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하네다 공항에서의 씁쓸한 기억과 서울 G20

- 고병권(수유너머R)

재작년 여름 일본 홋카이도의 도야코에서 G8회담이 열렸습니다. ‘G8에 맞서는 포럼(Counter G8 Forum)’에 참가하기 위해 당시 도쿄를 방문했는데요. 그 포럼은 여러 나라의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운동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G8’으로 상징되는 전지구적 통치체제에 반대를 표명했습니다만, 지구화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는 대안적 운동, 대안적 삶의 지구화를 모색하는 장이었지요.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연구자들이 서로 지혜를 모으는 지적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이 실험을 위해 G8 정상회담 반대의 형식을 취한 것이지요.

그런데 도쿄에 도착해서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입국심사를 받는 중에 제가 포럼의 발표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소란이 일었습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모니터에 무슨 표시가 번쩍 나타난 것 같기도 하고, 어떻든 주변이 어수선해졌고, 공항 직원이 뭐라고 외치자 경찰이 저를 바로 연행하더군요.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그 포럼에서 발표할 글의 제목은 ‘대학과 지식인, 그리고 연구자 코뮨’이었습니다. 아카데믹 캐피탈리즘(academic capitalism)으로 상징되는 현재 대학의 위기와 지식인 상황을 개괄하고, 대학 바깥의 ‘연구자 코뮨’이 갖는 가능성을 수유너머 사례를 들어 발표할 예정이었습니다. 해당 포럼 외에 다른 대학에서 발표를 하나 더 하기로 돼 있었는데, 그것은 ‘안전’과 ‘불안’을 키워드로 해서 신자유주의 이후 정치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논문 발표를 위해 공식적으로 일본 대학을 방문한 손님이었습니다.

제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든, 어떤 글을 발표하든, 공식 초대를 받은 사람에게 일본 당국이 취한 조치는 참으로 무례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발표 논문들의 줄거리를, 도무지 이해할 가망이 없어 보이는 경찰을 상대로 하나씩 설명해야 했습니다. 수유너머를 설명할 때가 압권이었지요. 몇 번을 말해도 수유너머의 존재를 납득하지 못해, 정말 그 경찰을 초대해서 안내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취조실에서 10시간 정도 조사를 받았습니다. 추방과 입국(상륙)의 저울추가 여러 번 오락가락하더니 2주 안에 일본을 떠나는 조건으로 일시 체류를 허락받았습니다.

그 때의 경험은 제게 지구적 안보 시스템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해주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한국 정부가 ‘세계화’를 모토로 내걸 때만 해도, 국가와 자본은 지구화를 향해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입장을 가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반대로 ‘진보세력’은 개방에 반대하는 수구적 세력처럼 보였지요. 그런데 세계가 국경 없는 공동체가 될 것이라는 당시 세계화론자들의 기대가 표명된 지 십년이 채 못 되어 국경은 훨씬 강화되었습니다. 얼굴 형상과 지문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알몸 투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주자를 감시 통제하는 절차도 아주 꼼꼼해졌습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룬 미국와 멕시코 사이에 놓인 하이테크 장벽은 현 상황에 대한 하나의 상징으로 보입니다. 불법이민자를 막겠다며 일천 킬로미터가 넘는 국경에 새로 이중의 장벽을 설치하고 인공위성까지 동원해서 감시를 합니다.

지구화가 불가피할수록, 다시 말해 돈이든 상품이든 사람이든 국경을 넘어야 할 일이 많아질수록 국경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엄격해지고 있습니다. 문은 열어야겠고 아무나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되겠고. 그러니 문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강화되는 것이겠죠. 지구화와 국경강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셈입니다. 이주자는 한편으로는 지구화의 상징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화 과정에서 가장 박해받는 사람들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하네다 공항에서 조사를 받을 때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조사’ 자체였습니다. 도대체 발표문 딸랑 2개 들고 일본에 간 저 같은 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10시간씩이나 잡아 조사를 했을까. 권력이 강하게 나올 때는 권력이 약할 때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게 공포를 주려했던 권력은 그 자신이 공포에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불과 90년대만 해도 그렇게 자랑스럽게 ‘세계화’, ‘지구화’를 외치던 사람들이 왜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G8에 이어 재작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이제는 G20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올해 11월 서울에서 5차 정상회의가 개최된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불청객들에 대한 청소가 시작됐습니다. G20의 손님들 눈에 보여서는 안 될 사람들, ‘노숙인’들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추방이 강화되었습니다. 초대받은 자와 추방되는 자의 형상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사전에 추방되고 있는 사람들은 사후에 추방될 우리 모두의 형상일 겁니다. 입국이 거부되거나 출국을 강요받는 사람들, 국내에 머무르더라도 보이지 않게 유령처럼 살 것을 강요받는 사람들. 이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하네다 공항의 나쁜 기억은 제게 그리 오래 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 같은 이를 붙잡고 있던 권력이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이는 제가 심적으로 강건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중에 포럼에서 만난 많은 외국 친구들 덕분입니다. 그들의 생각과 지혜, 실험과 실천을 나눠가지면서 힘이 생겼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제부터는 필사적으로 국경을 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글로벌한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것은 권력도 자본도 아닙니다. 지금 이대로는 살기 힘든 사람들, 무엇보다 대안적 삶의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투쟁의 동료가 필요한 사람들, 바로 우리들에게는 ‘국경을 넘는 것’이 대안입니다. 정말로 ‘인터내셔널’을 구축해야 할 때입니다.

서울 G20, 그들은 초대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친구들이 들어올 수 있을 만큼 넓은 문이 열렸습니다. 아니, 이미 친구들은 들어와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번호 <전선인터뷰> 미셸 위원장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의 농성장에 한 번 찾아가 보세요. 국경은 벌써 열려 있고 친구들은 이미 여기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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