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공간의 쓰임, 쓰임의 공간 – 캄보디아의 내전을 극복하려는 두 개의 공간에 대하여 (2)

- 들깨

평화를 만드는 학교가 된 군부대

다른 한 공간은 군대였다. 이곳에선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웠다. 90년대 민주캄푸치아 정권이 사라진 후 이곳은 학교이자 하나의 마을이 됐다. 처음에는 지뢰와 확산탄 등 전쟁으로 인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기술을 배우는 학교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점차 그런 사람들이 줄어들자 이제는 좀 더 문을 넓혔다. 프놈펜에서 10키로쯤 떨어진 반티에이 뿌리웁이라는 학교이다. 뿌리웁은 캄보디아말로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이다. 비둘기 센터인 셈이다.

이 곳도 군대 막사를 살짝 손대 교실로써 작업장으로써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인 이곳은 캄보디아 각 지역의 장애인들을 찾아 그들이 유용한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

학생들이 장을 보고 돌아오고 있다. 집집마다 한명씩 돌아가며 당번을 한다. 이들은 해도 뜨기전인 꼭두새벽 네시에 출발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장을 본다. 우리도 같이 가려고 전날 약속을 했었는데 늦잠을 자서 함께 하지 못했다. 대신 학생들이 돌아올 때 가서 사과를 했는데 웃으면서 용서해줬다.

학생들이 장을 보고 돌아오고 있다. 집집마다 한명씩 돌아가며 당번을 한다. 이들은 해도 뜨기전인 꼭두새벽 네시에 출발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장을 본다. 우리도 같이 가려고 전날 약속을 했었는데 늦잠을 자서 함께 하지 못했다. 대신 학생들이 돌아올 때 가서 사과를 했는데 웃으면서 용서해줬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일종의 마을을 이루고 산다는 것이다. 한해 입학하는 학생이 100명쯤 되는데 10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한집에 산다. 급식을 하지 않고 직접 밥을 해먹는데 장도 돌아가면서 직접 보고 집마다 작은 텃밭도 있다. 이들이 배우는 기술은 기계 수리, 농업, 제화, 미싱, 조각 등인데 모두가 삶에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매우 탐나는 것들이다. 졸업해서 작업장에서 계속해서 일하는 사람, 선생님이 된 사람도 있다. 이들도 학교 안에서 학교 근처에서 집을 짓고 산다. 집의 환경은 무조건 편리하게, 좋게 돼있지는 않다. 졸업생들이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큰 불편을 겪지 않고 살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정도의 수준으로 살고 있다. 학교지만 하루의 8시간 정도의 ‘교육’보다는 나머지 16시간의 ‘일상’이 더 중요하다는 소개가 기억에 남았다.

무엇보다 이 공간의 좋은 점은 이들이 더 이상 ‘비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팔이 없든, 다리가 없든, 어디가 불편하든 이들의 ‘장애’는 불편이고 조건에 불과했다. 이들의 전공도 그들이 조건과 그들이 사는 지역의 형편을 고려해서 결정된다. 이들에게 교육은 베풀어지는 수혜나 구호가 아니다. 이들이 갖고 있는 현실적인 벽을 같이 검토하고 본인과 가족, 학교 선생님들이 상의해서 자립적으로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만드는 것이다. 기숙사의 구성은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협력해서 살 수 있도록 배치된다. 차이가 갈등이 아닌 협력할 수 있는 특이성이 된다는 말을 이곳에선 눈으로 볼 수 있다.

이 곳에서 3일을 살면서 처음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학생, 직업 교육을 받으며 살고 있는 학생, 이곳을 졸업하고 선생님이 된 사람 등 여러 사람들과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땐 새로 만나게 되는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장애는 무엇일까 나도 모르게 살피게 됐고 그 시선 때문에 스스로 괴로웠다. 섞여서 함께 농구도 하고 배구도 하며, 같이 바나나 나무를 심는 땅을 파며, 또 그들이 사는 집에 초대받아 함께 밥을 먹으며 노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런 괴로움은 줄어들었다. 적어도 이 공간에서 장애는 차별이나 비정상이 아닌 조건이자 불편이었고 내 시선은 그들의 필요를 살피는 것이란 것을 느끼게 됐다. 그건 마치 캄보디아 말을 모르는 우리에게, 학교 내의 지리를 잘 모르는 우리를 그들이 살피며 해준 배려와 비슷한 것이었다. 내 시선은 그들에게 ‘눈총’이 되지 않았다. 이 공간은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그 신뢰는 자신감을 만들어줬다.

서로 다른, 공간의 쓰임

뚜얼슬랭과 반티에이 뿌리웁은 둘다 전쟁과, 군대와, 학교라는 공통점이 있는 공간들이었다. 하지만 전쟁 후 20년 두 공간의 쓰임은 분명 다르다. 뚜얼 슬랭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한땐 교육받는 학생들을, 한때는 같은 편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지금은 크메르 루주라는 괴물을 기억하고 분노하는, 그래서 현 정권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계속해서 생산하고 있다. 같은 생각을 가진 ‘편’을 만들어내는 곳으로서 공간의 쓰임은 여전했다. 하지만 반티에이 뿌리웁은 같음을 생산하고 죽임을 가르치는 곳에서 다름을 살피고 차이가 도움이 되는, 그래서 평화를 가르치고 평화를 살아가는 곳으로 반전을 이뤄낸 것 같았다.

2008년도 신입생 입학 사진. 자세히보면 '확산탄 금지'라고 쓰여진 배너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한국에서 내가 참여했던 확산탄 금지 운동과 같은 것이기에 반가워서 찍었다. 입학사진이 이러한 배너 앞에서 촬영되는 학교의 학생들은 평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참고로 2008년은 확산탄 금지 조약이 채택된 해이며 한국은 아직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2008년도 신입생 입학 사진. 자세히보면 '확산탄 금지'라고 쓰여진 배너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한국에서 내가 참여했던 확산탄 금지 운동과 같은 것이기에 반가워서 찍었다. 입학사진이 이러한 배너 앞에서 촬영되는 학교의 학생들은 평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참고로 2008년은 확산탄 금지 조약이 채택된 해이며 한국은 아직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공간은 어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곳만은 아니다. 사람들의 관계로 촘촘하게 엮여진 어떤 네트워크 같은 것이라고 머릿속에 그려진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건물이든, 사람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사회든 그 속의 관계가 배치되고 구성되는 그런 공간이다. 그렇기에 공간을 쓰는 것은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쓰임으로 공간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티에이 뿌리웁을 알게 된 것은 활동하면서 맺은 인연이었다. 반티에이 뿌리웁을 처음 만들고 돕고 있는 캄보디아의 지뢰 확산탄 반대 활동가가 한국에 왔었고 그 인연으로 나 또한 그곳을 방문하게 됐다. 장애가 현실적 조건 혹은 벽이라면 지뢰, 확산탄 등의 무기는 그런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 들이다. 그런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이뤄지는 교육이나 평화는 일시적인, 단편적인 도움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반티에이 뿌리웁을 만들고 운영해나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수혜를 베풀러 온 사람들이 아닌 자립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차별을 만들어내는 조건, 제도,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사회라는 어떤 공간의 배치와 구성을 바꾸려는 노력일 것이고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운동’의 뜻이다.

한 집에서 우리를 초대해 그들이 직접 한 저녁을 같이 먹었다. 먹으면서 우리가 하는 일, 그들이 배우는 것들, 이곳의 일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밥을 먹고는 노래를 서로 부르며 놀았는데 나도 한곡을 불렀다. 빈집의 마을 잔치 같은 훈훈한 분위기였다.

한 집에서 우리를 초대해 그들이 직접 한 저녁을 같이 먹었다. 먹으면서 우리가 하는 일, 그들이 배우는 것들, 이곳의 일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밥을 먹고는 노래를 서로 부르며 놀았는데 나도 한곡을 불렀다. 빈집의 마을 잔치 같은 훈훈한 분위기였다.

몇 년간 군비를 축소하거나, 병역을 거부하거나, 군사주의를 반대하는 것에 대해 고민 해왔다. 때론 작은 활동들에 참여했다. 여전히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이 적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삶의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요새는 든다. 물론 뚜얼 슬랭과 같이 국가에 의한, 사회적인, 상징적인 장소의 공간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산당은 나쁜 놈이고 증오해 마땅하며 그들을 무찌른게 자랑스러운 것임을 가르치는 전쟁기념관은 뚜얼 슬랭과 비슷한 공간이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인’ 공간에 대한 운동의 ‘대의’에 비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바꾸는 것의 중요성은 무시되고 있지 않은가. 전쟁기념관은 어쩌다 한번 가는 곳이지만 우리의 일상은 말 그대로 일상적이다.

반띠에이 뿌리웁에서 전쟁 피해자라는 사실보다, 장애에 대한 불편함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함께 밭을 가꾸고 ‘장애’라는 차이를 드러내는 것도 살피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 차이가 서로 돕도록 해야 한다고 맨날 말하면서도 여행을 같이 하는 친구와의 사소한 다른 점들엔 분노하고 힘들어하는 날 보면서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것들을 끊임없이 연습하고 겪어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적극적인 반전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응답 1개

  1. 박카스말하길

    들깨, 안녕! 반티에이 뿌리웁 이야기와 풍경 잘 봤어요. 돌아오면 더 많은 이야기 듣고 싶어요. 건강히 잘 지내다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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