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지식은 사유 재산인가

- 고병권(수유너머R)

3년 전 쯤 어느 단체로부터 제 책 중 하나의 저작권을 공개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책을 사보기 어려운 오지 청소년들에게 독서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는데요. 저작권 전체는 아니고 전자책의 전송에 대한 권리를 개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지라고 하지만 요즘 웬만해서는 인터넷 서점 배송이 다 이루어지고, 책은 읽고 싶은데 정말 생계 때문에 사보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있겠냐고, 그런 청소년들이 있다면 차라리 책을 사서 보내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체의 제안을 받아들여 해당책의 전자책 저작권을 공개했습니다. 그것은 오지의 가난한 청소년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지식을 사적 소유물로, 사유재산으로 봐야하는가에 대해 그 단체가 중요한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제 지식은 언제부터 제 것이었을까요. 저는 그것을 도대체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요. 책에 담아서 분명 내다 팔았는데도 제 머리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 지식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책을 쓰는 과정에서 새로 생겨난 지식은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느낌과 깨달음 -그런 것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은 여전히 제게 머물면서 누군가에게 퍼져나갑니다. 저 역시 그렇게 누군가로부터 지식을 빼앗지 않고도 가져올 수 있었겠지요. 공유한다는 것, 나눈다는 것이 바로 소유하지 않고서도 무언가를 갖는 방식이고, 보유한 채로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지적 재산권. 사유재산으로서 지식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말인데요. 과연 지식과 관련해서 우리는 소유를 보호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나눔과 소통을 보호해야 하는 것일까요.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지식소통권이 아니라 지식소유권인 것 같습니다. 지식이 사유재산인 사회에서는 지식 소통도 상품 유통이 되겠지요. 하지만 상품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맑스주의자들의 익숙한 표현법을 빌자면, 생산양식과 소유양식이 충돌하는 것 같습니다. 한 지식 상품의 생산이 얼마만큼의 네트워크에 기반해서 생산된 것인지는 이제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영화 <소셜네트워크>의 등장인물들처럼 우리는 누가 생산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것들은 쉽게 복제와 배포, 변형될 수 있습니다. 재가공과 재생산이 너무 쉽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지식에 대한 재산권을 행사하기 위해 복제와 배포, 변형의 기술들을 통제해야 할까요. 본래 지식이라는 것이 공동의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인데다 최근의 기술들이 더욱 그 공동의 나눔을 쉽게 만들어주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것의 독점과 사유재산권 행사를 법적으로 강제해야 할까요. 오병일 선생님의 주장을 빌자면, 우리는 저작권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저작권을 넘어서야’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변변한 직업 없이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저 같은 이에게 책은 중요 생계 수단 중 하나가 분명합니다. 혹시 전자책에서 나오는 수익이 아주 많았다면 솔직히 제가 해당책의 전자책 저작권을 공개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문제는 작가의 생계가 엮여 있다는 건데요. 글쎄요.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사회에서 기본소득을 모든 이에게 일정하게 보전해준다면, 지식과 정보, 문화 관련 재화는 모두가 그냥 누릴 수 있도록 상품에서 제외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만든 책이나 음악, 영화를 사람들이 많이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너무 기쁜 일이니까요. 그 걸로 치부까지 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이런 제 개인적 바람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걸 압니다. 대신 이번호에 실린 오병일 선생님의 글을 참고해보세요. 다양한 쟁점들이 한 번 시도해 볼만한 대안들과 함께 제시되어 있습니다. 가령 저작권 보호기간을 대폭 단축시키고 최소한 비영리적 저작물의 이용은 공정 이용으로 인정하는 것, 창작자의 재생산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 공공정책이나 대안 사업 모델을 개발하는 것 말입니다.

공동의 것을 사적인 것으로 귀속시키려는 자본의 집요한 시도에 맞서, 공동의 것을 더 많이 나누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만한 능력을 점차 갖추어가고 있습니다. 자본은 많은 지식을 상품으로 코드화하고 사적 독점이 가능한 형태로 만들지만, 그런 지식을 생산하는 우리의 활동 자체, 우리의 인지적 능력과 창의성, 대담함까지 코드화할 수는 없습니다. 자본은 그런 우리 능력을 제발 자본을 위해서 쓰라고, 돈 버는 데 쓰라고 유혹하고 명령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많은 나눔과 연대, 이번호 조정환 선생님의 표현을 빌면, 더 많은 사랑을 위해서 그것을 써야하지 않을까요.

응답 3개

  1. 1324말하길

    기득권은 지식을 독점 하여 그 체제를 더 공고히 하려 하고, 그래서 만약 저작권을 사라지게 한다면 그 기득권은 소위 자본력으로 모든 컨텐츠를 잠식하는 사태도 그려지네요. 참 어려운 문제같아요. 결국은 모든 지식은 만인의 것이다라는 이상으로 나아간다면 저작권을 넘어서고 새로운 대안이 제시되어야 할텐데..과연 그 자본의 논리와 거기에 상처받는 개인은 무엇으로 넘어설 수 있을지..

  2. 고추장말하길

    결국에 권력 문제겠지만 충분히 현실성이 있다고 봅니다. 지난 번 서강대에서 기본소득 관련 컨퍼런스도 있었다고 하던데 가보질 못해서 요즘 어떤 논의들이 진행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도 형편없는 급여지만 김대중 정부 때부터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고 있지요. 이 수준을 크게 업그레이드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번 뉴스에서 네덜란드 이야기를 들었는데, 거기는 실업자가 받는 기본수당이 연 2천만원을 넘더군요. 유연안정성(flexisecurity)을 도입했다는데, 기업이 유연성을 갖는 대신 노동자는 삶의 안전망을 보장받는 거죠. 뭐, 어찌보면 더 무서운 제도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수준에서 기본수당 2천만원이면 저작권 개방할 사람 많지 않을까요.^^

  3. muybien말하길

    “사회에서 기본소득을 모든 이에게 일정하게 보전해준다면, 지식과 정보, 문화 관련 재화는 모두가 그냥 누릴 수 있도록 상품에서 제외시켰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대목에 눈길이 갑니다. ‘기본소득’ 개념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가능할 지 자뭇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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