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국제워크숍의 기억과 세상에 열린 학교

- 고병권(수유너머R)

제4회 수유너머 국제워크숍이 열립니다. 국제워크숍은 수유너머가 주목하는 외국 학자를 초대해서 거의 일주일 간 완전 녹초가 될 정도로 함께 공부하는 프로그램입니다. 1회 때는 사카이 다카시(酒井隆) 선생을 초대해서, 그의 <<自由論>>(그린비출판사에서 출간예정입니다)과 <<폭력의 철학>>(산눈, 2007)을 중심으로 세미나를 진행했지요. 촛불집회의 여진이 남아 있을 때였는데 횡단보도 시위를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숙소까지 모셔가곤 했는데 세미나가 끝나면 완전히 방전된 사람처럼 푹 주저앉으셨어요. 하지만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강의 준비를 하고 서울 골목길을 함께 누볐습니다.

2회 때는 문학비평가이자 철학자인 우카이 사토시(鵜飼哲) 선생을 모셨습니다. 데리다의 제자였던 선생은 ‘해체와 정치’라는 주제로 시작해서, 국가와 주권, 공동체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다루어주었습니다. 일본에서도 대학원생 몇몇이 와서 한국에서 열린 이 워크숍에 참여했습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국정원 직원이 공항에서 따라붙어 우카이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는 겁니다. 함께 밥 먹고 산책하며 ‘환대’와 ‘주권너머’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실감나게 다가올 수가 없었습니다. 우카이 선생의 몇몇 글은 <<흔적>>, <<반일과 동아시아>>,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 등에 실려 있습니다만, 이번에 단행본으로 <<주권의 너머에서>>(그린비, 2010)가 출간되었습니다(위클리 지난호 <고봉준의 언더라인>을 참고하세요).

3회 때는 인류학자 데이빗 그레이버(David Graeber)를 초대했습니다. 현재 런던대학 사회인류학과 교수이고 작년에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그린비, 2009)이 번역되어 나왔지요. (대항)세계화운동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동시에 그 운동을 인류학적 시각에서 연구하는 흥미로운 학자입니다. 도쿄에서 ‘G8반대시위’에 참여할 때 코믹한 가면을 썼던 기억도 나고, 서울이 촛불시위로 난리 나자 급히 서울로 들어와 시위를 유심히 관찰하던 모습도 생각납니다. 7월 중순 촛불집회가 규모만 컸지 사실상 사그라질 때였는데, 그 날 시위대를 순종적 순례자로 만들어 YTN 방송국으로 이끌고 간 지도부를 향해 ‘fucking leadership’이고 분을 이기지 못했던 것도 떠오릅니다. 국제워크숍 기간에 ‘윙(W-ing)’에 갔을 때는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지요. “권력자들은 우리에게 절망을 유포하는 기계를 통해서 지배합니다. 따라서 희망을 품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정치적 행동입니다. 세계 곳곳을 다녀보니 이제 절망을 유포하는 기계가 삐걱대며 고장 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대학 언저리에서 참 오래 지냈고 여러 워크숍을 지켜봤지만, 수유너머 국제워크숍의 경험은 아주 색다른 것이었습니다. 강의실, 세미나실, 식당, 좋은 산책로, 이 모든 게 제가 다닌 대학에도 있었는데, 왜 수유너머 국제워크숍에서 느낀 배움의 기억이 없을까요. 아마도 거기엔 삶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선생과 함께하는 삶 말입니다. 국제워크숍에서는 선생에게 강의를 들었다기보다는 함께 일주일을 살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의 앎을 구축했던 것은 공동의 삶이었지요.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심지어 시위를 함께 하는 속에서, 세미나와 강의는 단순한 지식 전달 과정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말과 글에 대한 고갯짓은 그의 삶에 대한 고갯짓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책을 몇 권 쓴 이후로 강연장에서 ‘저자 싸인’이라는 민망하기 짝이 없는 요구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간혹 적는 문구가 ‘세상이라는 학교에서 함께 배우는 **님께’라는 것인데요. 세상이 학교임을 강조하고 싶어서 나름 생각한 문구입니다. 학교니 교육이니 하는 말이 나올 때 종종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세상의 어느 공간에 울타리를 두르고 ‘학교’라는 이름을 달아둔 것이 아주 못마땅합니다. 사람들이 ‘학교’ 바깥에서 좀처럼 배우려하지 않고, ‘학교’에서의 지식 전달을 모두 ‘공부’라고 우기는 사태가 그런 풍습과 무관치 않아 보여서 입니다. 이제 학교의 이미지, ‘여가’라는 어원을 가진, 삶으로부터의 단절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폐쇄적 공간으로서 ‘학교’를 깨부수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의 먼지와 소음에서 격리된 공간, 국적과 학력, 재산을 암묵적 조건으로 내건 공간이 아니라, 먹고 사는 일이 험난하고, 기쁨과 슬픔, 부끄러움과 울분이 교차하는 모든 곳에서,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없는 그 모든 곳에서 배움을 얻고 선생을 만나고 싶습니다. 수유너머의 국제워크숍이 그런 학교로, 거기서 만나는 분들이 그런 선생들로써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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