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2 – 꽃을 든 점거자

- 고병권(수유너머R)

8월 말 뉴욕의 어느 활동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9월 17일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는 시위가 기획되었고 그것을 준비하는 모임이 있는데 한 번 지켜보겠느냐고. 세계가 이 난리인데 미국, 특히 뉴욕의 활동가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게다가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니 당연히 그러겠노라고 했다. 9월 초 톰킨스 스퀘어(Tompkin’s Square) 공원에 갔다(사실 이 모임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고 그 일정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어 있었다). 참고로 맨하튼의 로우어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이 공원은 여러 집회가 열린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장소이다.

월스트리트 점거 투쟁을 알리는 웹 포스터

월스트리트 점거 투쟁을 알리는 웹 포스터

인상적인 것은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개발해 놓은 다양한 수화였다. 목소리가 안 들릴 때, 강력한 동의를 표할 때, 강한 이견이 있어 발언을 요청할 때, 강력한 반대를 표할 때 그때마다 다양한 손짓을 구사했다. 상당수는 조직적 토론을 거쳐 온 사람들이겠지만 모임 자체가 개방되어 있었기에 새로온 사람들도 자유롭게 발언했다.

일부 그룹에서 ‘대량구속’을 각오한 강력한 시위를 요구하면서 긴장이 흐르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중의 참여를 막아버리고 경찰과의 불필요한 폭력교환만을 낳는 시위에 반대하는 쪽으로 흘렀다. 사람들은 상당히 유연했다. 점거투쟁을 알리는 홍보 포스터(그림 참조)를 보면 알겠지만, 월스트리트를 상징하는 황소의 폭주 위에서 그것을 유연하게 다루는 어떤 힘과 능력을 생각했던 것일까. 경찰을 뚫는 게 목표가 아니고 대중이 함께 하는 게 목표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나 역시 거기에 동의했지만 속으로는 ‘너무 무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공원을 최소한 1박 2일은 점거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내 짐작으로는 당일 다 쫓겨날 것 같았다.

어떻든 당일 경찰의 봉쇄에 맞서 구사할 전략을 고민하는 전략위원회, 법률적 문제를 검토하고 조언할 법률위원회, 음식물을 조달할 식품위원회 등이 효과적으로 결성되었고(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며 쉽게 결성되었는데 정말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잘하는 요리에서 시작해서 싸게 식재료를 파는 가게, 음식물을 보관할 넓은 ‘친구집’(!)등을 소개하는 게 무슨 놀이 같았다), 플래쉬 몹 등 자신들이 준비하고 있는 일을 광고하며 참여자를 받는 워킹그룹들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건 아니었지만 정말 활기찬 모임이었다. 점거 전 날에도 몇몇 사람들이 모였다. 각자 해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안부를 묻고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최종 점검을 하기도 했다. 분명 시위를 준비하는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시위 준비 자체가 끼어들고 싶을 정도로 재밌는 놀이처럼 보였다.

월스트리트 황소상 근처에서 점거 제안자들이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황소상 근처에서 점거 제안자들이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9월 17일, 점거 시위는 오후 3시로 예고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만난 활동가는 경찰이 미리 봉쇄를 할 수도 있으므로 조금 일찍 나오는 게 좋겠다고 연락을 해주었다. 정오께 월스트리트의 유명한 황소 동상 근처로 갔다. 경찰은 이미 점거가 예정되었던 증권거래소 주변, 체이스 맨하튼 플라자 근처를 모두 봉쇄하고 있었다. 하지만 관광객 때문인지 아니면 최소한의 집회시위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인지 황소상 주변의 인도는 통제하지 않았다. 다수의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걸으며 구호를 외치는 데도 전혀 제지받지 않았다.

경찰은 황소상을 지키고 있었지만(황소를 지키는 것이 참 묘한 느낌을 주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에워싸고 탑돌이를 하듯 돌면서 구호를 외쳤다. 처음에는 2-30명이었는데, 어느새 2-300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시위 제안자들은 3시에 있을 점거를 알렸고, 일부는 미국 정부와 월스트리트를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경찰의 경계가 삼엄했지만 시위 제안자들은 ‘꽃’을 들고 있었다. 그들 발언에는 유머가 넘쳤기에 지나가던 여러 사람들이 그들 주변에 몰려들었다. 경찰이 적극 제지를 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곳곳에서 재치 있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주변을 지나가던 관광버스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손을 흔들어대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지지를 표시하기도 했다.

갑자기 한 쪽에서 재밌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여기서 요가를 할 것이다! 월스트리트만 생각하면 몸이 굳어서 안 되겠다!’ 갑자기 일군의 사람들이 잔디밭에 눕더니 요가를 시작했다. 법률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경찰이 막기엔 참으로 미묘한(!) 시위였다.

그 옆에는 흰 성직자 복장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프로테스트 채플린’이라고 소개했다. 범 기독교 그룹으로 보스턴에서 왔으며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에 관여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절실한 부를 오히려 가로채가는 현실에 분개한다”고 했다.

그 옆에서는 한 청년이, 비트세대의 지도자적 시인으로 알려진 알렌 긴즈버그(Allen Ginsberg)의 시, 『아우성(Howl)』을 절규하듯 읽어댔다. ‘아메리카여, 너희 힘을…’ 하며 미국을 탄핵하는 대목을 큰 소리로 읽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수요일로 예정되어 있던 트로이 데이비스(Troy Davis)의 처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시작했다. 데이비스는 1989년 경찰관 살해 혐의로 조지아 주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인물인데, 사형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한 증인들이 증언을 철회하면서 사형 집행을 철회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나와 함께 이 집회를 본 베일랑(Beilang) 선생은 내게 남부 주에서 유지되는 사형제도는, 과거 흑인들을 향해 사적으로 내려지던 린치와 처형이 제도적 형태로 흡수된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석방 가능성을 타진한 내게 흑인의 백인 경찰관 살해는 이 나라, 특히 남부의 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분노를 야기하며, 결국 사형이 집행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트로이 데이비스는 지난 수요일에 처형되고 말았다.) 트로이 데이비스 옆에서는 ‘법인’도 ‘인격’을 갖는다며 자유롭게 정치적 기부금을 낼 수 있다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가 있었다. 금권 정치의 틀을 법원이 열어준 것이다. 사람들은 정치에서 ‘Money Speaks’, 즉 ‘돈이 말한다’는 것이 현실이 된다고 주장했다. 어떻든 ‘인종=정의(Race=Justice)’, ‘돈=정의(Money=Justice)’라는 도식이 아주 선명해 보였다.

멕시코에서 온 이민노동자가 발언하고 있다.

멕시코에서 온 이민노동자가 발언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느 덧 2천 명 가까이 돼 보였다. 시위대는 한때 세관이었고 지금은 미국원주민 박물관의 뉴욕지부가 된 건물 앞으로 이동했다. 여러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뛰어 올라와 다양한 발언을 했다. 곳곳에서 마이크 도움 없이 스스로 큰 소리로 외쳐대는 이도 있었고, 가면을 쓰거나 화려한 의상을 입은 채 퍼포먼스를 하는 이도 있었다. 그 중에 자신을 멕시코 이민노동자라고 밝힌 이의 연설이 이목을 끌었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에 왔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도 한마디로 ‘개판(bull shit)’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이민노동자들이야말로 온갖 불안에 시달리고 착취를 당한다고, 피를 보고 있다고(bleeding)했다.

연단 아래서는 한 대학생이 가면을 쓴 채 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을 토로하고 있었고, 또 그 옆에는 월남전 참전 용사라는 문구가 박힌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월스트리트를 셧다운 시켜라”고 소리를 높였다. 일군의 사람들은 달러를 불에 태우는 퍼포먼스를 했다. 즐거움과 분노가 뒤섞인 묘한 집회 분위기였다.

공원으로 이동한 사람들이 곳곳에서 토론을 벌였다. 공원은 갑자기 거대한 토론장이 되었다.

공원으로 이동한 사람들이 곳곳에서 토론을 벌였다. 공원은 갑자기 거대한 토론장이 되었다.

3시가 넘어서고 경찰의 블록 봉쇄가 풀리지 않자 시위대는 ‘리버티 플라자(Liberty Plaza)’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이동했다. 인도를 따라 걸으며 그들은 계속해서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공원에 다다르자 점거의 제안자들 중 한 사람(자신을 ‘제네럴 어셈블리’에서 왔다고 소개했다)이 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함께 온 사람들, 주변 사람들과 모여서 토론을 하자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바로 그 요구를 이해했다. 금세 주변 사람들과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온갖 주제들이 나왔고 때로는 감동해서 숙연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의견이 갈려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한 대학생은 자신이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다닌다고 소개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거의 돈을 내지 않고 다녔지만 이제 자신이 내는 등록금은 가족의 세금을 넘어선다고 했다. 그때 다른 학생이 일어나 26일부터 대학과 관련해서 자신들이 뭔가 일을 벌일 것이고 참여해 달라고 했다. 어떤 아주머니는 거기 맞장구치며, 오늘은 점거의 첫 날이며, 앞으로 있을 여러 의미 있는 날들의 첫날이 될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또 다른 그룹에서는 자본주의 금융화에 대한 제법 아카데믹한 논쟁이 벌어졌고, 또 다른 그룹에서는 중동에서 미군 철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연결되는 가스관 공사가 추진되고 있다면서 그것은 대단한 생태적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그걸 알려달라고 했다.

한 그룹, 한 그룹 가까이서 보면 정말 중구난방인데, 공원 뒤쪽에서 바라보니 모두가 삶의 문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하나의 집합적 거번먼트를 구성하고 있었다. ‘내 속을 털어놓고 당신 생각을 들으니 이제 내가 이해되고 우리가 이해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경찰이 공원을 느슨하게나마 둘러싸고 있었으나 아무도 경찰을 의식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렇게 한가한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은 민중들이 서로의 말을 듣고, 서로에게 연대를 표시할 때였기 때문이다.

9월 17일 사진들

9월 17일 봉쇄된 거리

9월 17일 봉쇄된 거리

긴스버그의 시 『아우성』을 낭독 중인 청년

긴스버그의 시 『아우성』을 낭독 중인 청년

불타는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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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참전용사 할아버지 -코포라토크라시(기업지배)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베트남 참전용사 할아버지 -코포라토크라시(기업지배)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월스트리트는 너희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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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논쟁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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