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발터 벤야민, 그가 보았을 밤하늘

- 고병권(수유너머R)

예전 밤하늘 초롱초롱한 별빛을 보면, 바다처럼 일렁이는 하늘과 등대처럼 반짝이는 별을 그린 고호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벤야민을 생각합니다. 벤야민이 보았을 밤하늘을 제멋대로 생각해봅니다. 저는 유물론(역사)과 혁명(구원)에 대한 벤야민의 생각이 점성술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그 자신도 어디선가 점성술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네요).

우리가 보는 하나의 별자리는 모두 다른 시간대에 속하는 개개의 별빛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떤 것은 백 년 전의 것이고 어떤 것은 만 년 전의 것이고, 어떤 것은 억 년이 넘는 것이랍니다. 비동시대적인 것들이 함께 동시대의 별자리를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밤하늘은 역사주의자의 시각에서 보자면 대단한 시대착오입니다.

하지만 점성술사는 시간대가 서로 다른 과거의 별빛들을 동시에 보면서 미래를 읽습니다. 희미하게 빛나는 별빛 하나를 찾아내면서 그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완전히 새롭게 그리기도 합니다. 그에게 하늘은 대지의 사건을 확정하고 있는 하나의 텍스트지만, 매번 어떻게 별자리를 그리느냐에 따라 대지의 예정된 사건은 다른 것으로 읽힙니다. 미래를 확정한 원텍스트가 있기에 미래의 예언이 금지된 유대의 학자들은 그 확정된 과거의 원텍스트를 매번 고쳐 읽는 식으로 새로운 미래를 찾았다고 합니다. 벤야민은 그처럼 과거로 도약해서 미래를 구원합니다. 희미한 과거의 별빛 하나를 ‘지금-이 순간’ 붙잡는 일이 우리의 대지에 놓인 경계석들을 모두 뒤바꿔놓을지 모르겠습니다.

혁명은 역사의 대합실에서 예정된 기차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랍니다. 맑스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혁명은 대지에서 불쑥 머리를 내민 두더지처럼 온다고. 바울의 말을 빌자면 간밤의 도둑처럼 올 것이고, 니체의 말을 빌자면 조용한 비둘기 걸음으로 올 겁니다. 그들은 예정된 시간에 오지 않습니다. 그들이 오는 시간이 예정된 시간일 뿐입니다. 벤야민은 혁명이 역사의 철로를 달려가는 기관차가 아니라, 차라리 그 기관차의 브레이크라고 했습니다. 철로에서 이탈하는 순간, 결을 거슬러 솔질을 하는 순간, 역사의 발작이 일어나는 그 순간, 당신은 신이, 메시아가, 혁명이 미소짓는 것을 본 것입니다. 오늘도 시대착오적 밤하늘이 정겹게 빛납니다.

이번호 <위클리수유너머>는 벤야민의 주요한 텍스트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박승일), <폭력비판을 위하여>(김강기명), <기술복제시대의 예술>(고헌), <일방통행로>(에르메스), <파사젠베르크>(김홍중) 등을 배경으로 그의 다양한 개념들을 소개합니다. 좋은 글을 보내주신 필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 하나를 환기해두고자 합니다. 지난 주 신문에 보도된 바 있습니다만 ‘G20의 성공적 개최’를 빌미로 일본의 활동가인 ‘마츠모토 하지메’씨가 인천공항에서 입국 거부되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즐거운 실천적 생존전략서 <<가난뱅이의 역습>>의 저자이기도 하지요. 서울시가 주최한 행사에 초대받은 그를 공항에서 내친 이유가 ‘G20의 성공적 개최’라고 하니, G20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작 서로 교류하고 아이디어를 나눠야 하는 것은 지금의 세계를 디자인한 권력자들이 아니라 대안적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클리수유너머>는 이번 마츠모토 하지메씨의 공항 억류와 입국 거부 사태에 공분을 표합니다. 또 11월 초에 ‘G20 특집’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독자여러분들의 많은 아이디어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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