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대학의 이름으로 대학을 해체하기

- 고병권(수유너머R)

국제철학콜레쥬(College International de la Philosophie).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이름일 겁니다. 자크 데리다 등 프랑스 몇몇 철학자들이 주도해서 만든 철학학교입니다. 이름만큼이나 생소한 것은 그 운영방식입니다. 재정적으로는 정부의 지원을 받습니다만 운영은 완전히 독립되어 있습니다. ‘콜레쥬’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특정한 장소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파리 시내 곳곳에 건물을 빌리고 세계의 다른 지역에도 공간을 빌려 사용합니다. 건물만 없는 게 아니라 학위도 없습니다. 다양한 강의나 세미나에 참여해서 공부를 하지만 학위를 주거나 받지는 않습니다. 선생들은 별도의 급여 없이 강의를 하며, 학생들도 수업료를 내지 않고 수업에 참여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서구의 초창기 대학을 보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위클리 수유너머>에서 대학등록금 문제를 다루며 말했습니다만, 중세 서구의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는 특정한 공간, 특정한 건물을 지칭하지 않았습니다. 우니베르시타스는 ‘앎을 매개로 삶을 꾸려가는 코뮨’이었을 뿐입니다. 선생과 제자는 분명한 위계가 있었다 해도 일차적으로는 그 코뮨을 함께 꾸려가는 구성원들이었습니다.

선생은 제자에게 살아온 길을 ‘고백’하고 살아갈 길을 ‘약속’합니다. 제자가 어떤 지식보다 우선해서 선생에게 배우는 것은 바로 이 ‘고백’과 ‘약속’입니다. 선생이 고백하는 대학인으로서 살아온 길, 선생이 약속하는 대학인으로서 살아갈 길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진리에 대한 사랑’일 겁니다. 즉 그가 선생인 것은 ‘진리’를 가르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진리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기 때문일 겁니다. <나는 권력이든 신앙이든 부이든 그 어떤 권위에도 굴하지 않고 진리를 사랑해왔고 진리를 사랑할 것>이라는 사실, 그는 그것을 고백하고 약속하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의 진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제자가 선생의 가장 부끄러운 제자인 것입니다. 그는 선생의 권위 아래 진리에 대한 사랑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인으로서 선생에게 배워야 하는 것은 어떤 권위에도 굴하지 않는 진리에 대한 사랑, 아마도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그 사랑인 것입니다. 제자는 선생이 걸어온 그 길을 자신도 약속할 때 대학인이 되는 겁니다.

칸트가 <<학부들의 투쟁>>에서 말하려 했던 것도 그게 아닐까 싶습니다. 철학부(오늘날의 교양학부 내지 인문학부)에 대해서 그는 ‘진리’보다 ‘진리가 가능한 조건’을 강조합니다(이 점에 대해서는 이번호에 글을 주신 미야자키 유우스케 선생이 잘 지적한 바 있습니다.). 자크 르고프의 서술을 빌자면, 철학부는 “가장 열띤 토론과 가장 대담한 호기심과 가장 풍요로운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는 곳”이었고, “돈 드는 박사학위는 물론이고 학사학위도 없는 가난한 문사들, 그러나 도전적 질문들을 던지기를 마다하지 않는 문사들이 만나는 곳”이고, “도시와 외부 세계의 민중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중세의 지식인>>).

어떤 권위에도 굴하지 않는 자유와 용기, 대담한 호기심, 경계를 넘어 외부로 나아가는 개방성이, 철학부에서 ‘진리가 가능한 조건’을 구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에 대한 사랑’은 바로 진리가 가능한 이 조건들을 ‘목숨 걸고’ 지키는 겁니다. (참으로 요즘 한국의 대학과 대학인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국제철학콜레주는 콜레주라는 ‘대학’의 이름으로 ‘대학’을 ‘해체’-데리다의 일본어 번역으로 말하자면 ‘탈구축’-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 장소를 만들어내려는 시도, 언제든 어디서든 토론과 배움의 현장으로서 ‘대학’을 만들어보려는 시도이지요.

지난 9월 27일 저녁, 수유너머N에서 니시야마 유우지 교수의 영화 ‘철학에의 권리’가 상영되고, 국제철학콜레주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때 논의된 내용을 이번호 <위클리 수유너머>에 전면 게재합니다. 국가와 제도라는 조건에서 ‘제도밖’이라고 하는 무조건성과 교섭하려고 하는 ‘국제콜레주’의 시도를, 지난 십여 년간 국가와 자본으로 회수될 수 없는 ‘앎의 코뮨’을 만들고자 했던 수유너머의 실천과 교차해서 읽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번호에 실린 니시야마씨의 글을 먼저 읽어보세요. 국제철학콜레주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현재적 의미가 잘 녹아 있습니다.

응답 2개

  1. 말하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블로그에 퍼 갈게요 ^^ 감사합니다!

  2.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솔솔, Progress_News. Progress_News said: [수유너머] 대학의 이름으로 대학을 해체하기: 국제철학콜레쥬(College International de la Philosophie).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이름일 겁니다… http://bit.ly/cHa4Fi http://suyunomo.jinbo.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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