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박근혜에게 묻지 말았어야

- 오항녕

큰애, 말도 늦게 배우고 쪼그만 해서 이게 세상을 제대로 살 수가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시킨 적이 많았다. 지금은 빈들거리기도 하고, 뭔가 꼼지락거리며 하기도 하면서 지 인생 알아서 살고 있다. 나도 애들 인생과 내 걱정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고.
얘가 다섯 살 땐가? 같이 동네 가게엘 다녀왔는데, 집에 와보니 이놈 손에 껌 한 통이 쥐어져 있었다. 아니다, 꼭 쥐고 있었다. 이건 내가 사준 게 아니었다. 그래서 물었다. 이거 네가 들고 왔어? 끄덕끄덕.
난 망설였다. 근엄하게 녀석을 내려다보며. 내 근엄함과는 무관하게 녀석은 눈망울을 똘망똘망 굴리며 뭐가 문제냐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도둑놈! 나는 결심했다. 이놈을 구멍가게에 데려가서 가게주인에게 애들 교육 잘못 시킨 데 대해 사과를 하고 또 놈을 야단쳐서 정의가 구현되게 해야겠다고. 그래서 녀석의 손목을 잡고 가게로 향했다. 놈은 여전히 껌을 손에 들고 내게 끌려가다시피 종종걸음을 치며 딸려왔다. 가던 도중.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이 내 머리를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초나라 섭공이 공자에게,
“우리들 중에 아주 곧은 사람이 있습니다. 글쎄, 그 아버지가 양 한 마리를 도둑질했더니, 아들이 아버지가 도둑질했다고 증언을 했지 뭡니까”
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기를,
“우리 동네에서 말하는 곧다는 뜻은 그 맥락하고 좀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하여 숨겨주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하여 숨겨줍니다. 곧다는 것은 그런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라고 하였다.

《논어》〈자로〉편에 나오는 일화이다. 고민에 빠졌다. 가게에 얘를 데려가 사과하고 야단을 치는 것이 옳은지, 공자의 말대로 덮어주는 게 옳은지. 난 공자의 말을 따르기로 했고, 결국 가게 문앞까지 갔던 나와 놈은 다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놈의 행동이 옳아서가 아니라, 고발이라는 행위가 부모자식간에 할 짓이 못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걸 인정이라고 한다. 인정에 부합하지 않을 때, 예전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못 쓴다.”
그 뒤로 난 내 판단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런 판단을 내린 내가 대견하여 가끔 녀석에게 사려 깊은(또는 《논어》를 읽은) 애비의 풍모를 증명하려는 일화로 들려주곤 한다. 물론 녀석은 아직 《논어》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요즘 대선이 다가오면서 대선후보들에 대한 검증이 한창이다. 글쎄, 나라를 맡는 일이니까 능력과 청렴성을 검증하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중에 박근혜에게 요구하는 검증은 좀 이게 아니다 싶은 게 있다.

그렇다. 박근혜에게 5.16쿠데타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에서 자꾸 박근혜에게 5.16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데, 나는 이게 위에서 말한 공자나 나의 사례에 비추어 적절하지 못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애비가 한 일을 두고 자식에게 비판을 하라는 말인데, 이건 인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대선후보니까, 적어도 사회나 그 나라의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 상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개인이 아니라 공인이니까 밝혀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내 부모에 대해 갖는 친함이 나라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보다 아래에 있다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박근혜가 5.16쿠데타에 대해 말 안 해도 뭐라 할 수 없는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자꾸 박근혜에게 5.16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거, 그거 박근혜에게 죽은 부모를 욕하라는 뜻이다. 그것도 선거전략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거듭, 인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표도 안 된다. 자꾸 묻는 걸 보면, 설마 이 사람들 5.16이 뭔지 정작 자신들이 모르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5.16에 대한 평가? 그거 이미 내려졌고, 정 부족하다싶으면 그냥 알아서 잘 평가하면 된다.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데, 박근혜가 그 질문을 지겨워한 나머지 답변을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당시 최선의 선택을 했다.”라고. 나로서는 그게 자식으로서는 마땅히 할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이 자기 부모를 감싸는 거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겨워서든 신념에서든 자식이 부모에 대한 생각을 누군가의 압박에 의해 표현했다는 데 안타까움을 느낀다.
안타까움을 하나 덧붙이자면, 좀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럴 때 최선이란 표현이 아니라 최악이란 표현을 쓴다는 점이다. 고로 나는 박정희가 최악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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