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밀양은 패배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패배하지 말아야 한다

- 고병권(수유너머R)

1. 밀양 화악산 중턱

2005년 밀양을 지나가는 송전탑 이야기가 나온 이래 밀양의 어르신들은 7년을 계속 싸워왔다. 하지만 올 초 이치우 어르신이 스스로의 몸에 불을 놓을 때까지 이 싸움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처음에 경찰은 자신의 존귀한 생명을 태워 만든 그 목소리조차 덮어버리려고 했다. 이치우 어르신이 겨울에 언 몸을 녹이려고 불을 지피다 몸에 옮겨 붙은 거라고 말이다. 사람을 어떻게 이리 모욕할 수가 있을까.

화악산 중턱에 걸려있는 플래카드. “우리 늙은이들을 죽일래!”

화악산 중턱에 걸려있는 플래카드. “우리 늙은이들을 죽일래!”

모욕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번 싸움의 저 깊은 곳에는 ‘삶을 모욕하는 이들’에 대한 본능적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밀양의 전쟁>(2012)에는 벌목을 저지하기 위해 나무를 껴안은 할머니들을 개 부르듯 했다는 용역들 이야기가 나온다. 수행자들의 공간인 수녀원에는 새벽부터 들이닥쳐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중생을 살려달라”는 절박한 외침에 응한 스님에게는 성폭력을 행하고, “수십 수백 년을 살아온 이 땅에 그대로 살게 내버려 두라”는 늙은 주민들의 외침을 보상금에 환장한 사람들로 몰아가는 이들. 따지고 보면 서울로 가는 전기를 만들어 전하기 위해, 여기 시골에 원전을 놓고 송전탑을 세우는 것, 돈으로 적절히 보상하고 법으로 적당히 누르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모욕이다. 여기 사람들이 평생 살아온 삶에 대한 모욕, 그 삶 안에 담긴 가치에 대한 모욕. 폭력(공권력이든 용역이든)과 돈, 딱 두 가지만 들고 와서, 위협과 매수, 그 딱 두 가지만 가져와서 마을 사람들을 대하는 모욕적 행동들.

밀양 어르신들의 싸움은 요즘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일들과 참 많이 닮았다. 지난 몇 년간 소리를 질러도 좀처럼 듣지 않는 이 사회를 향해 ‘여기 우리가 살고 있다’고, ‘여기 사람이 있다’고, ‘우리 사람이다’고 외치는 것. 그래도 도무지 듣질 않으니 몸에 불을 붙이고, 산중턱에 움막을 치고, 그 소리를 들을 때까지 점거 농성 중인 것 아닌가. 며칠 전 이 산 중턱의 움막에서도 <두 개의 문> 상영회가 열렸다고 한다. 주민들은 용산 남일당의 망루, 그것이 지금 밀양의 화악산 중턱에도 있음을 안다.

2. 129호 송전탑으로 가던 길

지난 7월 1일 ‘이치우 어르신 분신대책위’ 사무국장을 맡은 이계삼 선생을 따라 129호 송전탑 예정지로 가던 중, 차량을 검문하는 일군의 어르신들을 만났다. 검문중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원두막에 어르신들 몇몇이 앉아 누가 오나 길을 보는 정도였다. 타지에서 온 내게 대뜸, 동네 이장을 맡고 있는 권영길 어르신이 하소연을 했다.

“나 여기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다. 부모 재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지). 이 손가락으로 살아왔다. 학교도 나온 것 없고. 이 토지 하나 갖고(살았다). 근데 우예 도둑이 들어오는데 내 가만있을 수 있겠노. 근데 여기 방해했다고 고발돼갖고 경찰서에 갔다 왔다. 두 번 갔다 왔다. 지문이 안 나와 가지고. 두 번 갔다 왔다 지문 때문에.”

이 손가락으로 칠십여 년을 땅을 파 살아왔다고 말하는 권영길 어르신. 이 ‘지문이 사라진’ 노(老)투사들이 밀양을 지키고 있다.

이 손가락으로 칠십여 년을 땅을 파 살아왔다고 말하는 권영길 어르신. 이 ‘지문이 사라진’ 노(老)투사들이 밀양을 지키고 있다.

‘이 손가락으로 살아왔다’고, ‘지문이 없어 경찰서를 두 번 오갔다’고 말한 그 손가락을 어르신은 내게 내밀었다. 학교 다닌 것도 없고, 70넘는 생애를 여기서 흙을 파먹고 살아왔다고 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내한테는 돈이 안 통한다.” 10년 전에도 이장을 했는데, 이번에 싸우면서 마을의 지도자들이 한전으로 넘어가자 주민들이 다시 그를 이장으로 추대했다고 한다. ‘내한테는 돈이 안 통한다.’ 지문이 없어 경찰서에서 확인도장이 될 수 없는 손가락을 가졌지만, 권영길 이장은 주민들 마음에 틀림없는 지장을 찍어둔 사람이었다. ‘저 손가락에는 돈이 안 통한다.’

길을 조금 올라가자 ‘평밭마을’ 넘어가는 길에 산막이 나타났다. 거기에는 초록농활은 온 학생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손주들 밥먹는 걸 지켜보는 할머니처럼, 학생들에게 점심을 내어준 어르신들은 연신 그들을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농활 온 학생들이 일은 열심히 하냐’는 물음에, 한 어르신은 내게 “학생들 없었으면 엊그제 공청회도 뭐고 힘들었을 거라고. 그나마 학생들이 있으니 대치가 되는 거지. 고맙지, 고마워.”라고 했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 그것이 싸우는 사람에게는 가장 큰 힘이다.

산막을 가리키며 내가 “여기가 야전 사령부군요”하고 말했다. 그러자 재밌는 답변이 돌아왔다. “야전 사령부이기도 하지만 사랑방이기도 합니다.” 정말 그랬다. 주민들은 이틀 전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추가 증설에 관한 공청회를 참석하기 위해 울주군까지 다녀왔다. 한전이 동원한 주민과 용역들로 가득 찬 곳에서 주민들은 고함을 지르며 싸웠고 이날 많은 주민들이 다쳤다. 산막에서 사람들은 점심을 들며 공청회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최근 이루어진 몇 가지 조치들을 언급하며 공사 재개가 임박했다고, 다시 말해 싸움이 임박했다고 말했다. 방 안에서 이러저런 걱정과 대책이 오가는 사이, 뒷 편 주방에서는 추어탕을 끓이고 앞 편 평상에서는 수박을 먹으며 도란도란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악산 중턱에 만들어진 <밀양전쟁>의 지휘소가 제시한 공식, ‘야전사령부=사랑방’.

어느 할머니에게 제일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정부 사람들 오면 귀에 대고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전은 여기 와 갔고 할려면 하는데 우리가 할라카면 전혀 안 들어. 우리에게는 절대 협조 안 한다고. 우리 말을 좀체 듣질 안해. 하고 싶은 말? 여기 막사 뜯으러 온다고카는데 와 바라고, 뜯으러 오보고… 한전 시키는대로 해보라고 경찰한티 말했다.” 내가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는데, 할머니의 답은 ‘해볼 테면 해 봐라’는 거였다. 말을 듣지 않는 사람, 말을 듣지 않는 정부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 그건 ‘말이 필요 없는 말’ 그것이었다.

3. 127호 산막의 두 할머니

129호 송전탑 예정지에서 십 분 정도 산 길을 걸어가니 127호 송전탑 예정지에 세워진 또 하나의 산막이 나왔다. 초소를 지키는 병사들마냥 두 할머니가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산막도 초소이지만 또한 사랑방이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들은 아들 자식이나 온 것처럼 자꾸 먹을 것을 내오려고 하셨다. 그리고 용역들과 싸우던 가슴 칠 이야기들은 조금만 지나면 구수한 옛날이야기처럼 돌변하곤 했다. 시청에 들어가 농성을 할 때 점심 먹고 들어온 직원들을 향해 “우리는 밥도 몬 먹고 이래 있는데 니들은 밥 먹고 오나? 이빨 쑤시고 오니 좋나” 하면서 대성통곡을 했다는 이야기. 오전에 온 사무관한테 물이 흥건한 막사의 바닥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개만도 몬하게 살고 있다”고 쏘아붙였다는 이야기. 그러다가 금세 “지들도 기가 찰 거다”고 웃으며 웃음을 터뜨리신다.

그릇에 담긴 화투와 작은 돌멩이들이 참 정겹다.

그릇에 담긴 화투와 작은 돌멩이들이 참 정겹다.

싸움 이야기를 하다가도 화제는 어느새 송전탑 예정지 여기저기에 심은 옥수수와 호박 이야기로 넘어간다. “옥수수 하나는 저리 큰데 저 우에는 영… 128호에도 내가 뿌려났는데 오이도 제법 나고. 저기 한 번 해먹겠더라.” “가을 되면 여기 잎들이 다 거름되거든. 참 좋은 땅이다.” 그러다 이야기는 다시 며칠 전, 산에서 <두 개의 문> 상영할 때 노래자랑으로 넘어간다. “이젠 몬한다. 젊었을 적에는 저녁에 모여가 한 가지씩 불러대곤 했는데. 밥하믄 실랑 불때믄 실랑 노래가 절로 되거든. 이젠 안 된다. 거 좋은 노래도 다 이자뿔고. 동동주도 해가지고 노래도 하고 했는데…”

127호 송전탑 예정지 앞의 산막을 지키는 두 할머니. “꿈에 내가 한전 놈하고 싸워 이긴 날은 말하지. 꿈에 한전 놈들하고 싸워 이겼다. 그러니 우리가 이긴다.”

127호 송전탑 예정지 앞의 산막을 지키는 두 할머니. “꿈에 내가 한전 놈하고 싸워 이긴 날은 말하지. 꿈에 한전 놈들하고 싸워 이겼다. 그러니 우리가 이긴다.”

곁에 있던 곽정섭 할머니가 맞장구를 치며 힘을 북돋는다. “이제 이 일만 끝나면 그날로부터 열흘 간 잔치 할기다. 그때는, 당신 글 쓴다고 했쟤? 꼭 그 잔치에 대해서 써야 한다.”

그 잔치에 대해 쓰고 싶다고 말하며 물었다. 싸움이 걱정되지는 않는지. “내 생각에 싸움이 나면 2/3는 우리가 이겼다 그케 생각합니다.” 요즘 들어 헬기가 부쩍 자주 상공을 선회하고, 용역들과 1년여를 싸웠는데, 이 싸움의 소위 ‘객관적 정세’를 모를 분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2/3는 이겼다’는 말은 막연한 기대도 아니고 근거 없는 자신감도 아니었다. 분명 거기에는 믿는 것이 있었다. 그 믿는 것이란, 내 생각에, 그 ‘잔치’라는 말을 하며 떠올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2/3는 오히려 완곡한 표현이고, 어쩌면 이들은 ‘패배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이미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다.

수십 년을 살았어도 얼굴 모르고 지냈던 산 너머의 사람들과도 이제는 자매들 마냥 친해져버렸다. 게다가 싸움에 나서느라 수확을 못한 작물들은 동네 사람들이 대신해서 거두어주고 있었다. 지난 겨울 추웠던 움막에는 동네 ‘윤반장’ 할아버지가 구들을 놓았다. “우리는 이제 너무 깊이 들어왔다”며, “떠나면 배신이야, 배신”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할머니들. 이계삼 선생이 거기 덧붙였다. “서정범 사장님 있잖아요. 이 싸움 이기면 잔치도 하고, 우리끼리 공동체도 만들고 하자고. 딴 데 힘든 데 싸움 있으면 우리가 가서 좀 돕자고.”

내게 할머니가 물었다. ‘어떨 것 같애요?’ “제 생각에도 3/4은 여기가 이길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함박웃음을 터뜨리면 화답했다. “그치애?”

4. 밀양의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것

사람들은 대개 ‘무엇을 위해서’ 싸운다. 하지만 그 ‘무엇’이 정작 드러나는 것은 ‘싸움’을 통해서다. 밀양의 사람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가. 처음에는 그것이 재산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싸움을 통해서 만들어가고 있는 삶을 보면 그들이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를 읽어낼 수 있다. 투쟁을 통해서 실현하고 있는 삶이 사실은 투쟁을 통해 지키고 싶은 삶이다. 땅에서 농사를 짓고, 끼니가 되면 사람들을 먹이고, 추운 곳에 구들을 놓고, 아침을 지을 때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기쁜 일이 있으면 잔치를 하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만난 부북면의 이남우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다. “벽을 느낀다”고. “여기 땅이 우리 몸이고 여기 농작물이 우리 맘”이라고. 이것은 “정부가 제 나라 국민을 침략한 것”이라고. 이 나라의 정부, 즉 거번먼트가 주민들을 침략하는 곳에서, 주민들은 역설적이게도 스스로의 거번먼트를 구현하고 있었다. 이계삼 선생은 내게 물었다. “이게 민주주의 아닙니까. 사람들이 자기 권리를 찾으려는 것.” 말 그대로다. 민주주의.

결국 한전과 원자력 세력들이 지금 밀양에서 파괴하고 있는 것의 정체도 그렇다. 송전탑이 마을을 망치기 전에 이미 한전은 마을 공동체를 심각하게 파괴해 버렸다. 이번 싸움이 끝나면 그 결과에 상관없이 꽤 많은 주민들이 여기 마을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 감정의 골이 너무 커져버렸다. “저기 도방동 할매 설에 제사 지내러 가는데 조카가 대문을 닫아버리더래요. 이 철탑 반대한다고.” “6-7명 그 젊은 놈들이 우얄라고 그러는지. 앞으로 어찌 살려고.” 한전이 술을 사고 돈을 뿌리면서 주민들의 관계를 파괴해버린 것이다. 한전이야 돈을 뿌리고 법으로 겁박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겠지만, 문제가 그렇게 풀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이 끝나도 사람들 하나하나를 보듬어내려면 감당못할 정성과 시간을 쏟아내야 한다. 그것이 여기 어르신들이 말하는 ‘사람의 도리’다.

산막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던 이야기 중 압권은 용역들과 음식을 나누는 이야기였다. “할매들이 지난 번 라면을 끓여먹을 때 저기 (용역) 얘들을 불러요. 쟤들도 배고플 테니. 그리고 그렇게 먹으면 우리도 쟤들하고 쉽게 지내고. 라면 끓여주면 몇 놈은 와서 ‘떡도 좀 넣어주면 안됩니꺼’ 하고 말한다니까. 그럼 옆에서 난리치는 사람도 있지. 저 놈들한테 우리는 라면 끼려줘도 저놈들은 또 온다카면서. 그래도 우야노. 사람들인데 함께 먹어야지.” 욕설을 내뱉고 가슴을 치게 만드는 용역들인데, 먹을 때는 동네 젊은애들처럼 생각해서 부르지 않을 수 없는 할머니들.

“지난 번에는 내가 (채증 안 될라고) 변장을 했어. 아들이 입던 얼룩덜룩한 옷 입고 마스크 하고 장갑끼고. 얘들이 보면 틀림없이 들어보던 아지맨데 뭔가 이상하다 하는 거야. 그래 내가 그랬지. 고종간이라고. 그 사람은 서울 볼일 보러 갔다고. 얘들이 진짜냐고 칸다. 딴 할매들도 그 아줌마 아니다고 하니, 계속 이상타며 따라다녀. 사진찍으라고. 근데 그때 거 보라마을 일(이치우 어르신 분신) 있기 전 날이었을 거다. 그날도 좀 수월하게 할라고, 거기 용역들이랑 서로 돈 내서 통닭시켜 먹기로 했거든. 근데 마스크를 지들 앞에서 안 벗을라고 난 통닭 안 먹는 사람이라고 했지. 내 고종은 먹어도. 하이고.”

용역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치킨을 함께 먹는 할머니들. 어떤 때는 밤사이 대통령이 왔다갔다고 뻥을 치고, 어떤 때는 거짓으로 팔을 다쳤다고 말하는 용역을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니 진짜 아프나’ 묻는 할머니들. 이 분들이 밀양을 지키는 어르신들이다. 그런데 이 분들은 다정하고 웃음가득한 얼굴을 하다가도 또  “힘들면 저기 올라가 한참을 운다”고 말하는 그 분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슴에 유서를 쓰고 기름을 주변에 두는 어른신들이기도 하다.

이렇게 귀한 분들이 지금 밀양에 있다. 이 분들은 영원히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가 패배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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