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행정대집행은 뭘 대신하나?

- 박정수(수유너머R)

창피하게도 ‘행정대집행’의 ‘대’자가 ‘대신할 대(代)’인 줄 몰랐다. 막연하게 ‘큰 집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대신 집행한다’는 뜻이란다. 행정대집행법은 누군가 법률에 의거한 행정청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때 행정청(그 위임을 받은 제 삼자)이 ‘대신’ 이행하고 그 비용을 당사자에게 청구하도록 한 규정이다. 굳이 ‘대신’이란 단어를 넣고 또 나중에 비용까지 청구하도록 한 걸 보면, 공익을 위해 긴급히 해야 할 일임에도 사정상 집행 안되는 일을 행정청이 대신 해준다는 게 법 제정의 취지이다. 하지만 대추리나 용산참사, 강정마을에서의 행정대집행을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당사자가 할 일을 대신해주는 게 아니라 행정청의 사업집행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임의로 추방하도록 허용한 법이다. 두물머리 농민들에게 부과된 이행명령은 비닐하우스를 철거하라는 것이지만 실상은 농사짓지 말라는 것이다. ‘두물머리에서 농사짓지 말고 나가라’는 이행명령을 국토부 직원이나 경찰 혹은 용역깡패가 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비닐하우스 같은 지장물을 철거하라고 명령하고선 안 하니까 대신 철거하겠다는 것이다. ‘대신’이라는 말이 가증스럽다.

두물머리 농민들은 오랜 고민 끝에 2009년 개정된 하천법을 존중하여 온실재배 대신 노지재배로 전환하겠다는 의사를 정부에 알렸다. 농사만 계속 짓게 하면 온실은 철거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럼에도 국토청은 하천법에 따르면 하천변에서 개인영농은 금지되어 있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낸다. 결국 행정대집행의 목표가 온실철거가 아니라 농사에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행정대집행은 ‘두물머리에서 농사짓지 말고 나가라’는 명령을 대신 집행하겠다는 것으로, 그것은 행정청이 대신할 수 없는 일이므로 법리상 행정대집행법에 위배된다.

이것이 두물머리 대안이다

하천법은 하천부지에서의 경작을 전면 금지하고 있지 않다. 시행규칙 18조 1항에 보면 국공유지에 공공기관,공공단체가 경작목적으로 점용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1항 3호에 보면 기존 점용자는 그와 상관없이 점용연장이 가능하다고도 쓰여있다. 국토청이 자꾸 ‘개인영농’은 금지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도 공공단체의 경작은 하천법으로도 허용되기 때문이다. 두물머리 농민들은 그 ‘개인영농’ 금지조항까지 존중하여 ‘영농법인’의 형태를 통해 개인영농이 아니라 공공기관을 통한 유기영농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것도 자연경관을 생각해서 아직 사용처가 정해지지 않은 땅으로 축소해서 유기농장, 시민텃밭, 귀농체험 등 공공성 있는 친환경생태농업공원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멋지지 않은가? 수려한 자연경관을 즐기며 시민들은 산책로를 따라 걷거나 흙길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켠에 마련된 시민텃밭에 와서 씨를 뿌리고 유기농장에 가서 친환경농사법도 배우고 작물도 따고 귀농의 꿈도 키우는 모습, 주말마다 텃밭을 찾는 시민들과 3년전부터 두물머리에서 농민들과 함께 농사짓고 싸워온 젊은 예술가, 활동가들이 어울려 노래하고 춤추고 도란도란 얘기하는 모습,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지 않나? 그런데 왜, 도대체 왜 국토부는 그런 멋진 두물머리 상생대안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걸까? 간단하다. 그들은 농사가 싫은 거다. 생태문화, 공동체 문화도 싫은 거다. 그들의 머리 속에서 국토는 잘게 나눠서 사유화하고 돈 되는 사업으로 개발해야 할 영토일 뿐이다.

농사가 그렇게 싫어?

두물머리처럼 한강변에 있는 공유지로 ‘노들섬’이 있다. 원래는 ‘하천부지’로 지정된 땅인데 오세훈 전 시장이 오페라 하우스 지으려고 잡종 ‘대지’로 용도변경 했는데 박원순 신임 시장이 올해부터 그곳에 ‘농업생태’공원을 조성해서 시민들에게 텃밭을 분양했다. 나 역시 용산 해방촌의 젊은이들과 함께 14평 텃밭을 일구고 있다. 그런데 노들섬 ‘농업공원’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KBS 뉴스에서는 270억 주고 산 “비싼 땅에 농사를 짓는 게 말이 되냐”는 논조의 기사를 방송했다. 그 비싼 땅에서 난 쌀은 몇 억을 받아야 하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많다. 두물머리의 농민들이 국토부 사람들의 말에서 느낀 ‘농사에 대한 증오’가 뭔지 알 것 같았다. 도대체 270억 짜리 땅에는 뭘 해야 그들의 마음이 흡족할까? 한 벌에 수천만 원 하는 고급 모피 전시장이라도 만들면, 주상복합 아파트라도 세우면 제 값 했다고 할까? 도시농업의 잠재적 가치는 두고서라도 당장에 돈 안 되는 짓은 하지 말라고 하면 공공 도서관은 왜 짓고 생태공원은 왜 만들고 산과 갯벌은 왜 남겨 두나? 죄다 돈 되는 사업부지로 조성해 버리지. 차라리, 농사는 구질구질해서 싫다든가, 정부가 포기한 농업을 왜 되살리려고 발버둥치냐는 게 속생각일 텐데, 두물머리 농꾼들 말마따나 “조상 중에 농사꾼에게 맞아 죽은 조상이 있는 걸까?” 작으나마 제 밭에 씨 뿌리고 가꾸면서 친환경 농업과 농민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도시인들이 늘어나는 게 두려운 걸 게다.

공공성은 행정청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두물머리의 농민들과 밭전위원회가 요구하는 건 단순하다. 그들이 제시한 두물머리 공유지의 활용방안과 국토부가 생각하는 방안 중 어떤 것이 공공의 이익과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안인지 토론해 보자는 거다. 그래서 서로 절충할 것은 절충하고 북돋울 것은 북돋으면서 두물머리 공유지의 공적 활용에 대한 민주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토부가 “국가 땅이니 나가라”는 말만 반복하는 걸 보면 어쩌면 자존심 때문에 저러는 게 아닌가 싶다. 주민의 반대에 막혀 4대강 공사가 좌초되는 선례를 남기면 ‘공공성’의 결정에 있어 행정청의 독점권이 위협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만금을 비롯한 수많은 공유지에 대한 행정대집행의 선례가 보여주듯이 지금의 행정부는 공유지의 주민들을 몰아내고는 그 땅을 잘게 나눠 부동산 업자와 개발업자에게 팔아버렸다. 4대강사업과 함께 만들어진 친수구역특별법이 두물머리라고 예외일리 없다. 지금은 생태공원 운운하지만 결국 그 공유지를 개발업자들의 사업부지로 넘길 게 뻔하다. 그들이 말하는 ‘공익’은 결국 ‘개발’이고 그들의 개발은 곧 사영화에 다름 아닌 걸 어디 한두 번 봤나? 국토부가 두물머리의 ‘공공성’을 독점하려는 건 그들의 4대강정책이 진정한 공공성을 배반하고 보편적 사영화를 향하기 때문이다. 국토부와 보수신문은 두물머리에 남은 농민들을 사익에 눈이 멀어 공익을 저버린 개인들로 묘사하지만 두물머리 농민들과 밭전위원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두물머리가 사익에 눈먼 개인들의 부동산 재산으로 전락하지 않고 생태문화와 친환경농업이 어우러진 공유지로 남는 것이다.

행정 ‘대’ 집행이 외설스럽게 폭로하는 것처럼 모든 ‘대리’는 ‘자기’의 대리이다. 8월 6일날 행정대집행 영장을 들고 올 국토개발부 직원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들은 누구를 대신해서 온 것이냐’고. 농민? 시행사? 개발업자? 그들이 특정세력에 지배된 국토부 말고 아무도 대신해서 온 게 아니듯이 3년 전부터 두물머리에서 농민들과 함께 농사짓고 함께 싸워온 밭전위원회 사람들 역시 자기 말고는 아무도 대리하지 않는다. 제발 ‘외부세력’이란 말 좀 하지 말라. 두물머리 농민들이 원래 그 땅의 소유주가 아니듯이 ‘밭전위원회’ 사람들도 소유권자를 대리해서 싸우는 외부세력이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두물머리의 농민들이 공유지의 공적인 활용 목적에 따라 두물머리 땅을 점용해 왔듯이 3년 동안 밭전위원회 사람들은 농민들의 뜻에 공감하여 함께 농사짓고 점용권 연장을 위해 애쓰는 것이다. 조금 늦게 두물머리에 들어왔을 뿐 밭전위원회 사람들과 이전 농민들 사이에는 어떤 법적, 논리적 차이도 없는 것이다. 누구든 마찬가지다. 누구든 두물머리에 와서 생태문화를 향유하고 친환경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자. 그것이 두물머리의 공유지를 가장 공유지답게 사용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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