 말이다. 한국에서 평등과 분배, 혹은 복지를 주장하는 우리들은 캄보디아와 네팔, 인도의 빈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나를 바꾸지 못하는 나는 과연 한국에서 ‘자본가’들과 ‘부자’들을 비판할 수 있을까? 그들에겐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는 감각들을 말이다.

인도의 흔한 교통수단. 새삼 느끼지만 빈곤은 낭만적이지 않다. 언제나 좁은 공간과 불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꽉꽉 들어찬 버스 안에서 성추행은 웬말, 남의 몸이 닿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위험한 사회에서 남성은 더 강해져야 하고 못 하는 여성과 아동, 노인 등의 약자는 더욱 보호받고 의존해야 한다.

인도의 흔한 교통수단. 새삼 느끼지만 빈곤은 낭만적이지 않다. 언제나 좁은 공간과 불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꽉꽉 들어찬 버스 안에서 성추행은 웬말, 남의 몸이 닿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위험한 사회에서 남성은 더 강해져야 하고 못 하는 여성과 아동, 노인 등의 약자는 더욱 보호받고 의존해야 한다.

글은 이렇게 썼지만 내 여행은 그렇게 딱딱하지만은 않았다. 여행은 애매했다. 배낭여행이라기에 내 여행은 낭만이 부족했다. 휴양 혹 관광이라기엔 내 여행은 찌질했고 궁상맞았다. 학문의 틀로 분석하기에 지식의 밑천은 너무도 하찮았고 활동가의 시선으로 보기에 내 활동의 양이랄건 내세울 게  못됐다. 게다가 나는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활동가의 자세를 어느 정도는 놓아버렸다. 여행 에세이를 쓰기엔 감수성이 부족했고 여행 작가라기엔 나는 아는 게 없을 뿐더러 소위 ‘독자’들과 환타지를 공유하지 못했다. 장기 여행자라기엔 짧았고, 여유를 즐기기엔 바빴다. 많은 것을 경험하기에는 나는 망설였고 조심스러웠고 경계를 풀지/넘지 못했다. 사람을 보는 여행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소통할 수 있는 한정된 언어를 갖고 오랜 관계를 담보하지 못하는 몇몇 사람들을 만나며 나와는 다른 지점에서 세상을 보고 느꼈을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려 노력했을 뿐이다. 나는 노트북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내가 아는 일군의 사람들과 소통의 끈을 이어 나가려 했지만, 소통이라는 것은 도구가 가져다 주는 어떤 ‘기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도구와 시공간적 거리는 무시할 수 없을 만한 것이어서 그것들이 소통을 담보하지는 못하지만 그것들의 부재가 소통을 어느 정도는 제한할 수 있음도 알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네팔에선 선거를 통해 마오주의가 몰락했다. 내가 누볐던 방콕의 시내에선 연일 시위가 한창이다. 박근혜는 포스코 건설에 탄력을 주고 원전을 수출하기 위해 인도에 갔고, 난 박근혜가 당선이 되던 날 확정됐던 것이나 마찬가지었던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그리고 감옥으로의 여행을 찬찬히 준비하고 있다. 내 감각은 교도소라는 공간과 1년 6개월이라는 시간과 수감 생활이라는 일상 속에서 또 어떻게 변할지 스스로 궁금하다. 여행지에서 내게 글쓰기의 긴장을 만들어준 위클리 수유에 감사드리며, 내 글이 여행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작은 힌트가 되길 바란다.

인도 라자스탄의 연(kite)축제에서의 전통 공연. 터번과 화려한 옷이 라자스탄의 상징이다. 여행자들의 눈에 들어오는 아름답고 멋진 것들은 대개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기여하는 것들이다. 인도에 숱한 종교 축제들은 과거로부터 길게 이어져 내려오긴 했지만 최근 종교적, 민족적 근본주의와 관광을 위한 상품으로서 더 거대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있다. 여행자로서 자극적인 것들을 쫓아다니며 셔터를 누르는 내게 아름다움에 대한 태도는 늘 따라오는 고민이었다.

인도 라자스탄의 연(kite)축제에서의 전통 공연. 터번과 화려한 옷이 라자스탄의 상징이다. 여행자들의 눈에 들어오는 아름답고 멋진 것들은 대개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기여하는 것들이다. 인도에 숱한 종교 축제들은 과거로부터 길게 이어져 내려오긴 했지만 최근 종교적, 민족적 근본주의와 관광을 위한 상품으로서 더 거대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있다. 여행자로서 자극적인 것들을 쫓아다니며 셔터를 누르는 내게 아름다움에 대한 태도는 늘 따라오는 고민이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