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3 – 이것이 민주주의다

- 고병권(수유너머R)

9월 17일, 시위는 그렇게 끝났겠거니 했다. 그런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이번 월스트리트 점거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변호사이자, 2000년대 초반 국가부도 사태 당시 아르헨티나 대중들의 봉기와 놀라운 실험을 소개한 책, Horizontalism(2006)의 편저자인 마리나 시터린(Marina Sitirin)이 친구들에게 보낸 메일이었다.

24일 공원점거 풍경. 마치 시골장터가 열린 느낌이다

“오늘로 점거 5일 째입니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이번 점거가 이렇게 오래 갈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정말이지 뉴욕에서 많은 정치적 운동의 경험을 가진 이들도 이것이 이렇게 지속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 상상력이 자유로운 이 새로운 사람들, 지금 분노하고 있고 또한 새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제약을 그리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가 공원을 점거할 것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졌고, 그들은 지금도 계속 그것을 믿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 키우고 넓히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런 믿음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들이 옳습니다. 오늘, 5일째 되는 날, 이삼백 명에 이르는 핵심 그룹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락거립니다. 첫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입니다. 인종적으로는 물론이고 연령대를 봐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 아이들부터 인근 지역에서 온 노동자들까지. 특히 9-11 기념관에서 일하는 보안요원들이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며 오기도 합니다. 근처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도 오구요. 내가 만난 보안 요원은 스페인에서 왔는데, 스페인에서처럼 이번 점거가 계속되고 더 확장되었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이 편지는 거기 들어온 사람들의 발언을 소개하는 것으로 계속 이어졌다. 편지를 받은 날, 뉴스에서는 점거 농성자 중 7명 정도가 구속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뉴욕은 굵은 비가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다시 배낭을 챙겨 점거가 지속되고 있는 ‘리버티 플라자’로 갔다. 그곳의 풍경은 1주일 새 완전히 변해 있었다. 그곳은 흡사 시골 장터, 고대 그리스로 말하자면 ‘아고라’ 같았다. 여기저기 침낭이 쌓여 있었고 곳곳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개별적인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었고 인도를 따라 몇몇이 구호를 외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거기 있는 사람들과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만든 여러 장의 카드였다.

점거자들이 카드보드에 적어놓은 다양한 주장들

‘말로만 빈곤과의 전쟁을 떠들지 정작 돈은 다른 나라 쳐들어가는 전쟁에 쓴다’는 야유도 있었고, ‘우리의 마음과 체제를 재전유하자, 우리는 서로를 충분히 돌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월스트리트를 비난하는 문구와 함께 ‘벌거벗은 진리’라며 나체 퍼포먼스를 하는 여성도 있었다. 온갖 요구를 담은 카드보드들이 그 자체로 대중이었다. 목소리들의 대중, 요구들의 대중, 구호들의 대중, 호소들의 대중, 절규들의 대중.

점거자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 속에서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있었다. 제 각각의 목소리가 한 데 모여 있다는 것, 그것이 공동의 리듬을 타며 하나의 곡을 이루어가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하더니 다음에는 함께 앉아서 토론을 벌이고, 이제는 공간을 점거하며 생활을 함께 하고 있다.
점거, 그것은 일상의 삶을 가장 급진적인 정치적 행동과 결합한 새로운 투쟁 형식이었다. 2011년 9월 24일 현재, 맨하튼에서 민주주의는 진행 중이다.

*24일 공원 주변의 시민들에게 점거에 대해서 알리고 있단 활동가 이타마르 라마티(Itamar Ramati)씨와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 주, 그러니까 점거 시위 첫날 목격했던 것과 지금은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그날은 행진과 토론이 중심이었는데 점거가 이루어지면서 시위 자체가 새롭게 변화한 것 같다. 이런 시위 형식은 그 동안 미국에서 많이 시도되었던 것인가?
“아니다. 무척 새롭다. 사실 이건 이집트와 스페인에서 많이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배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거기 사람들과 연결도 되어 있다. 동영상으로 서로 찍은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의견을 교환하기도 한다. 여기 함께 모여서 일종의 코뮨 내지 가족을 이룬 느낌이다.”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정치적 대표자들에 대한 어떤 요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질렸다고 할까, 사람들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대신 서로에게 뭔가를 요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행동은 민주주의를 바로 잡는 일(fixing democracy)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의 행동에는 그들(정치지도자들)에게 뭔가를 기대한다기보다 직접적인(direct) 어떤 요구를 벼려내려는 것이다. 그들로 대표되는 어떤 시스템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요구가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들어내는 요구말이다.”

-지금 점거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기획자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오른쪽이 활동가 이타마르 라마티

“우리는 리더들이 아니다. 사실 우리도 지금 여기에 와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다 알지 못한다. 여기에는 리더가 따로 없다. 오가는 것도 무척 자유롭다.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오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면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기회로 삼는다는 점이다. 누가 뭔가를 설교하지 않아도 서로 말하면서 무언가를 깨달아간다. 지금 나같은 이들이 하는 활동이란 주로 사람들을 조직해주고(점거하면서 필요한 일들을 준비하는 모임),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며, 피켓 등을 함께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새로 온 사람들이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여기는 셀프 거버넌스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지난 번 몇 명이 구속되었다고 들었는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지난 번 구속된 사람들은 사소한 법규를 어긴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경찰이 아직 본격적으로 체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원에서 텐트를 쳤는데 여기서 그것은 금지되어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정보 형사들이 채증을 하는데 그 앞에서 노골적인 방해행위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엊그제 트로이 데이비스가 죽은 후 유니온 스퀘어 쪽에서 큰 시위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쪽에서도 그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오전에도 몇 번 충돌이 있었고 수십 명, 많으면 백 명 넘게 연행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언제까지 점거를 지속할 생각인가?
“그런 걸 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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