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내 몸의 가격

- 고병권(수유너머R)

소위 잘 나가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몸값’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들이 소속된 곳에서 이적할 때 그 소유자(기획사나 구단)가 다른 소유자에게 상품값으로 받는 돈입니다. 소유니 상품이니 너무 심한 말 같지만, 스포츠신문을 떠들어보면 언제라도 ‘이적 시장에 방출했다’거나 “단기간 임대했다”는 식의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노동력이 상품으로 판매되는 시대에 뭐 특별한 이야기냐 싶지만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한 사람의 특정한 기능을 당사자와 사용 계약을 맺고 돈을 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으니까요. ‘몸값’은 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가 받는 ‘연봉’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몸을 가진 당사자가 아니라, 그 상품을 소유한 자들끼리의 주고받는 돈이지요. 재화의 특정한 기능이 아니라 재화 전체가 통째로 매력을 불러일으키고 욕망을 자극하는 상품. 문제는 이 재화가 이젠 인간 자체라는 겁니다. 그의 어떤 점을 사용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를 소유하고 교환하는 것. 그의 어떤 기능을 사용 계약 맺는 게 아니라 ‘그’를 통째로 거래하는 일입니다.

살아 있는 신체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으로 채무를 갚고 다른 재화와 교환하고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내는 게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피에르 클로소프스키(P. Klosowski)의 충격적인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살아있는 화폐(monnaie vivante)’들을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먹고 자고 걷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화폐나 상품 말입니다.

시장에서 인격을 통째로 거래하는 것, 물건을 만들고 밭을 갈고 가사를 관리하고 주인을 위무하고, 한마디로 외모와 성격, 인간성, 재능 등을 통째로 고려해서 재화 가치를 매기는 것.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오늘날 아주 세련된 형태로 부활했나 봅니다. 하기는 연예인들이 기획사들과 맺은 계약을 ‘현대판 노비문서’라고도 하니, 노예제와 시장자본주의의 독특한 결합이라는 말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 노예와 같은 처지를 동경하니까요. 온갖 자격증을 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단체에서의 활동 이력을 붙이고, 화술을 익히고, 얼굴성형 기본에 성격교정까지 받는다고 합니다. 회사에 취업해서 상품을 만들기 전에, 실업상태인 내가 나를 먼저 상품으로 가공합니다. <<다가오는 봉기>>의 저자들이 말한 것처럼(위클리수유너머 33호 참조), 이제는 “우리의 노동력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파는 일이 가능해졌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우리가 사회적 코드들에 얼마나 섬세한 지배력을 발휘하는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떤 재능이 있는지”에 따라 다른 급여를 받게 되었습니다.

인적자본, 인적자원, 인간개발 등의 말이 언제부턴가 말 그대로 ‘만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뚱이를 자본으로, 자원으로, 상품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합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생산물입니다.” 철학적으로 아주 심오해 보이는 이 문장이 사회와 기업, 대학 등이 우리를 못살게 다그치며 책임 추궁하듯 내뱉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번호 만세씨의 글에서 적절히 지적된 것처럼 ‘자기경영’ 담론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기업가로서, 스스로의 상품인 자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제 그냥 ‘충실하고 성실한 인간’으로는 안 됩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이 되라!’ 특정한 현실 기능이 아니라 당신이 ‘잠재성의 인간’임을 보여주어라! 온통 다 좋은 말들뿐입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간이 되는 것, 풍부한 잠재성의 소유자가 되는 것. 도대체 어디가 문제인 걸까요.

이번호에 실린 만세씨와 이수영씨의 글은 이 점에서 아주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이들은 자기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전혀 없는 자기계발이 어떻게 자기 파괴에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주인의 시중을 들어야 하는 노예의 자기계발과, 자기 배려와 자기 사랑의 결과물인 자기계발은 전혀 다른 것이 된다는 거지요. 자기계발의 온갖 소음들(이번호에 은유님이 깔끔하게 정리해놓았습니다)에서 떨어져 나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폭풍을 불러오는 말은 시장의 악다구니가 아니라 조용한 비둘기걸음으로 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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