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회색 보따리와 검정 우산

- 고병권(수유너머R)

지금 살고 있는 집은 3층입니다. 세 가구가 한 층씩 세 들어 살고 있습니다. 계단을 돌고 돌면 제가 사는 집이고 반 계단을 더 오르면 옥상입니다. 처음 집을 보러왔을 때 옥상 전망에 감탄을 하고는 계약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옥상으로 가는 계단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회색 보따리와 검정 우산 하나가 있습니다.

재작년 겨울, 영하의 칼바람이 일주일 정도 계속되던 때였습니다. 아내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옥상 쪽에서 인기척이 난다고. 밤에 현관문을 열쇠로 따려할 때 그 반 계단 위에 누가 있는 것 같아 아주 무섭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올라가봤더니 정말 담요가 펼쳐져 있고, 옥상 문을 여니 양말 한 짝과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잠을 자고 간 것입니다. 옥상을 쓸고 담요를 개어 한쪽에 두었습니다. 다음 날 밤늦게 귀가 하면서 인기척을 느껴 계단 쪽을 살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눈에 띄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옥상 어디론가 몸을 숨긴 것 같은데 아주 추운 날이었기에 모르는 척 그냥 방에 들어갔습니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아내 말에 일단 날씨가 풀리면 대처하자고 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매번 저희 가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추운 날에 사람을 내보내는 것도 맘이 내키지 않아섭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어떻든 ‘그’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번 옥상을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먹다버린 빵부스러기, 벗어던진 양말, 여기저기 던져진 담배꽁초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한 밤중에도, 새벽녘에도 그를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멀리서 내가 오는 걸 보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추위를 피해 들어와 선잠을 자면서 촉각을 곤두세웠는지도 모르지요.

이 낯선 이웃, 흔적만 남기는 손님과의 기묘한 동거를 끝 낼 사건이 결국 터지고 말았습니다. 1층에 화재가 났습니다. 누군가 우유 넣는 구멍으로 종이에 불을 붙여 넣었답니다. 그래서 1층 집 신발장이 다 타버렸죠. 다행히 집에 사람이 있어 불을 껐답니다. 이 사건으로 아무나 출입이 가능하던 건물 입구에 열쇠가 채워졌습니다. 누가 왜 불을 질렀는지는 모르지만, 자연스레 혐의는 옥상 아래 잠자리를 만들었던 ‘그’에게 돌아갔지요. 사실 그가 범인이라는 단서는 전혀 없었습니다. 마치 남대문 화재 때 언론에서 엉뚱하게도 서울역 주변 홈리스를 범인으로 몰고 간 것처럼 ‘그’가 범인으로 몰린 것이지요.

홈리스, 즉 집을 갖지 못한 자는 집에 관한한 항상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됩니다. 사실 우리 주거를 진정 위협하는 자가 ‘집을 갖지 못한 자’인지, ‘집의 소유자’인지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부동산 문제를 생각해보면 홈리스가 우리 주거를 위협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지요. 하지만 어떻든 저희 집에서 ‘그’의 출입은 봉쇄되었습니다. 그리고 사건 이후 저는 열쇠를 항상 휴대해야 했고, 열쇠를 깜박 놓고 귀가한 경우엔 아내를 전화로 깨워야 했습니다. 집을 지키기 위해서 집을 감옥처럼 만드는 것, 마치 ‘9•11’ 이후 미국을 보는 것 같네요. 하지만 저 역시 미국의 ‘홈랜드시큐리티(Homeland Security)’, 즉 국토안전부의 논리에 굴복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없이 그러고 있습니다. 보따리와 우산은 잘 싸서 문 앞에 몇 번 내놓았지만 ‘그’는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물건을 함부로 처리하는 것도 온당치 않은 듯 하여 지금 저희 현관문 위의 계단에 모셔두었습니다. 지금도 옥상에 올라가려면 어김없이 그 ‘흔적’을 보곤 합니다. 그 ‘흔적’은 비가시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홈리스의 실상을 고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집’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몰아낸 어떤 존재의 ‘자국’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의 ‘부재’가 우리에게 뚜렷이 ‘존재’한다는 표시로서 보따리와 우산이 거기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호를 준비하면서 보따리와 우산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너무 시적인 언어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들은 ‘내’ 안에 ‘그’의 ‘빈자리’가 있음을, 우리 ‘집’에 그가 머물던 ‘자리’가 여전히 ‘비어있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 ‘빈자리’는 저희 집과 제 안에 이방인의 자리가 좋든 싫든 존재하며, 또 존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 손님으로 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그 자리를 ‘허락’해주었지요. 우리는 다만 손님으로 먼저 와서 그 자리를 허락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다음 손님을 맞는 거지요. 이런 말을 하면 아내도 화들짝 놀랠 거고 저 역시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문을 열어놓고 누구나 오라고 말하는 건 여전히 불가능합니다. 다만 이젠 협상을 해 볼 생각입니다. 혹시 누군가 다시 계단 위에 짐을 푼다면 그를 꼭 만나겠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 어떤 상황인지를 물어보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물의 문을 먼저 따 놓아야겠지만요. 저만 사는 집이 아니니 감당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적어도 날씨가 춥다면 자물쇠를 슬쩍 따놓을 생각입니다. ‘그’가 다시 올지 모르니까요.

글을 적다보니 어렸을 적 대보름날이 생각나네요. 쥐불놀이를 하다 배고파지면 우린 어느 집이고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장독대에 놓여 있는 오곡밥과 나물을 실컷 먹었지요. 집주인이 누군가 먹으라고 거기 둔 것입니다. 열쇠를 채우지 않는 곳, 하지만 도둑맞을 일도 별로 없는 곳, 거기에는 ‘환대’가 있었습니다. 추운 날 문을 슬쩍 열어놓겠다는 저의 소심하기 그지없는 결심이 ‘환대 없는 사회’, ‘타자로부터 재산을 지켜야 하는 사회’, 아니 ‘재산을 불리기 위해 타자를 몰아낸 사회’를 증언하는 것 같아 참 부끄럽습니다.

이번호에 소개하는 < 홈리스 행동>은 저처럼 홈리스를 향해 소심한 결심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홈리스와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세계 개조의 희망이 있다고, 세계 개조는 거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 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 고병권(수유너머R)

응답 4개

  1. 유령을 환대할 것말하길

    이 글을 읽으니 ‘영이의 비닐우산’이라는 그림책이 떠오릅니다.
    그나저나 고추장님 참 존경스럽습니다. 착한 사람..
    공부를 많이 하면 ‘두려움’도 떨칠 수 있나요?

  2.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기픈옹달, 김종엽. 김종엽 said: 회색 보따리와 검정 우산 « Weekly 수유너머 – http://ow.ly/262yK […]

  3. 매이엄마말하길

    저도 그런 손님을 접했다면 그냥 무서워서 안전을 강화하는 쪽에 한표! 하고 말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이 아주 많은 미묘한 문제이군요. 재미있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4. […] 회색 보따리와 검정 우산 _ 고병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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