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5-이집트로부터 배우자

- 고병권(수유너머R)

1. 민주주의 -뒤늦은 나라와 앞서간 나라

9월 30일, 점거 14일째, 사람들이 급증했다. 매번 사람들은 늘지만 오늘은 어떤 도약이 느껴질 정도로 많았다. 5천정도? 어떻든 말 그대로 발 딛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금요일이기도 했고, 유명 밴드인 <라디오 헤드>가 온다는 말이 인터넷에 돌았다. 이미 마이클 무어와 수전 서랜드같은 이들이 방문했던 터라, 그리고 많은 유명 인사들이 월스트리트 점거를 지지하고 있는 터라, <라디오 헤드>의 방문은 아주 그럴듯한 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루머였다는 게 밝혀진 뒤에도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밴드 공연이 아니라 점거 자체가 가진 힘이 만들어낸 규모라는 이야기다. 맘에 들지는 않지만 자본주의 주식시장 용어를 사용하자면 아직도 이 점거가 갖는 잠재력은 저평가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이 점거는 아직도 구현되지 않은 대단한 잠재력을 여전히 갖고 있어 보인다.

공원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말 그대로 발 딛기도 힘들었다.

공원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말 그대로 발 딛기도 힘들었다.

유명 밴드 공연만 보러 온 거면 차라리 집에 가라!

유명 밴드 공연만 보러 온 거면 차라리 집에 가라!

‘이집트처럼 시위하라’는 구호를 몸에 붙인 할머니.

‘이집트처럼 시위하라’는 구호를 몸에 붙인 할머니.

지난 리포트(<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3>)에서도 잠깐 말한 바 있지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이들의 시위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에 큰 영향을 받았다. 단지 시위가 일어났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시위 방식 자체 -다시 말해 오랫동안 광장을 점거하고 민중들이 서로 토론을 벌이는 것-를 거기서 배워왔다. 사람들은 ‘중동의 봄’이 ‘미국의 가을’이 되길 바란다. 아랍 민중들에 대한 대단한 존경심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의 주류 미디어나 정치학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아랍은 뒤늦게 민주화에 탑승한 지역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세계 민주주의를 선도하고 있다. ‘독재자 타도’라는 익숙한 구호 때문에 그것을 우리의 과거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들 시위가 폭발한 것은 우리 사회 역시 지금 겪고 있는 위기로부터 온 것이다. 지난 세계 금융 위기 이후 폭발적인 물가상승과 높은 청년 실업률. 뿐만 아니라 시위자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윗터 등 ‘소셜네트워크(SNS)’로 무장한 사람들이었다. 사실 새로운 민주화 시위는 2000년대 초반, 구제금융을 겪던 아르헨티나에서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난 바 있고, 한국에서도 지난 몇 년간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문제는 단지 보편선거나 다당제, 방송들의 자유 따위가 아니다. 사람들은 삶의 형태에 대해 근본적 요구를 하고 있고, 그것은 제3세계에서 불이 타올랐고 지금 제1세계로 옮겨 붙었다.
어떤 점에서는 제1세계니 제3세계니 하는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전통적 의미에서 제국 바깥에 있던 식민지들은 사라져간 반면, 식민-제국 문제, 제3세계-제1세계 문제는, 각 나라 영토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미국과 유럽은 외부 식민지가 아니라, 어느 새 이주자의 형태로 나기 나라 내부에 들어온 식민 문제에 직면해 있다. 물론 제3세계에도 제국은 들어와 있다. 제3세계, 식민지는 지금 내부 문제이다.

2. 파장 -연대하라

‘모든 것을 점거하라’

‘모든 것을 점거하라’

오후 4시쯤 공원 전체가 술렁거렸다. 이미 너무도 많은 이들이 들어온 공원에 새로운 그룹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운송 노조(TWU Local 100)였다. 상당수 조합원을 둔 노조가 이번 점거를 공식 지지하고 참여한 것이다. 어제 뉴스에 따르면 미국 상당수 지역에서 점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의 연설이 사람들 서로의 중계를 통해 공원에 메아리쳐지고 있을 무렵, 연단에는 ‘모든 것을 점거하라’는 현수막이 펼쳐졌다. 그리고 어느 디자이너가 선물한 대형 깃발이 소개됐다.

상공에 머무른 채 시위대를 주시하는 헬기.

상공에 머무른 채 시위대를 주시하는 헬기.

사람들이 서로에게 육성을 전달하고 있을 무렵 상공에는 헬기가 큰 소리를 내며 정지한 채 떠 있다. 경찰 헬기로 보이는데 시위대의 동선을 주시하고 있다. 사람들의 목소리 전달을 방해할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소리가 너무 커서 사람들은 ‘마이크 체크’를 외치며 서로에게 육성을 전달하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저녁에 ‘악명높은’ 폭스 뉴스에서는 이번 점거를 실업자들의 황당한 시위로 묘사하고 있었다. “도대체 요구가 뭐냐는 앵커의 물음에 ‘혁명이나 공산주의죠, 뭐’하며 기자는 낄낄댔다.” 그러면서 ‘일거리 없는 실업자들’이 거기 모여서 그렇게 노숙하는 거라고 비꼬았다.

폭스뉴스를 풍자하는 퍼포먼스(24일)

폭스뉴스를 풍자하는 퍼포먼스(24일)

무슨 중세 귀족들 같아 보였다. 근대 혁명을 앞둔 상황에서, 대중들의 요구를 ‘세상에 사람들이 모두 평등한단다’하며 낄낄댔을 것 같은 그런 귀족들 말이다.
해가 힘을 일어갈 무렵 사람들은 지난 번 시위대에 가해진 폭력(경찰 일부가 최루 스프레이를 난사하고 일부 시위대를 연행했다)에 항의하는 평화의 행진을 벌였다. 사람들은 비폭력적으로, 평화롭게 행진하자는 말을 유난히 강조했다. 지난 십삼일을 그렇게 해왔듯이 앞으로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2008년 촛불시위에서 본 모습과 정말 똑같았다. 사실 이들은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충분히 힘을 갖고 있기에. 폭력은 자주 나약함의 징표가 되곤 한다. 폭력/비폭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시위가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냐, 즉 활력을 가졌느냐이다. 지금으로서는 사람들이 강해 보이며 더 강해지고 있다.

‘목소리를 내면 일자리를 잃을 지도 모른다.’ 달러로 입을 막는 미국 사회의 풍자.

‘목소리를 내면 일자리를 잃을 지도 모른다.’ 달러로 입을 막는 미국 사회의 풍자.

The Power of the People is Stronger than the People in Power.

The Power of the People is Stronger than the People in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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