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G20, 공안 축제

- 고병권(수유너머R)

대체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경찰들은 눈에 불을 켠 채 길거리를 감시하고 방송 프로그램들은 온통 G20 특집입니다. 텔레비전, 신문, 길거리 가릴 것 없이 ‘줄 똑바로 서라’는 명령형 광고들이 국민을 향해 남발되고 있습니다. 7-80년대 ‘국민학교’ 다니던 때가 떠오릅니다. 외부에서 손님 온다고 운동장 풀 뽑고, 줄맞춰 ‘앞으로 나란히’를 얼마나 반복했었는지. 그때 그 시절처럼 공무원들은 또 어깨띠를 매고 골목길을 청소하고 경찰들은 연신 호루라기를 불어댑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추억의 기록필름을 보는 수준이죠.

지난 6월 ‘G20경호안전특별법’이 통과되면서 ‘10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예외적 시간’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서울에서 G20에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특히 ‘예외적 공간’인 코엑스 주변 2km는 사실상 ‘계엄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경호안전목적상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이유’가 있다면, 모든 사람들에 대한 검문, 검색, 출입통제의 조치가 취해집니다. 경찰에는 최고 수준의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상태이고, 이미 곳곳에서 폭발물 오인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딱 한 달 남짓이라고는 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이 크게 제한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완전 탈법적이고 위법적인 조치들이, ‘비상시’라는 이유로, ‘경호안전을 위한다는 목적’하에서는 합법적으로 행사될 수도 있습니다. 법을 만들면 합법이지요. 그래서 특별 한시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칼 슈미트였던가요? 그는 주권이란 결국 ‘예외상태에 대한 결정권’이라고, 주권자는 ‘나 이외에 법 바깥에 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이 순간 아주 극명해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런 권력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한에서, 우리는 그 말을 내뱉는 자를 우리의 주권자로, 우리가 복종해야 할 주권자로 승인하는 것이니까요.

<동아일보> 기사를 보니 이번 G20 회의기간에만 연인원 5만 명의 경찰이 투입될 것이라고 하는군요. 지난 번 캐나다 회의 때의 2. 5배, 그 이전 영국 회의 때의 무려 8.3배의 경찰력 투입이라고 하네요. 동아일보 기사를 직접 인용해보겠습니다. “한국은 역대 개최국과 달리 직업경찰 외에도 전·의경부대 등 시위 진압을 위한 별도의 상설 경찰부대가 200여 개 있다. 수십 년간의 시위 진압경험을 통해 쌓아온 ‘진압 노하우’도 장점으로 꼽힌다.” 무섭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이 기사 읽다가 감정이 참 묘했습니다.

군대도 투입되는 모양입니다. 본래 내부 치안은 경찰 몫이고 외부 국방은 군대의 몫이었습니다만, 이제 그 구분은 완전히 깨졌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이 구분이 깨졌을 때를 ‘계엄 상태’라고 불렀습니다. 군대가 치안에 나서는 행동 말이지요. 신문 기사에 따르면 군은 회의장과 각국 대표단 숙소, 이동로, 공항 등의 경비를 맡고 회의장 부군에는 40여개 부대 만 명 가까운 수가 배치된다고 합니다. 특전사요원들과 대테러부대 요원들이 비상대기를 한다는 군요.

이쯤 되면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G20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국가 축제라는데, 글쎄요, 축제는 축제인데 공안 축제인 것 같습니다. 얼마나 국민들이 줄 안 틀리고, 거리 청결을 유지하며, 경찰은 얼마나 시위 진압에 유능하고, 전 국민 중에 G20에 이견을 가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그야말로 대낮같이 환하고 잣대처럼 반듯한 사회라고 자랑하고 싶은 건가요?

공안의 논리가 한없이 방사되는 이 예외적이고 한시적이라는 시간 동안, 체제에 이질적인 존재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억압하는 온갖 조치들이 시험되고, 지구적 수준에서 공안당국의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새로운 기기가 시험되며(음향대포라 했던가요?), 사이버 공간에 대한 온갖 검열이 시험 가동되겠지요. 한시법이니 법령은 이달 15일이면 효력을 다할 겁니다. 하지만 이 예외적 시간에 성장한 공안 체제도 15일이면 효력을 다할까요? 공안의 이 정보통제네트워크와 하이테크 감시기술, 단 한 달 남짓 한시적으로, 서울이라는 예외적 공간에서 작동한 이 체제가 우리의 미래, 아니 이미 시작된 우리의 현재라고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구적 금융위기가 닥쳤고 문제 해결을 위해 세계 주요 국가들이 모이기로 했고 한국이 그 의장국이 되었다는 사실이 언뜻 아주 자랑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구적 삶의 위기를 만든 당사자가 누구인가요? 이번호 위클리에 글을 보내준 쿠리하라씨와 윤여일씨가 잘 지적하고 있듯이 사람들을 채무 경제 속에 집어넣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구조를 만든 소위 주요 국가들이 누구인가요? 여기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나오면 안 되는 겁니까? 한 해에 두 번씩 모여 첩첩 싸인 울타리 안에서 자신들끼리 비밀 회동을 하는 것을 나라의 경사요 잔치라고 불러야 합니까? 가난한 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지금 세계 질서를 좌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항의하는 것이, 정말 우리가 준비해두어야 했던 게 아닐까요?

지난 주말 수유너머의 한 회원이 G20에 항의하는 그래피티 작업을 했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검찰이 구속 영장까지 신청했다고 하지만 판사의 현명한 판단으로 일단은 풀려났다고 합니다. 길거리 포스터에 G20을 비꼬는 이미지를 붙인 것이 구속까지 각오해야 할 그런 일인가요? 정말 공포와 웃음이 함께 몰려옵니다. 웃기는 공포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가 한 그래피티 작업 사진이 트윗에 돌고 있습니다. 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위클리에 게재했으니 참고하세요. 간만에 통쾌했습니다. 낮은 그들의 시간이지만 그들이 밤의 웅성거림조차 막을 수는 없겠지요. 언제부턴가 공적 공간에서 추방된 대중들의 항의가 익명이 되고 웅성거림이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겨나는지 우리들의 권력자는 알까요?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도….

참, 번역 연재중인 <다가오는 봉기>의 게재를 잠시 중단합니다. 어느 출판사에서 판권을 가지고 있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또한 이 책이 곧 한국에서 출판될 거라는 소식도 함께. 저희로서는 워낙에 저자가 밝혀지지 않았고 책 내용 또한 텍스트가 유령처럼 퍼지기를 바라고 있어 번역을 해서 올렸습니다만, 책 판권만이 아니라 인터넷 유통에 대한 판권도 출판사에 있는 게 확인이 됐습니다. 출판사도 사정을 아는 터라 상황을 유연하게 판단하겠다고 합니다. 저희도 출판사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출판사 입장이 정해지면 그때 다시 독자여러분들께 알려드리겠습니다.

응답 2개

  1. 청안말하길

    문득 학교 다닐때 능력이 좀 안되어 보이는 반장이나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더 닥달하면서 다른 반보다 더 잘해야 한다고…우리는 완벽하게 준비를 해야한다고…무리수를 두던 기억들과 오버랩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요…그리고 몇 십년이 지난 기억들을 고스란히 떠오르게 하는 이 호들갑에 입안에 쓴 침이 고입니다.

  2.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MiTRa, MiTRa and Mojito (모히또), Progress_News. Progress_News said: [수유너머] G20, 공안 축제: 대체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경찰들은 눈에 불을 켠 채 길거리를 감시하고 방송 프로그램들은 온통 G20 특집입니다. 텔레비전, 신… http://bit.ly/9SqseY http://suyunomo.jinbo.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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