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수유너머R)

Releases

  • 루쉰의 (1927)은 몇몇 서양학자들(맑스나 니체, 벤야민 등)이 애호했던 ‘단편(fragement)’ 내지 ‘아포리즘(aphorism)’ 형식의 글이다. 니체는 두 개의 산을 잇는 가장 짧은 길이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선이라고 했다. 그것은 문제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것이다. 모서리를 돌지 않고 말이다. 이런 글쓰기 형식은 누군가(직접적인 비판 대상 뿐만 아니라 독자까지)를 찌르는 데 특히 적합하다. 문체, 즉 ‘스타일’이라는 말이 ‘스틸로스(stylus)’, 즉 ‘단검’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포리즘은 ‘문체’라는 말의 본래적 의미에 가장 가까운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 white
    내가 본 최초의 영화는 영화관에서 본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적 나는 꽤나 시골에 살았던 모양이다. 예닐곱 살 무렵이 아니었나 싶은데, 어른들이 공터에 울타리를 만들고는 검은 휘장을 둘렀다. 그날 밤에 영화를 본다는 거였다. 무슨 식민지 시절 이야기도 아니고 70년대 후반이니 영화가 사람들에게 대단한 신문물은 아니었겠지만, 어떻든 나 같은 어린애나 일부 어른들에게는 그것에 필적하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 DollsHouse
    어둡고 답답한 현실이 길어질 때 사람들은 수난의 세월을 견딜 해석학적 장치를 만든다. 좋게 보자면 그것도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노력일 것이다(그것이 정말로 삶에 보탬이 되는지 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이 분야에서는 기독교가 특히 영리했는데, 그들은 수난을 심판 이후에 있을 보상과 연계시켰다.
  • a
    지난번에 나는 ‘3-18 사건’에 대한 루쉰의 글, 의 한 대목을 소개했다. 루쉰은 이 글 외에도 이 사건에 대해 몇 편의 글을 더 썼다. 이 글들은 모두 그가 이 사건에 대해 받은 충격을 말해 준다. ‘적수공권’, 맨 손으로 오직 나라를 위해 ‘청하는 말’ 하나를 가지고 간 인민들에게 ‘빗발 같은 총탄’을 퍼부은 정부. 그는 사건 당일에 쓴 글 말미에 “민국 이래 가장 암흑한 날”이라고 적었다.
  • 318demo
    칼럼을 쓰며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을 삼가고 공부나 좀 하자는 결심을 하던 터였다. 하지만 입 열고 펜 드는 것도 습관인지라 꼭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의 개편을 맞아 고정 칼럼진에 합류하기로 했으니, 마음으로는 매듭을 묶으면서도 행동으로는 그것을 다 풀어버리는 꼴이 되었다. 무슨 글을 쓸까. 그래도 하는 짓이 책 읽는 일이니, 뭔가를 써야 한다면 공부삼아서 내가 읽은 글들을 소개하는 게 어떨까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주제는 따로 있지만, 나는 요즘 머리가 막힐 때 종종 중국 작가 루쉰의 글들을 읽는다. 앞으로 이 지면을 빌어 그 글 몇 편을 소개해 볼까 한다. 최근의 세태에 대한 내 생각들 몇 가지와 묶어서 말이다.
  • 40-55--121
    지난 5월 17일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광주시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정신건강 현황을 발표한 바 있다. 직접적인 상해자나 고문 피해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인데 무려 43%가 “5-18을 생각하면 분노, 슬픔, 죄의식 등 매우 강한 정서를 느낀다”고 답했다. 5월만 되면 불안하고 답답하며 우울해지는 소위 ‘5월 증후군’이다. 그런데 따져보니 내가 그렇다.
  • 물래길을 가꾸는 두물머리의 지킴이들. 사진: 양평매일뉴스
    한 5년 싸우면 승리한다는 분명한 보장이 있는 경우 누군가는 기꺼이 싸우려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싸움이 한정없는 것이라고 느낄 경우에는 단 1년을 버티는 것도 쉽지가 않다. 2 천 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여러 투쟁들이 장기투쟁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짧게는 수백 일에서 수 년에 걸친 점거 농성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들 투쟁을 현재의 용례에 따라 ‘장기투쟁사업장’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내가 보기에 이들 투쟁에서 ‘장기’는 단지 ‘긴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차라리 ‘긴 투쟁’이라기보다 ‘무한정한 투쟁’의 형상을 띠고 있다.
  • 화악산 중턱에 걸려있는 플래카드. “우리 늙은이들을 죽일래!”
    2005년 밀양을 지나가는 송전탑 이야기가 나온 이래 밀양의 어르신들은 7년을 계속 싸워왔다. 하지만 올 초 이치우 어르신이 스스로의 몸에 불을 놓을 때까지 이 싸움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처음에 경찰은 자신의 존귀한 생명을 태워 만든 그 목소리조차 덮어버리려고 했다. 이치우 어르신이 겨울에 언 몸을 녹이려고 불을 지피다 몸에 옮겨 붙은 거라고 말이다. 사람을 어떻게 이리 모욕할 수가 있을까.
  • 이계삼 선생님
    우리는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학번은 같다. 기왕에 몇 번을 만난 터이기도 하고 경험이나 생각도 통하는 게 많아 서로 편한 친구로 지내도 좋은 사이인데, 또 그렇게 맘 편하게 지내기에는 이계삼 선생이나 나나 ‘과도하게’ 진지한 면이 있다. 특히 내게 그는 성직에 봉사하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만의 감성적인 문체로 교육 현장의 고통을 그려낼 때, 그리고 현재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이미
  • 주민집회에서 발언 중인 이계삼 선생님
    그가 나를 가장 먼저 데리고 간 곳은 129호 송전탑이 세워질 자리였다. 현재 새로 가동 중인 신고리 핵발전소 1, 2호기, 그리고 내년의 3호기, 그리고 계속 예정된 4~8호기까지, 거기서 나오는 전기를 전달하기 위해 밀양에는 모두 69개의 송전탑이 세워질 예정이다. 밀양이 한 눈에 보이는 화악산 등성이에 세워질 송전탑.
  • “우리는 모든 마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조국을 위해 죽은 자들에게 바친” 우스꽝스러운 기념비들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탈영자들을 위한 기념비들을 세우길 원한다. 탈영자들을 위한 기념비들은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대표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 모두는 전쟁을 저주하면서 그리고 탈영자의 행복을 부러워하면서 죽어갔기 때문이다. 저항은 탈영에서 태어난다.”
  • 고병권2
    소위 ‘통합진보당(통진당) 사태’가 일어나기 얼마 전 ‘경기동부연합’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 말이 생소했던 나는 수업에 함께 했던 대학원생들에게 ‘경기도 동쪽’이 어디를 가리키는 건지, 거기에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이 세력을 형성할 어떤 기반이 있는지를 물었다. 물음 자체가 내 무지에 대한 폭로였다. 어떻든 그들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나는 진보당 내부의 세력관계가 골치 아플 정도로 복잡하고, 과
  • 2011년 10월에 있었던 워크숍 "여성, 자활, 쉼터"
    사회복지법인 윙(w-ing.or.kr)은 탈성매매여성들의 자활공동체다. 1953년 ‘데레사모자원’이라는 이름으로 첫발을 내딛은 이래, 1960년대 ‘은성원’을 거쳐 지금의 ‘윙’까지 60년 가까이 여성복지 및 자활사업을 수행해왔다. 내 개인적으로 ‘윙’을 만난 건 2008년 겨울 수유너머에서 열린 ‘현장인문학’ 워크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였다. 수유너머가 구로파랑새공부방 그리고 노들야학과 관계를 맺기 시작할 즈음, 우리보
  • kbg
    두물머리밭전위원회. 정부의 ‘4대강개발’로 경작권을 박탈당한 두물머리(양수리) 농민들과 농사를 함께 지으며 싸우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을 처음 본 이들 중 상당수가 무심코 ‘밭전’을 ‘발전’으로 읽습니다.‘개발’이나 ‘성장’, ‘발전’ 같은 말들이 오랜 세월 우리 눈에 씌여 있어서 일 겁니다. 뭔가 눈에 씌이면 바로 보고도 잘못 읽게 됩니다. 제 생각에 ‘두물머리밭전위원회’라는 이름 속 ‘밭전’이라는
  • 5월 9일 저녁 7시, 여느 날처럼 대한문분향소에서는 문화제가 열렸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이제는 화가 나기보다 무섭다고. 마치 연쇄살인범에 쫓기듯 우리를 죽음이 쫓아오는 것만 같다고. 22번째,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생명의 줄을 놓아버렸다. 대한문 분향소에 가면 영정 안에 오려진 그를 볼 수 있다. 지난 5월 9일 대한문 분향소를 찾았다. 3년전 77일의 옥쇄파업을 벌였던 이들, 자신들을 사실상의 무자비하게 진압해오던 경찰특공대를 맞이하면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던 이들이,
  • kbg
    작년 5월 말쯤이었던 것 같다. 미국에 있던 나는 인터넷에서 한국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시위의 짧은 영상을 보았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학생시위와는 아주 달라보였다. 과거에 내가 봤던 선배나 동료들은 ‘무슨 무슨 전사’ 내지는 ‘무슨 무슨 선봉대’ 같은 티셔츠를 입고 머리와 팔에 붉은 띠를 묶고 거리로 나왔다.
  • <위클리 수유너머> 이번호는 지난호에 이어 ‘총파업(general strike)’ 특집입니다. 평소보다 하루 늦춰 업데이트를 했습니다. 업데이트 예정일인 5월 1일에 예정됐던 총파업 행진 풍경을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민주노총이 주관하는 수만 명이 참여한 노동절 기념행사가 있었습니다만 저희 편집진은 한국은행 앞에서 명동 을지로를 돌아 대한문, 상공회의소까지 행진을 했던 수백
  • 뒤늦게 하나의 슬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마 여기 있는 분들은 모두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지난 2년간 여기저기를 다니느라 최근에야 나는 이 이야기를 들었다. 2010년 10월, 장애인 아들을 둔 가난한 일용직 아버지가 아들에게 기초생활수급권과 장애아동수당을 주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야기 말이다.
  • 고병권2
    그는 학인이었습니다. 2009년 수유너머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1년간 맑스도 읽었고 스피노자도 읽었습니다. 벤야민도 읽었고, 베르크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양명도 읽었지요. 처음엔 회사일 때문에 지각과 결석이 다른 이들에 비해 잦았습니다. “회사원인 채로, 농부인 채로, 학생인 채로, 예술가인 채로 지식을 생산하고 지식을 흘러넘치게 하려는 연구실의 활동이라는 말에 무작정 덤볐는데 사실
  • 파레지아에 대한 푸코의 연구는 그 자신의 말을 빌자면 “전혀 예기치 않은” 물음의 발견으로 시작되었고, 계속 진행 중에 있었지만(푸코는 마지막 날 강연에서 “내년에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삶의 기술, 삶을 가꾸는 기술들을 역사적으로 추적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의 생애가 돌연 중단됨으로써 끝나고 말았다. 생애의 끝에서 그가 새로 시작하려 했던 연구는 내게 철학(철학적인 삶)과 정치(해방, 혁명, 코뮨)에 관한 많은 영감들을 떠오르게 했다. 그러나 그는 어떻든 말을 하려하다 멈추고는 강연을 끝내버렸다. “이런, 너무 늦은 시간이군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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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을 이해하는 아주 나쁜 방식 중 하나는 그것을 정치적 집권 및 제도화의 수준, 다시 말해서 집권에 얼마나 기여했느냐 혹은 결국 어떤 제도적 개편을 이루었느냐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운동을 정치적 집권 내지 제도화를 위한 수단으로 보거나, 아니면 아직 제도화되지 못한 미숙한 정치 행위로 보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정치학자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던져놓고 논쟁하기를 좋아한다.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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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가장 바깥에서 시작하라 지금이 이 운동의 겨울이라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지난 리포트에서 말한 것처럼 지상의 점거 장소는 사라졌다. 그러나 이 운동의 파장은 뱀처럼 여기저기로 흘러 다니고 때로는 두더지처럼 지상에 불쑥불쑥 머리를 내밀고 있다. 지금 곳곳에서 토론회와 워크숍이 열리고 있고 간헐적으로 기습적인 점거도 이루어지고 있다.
  • 뉴스보다는 삶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위클리 수유너머>를 창간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언론이라고 부르지 않고 웹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코뮨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 자리 잡은 글들이 우리 삶의 공동 자산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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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중순 경찰이 리버티스퀘어를 강제 철거한 이후 ‘점거 장소 없는 점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는 구호가 여전히 사람들 마음속에 있고 가상공간에서도 활발하지만 점거의 물리적 장소로서 ‘리버티 스퀘어’는 어떻든 사라졌다. 어딘가를 점거하지 않고도 점거 시위가 가능한가. 점거 장소가 없을 때 점거자들은 무엇이 되는가.
  • 2011년, <위클리 수유너머>의 세밑 인사 올립니다. 이맘때면 누구나 하는 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뭅니다. 여러분은 그 ‘다사다난’ 했던, 그 많던 일들 중 어떤 것을 기억하십니까. 올해의 마지막 편집자 말을 쓰면서 지난 1년간 우리가 다루었던 주제들을 쭉 훑어봤습니다. 부당 노동행위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맞서 싸웠던 홍대미화원 노동자 이야기를 시작으로, 등록금 때문에 힘들어하는 대학생, 커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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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랑 선생은 현재 뉴욕에서 내가 활동하는 <이본의 다락방> 멤버다. 뉴욕의 할렘에 위치한 <이본의 다락방>은 수유너머처럼 세미나와 생활을 함께 하는 작은 프로젝트 그룹이다. ‘미국 역사의 뒷골목’을 연재하고 있는 베이랑 선생과 ‘미국’과 ‘역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지난주 울진에 있는 원전 4호기의 증기발생기에서 무더기 균열이 발견되었습니다. 4천 개에 가까운 전열관에서 균열현상이 나타났습니다. 3호기의 증기발생기 역시 비슷한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기가 막힌 것인 원전을 관리 감독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태도입니다. 이들은 처음에 이번 사태를 관이 얇아진 현상, 즉 단순 마모인 것처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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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코티공원(Zuccotti Park)’과 ‘리버티스퀘어(Liberty Square)’는 야곱과 이스라엘처럼 동일한 것의 다른 이름이다. ‘주코티공원’은 맨하튼 남쪽 3100평방미터의 작은 공원이다. 소유는 사적인데 이용은 공적으로 하게 되어있는 묘한 공간이다. 뉴욕시가 개발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일부 면적을 공적 용도로 만들라고 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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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7일,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두 달 째 되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점거자들은 이 날을 기념해서 전국적 공동행동을 촉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틀 전 경찰이 리버티스퀘어를 철거하면서 상황은 크게 변화했다. 점거 시위가 또 하나의 중요한 변곡점을 맞은 것이다. 15일의 철거 이후, 언론에서도 이번 시위가 계속 이
  • 토론회에 참여한 패널들. 왼쪽부터 마이클 무어, 패트릭 브루너, 링코 센, 윌리엄 그레이더, 나오미 클레인
    지난 10일 저녁, 잡지 <더 네이션(The Nation)>과 대학 <뉴스쿨(The New School)>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가 있었다. 제목은 “모든 곳을 점거하라: 기업 권력에 맞서는 새로운 정치와 운동의 가능성(Occupy Everywhere: On the New Politics and Possibilities of the Movement Against Corporate Power)”. 사회는 <네이션>의 편집자(executive editor)인 리처드 김(Richard Kim)이 맡았고, 패널로는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
  • ‘우리가 점거하고 있다’(11월 2일)
    지난 10월 29일 밤 리버티스퀘어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여기 신문과 방송 몇 곳에서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점거자들의 꼬투리를 잡으려 했던 세력들이 호재를 만난 듯 흥분했다(묘하게도 나는 이 사건을 한국 뉴스를 통해서 먼저 접했다. 참고로 여기 언론은 한국의 신문과 방송보다는 훨씬 차분하게 소식을 전했다.).
  • 작년 초였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연구실 카페에 들렸는데 한 청년이 맑스의 <경제학철학초고>를 읽고 있더군요. 세미나 교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몰입하고 있는 표정이 예사롭지가 않아서 물었습니다. 재밌냐고. “맑스를 읽어보니 알겠어요. 우리, 확실히 소외된 것 같아요.”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 진지한 답변을 듣자마자 크게 웃고 말았습니다.
  • 뉴욕시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워싱턴 스퀘어로 행진을 했다. 여기서 최소한 두 개의 제너럴 어셈블리가 열렸다. (사진: Stephen O’Byrne)
    2011년 8월 2일, 나중에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가 될 초기 모임, 십여 명의 사람들이 보울링 그린(Bowling Green)에 둥글게 앉았다. 우리가 언젠가 존재하기를 바라는 그런 사회 운동을 위한 ‘프로세스 커미티(진행위원회, process committee)’라고 명명하고 거기에 스스로를 임명한 사람들이었다. 거기서 이들은 아주 중요한 결정에 대해 숙고했다. 우리의 꿈은 뉴욕 제너럴 어셈블리를 만드는 것 이었다:
  • 10월 25일 밤 경찰이 쏜 물체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스캇올슨(Scott Olsen)을 동료들이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새벽, 오클랜드 경찰은 ‘아큐파이 오클랜드(Occupy Oakland)’ 점거자들을 급습했다. 중무장한 폭동진압경찰이 출동해서 점거 장소를 철거한 것이다. 이후 시위대가 3천명 가까이 늘면서 하루 종일 산발적인 시위가 있었다. 경찰은 최루탄이나 전기 충격탄(shock grenade)을 사용했고 고무 총탄도 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타임스퀘어에 모인 사람들(10월 15일) (사진출처: AP)
    지난 15일 ‘지구행동의 날’에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퀘어에는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행진을 했다. 지난 5일 행진도 그 정도의 수가 모였는데 열흘이 지난 뒤 역시 비슷한 규모의 사람들이 모인 셈이다.
  • 이틀 연속 바람과 비가 거셌다.(10월 19일)
    이제 월스트리트 점거도 한 달이 지났다. 19일, 공원을 다시 찾았다. 이틀 연속 차가운 비가 세차게 내렸다. 주코티 공원에서 노숙은 허용되지만 텐트를 설치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며칠 전에는 간단한 치료가 이루어지는 의무(醫務) 공간만이라도 텐트를 치려고 했으나 경찰의 강력한 제지를 받았다.
  • 12-1
    맨하튼 남동쪽, 여기 사람들이 ‘로우어 이스트사이드’라고 부르는 곳에 ‘블루스타킹(Bluestockings)’이라는 아주 멋진 서점이 있다. 자신들의 소개에 따르면 자율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운영하는 독립 서점인데, 진보적인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 11-1
    이번 점거에서 자주 보이는 피켓 중 하나는 ‘직접 민주주의(Direct Democracy)’다. 미국의 대의정당들인 공화당과 민주당에 대해 사람들은 모두 월스트리트를 대의하는 ‘똑같은 놈들’이라고 말한다. 이들 정당들이 사실상 대중이 아닌 돈을 대의(대표, 표상, representation)한다는 점에서 ‘금권정치(plutocracy)’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기업의 이해를 대의한다는 점에서 ‘기업정치(coporatocracy)’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 자유의 종' 목거리를 만들어나눠주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이 일을 하는가(10월 7일 리버티플라자).
    도대체 이번 점거는 무엇을 얻어냈을 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점거가 1회성 시위가 아니라 지속의 형식을 취하면서 사람들은 이것이 언제까지 진행되는 것인지 묻기 시작했다. 점거를 지속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지점이 어디냐는 것이다. 또한 성공과 실패에 대한 계산법이 분명히 서야 나중에 이 점거를 평가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묘하게도 이런 의견은 ‘도대체 요구하는 게 뭐냐’는 주류 언론이나 정치권의 물음과도 통한다. 점거의 목표 내지 목적을 묻는 것이다.
  • 점거 지지 행진에 참여한 전국 간호사 연대
    이미 많은 이들이 하는 이야기지만 점거 현장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와 있다. 언론이나 정치인들은 도대체 뭘 요구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는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10월 5일 행진에서 간호사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미국 의료보험 제도 개혁은 미국의 최대 현안 중의 하나이다. 오바마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재정이 대폭 삭감되면서 의료보험 개혁은 동력을 많이 잃어버렸다.
  • 행진 전 공원에 모인 사람들
    10월 5일. 행진이 예고된 3시가 되자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점거가 시작된 지 19일 째. 쥬코티 공원은 처음으로 자신이 수용할 수 없는 인파를 만났다. 공식적으로 오늘 행진은 점거를 지지하는 대학생들과 노동조합이 함께 준비한 것이다. 사람들은 약간씩 들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대중이 스스로의 규모에 놀란 것이다. 평화재향군인회에서 나온 할아버지는 ‘뉴욕에서 이런 게 가능하다니 놀랍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자기 대학을 찾느라 분주히 움직였고, 동호회나 트윗에서 만들어진 모임들도 피켓을 만들어 회원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 제너럴 어셈블리 모습(사진 출처:vice.com)
    이번 점거가 지도자가 딱히 없는 자율적 시위라고 하지만, 자율적이라는 것이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아우토노미아, 즉 자율이란 방치와 무능력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 무엇보다 엄청난 능력을 요구하고 또 표현한다. 이번 시위에서 ‘규율 없는 무질서의 극치’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거꾸로 군대식 규율이야말로 무신경과 무관심, 무능력의 표현임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규율 아래서 사람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 브룩클린다리 행진(10월1일)-무려 700명이 연행되었답니다(사진출처: 뉴욕타임즈)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뒤 기자가 다 된 것 같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수첩과 사진기(전화기능이 정지된 스마트폰입니다만)를 챙겨서 월스트리트의 쥬코티(Zuccotti) 공원으로 갑니다. 그리고는 조그만 공원을 몇 번씩 돕니다.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 16일째인 오늘(10월 2일)도 어김없이 갔습니다. 어제 뉴욕의 허드슨 강가에서 열린 ‘원전반대집회’를 가느라(원전홍보대사 이명박 때문에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그 눈빛들이란... 제게 ‘기죽지 말고 원전세력 맞서 열심히 싸워야 한다’고 격려하는 할머니까지 있었지요. ㅠㅠ), 브룩클린 다리 행진에 함께 하지 못했는데 거기서 무려 700명 정도가 연행되었더군요. 여기 뉴욕에서 만난 친구 한 명도 연행된 것 같습니다. 뉴스 화면에 그 친구 얼굴이 슬쩍 비치더군요.
  • 월스트리트는 네로다. 그리고 로마는 지금 불타고 있다.
    4-USA OSA (3)
    9 28. . . 5 ( 2008 6 10 60 ), 500 ( 2008 4 ).
  • ‘이집트처럼 시위하라’는 구호를 몸에 붙인 할머니.
    9월 30일, 점거 14일째, 사람들이 급증했다. 매번 사람들은 늘지만 오늘은 어떤 도약이 느껴질 정도로 많았다. 5천정도? 어떻든 말 그대로 발 딛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금요일이기도 했고, 유명 밴드인 가 온다는 말이 인터넷에 돌았다. 이미 마이클 무어와 수전 서랜드같은 이들이 방문했던 터라, 그리고 많은 유명 인사들이 월스트리트 점거를 지지하고 있는 터라, 의 방문은 아주 그럴듯한 소문이었다.
  • ‘방사능의(radioactive) 내일보다 활력있는(active) 오늘이 낫다’
    10월 1일, 점거 15일째. 내가 찾아간 곳은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허드슨 강 부두 95호(Pier 95)였다. ‘핵 없는 미래(Nuclear-Free Future)’라는 이름의 ‘핵발전소 반대’ 집회장이었다. 일본인 친구 유코(Yuko)의 제안으로 찾아간 곳이었다(그는 일본의 ‘3-11 재앙’ 이후 나온 여러 글들을 일본어와 영어로 번역하고 있다. jfissures.org).
  • 마드리드 광장을 장기 점거한 채 ‘참된 민주주의(democracia real)’를 요구하고 있는 스페인 대중들
    뉴욕은 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뉴욕을 찾는다. 언뜻 차이와 뒤섞임의 다양체를 생각할 수 있으나 여기만큼 그런 구성이 어려운 곳도 드물 것 같다. 계급과 인종, 민족 등의 선이 구역별로 정확히 나뉘고, 다양한 사람들은 사실상 고립된 개인들 -개별화된 채 무척 닮아 있는 개인들-처럼 보일 때가 많다.
  • 그림  24일 공원점거 풍경. 마치 시골장터가 열린 느낌이다
    9월 17일, 시위는 그렇게 끝났겠거니 했다. 그런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이번 월스트리트 점거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변호사이자, 2000년대 초반 국가부도 사태 당시 아르헨티나 대중들의 봉기와 놀라운 실험을 소개한 책, Horizontalism(2006)의 편저자인 마리나 시터린(Marina Sitirin)이 친구들에게 보낸 메일이었다.
  • “이윤이 아니라 사람” (9월17일 월스트리트에 있는 국립원주민박물관 뉴욕지부 건물 앞
    세계가 동시에 들썩이고 있다. 세계의 주식시장이 동시에 곤두박질친다. 한 기업은 다른 기업에, 한 나라는 다른 나라에 운명을 완전히 의탁하고 있는데, 모두가 제 발등의 불을 보느라 남을 돌볼 여력이 없다. 3년 전 위기는 금융에서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정부의 재정 위기로 돌변했다. 해소된 줄 알았던 위기가 확대 전가된 셈이다.
  • 월스트리트 점거 투쟁을 알리는 웹 포스터
    8월 말 뉴욕의 어느 활동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9월 17일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는 시위가 기획되었고 그것을 준비하는 모임이 있는데 한 번 지켜보겠느냐고. 세계가 이 난리인데 미국, 특히 뉴욕의 활동가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게다가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니 당연히 그러겠노라고 했다. 9월 초 톰킨스 스퀘어(Tompkin’s Square) 공원에 갔다(사실 이 모임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고 그 일정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어 있었다). 참고로 맨하튼의 로우어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이 공원은 여러 집회가 열린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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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눈이 온화하고 손이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불이 일어날 때는 용광로에 쇳물 쏟아지듯 금속성의 목소리를 토해 내셨습니다. 며칠 전 하늘 길 올라가신 이소선 어머니 말입니다. 워낙 인연 깊은 분들이 소중한 기억을 여기저기 내놓고 있는 터라, 그저 밥 한 끼 먹은 인연이 전부인 저로서는 보탤 말이 많지 않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2년 전에 전태일 평전을 재출간하며 준비된 자리에 강연자로 초청받았습니다. 강연이 …

  • kbg
    모두 잘 아시겠지만 지난 주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한도를 늘리는 협상이 타결되었습니다. 협상 타결은 그다지 놀라운 게 아니었습니다. 국가 부도를 낼 수는 없으니까요. 정작 놀라운 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그 골인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협상이 그토록 지지부진하고 지저분할 수 있었느냐는 겁니다.
  • 그날, 내게 접견 시간 몇 분 더 넣어주었다고 힘주어 말하던 교도관, 무슨 노래방 주인도 아니고 참 재밌었지. 그런 말을 하고는 경례까지 했지. 이런 걸 그로테스크하다고 해야 하나?
  • kbg
    로 잘 알려진 라스 폰 트리에 감독. 그가 지난 18일, 칸 영화제에서 자신을 나치라고 말해 행사장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일이 있었습니다. 영화제 사무국은 당장 그에게 행사장 출입금지 조치를 취했습니다. 트리에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말한 내용을 순서대로 짚어보면 ‘나치 커밍아웃’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미묘한 대목이 느껴집니다.
  • kbg
    미국 온 지 한 달 쯤 되던 날, 온풍기 표시등이 고장 나서 온도 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잘 안 되는 영어로 간신히 서비스 센터에 연락했는데, ‘무슨 문제냐’는 내 물음에 직원은 ‘other countries, the rest of the world’에서 온 사람들이 섭씨와 화씨를 착각해서 기기를 함부로 눌러 대서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 kbg
    여러분 오랜만에 ‘편집자의 말’에 복귀한 고추장입니다. 어떻게들 지내고 계세요? 인사말을 뱉고 나니 ‘5분 대기조’라도 되는 듯 맘 속 어디선가‘애틋함’이 신속히도 튀어나오는 군요. ㅎㅎ 아는 분 알고 모르는 분 모르는 사실, 지금 제가 미국에 있습니다. 3월에 와서 한 달하고 보름 지났습니다.
  • kbg
    지난 겨우내 라는 작은 책을 집필했습니다. 글은 자기 변신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글을 쓰면서 제게 일어난 변화에 스스로 놀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내 생각이 이렇게 변했나?’ 책을 쓰는 내내 싱거운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 kbg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이 민주화의 불길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런데 상당수 언론들이 이번 봉기를 뒤늦은 민주화 투쟁처럼 묘사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80년대 말에 성취한 것을 이제야 그들이 이루는 것처럼 말이지요. 어떤 언론은 이번 시위를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있었던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 kbg
    이번호 표제로 올린 글은 김민수님의 입니다. 지난호의 ‘신선한 커피’에 이어 이번호 ‘극한의 감정이입’도 진한 욕설로 끝내셨군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이 욕설들이 신선한 것은 물론이고 읽는 사람을 꽤나 울컥하게 합니다.
  • kbg
    스피노자의 에는 ‘정서적 모방(affectuum imitatio)’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한 아기가 울면 옆에 있던 아기도 괜히 따라 우는 걸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웃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유를 알지도 못한 채 단지 누군가 눈물을 흘리는 것만을 보았을 뿐인데 그런 감정이 일어납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우리는 단지 어떤 신체가 우리와 유사하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도 그 신체와 유사한 정서를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 kbg
    위클리 수유너머가 드디어 50호를 맞았습니다. 독자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위클리 수유너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속으로 이런 다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딱 100호만 내자!’ 그때 생각엔 제법 큰 숫자라고 생각해서 ‘100번은 해야 뭔가 해본 거지’라고 스스로의 마음을 잡았는데, 벌써 그 다짐의 반을 돌았습니다. 시즌3을 시작하며, 우리가 거기에 이른 것이 아니라 거기서 시작하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나무는 하나의 테를 두르고 뱀은 허물을 벗습니다. 새로 두른 테 바깥에, 새로 돋은 살 위에, 위클리 수유너머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겠습니다...
  • 닭고기를 끊은 지 9년이 되어갑니다. 어떤 일을 결심하고 군말 없이 그대로 행한, 제 삶에서 아주 드문 일 중 하나입니다. ‘내게 이런 힘이 있었다니’ 하고 나름 대견하게 생각하는 중입니다(^^). 그 계기는 사실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당시 수유너머 회원 모두가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던 ‘케포이필리아’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서 리프킨의 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 고기의 대량 생산과 유통, 소비 시스템이 갖는 각종 폐해가 적나라하게 적혀 있기도 했습니다만, 제 결심을 추동한 것은 그런 사회과학적 분석이 아니라, 우리가 동물들에게 지옥 갈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 kbg
    작년 7월 미국의 에 ‘1급비밀 미국(Top Secret America)’이라는 기획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대테러, 국토안보, 정보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정부기관이 1271곳에 이른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안보 영역에도 시장(?)이 형성되어 거의 2천 개에 이르는 민간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군요. ‘탑 씨크릿’으로 불리는 1급 비밀을 다루는 사람만 85만 여명. 미국이 그야말로 거대한 정보 제국이 되었답니다.
  • 위클리 수유너머의 1년이 지나갑니다. 달력처럼 1월에 시작했으니 한 해의 마지막 장에 1년을 똑같이 마감합니다(참 내년 1월 29일 돌잔치를 연답니다. 많이들 오세요. *^^*). 지난 호들을 쭉 훑어보니 염치없게도(?) 스스로 뿌듯해집니다. 뭐, 잘하고 싶은 것,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여전히 많지만, 우리 스스로 삶을 고쳐가듯 위클리도 계속 고쳐 가면 되는 거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상의 코뮨을 가꾸어가듯이, 잘나든 못나든 위클리도 하나의 코뮨으로서 웹상에서 조금씩 삶의 숲을 이루어갔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 위클리 수유너머의 1년이 지나갑니다. 달력처럼 1월에 시작했으니 한 해의 마지막 장에 1년을 똑같이 마감합니다(참 내년 1월 29일 돌잔치를 연답니다. 많이들 오세요. *^^*). 지난 호들을 쭉 훑어보니 염치없게도(?) 스스로 뿌듯해집니다. 뭐, 잘하고 싶은 것,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여전히 많지만, 우리 스스로 삶을 고쳐가듯 위클리도 계속 고쳐 가면 되는 거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 (2)
    . . 70 . . ...
  • Student-protests-London-007
    지난 11월 10일 런던에서 그동안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무려 5만에 이르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의 연합 정부가 내놓은 대학등록금 인상과 재정지원 감축 방안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아일랜드와 그리스가 무너진 이후 이제는 스페인과 영국 차례가 아니냐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처럼, 2년 전 세계를 큰 위기에 빠뜨렸던 금융위기는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 namin
    “그들이 겪은 수난은 다른 집단들이 겪은 수난과는 다르다.” 한나 아렌트(H. Arendt)가 에서 ‘난민’에 대해 한 말이다. 그들은 재산을 잃은 사람과도, 직업을 잃은 사람과도, 지위를 잃은 사람과도, 건강을 잃은 사람과도 다르다. 도대체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그들의 수난은 그렇게 특별한가. 아렌트는 그들이 ‘권리를 가질 권리’를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앞서 나열한 사람들은 단지 어떤 권리를 잃었지만 난민은 ‘권리를 가질 권리’ 자체를 잃었다는 것이다.
  • 이 글을 쓰는 오늘 현재,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한 지 22일입니다. 제 자신은 ‘상식’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현대차가 이들 노동자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새삼 ‘상식’을 확인해두고 싶어집니다. 2007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파견법에 따르면 파견 기간 2년이 넘은 노동자의 경우 원청업체는 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이 노동자들의 사용자는 자신들이 아니라 도급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파견법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거죠...
  • 3년 전 쯤 어느 단체로부터 제 책 중 하나의 저작권을 공개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책을 사보기 어려운 오지 청소년들에게 독서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는데요. 저작권 전체는 아니고 전자책의 전송에 대한 권리를 개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지라고 하지만 요즘 웬만해서는 인터넷 서점 배송이 다 이루어지고, 책은 읽고 싶은데 정말 생계 때문에 사보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있겠냐고, 그런 청소년들이 있다면 차라리 책을 사서 보내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 1970년 11월 13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전이군요. 전태일이라는 이름의 ‘어느 청년 노동자’가 일 년 내내 동토였던 서울 한 복판에서 제 몸으로 뜨거운 불을 피워낸 것 말입니다. 지난 40년간의 겨울공화국에서도 불은 꺼질 줄 모르며 정신의 계주를 이어왔습니다. 불을 이어받은 정신들은 각자의 공화국에서 늙어갔지만 그 불길은 처음 그대로, 청년 나이 그대로 도무지 늙지를 않습니다.
  • '한미사' 공장의 전태일과 동료들
    지금 이 자리에 설 것을 부탁받았을 때 난 여기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태일은 아직 내가 헤아릴 수 있는 존재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자리에 서고는 말았지만, 사양과 부탁의 회신이 한 번씩 더 오간 후, 무엇을 말할지 생각도 못했으면서, 나는 강연 제목을 알려달라는 말에 ‘헤아릴 수 없는 이름, 전태일’이라고 답해버렸다...
  • 대체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경찰들은 눈에 불을 켠 채 길거리를 감시하고 방송 프로그램들은 온통 G20 특집입니다. 텔레비전, 신문, 길거리 가릴 것 없이 ‘줄 똑바로 서라’는 명령형 광고들이 국민을 향해 남발되고 있습니다. 7-80년대 ‘국민학교’ 다니던 때가 떠오릅니다. 외부에서 손님 온다고 운동장 풀 뽑고, 줄맞춰 ‘앞으로 나란히’를 얼마나 반복했었는지.
  • 아주 유명한 이야기지만 플라톤의 국가에서 시인은 추방된 자, 즉 난민입니다. 이데아에 대한 회화나 조각의 모방도 탐탁지 않게 보는 그가, 도무지 묘사 대상을 알 수가 없는 시에 대해 가졌을 불만은 짐작이 갑니다. ‘시인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 게다가 걸핏하면 ‘격정과 광기에 휩싸이고’. 진리와 이성이 지배하는 철인의 세계에서 시인의 거짓과 광기는 난민 생활을 해야겠지요. 그런데 플라톤도 한때는 대단한 문학청년이었다고 합니다...
  • Rio_Grande_Immigrants
    존 쿳시가 소설 제목으로 따오면서 회자된 카바피(C.P. Cavafy, 1863-1933)의 시. 나는 그 일부를 진은영 시인의 글에서 처음 접했다. 에서 그가 인용한 시를 읽었을 때 꽤 강한 충격을 받았다. 일반적 해석에 따르면 “이 시는 야만인과 같은 타자를 만들어냄으로써만 존속할 수 있었던 로마제국의 논리를 풍자하고 있다...
  • 국제철학콜레쥬(College International de la Philosophie).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이름일 겁니다. 자크 데리다 등 프랑스 몇몇 철학자들이 주도해서 만든 철학학교입니다. 이름만큼이나 생소한 것은 그 운영방식입니다. 재정적으로는 정부의 지원을 받습니다만 운영은 완전히 독립되어 있습니다.
  • 예전 밤하늘 초롱초롱한 별빛을 보면, 바다처럼 일렁이는 하늘과 등대처럼 반짝이는 별을 그린 고호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벤야민을 생각합니다. 벤야민이 보았을 밤하늘을 제멋대로 생각해봅니다. 저는 유물론(역사)과 혁명(구원)에 대한 벤야민이 생각이 점성술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그 자신도 어디선가 점성술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네요)...
  • 소위 잘 나가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몸값’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들이 소속된 곳에서 이적할 때 그 소유자(기획사나 구단)가 다른 소유자에게 상품값으로 받는 돈입니다. 소유니 상품이니 너무 심한 말 같지만, 스포츠신문을 떠들어보면 언제라도 ‘이적 시장에 방출했다’거나 “단기간 임대했다”는 식의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 rp31
    21세기의 첫 십년 동안 네그리(A. Negri)와 하트(M. Hardt)는 통상 ‘제국 3부작’이라고 불리는 3권의 책, (2000), (2004), (2009)를 펴냈다. 이들의 작업, 특히 새로운 밀레니엄의 첫 해에 출간된 은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또 그만큼이나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설령 ‘운’에 불과할지라도, 어떤 ‘때’가 닥쳤을 때 그것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처럼 낚아채는 책들이 있는데, 도 그런 책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 우울증 진료 인원과 진료비 추이(2005-2009)
    ‘모든 나쁜 것은 신자유주의 탓’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더 나아가 모든 병이 사회적인 것이고 시대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이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에서 생겨난 것인지, 혈통이나 유전의 문제인지, 자연환경의 문제인지, 사회문화적 특성 탓인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탓인지, 그 유래를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 재작년 여름 일본 홋카이도의 도야코에서 G8회담이 열렸습니다. ‘G8에 맞서는 포럼(Counter G8 Forum)’에 참가하기 위해 당시 도쿄를 방문했는데요. 그 포럼은 여러 나라의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운동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G8’으로 상징되는 전지구적 통치체제에 반대를 표명했습니다만, 지구화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는 대안적 운동, 대안적 삶의 지구화를 모색하는 장이었지요.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연구자들이 서로 지혜를 모으는 지적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이 실험을 위해 G8 정상회담 반대의 형식을 취한 것이지요...
  • 여러분도 한 번 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1급 장애인, 2급 장애인, … 사실 저희 아버지도 2급 뇌병변 장애인입니다. 등급 판정 받을 때 어떻게든 한 등급이라도 높았으면 하고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삶을 살게 되느냐가 이 등급 판정에 달려있으니까요. 이번주 의 표제에 들어간 ‘생사의 저울’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일상을 가능케 하는 온갖 서비스들이 국민연금공단이 지정한 전문가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

  • Agamben
    정치란 지오르지오 아감벤(G. Agamben)에게 있어 기본적으로 삶 내지 생명과 관계된 것이다. 미셸 푸코 이래로 근대정치를 생명의 정치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아감벤의 시각에서 보자면 우리는 고대로부터 서구 정치 일반이 생명의 정치 내지 삶의 정치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서구에서 정치란 기본적으로 권력과 삶이 마주치는 장소에서 정의되어왔기 때문이다.
  • 1
    지난 몇 달 동안 끔찍한 아동 성범죄가 계속 보도되면서 범죄자에 대한 대중의 증오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어린 여학생을 성폭행한 후 무참히 살해한다든지 겨우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을 학교 안까지 들어가 납치 성폭행을 한다든지, 연일 방송되는 엽기적 범죄 행각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세상이 도대체 어찌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 제4회 수유너머 국제워크숍이 열립니다. 국제워크숍은 수유너머가 주목하는 외국 학자를 초대해서 거의 일주일 간 완전 녹초가 될 정도로 함께 공부하는 프로그램입니다. 1회 때는 사카이 다카시(酒井隆) 선생을 초대해서, 그의 (그린비출판사에서 출간예정입니다)과 (산눈, 2007)을 중심으로 세미나를 진행했지요. 촛불집회의 여진이 남아 있을 때였는데 횡단보도 시위를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숙소까지 모셔가곤 했는데 세미나가 끝나면 완전히 방전된 사람처럼 푹 주저앉으셨어요. 하지만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강의 준비를 하고 서울 골목길을 함께 누볐습니다...
  • 사회 불온 세력! 대학 다닐 때까지 뉴스에서 참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뭐 지금도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온순과 순수를 혈안이 돼서 추구하는 사회. 불온 세력, 불순 분자와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 이번 주 는 여기에 딴지를 걸고 싶습니다. 불온과 불순이 없는 사회는 ‘함께 함’도 불가능합니다. 즉 '불온'이 없으면 '함께'도 없습니다.
  • 지난 주 < 위클리 수유너머> 개편이 이루어졌습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학술면 필자들께 감사의 말 전합니다. 디자인과 편집은 아직 정리되지 않아서 조금 엉성하고 부족한 면이 있을 겁니다. 이역만리에서 작업과 공부를 병행하고 계시는 저희 막강 디자이너, 매주 밤을 지새우는 웹팀을 믿고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개편 축하메시지와 독자가 만드는 < 위클리 수유너머> 코너는 일주일 정도 더 받겠습니다. 이미 응모하신 분들, 경쟁률이 낮아 경품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흐뭇해하셨겠지만, 경품에는 역시 ‘흐뭇’보다는 ‘스릴’이죠...
  • 2010년 7월 7일, 드디어 < 위클리 수유너머>의 시즌 2가 시작되었습니다. 내용도 디자인도 모두 바뀌었습니다. 지금까지 큰 주제 없이 나열된 메뉴들이 시사, 문화, 일상, 학술 범주로 묶여서 깔끔하게 정리되었지요. 학술이 있었냐구요? 없었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하지만 이제 새로 생겼습니다. 무슨 연구자 집단이 만드는 잡지에 학술면 하나 없냐는 말 많이 들었습니다. ‘아, 일상이 다 공부죠, 하하’, ‘공부하다 남은 시간에 만들다보니 아무래도 여가정신이...’, ‘동시대반시대 코너 찾아보면 간혹 학술적 내용도 있어요, 흠흠’... 이런 식으로 더 버티기는 힘들었습니다...
  • 지금 살고 있는 집은 3층입니다. 세 가구가 한 층씩 세 들어 살고 있습니다. 계단을 돌고 돌면 제가 사는 집이고 반 계단을 더 오르면 옥상입니다. 처음 집을 보러왔을 때 옥상 전망에 감탄을 하고는 계약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옥상으로 가는 계단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회색 보따리와 검정 우산 하나가 있습니다. 재작년 겨울, 영하의 칼바람이 일주일 정도 계속되던 때였습니다. 아내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옥상 쪽에서 인기척이 난다고. 밤에 현관문을 열쇠로 따려할 때 그 반 계단 위에 누가 있는 것 같아 아주 무섭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