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차라리 낮잠이나 자는 건 어떨까? - 메이데이 총파업을 2주 앞두고

- 단편선(음악가,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

병훈이 처음 “총파업”이란 단어를 내뱉은 것은 지난 3월쯤이었다. 병훈은 나와 함께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란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다. 그가 “총파업”에 대해 이야길 시작했을 때, 나는 솔직히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모두(commons)의 광장을 만들자!”며 3월 1일 몇몇 그룹들이 모여 서울광장에 텐트를 치고선 점령(occupy)한 지 2주일. 2주일 간 눈, 비, 바람과 사투를 벌인 탓에 이미 체력이 바닥을 친 상태였는데, 또 새로운 프로젝트라니! 게다가 총파업이라니! 내 기분이야 어쨌건 병훈은 왜 메이데이인지, 총파업을 왜 해야 하는지, 자신이 생각하는 총파업의 이미지란 어떤 것인지, 그 외 아이디어 등등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결국은 제기랄! 나도 함께 준비하게 되었다! 어쨌건 거리를 하루 동안 점거하자는 것, 전통적인 노동자 정치의 노선을 더욱 확장시켜 다양한 아젠다들과 공명하게 만들자는 것, (지금 시점에서는) 이미 거대한 바보짓이었음이 판명난 총선과는 다른 정치적 흐름을 만들어나가자는 등 전반적으로 동의할 만한 아이디어들이었다.

그리고 한 달. 실은 계속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말만 총파업이니 뭐니 번지르르하게 해놓고선 아무도 안 오는 것 아냐? 그도 그럴 것이 서울광장을 처음 점령했을 때도 와, 이제 사람들 막 텐트 들고 와서 맨날 오뎅 삶아먹고 정종 마시고 그러지 않을까! 순진하게 기대했다가 별 반응도 없고 친구들은 강정이니 선거니 뭐니 하며 다들 바빠서 텐트 놀러오지도 않고 해서 소심한 마음에 괜히 상처받은 직후였다. 그러니 약간은 자포자기. 뭔가 되긴 되겠어?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막상 총파업을 다른 그룹들에 제안하기 시작하니 이곳저곳에서 제법 좋은 반응들이 오는 것이었다. 경우에 따라선 꽤나 적극적으로. 그래서 오, 혹시 뭔가 재미있어 질라나? 하면서도 아, 역시 역부족이지 않을까…

감정의 동요가 말끔해진 것은 지난 4월 15일. 메이데이 총파업을 딱 2주 남겨놓고서 준비한 <<분수대샐러드행동>>이 끝난 뒤. <<분수대샐러드행동>>이란 무엇이다냐? 말 그대로 명동 신세계백화점 앞 분수대에서 샐러드를 나눠먹는 행동이었다. 총파업을 준비하기 위해 어느새 모여든 20개쯤 되는 그룹들이 처음으로 다 같이 만나 서로의 계획을 공유하는 자리로 준비되었던 것. 민중가요도 없고, 플래카드도 없고, 그냥 돗자리 몇 개뿐인 가난한 분수대 앞에 1시가 되자마자 사람들이 제법 몰려들었다. 학생처럼 보이는 사람, 힙스터처럼 보이는 사람, 가난해보이는 사람, 왠지 좀 있어보이는 사람 등등… 우리는 준비한 소형앰프를 놓고선, 스케치북에 대충 그린 그림을 PPT랍시고 넘기면서 총파업의 골자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나머지는 그냥 자유로운 발언으로 채우기로 했다. 사실 이런 건 별로 좋은 방식이 아닌데, 아시다시피 한국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집회에선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별 재미있는 아이디어도 안 나오고…

그런데 첫 발언자로 나온 강유가람(<모래(2011)>) 감독부터 “음… 사실 총파업에 퍼레이드를 하고 점거를 하고 이러는 것 자체가 일 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다들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낮잠이나 자는 건 어떨까요…”라며 굉장히 자신 없게 말하는 것부터 나는 웃음이 나길 시작했다. 총파업 때문에 지금 한 달 째 이곳저곳 조직한다며 아침부터 밤까지 개처럼 일하고 연락 돌리고 경찰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낮잠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런데 연달아 이어지는 발언자들도 도찐개찐. 누구는 학생인데 학교에서 파업왕 콘테스트 같은 걸 한다고 하고 누구는 사람들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퍼포먼스를 하겠다고 하고(모두가 왕이 되자라는 뜻이라고) 또 누구는 은행 ATM기 카드 넣는 곳에 스티커를 붙여 카드를 못 넣게 하겠다고(CCTV가 있는데 어떻게 할 생각이냐 누군가 묻자 그는 곤란한 듯 얼버무리며 발언을 끝냈다)하고… 수많은 시답잖은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모두들 자신 있게 말하기 보단 수줍어했다. 모두들 크게 외치기보단 부끄러워했다. 나는 이런 시답잖은 꼴을 보면서, 왠지 크게 안심이 되면서 막연한 기대를 가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 어떻게든, 그게 무엇이던지 뭔가 되긴 되겠구나. 아…

또 기대하기 시작하네?

샐러드행동이 끝나고 우리는 짐도 옮겨놓을 겸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으로 접어드니 잔디밭 위엔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한편에선 스윙댄스 동아리로 보이는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고, 어떤 이들은 누워 햇빛을 즐기고 있고… 우리는 맥주를 몇 페트 사와선, 먹다 남은 샐러드를 펼쳐놓고선, 비바람에 더러워진 텐트 바로 옆 잔디에 누워 맥주를 조금씩 홀짝거리면서 수다를 떨었다. 수다를 떨며 나는 괜히 아련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잔디 위에 텐트를 치고 있을 수 있을까? 계속 이렇게 누워 햇볕만 쬐고 있으면 되는 걸까? 지금 이 친구들과는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을까? 저녁이 될수록 날은 쌀쌀해졌고 우리는 어두워져갔다.

응답 2개

  1. 에코말하길

    조병훈이 올린 글에서 언급했 듯이 혹은 내가 그 글을 보고 생각한 것은 지역이 없고 노동조합도 쪼개져서.. 그것부터 세우는 일이 좀 이루어져야겠고… 야! 우리가 이런 게 한 두번 임? 힘냅시다~!

  2. 고추장말하길

    단편선님 글을 보니, 글을 따라서 기대와 우울의 롤러코스트를 타게 되네요. 어떻든 다음 주엔 기필코 딸 유나와 함께 서울 광장 텐트에서 동화책을 읽어야지 하는 다짐을… 참, 매이랑 샘이도 함께 하는 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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