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존재 염색 ―노들에서 물들다

- 고병권(수유너머R)

지난 겨우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작은 책을 집필했습니다. 글은 자기 변신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글을 쓰면서 제게 일어난 변화에 스스로 놀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내 생각이 이렇게 변했나?’ 책을 쓰는 내내 싱거운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사실 책의 주제와 제목은 출판사에서 반쯤 과제처럼 넘겨받았던 것인데요, 묘하게 숙제하다 공부에 재미 붙인 학생처럼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통념, 그 누구보다 제 자신 안에서 의심받지 않은 채 늙어가고 있던 진리로서의 민주주의와 싸운다는 게 저를 흥분시켰습니다.

언제부턴가 제게 ‘민주주의에 대한 불화’가 생겨난 것 같습니다. 대학 때만 해도 ‘군부 독재의 전횡에 맞서 다수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는 제도’로서 민주주의를 꿈꾸었는데요. 이젠 ‘정당들이 투표자 다수의 관심이나 선호에 반응하는 노력이 민주주의’라는 저명한 학자의 상식적 정의에도 불같이 화를 내게 됩니다. 무엇보다 ‘다수의 선호에 반응한다’는 말이 아주 폭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때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언제부턴가 제게 나쁜 물이 든 것 같습니다. 이번호 주제가 ‘노들야학’인데요. 저는 제게 일어난 ‘존재 염색’의 상당한 혐의를 이 노들야학에 두고 있습니다.

제가 노들과 만난 지는 한 5년 된 것 같습니다(물론 2001년 이동권 투쟁 때부터 마음을 빼앗겼습니다만). 사실 민주주의라는 말은 제게 가치만 있지 용도가 없는 10원짜리 동전과 같았습니다. 구석 어딘가에 처박아 두었을 뿐이지요. 그래서인지 다수 시민의 상식과 통념에 저항하는 이들의 투쟁을 보면서도 민주주의와 긴장을 형성한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를 과거 보물 상자에 넣어둔 채 꺼내보질 않았으니까요. 그 대신 ‘소수성’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노들과 함께 한 이래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두 말이 불편한 관계에 있음을 느낍니다.

그 동안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지하철 집단탑승을 시도하는 나쁜 장애인들을 보았고 그들에게 법질서는 지켜야 하는 게 아니냐고 야단치는 선한 시민들을 보았습니다. 그 동안 저상버스와 활동보조인은 언제 늘리고 감옥같은 시설에서는 언제 빼 줄 거냐며 여기저기를 점거하는 과격한 장애인들을 보았고 우리 경제여건과 국민정서상 그건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선한 공무원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제 그런 선한 사람들에게 제 자신이 2-30년 갇혀 있던 장애인이라도 되는 양 오버하고 흥분하는 걸 봅니다.

민주정부 아래서 치열한 싸움을 시작했던 이 ‘반민주주의자들’이 도대체 언제 제 안에 들어온 걸까요. 민주주의에 대한 책을 쓰는 동안 이들의 명령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민주주의를 사랑한다면, 사랑할 만한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라’고 말이지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들은 제게 진리를 입증하지도 않았고, 교묘한 말로 꾀지도 않았습니다. 저를 설득한 것도 반박한 것도 아닙니다. 물론 저를 교육시키지도 않았지요. 이 모든 것들은 말의 영역, 논리의 영역, 이성의 영역, 한마디로 로고스의 영역입니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교육자는 저였습니다. 저는 노들야학에 인문학 강사로, 불수레반 철학교사로 참여해서 말을 던졌습니다. 저는 말하는 사람이었고 설득하는 사람이었고 교육자였습니다. 제 수업을 듣는 중증장애 학생들 대부분은 한 마디의 말을 하기 위해서도 너무 힘든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말은 분명 제가 했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물들었을까요. 모를 일입니다.

저는 이제 과거와 다른 색깔의 말을 합니다. 존재가 다른 색깔로 물든 겁니다. 말하는 이가 개입하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말할 수 없는 이들이 개입한 것 같습니다. 이게 뭘까,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봅니다. 노란 들판, 노들의 그 노란물이 제게 어떻게 배어든 걸까요.

“장애인들을 바꾸려면 물리적 요법과 화학적 요법을 함께 써야 합니다. 집회장에 강제로라도 끌고 나오는 게 물리적 요법이라면 술 먹이면서 은근이 말려들게 하는 게 화학적 요법이지요.” 언젠가 박경석 선생이 한 말인데 오늘따라 ‘화학적 요법’이라는 그 말이 귓가에서 맴돕니다. 술의 효능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노들이라는 도가니 속에서 제게도 일종의 화학적 요법이 작동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존재를 염색하고 변형시키는 어떤 화학이 노들에서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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