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편집자의 말 – 현민에게

- 고병권(수유너머R)

그날, 내게 접견 시간 몇 분 더 넣어주었다고 힘주어 말하던 교도관, 무슨 노래방 주인도 아니고 참 재밌었지. 그런 말을 하고는 경례까지 했지. 이런 걸 그로테스크하다고 해야 하나? 계급장 단 정복 입은 노래방 주인. 그게 그 공간의 특징인가. 네가 우스꽝스러운 일을 전할 땐 거기가 꼭 요지경 봉숭아학당 같다가도, 네가 ‘자해충동’ 같은 말을 쓸 땐 회색빛 벽으로 꽉 막힌 감옥임을 실감하게 된다. 너와 난 항상 그리 투명하지 않은 형식상의 투명창을 사이에 두고, 속삭여도 될 거리를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서만 대화할 수 있었지. 둘 만의 대화가 허용된 공간이지만 또한 우리는 거기가 공허한 말들만이 허용된 공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말야. 몇 시간을 이야기할 주제를 갖고 있어도, 공허한 말을 채우는 데는 솔직히 10분도 버겁더구나.

네 말처럼, 난 네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스스로 거기에 걸어 들어갔는지를 알지 못한단다. 다만 나는 네가 어떤 거창한 이유도 -그것이 인류사의 가장 숭고한 이념일지라도- 만들려 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어떤 이유도 꾸며내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이 대의나 이념을 조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부턴가 네 자신 안에 똬리를 튼 그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서, 거기에 정직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안다. 군대가 네게 불러일으킨 감정들, 그것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든 어떤 구체적인 거북함이든, 너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았고, 혹은 외면할 수 없었고, 스스로 농담삼아 ‘찌질함’이라고 했지만, 넌 그 솔직함만으로도 군대를 거부하는 행동에 나섰다.

이제 나오면 무얼 할 거냐고 내가 물었던 것 같다. 넌 말하지 않았지. 거기서 말할 수 없는 답이었을 테지. 난 네가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네가 어떤 글을 쓸지 조금 짐작하게 되었다. 네가 내게 보내준 편지를 통해서.

넌 너의 선택이 사회니 역사니 생명이니 하는 거창한 주제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했었지만, 네가 가장 사적인 감정들로 파고들어간 곳에서 “한국사회의 돌출된 곳 가운데 하나에 이르렀다”고, “심리가 사회가 되고, 몸이 곧 정치인 지점”에 이르렀다고 썼구나. “개인과 사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있어서 안팎을 가르거나 경계를 나눌 수 없”다고. 개인적으로 가장 깊이 찌르고 들어간 곳이 사회적으로 가장 뾰족한 부분임을 알게 되었다고. 나 역시 네가 도달한 그곳이 개인과 사회의 어정쩡한 타협의 지점이 아니라, 그런 구별이 무의미한 독특한 점, 개인과 사회를 동시에 규정짓는, 타협불가능한 뾰족한 곳임을 알겠다. 네가 말한 “시각보다 촉각으로 접하는 사회, 머리보다 몸에 의존하는 글”을 짐작하고 또 기대하고 있으마.

넌 입소한 곳과 다른 곳으로 나왔다기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온 것 같구나. 넌 <자해충동>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감옥 안 재소자는 “노출된 인간이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인간”이라고, “한 사람이 아프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연”과 “구구절절한 설명을 동원”해야 한다고. 그래 그건 네가 교도소에서 본 것이지만 또한 거기 들어가기 전에 병역거부에 대해 말한 것이기도 했지. 군대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아주 ‘특별한 사연’과 ‘구구절절한 설명’을 동원해야 한다고. 너는 항변했었지. 왜 그래야 하느냐고. 아픈 것으로 충분치 않냐고. 도대체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없지만 정말 아프다고. 몸이 아픈지 맘이 아픈지, 이 아픔이 과거 때문인지 현재 때문인지 미래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정말 아프다고! 교도소는, 우리 사회는, 그 납득할 명분과 이유를 요구했고, 그것을 대지 못하면 ‘꾀병’이라고 했어. 그것을 만들어내면 그것 역시 ‘꾸며낸 거’라 의심했고. 그때 네 말처럼 우린 ‘자해충동’을 느낄 거야. 포기로서의 ‘자살’이 아니라 문제제기로서의 ‘자해’ 말야. 이유를 알 수 없는 아픔의 항변으로서. 언어가 아닌 통증으로, 언어 없는 항변으로서 말야.

나는 네가 재성씨에게 보낸 편지 -난 그것 역시 내게 보낸 편지의 일부로 읽는다-에서 같은 걸 읽었단다. 사람들은 재성씨 책 출간 자리에 보낼 네 글에 분명 ‘고상한 말’이 담겨 있을 거라 기대했겠지. 하지만 난 네가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이유를 ‘당분 부족’에서 찾는 걸 보고 빙그레 웃었단다. 고상한 명분과 이유를 찾지 않고, 구체적인 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너를 거기서 또 보았기에. 펜의 버거움을 온갖 이념과 역사, 사회를 통해 꾸며대는 지식인이 아니라, 너는 케익이라는 말에 침이 괴는 네 몸에 주목하는, 거기에 솔직한 글쓰기를 하려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 같구나. 하지만 난 네가 이념도 역사도 사회도 포기한 게 아님을 안다. 어쩌면 몸에 귀를 기울이는 게 그런 것들에 이르는 가장 구체적이고 빠른 길인지도 몰라. 아니 거기 이를 필요도 없지. 우리의 구체적 몸뚱이가 바로 이념이고 역사고 사회니까.

네가 내게 보낸 편지에 ‘고병권 선생님께’라고 적고, 첫마디를 ‘병권형’이라고 했구나. 그리고 내가 음식을 차입하며 ‘친구’라고 적은 것에 몽클했다고. 선생님과 형, 친구라는 말은 마치 우리가 대화의 사이에 두었던, 형식적으로만 투명했던, 불투명 플라스틱 창을 떠올리게 한다. 네가 출소를 했다고 해도, 불투명창을 통한 공허한 말의 교환, 더 나아가 명분과 이유를 꾸며내야만 하는 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너와 나 사이에도, 이 공개된 사적 편지를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진실한 말의 교환은 ‘출소한 세상’에 대한 막연한 기대만큼이나 헛된 것이리라. 하지만 너는 적어도 교도소에서 뭔가를 벼려온 것 같고 그것으로 공허한 말들을, 불투명 창 너머에 있던 나를 겨냥할 것임을 안다. 네가 그것을 수다로 치장해 오든, 침묵으로 건네든, 나는 네가 벼려온 그것을 사랑할 것이다. 명분과 이유, 진실과 거짓을 꾸며내는 언어의 세계 바깥에서, 네가 대면했던 통증을 난 네가 내게 건네줄 것이라고 믿는다.

고맙다, 거기에 들어갔고 거기로부터 나와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찾아오겠다고 말해주어서. 네가 내 벽지를 물어서 문뜩 고개를 들고 보니 그냥 흰 페인트를 칠해놓은 벽이구나. 지난 몇 개월간 그것을 보지 않았다. 사실은 나도 지금 내 안에 있던 것들에 둘러싸여 있단다. 게다가 그것들은 내게 전혀 상냥하지 않구나. 종종 소식다오.

미국에서 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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