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토벌은 해버렸는데 빨갱이는 어디에 있는가

- 고병권(수유너머R)

rusin

1.

칼럼을 쓰며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을 삼가고 공부나 좀 하자는 결심을 하던 터였다. 하지만 입 열고 펜 드는 것도 습관인지라 꼭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위클리 수유너머>의 개편을 맞아 고정 칼럼진에 합류하기로 했으니, 마음으로는 매듭을 묶으면서도 행동으로는 그것을 다 풀어버리는 꼴이 되었다.
무슨 글을 쓸까. 그래도 하는 짓이 책 읽는 일이니, 뭔가를 써야 한다면 공부삼아서 내가 읽은 글들을 소개하는 게 어떨까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주제는 따로 있지만, 나는 요즘 머리가 막힐 때 종종 중국 작가 루쉰의 글들을 읽는다. 앞으로 이 지면을 빌어 그 글 몇 편을 소개해 볼까 한다. 최근의 세태에 대한 내 생각들 몇 가지와 묶어서 말이다.
이번에 내가 고른 글은 <이런 ‘빨갱이 토벌’>인데, 루쉰이 1926년 4월 10일에 쓴 글이고, 나중에 <<화개집속편>>에 수록되었다. 이 글은 3주 전쯤 일어난  ‘3-18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국은 당시 내전 중이었다. 국민군은 봉천 지역의 군벌을 공격했는데 그 와중에 봉천군을 지원하던 일본군함과도 충돌하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이 충돌을 트집 잡아 북경의 정부에 천진지역의 군사방위시설 해제를 요구했다. 이에 중국인민들은 그 요구가 주권의 침해라며 항의했다. 천안문 광장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고 일부 사람들은 집정부(執政府) 앞에서 정부에 청원하는 데모를 했다. 이때 군대가 발포를 해서 47명이 사망했다.

 

2.
글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참고로 아래 글은 다케우치 요시미가 묶어내고 한무희가 옮긴 <<노신문집>>(3권, 일월서각)에서 가져온 것이다).

북경과 천진 사이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자주 일어나 많은 사람이 전사했다. ‘빨갱이 토벌’을 하기 위해서다. 집정부 앞에서는 일제 사격이 있었는데 청원 데모대 47명이 사살되고 1백여 명이 부상했으며 ‘폭도의 지도자’인 서겸(徐謙) 등 다섯 사람에게 체포령이 떨어졌다. ‘빨갱이 토벌’을 하기 위해서다. 봉천군(奉天軍)의 비행기가 세 차례나 북경 상공에 나타나 폭탄을 떨어뜨려 부녀 2명을 죽이고 붉은 털을 한 개 한 마리를 다치게 했다. ‘빨갱이 토벌’을 하기 위해서다.
북경과 천진 사이에서 전사한 병사들과 북경에서 폭사한 두 여자와 다친 붉은 개가 ‘빨갱이’인지 아닌지를 아직도 ‘발표’가 없기 때문에 비천한 백성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집정부 앞에서 사살된 47명에 대해서는 첫 ‘발표’가 ‘오발’이라고 되어 있었다. 북경 지방검찰청의 공식 발표도 “이번의 청원 집회는 그 목적이 온당하며 과격한 행위도 없었다”는 대목이 있다. 그에 따라 국무원 회의도 ‘충분한 보상’을 하기로 결의했다. 그렇다면 서겸 등에 의해 지도된 ‘폭도’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말인가? 그들은 총탄을 피하는 부적이라도 갖고 있었다는 것인가? 요컨대 ‘토벌’은 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빨갱이’는 어디에 있는가?

318demo

3-18 사건

3.
국정원에서 이석기를 총책으로 하는 ‘혁명조직’을 적발하고 그들에게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을 달았을 때,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죄목의 이유로 소위 ‘녹취록을 깠을 때’, 처음에는 녹취록 내용 때문에 웃었다. 특히 장난감 가스총 운운하는 대목에서. 국정원과 혁명조직, 둘 중 하나가 농담을 오해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혁명조직으로 간주된, 통진당 당원들이 농담으로 한 말을 국정원이 진담으로 생각했거나, 누가 들어도 농담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통진당 당원들은 진담으로 했거나. 그러나 어느 경우든 별반 다르지 않다. 즉 웃어넘길 일에 정색했든 정색했으나 웃겼든 사태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그런 걸로 내란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 결론이 발표되지 않았으므로 ‘비천한’ 백성으로서는 아직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이미 토벌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빨갱이 없는 빨갱이 사냥인가. 대학에서 맑스의 <<자본>>을 강의하던 강사는 ‘자본주의를 부정한 반미주의자’로 고발되었다. 그것도 그의 학생에 의해서. 게다가 집권당의 실세 의원은 촛불시위와 한진중공업, 현대자동차의 파업을 공권력이 제압했어야 한다며, 법질서를 어긴 시위대는 사회 전복 세력이라고 했다.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들을 종북과 빨갱이로 몰아 국가정보기관이 인터넷에서 ‘애국적’ 토벌전쟁을 벌이는 때라면, 그리고 촛불에서 사회전복을 읽는 감성이라면, 가스총에서 내란음모를 느끼는 것도 가능할 터이다.
어떻든 토벌이 시작되었으니 조만간 빨갱이가 나타날 것이다. 언제 쯤 얼마나 많은 빨갱이들을 보게 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빨갱이가 아니라 사냥꾼에 달려 있다. 사냥을 멈추는 것은 사냥꾼이지 사냥감이 아니다. 사냥을 해야 하므로 사냥감이 필요하듯, 공안은 빨갱이를 필요로 한다. 공안이 빨갱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공안은 공안을 꿈꿀 뿐이다. 우리도 언젠가 문득 물어볼지 모르겠다. “토벌은 해버렸는데 빨갱이는 어디에 있는가”하고.

응답 1개

  1. 여하말하길

    그래서 내가 특강을 고민 중입니다. 전주평생학습센터가 있는데(공공기관이지요.^^), 겨울에 [자본] 강좌를 열어볼까, 싶어요. 강좌제목을 뭘로 할까요? ‘빨갱이와 함께 하는 시민강좌’? ‘자본과 함께 빨갱이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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