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20 – 불복종

- 고병권(수유너머R)

1. 시민들은 시민들을 위해 싸운다

17일 시위에 나선 뉴욕시민들. 경찰추산으로 3만명이 넘었다.(CNN캡쳐화면, 출처:occupywallst.org)

11월 17일,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두 달 째 되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점거자들은 이 날을 기념해서 전국적 공동행동을 촉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틀 전 경찰이 리버티스퀘어를 철거하면서 상황은 크게 변화했다. 점거 시위가 또 하나의 중요한 변곡점을 맞은 것이다. 15일의 철거 이후, 언론에서도 이번 시위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17일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많은 글들이 올라왔다.

17일 아침, 경찰이 이미 맨하튼 남쪽에 새까맣게 깔렸다. 70년대 반전시위 이후 이렇게 많은 경찰이 동원된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출근 시간도 전인 이른 아침부터 ‘월스트리트를 셧다운시키자’는 구호를 내걸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뉴욕증권거래소 근처에 모였다. 증권거래소 업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를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경찰이 출동해서 사람들을 밀어내고 연행했다. 오전이 되자 곳곳에서 대학생들이 결합했고 맨하튼 남부에 있는 대학 <뉴스쿨>에서는 학생들이 대학의 일부 공간을 점거하기도 했다.

뉴스쿨 대학생들이 점거를 알리며 건물외벽에 텐트를 내건 모습. “이미 도래한 사상을 밀어낼 수는 없다.”(17일, 사진:occupywallst.org)

오전 상황을 지켜본 잡지 <내이션>의 존 니콜스(John Nichols)는 <데모크라시나우(DemocracyNow)>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코티공원이라는 공간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정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건 중요했지요.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사람들이 이 운동에 대해 원하는 게 뭔지를 보여줍니다. 그건 이런 겁니다. ‘좋아, 네가 이 공원에서 우리가 머무는 걸 허락하지 않겠다고? 그래, 잘 됐네. 이제 우리는 어디든 갈 거야.’ 지금 우리는 그걸 보고 있습니다. 일 년 전만 해도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2011년 11월, 이렇게 춥고 비가 오는 날에 수천수만의 젊은이들을 뉴욕시에서, 그리고 전국의 도시들에서 볼 거라고 말이죠. 뭔가 변했습니다. 우리 언론인들도 이것을 주의 깊게 보기 위해서 밖으로 나와야합니다.”

뉴욕시청 뒷편. 수천 명의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17일 저녁).

오후 5시, 도시는 이미 깜깜해졌지만 사람들은 더욱 타올랐다. 나는 집회가 예정된 ‘폴리스퀘어(Foley Square)’로 가보았다. 경찰은 도로 곳곳을 차단했지만 우회 도로를 통해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인도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은 문제 삼지 않았다. 폴리스퀘어 근처에 이르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브룩클린 다리를 향해 행진하려고 했다. 브룩클린 다리는 이번 점거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점거 시위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브룩클린으로 점거를 확장한다는 의미로 그 다리를 향해 행진했다. 경찰은 교통 통제까지 해주면서 행진을 허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다리에서 무려 700명을 연행해버렸다. 하지만 대규모 연행은 시위대를 위축시키기는커녕 더 많은 시민들을 시위대에 가담하게 만들었다.

17일의 행진이 다시 브룩클린 다리로 향한 것은 월스트리트 점거가 두 달이 되었음을 알림과 동시에 이틀 전에 있었던 리버티스퀘어의 철거에 맞서 새로운 점거 운동이 시작된다는 것을 선언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날 행진에 참여한 노동조합은 브룩클린 다리를 전혀 다른 맥락에서 상징적으로 받아들였다. 브룩클린 다리는 미국의 낙후된 사회적 인프라를 상징한다. 오래전에 건설되어 이곳저곳 수리를 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이 다리를 향해 행진함으로써, 정부의 재정이 사회적 인프라에 투자되어야 하며 그것을 통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했다.)

한 퇴역군인이 든 피켓. “나는 이 나라를 위해 싸웠다. 그러나 이제는 시민들을 위해 싸운다.”(17일)

행진하는 대열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여러 곳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This is what democracy looks like)!’를 외치고, 다른 쪽에서는 ‘우리는 99%다(We are the 99%)!’를 외쳤다.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이들 못지않게 나이든 시민들과 이민자들이 많이 참여했다(항의 시위가 민중 일반으로 이미 깊이 퍼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날 시민들의 구성은 지난 리버티스퀘어에서 본 것보다도 훨씬 다양했다. 그동안 점거를 주도한 사람들이 젊은이들이고 인종적으로 백인이 많다는 지적이 있어왔지만, 나는 이날 저녁 정말 다양한 연령,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구성을 가진 뉴요커들이 그대로 나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뉴욕시당국은 월스트리트 점거를 ‘일부 젊은이들의 소요’ 정도로 치부했는지 모르지만, 이 젊은이들의 배후가 만만치 않다는 게 이날 저녁 분명히 드러났다. 경찰 추산만으로도 이날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3만 명이 넘었다. 시민들은 리버티스퀘어를 점거했던 게 단지 몇 명의 젊은이가 ‘뉴욕시민들’의 분신이었다는 것, 리버티스퀘어는 단지 월스트리트의 한 구역이 아니라 뉴욕 전역이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노동조합이나 시민운동단체의 소속 없이 혼자서 혹은 둘이서 조용히 혼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사람도 많았다. 내가 본 어느 노부부는 지하철역 입구에서, 리버티스퀘어를 철거한 뉴욕시와 경찰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한동안 서 있었다. 경찰의 폭력보다 훨씬 강한 힘을, 그 노부부를 보며 느꼈다. 그들 곁에는 한 나이든 참전 군인이 서 있었다. 그의 피켓이 눈에 띄었다. “나는 이 나라를 위해 싸웠다. 이제는 시민들을 위해 싸운다(I Fought For This Country. Now I Fought For THE PEOPLE).”

경찰은 공원에서 시위대를 추방했지만 그것은 결국 시위를 공원 바깥으로 끌어낸 꼴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리버티스퀘어에 대한 경찰의 공격은 시민들의 어떤 인식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철거가 ‘99%’ 시민들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되면서 ‘정부’와 ‘시민’ 사이에 인식적 균열이 생기고 있다. ‘내 나라’, ‘내 정부’, ‘우리 경찰’이 자꾸 ‘그들의 나라’, ‘그들의 정부’, ‘그들의 경찰’로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날 시위는 경찰의 공격에 맞서 ‘시민들이 시민을 위해 싸우겠다’고 일어선, 매우 의미 있는 시위라고 할 수 있다.

2. 우리는 배교자들이다

이 중대한 변화의 상징적 몸짓을 브룩클린 다리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목격했다. 내 앞에는 서비스노조인 SEIU(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 뉴욕시민운동 조직인 ‘뉴욕연대(UnitedNY)’, 그리고 뉴욕소수자들의 다양한 쟁점들을 가지고 싸우는 조직인 ‘목소리-뉴욕(Vocal-NY)’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99%’라는 문구가 적힌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서로 손을 맞잡고 ‘우리는 99%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는 구호를 외치더니 점점 대열 한쪽부터 도로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앞에는 경찰이 새까맣게 깔려 있고 대열 앞에는 ‘도로로 내려오면 연행하겠다’는 경찰의 경고방송과 전광판이 번쩍이고 있었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로에 내려오면 연행하겠다는 내용의 전광판이 켜졌다

경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손을 잡고 한 명씩 도로로 내려가고 있다

젊은 대학생도 있었고 중년 아저씨도 있었고 나이든 할머니도 있었다. 백인도 있었고 흑인도 있었고 라틴계, 아시아계 사람들도 있었다. 경찰을 바로 앞에 두고서 그들은 서로 손을 굳게 잡고는 한 명씩 한 명씩 계속해서 도로로 걸어 내려갔다. 정말 뭉클한 장면이었다. 그것을 보던 많은 이들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Show me what democracy looks like’, ‘This is what democracy looks like’. 말 그대로였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이고, 이것이 바로 ‘불복종(disobedience)’이었다.

경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도로에 내려 선 시민들의 행위는 당장에 불법, 다시 말해 범법행위로 처벌될 것이다(가령 도로교통법 위반). 하지만 불복종은 엄밀히 말해 범법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법의 ‘근거 와해’이다. ‘법의 힘’은 ‘권위(authority)’로부터 온 것인데[아감벤은 법 이전에, 법에 힘을 주는 원천으로서의 ‘권위’를 ‘의 힘’이라고 부른 바 있다], 법이 의존하는 ‘권위’란 사실상 ‘복종’과 동의어이다. 권위가 그 자체로 힘의 원천일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거기에 ‘복종’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따라서 불복종은 특정한 법규범을 어기는 행위가 아니라 법의 근거인 ‘권위=복종’ 자체를 와해시키는 행위이다. 이렇게 되면 법은 아무런 권위 없이 존재하는 강제 명령에 불과하게 된다. 경찰이 갖는 물리적 힘은 유지되겠지만 그것의 ‘공적’ 성격 자체는 박탈되는 것이다. 그 순간 공권력은 사적인 폭력, 다시 말해 조직폭력배가 행사하는 강제력과 크게 다를 바 없어진다. 공권력은 사적 폭력 내지 특수 폭력이 되고, 더 나아가면 정부 자체가 그 공적 지위를 부인당한다. 이 경우 불복종에 나선 시민들은 강제력에 의해 제압될 수는 있어도 범죄자로서 처벌될 수는 없다. 그들은 패배할 수는 있어도 처벌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들이 손을 잡고 경찰 앞에서 보란 듯이 발걸음을 도로에 내딛을 때, 그것은 사실상 엄청난 메시지를 정부에 보내는 것이다. 즉각적으로는 이번 리버티스퀘어에 대해 경찰이 자행한 공격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다시 말해 그것을 공무집행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 이며,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99%’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1%’를 위한 정책을 계속해나갈 경우 정부의 공적 성격, 다시 말해 그것이 자신들의 정부임을 부인하겠다는 메시지이다.

“우리는 배교자들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철학을 가진 민중이다. 우리, 당신과 나같은 민중들이 매일 역사의 진로를 바꾼다.”

이처럼 불복종은 당연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자주 잊어버리는 사실, ‘시민이 정부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시민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행동이다. 현재의 정부, 즉 현재의 거번먼트는 대중들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거번먼트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일깨워주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시민들을 배신하는 순간, 시민들은 언제든 정부를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배교자들이다.” 뉴욕시립대 학생 하나가 그렇게 적은 피켓을 들고서 내 곁을 지나갔다. 얼마나 당연한 진리인가, 그리고 얼마나 무서운 진리인가.

결국 시민들이 도로에 내려오자 경찰은 그들을 에워싸고는 한 사람씩 손을 묶기 시작했다. 연행된 시민들은 경찰버스에 올라타면서도 계속해서 구호를 외쳤다. ‘우리는 99%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인도에 서 있던 시민들도 손을 흔들며 함께 구호를 외쳤고 일부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뉴욕시청 근처가 이 소리로 완전히 뒤덮여 버렸다. 그렇게 17일 밤이 끝났다.

응답 2개

  1. 고추장말하길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셨군요. 공감합니다. 다만 저는 그것이 ‘후기자본주의 뉴욕’만의 문제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시위가 대중현상을 이루면(다시 말해 개체가 아니라 대중이 되면) 하나의 흐름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공안이란 이 ‘흐름'(그러니까 흐름의 속도와 방향 등)을 홈패인 공간을 따라 통제하는 것이겠죠. 공안이란 크게 보아 사람의 흐름, 차량의 흐름, 화폐의 흐름, 정보의 흐름 등 사회의 여러 흐름을 통제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자본주의 발전 양상에 따라 다른 형식을 취하겠지만요. 어떻든 뉴욕에서 ‘인도를 벗어나지마라’ ‘계속 걸어라’는 말, 참 많이하죠? ^^ 흐름이 지정된 홈을 따라 흐르기를, 그것도 일정한 속도로… 재밌는 지적입니다.

  2. 현명호말하길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시위현장에 있던 경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시위행렬을 따라다니던 경찰들이 시종일관 하던 말은, “인도를 벗어나지 마라 (stay on the side walk),” “계속 걸어라 (keep on moving),” 이랬던 것 같은데, 마치 차의 흐름을 통제하는 교통경찰들 같았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직접개입하는 것도 이 두 가지 말을 어겼을 경우였구요. (즉, 시위행렬이 차도로 내려선 경우, 그리고 움직임없이 일정공간에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경우) 교통통제와 시민통제가 경찰이 담당하는 업무라고 본다면, 뉴욕과 같이 소위 말하는 후기자본주의 도시에서는 경찰에 있어서 교통통제와 시민통제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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