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내년엔 더 웃을 겁니다, 울음을 강요받는 곳에서

- 고병권(수유너머R)

위클리 수유너머의 1년이 지나갑니다. 달력처럼 1월에 시작했으니 한 해의 마지막 장에 1년을 똑같이 마감합니다(참 내년 1월 29일 돌잔치를 연답니다. 많이들 오세요. *^^*). 지난 호들을 쭉 훑어보니 염치없게도(?) 스스로 뿌듯해집니다. 뭐, 잘하고 싶은 것,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여전히 많지만, 우리 스스로 삶을 고쳐가듯 위클리도 계속 고쳐 가면 되는 거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상의 코뮨을 가꾸어가듯이, 잘나든 못나든 위클리도 하나의 코뮨으로서 웹상에서 조금씩 삶의 숲을 이루어갔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숲을 제공하겠다는 게 아니라 서로 하나의 나무로 들어와 숲을 함께 이루자는 마음입니다. 사람의 숲, 나무의 숲, 강의 숲, 집의 숲, 책의 숲, 음악의 숲, 영화의 숲, 놀이의 숲, 이야기의 숲, 지식의 숲, 저항의 숲….

그동안 참 많은 분들이 좋은 이야기를 올려주셨습니다. 편집자들을 대신해서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거기 있다는 게 우리를 숲이 되게 합니다. 고맙습니다.

출발할 때는 삶에 필요한 지혜와 유머를 많이 담자고 했고, 힘든 이야기보다는 힘나는 이야기를 더 많이 싣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호 표제들을 둘러보니 웃음보다는 울음이, 환호보다는 분노가 많습니다. 희망을 품은 만큼이나 절망도 짙게 드리워 있습니다. 창간호를 용산의 망자들로 시작했는데, 결국 올해 마지막 호에도 의문의 죽음을 당한 강경석씨 이야기를 싣습니다. 언론이 연말마다 떠들어대는 올해의 10대 뉴스처럼 저희도 5대 뉴스를 뽑았는데, 그 뉴스들 모두가 뉴스가 되지 못한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우리의 분을 불러오는 이야기들, 누군가의 속울음을 알리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자꾸 싣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실을수록 처음의 다짐, 서로 일상의 지혜와 경험을 나누고, 함께 숲을 이루자는 그 다짐의 가치가 더 높아짐을 느낍니다. 아이를 키우며, 밭작물을 돌보며, 동화책을 읽으며, 아이들과 독서토론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혹은 항의 시위를 하고 농성장을 지키며 들었던 여러 생각들을 모아놓으니,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더 잘 알겠습니다. 웃고, 기뻐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잘 깨닫겠습니다. 힘들어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기 때문에 함께 해야 하고, 슬퍼도 웃어야 하는 게 아니라 슬플수록 더 크게 웃어야 함을 알겠습니다. 힘든 이야기가 있을 때 힘나는 이야기가 더 큰 가치를 갖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호에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신 문재훈 소장님은 “일상의 꾸준함과 성실함”이야말로 “승리하는 장기투쟁의 비밀”이라고 하셨는데, 정말로 일상을 꾸려가는 것의 힘을 다시 환기하고 싶습니다. 저 아름다울 미래를 위해서 싸움을 지치지 말고 계속해가자는 게 아니라, 현재를 그 미래로 만들어서 당장에 멋지게 가꾸어가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로를 기르고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즐기는 일상을, 힘들수록 더 빨리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호 전선인터뷰의 주인공 공유정옥 선생님 글을 보니, 뇌종양으로 ‘의식은 멀쩡한데 통곡조차 할 수 없는” 삼성의 노동자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정말 사람들을 통곡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많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위클리수유너머가 더 씩씩해지고 더 환해져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지금보다 힘나는 이야기를 더 많이 싣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보다 더 힘든 곳에서 말이지요. 독자여러분, 한 해 동안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응답 4개

  1. 케로로말하길

    “서로를 기르고,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즐기는 일상”에 별표해 놓습니다.

    힘나는 이야기 읽고 힘내고 또 그 힘을 또 나눌게요.
    고맙습니다.

  2.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박재민, 진보 뉴스. 진보 뉴스 said: [수유너머] 내년엔 더 웃을 겁니다, 울음을 강요받는 곳에서: 위클리 수유너머의 1년이 지나갑니다. 달력처럼 1월에 시작했으니 한 해의 마지막 장에 1년을 똑같이 마… http://bit.ly/hWaaAP http://suyunomo.jinbo.net […]

  3. 정은진행복합말하길

    매번 유일하게 기다려지는 수유너머 메일로 삶의 적지않은 활력소가 되주었습니다…
    매번 눈팅만 하다가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서요~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리고 새해엔 지금보다 조금은 더 살기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래봅니다…

  4. 놈리말하길

    고추장님+위클리수유너머 덕에 올해 저도 힘이 많이 났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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