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살아갈 것인가, 죽어갈 것인가

- 고병권(수유너머R)

지난주 울진에 있는 원전 4호기의 증기발생기에서 무더기 균열이 발견되었습니다. 4천 개에 가까운 전열관에서 균열현상이 나타났습니다. 3호기의 증기발생기 역시 비슷한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기가 막힌 것인 원전을 관리 감독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태도입니다. 이들은 처음에 이번 사태를 관이 얇아진 현상, 즉 단순 마모인 것처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관들이 마모가 아니라 균열 상태에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한수원이 책임 모면을 위해 꼼수를 쓴 정황도 있습니다. 증기발생기를 통째로 교체하면 비용이 많이 들고 예상수명보다 짧은 교체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테니, 전열기를 통째로 교체하는 대신 문제의 전열관만 폐쇄하는 ‘관막음’을 했왔답니다. 사실 일정한 ‘관막음 허용율’을 넘으면 증기발생기를 교체해야 하지만 ‘관막음 허용율’ 자체를 계속 높여서 교체를 늦춰온 겁니다.

언젠가 ‘탈원전운동’을 하는 친구가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원전을 폐쇄시키는 데는 대단한 이데올로기도 필요 없고 엄청난 과학 지식도 필요 없다고. 단지 사실들만 공개해도 충분할 거라고. 일본에서도 비슷한 문제제기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과 관련해서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은 정보 유출을 극도로 통제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민들의 생명과 관계된 일인데 시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정보를 은폐하고 심지어 일부 왜곡했다고 합니다.

원전 관련 정보의 은폐보다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원전에서 전기를 뽑아내는 것만 알 뿐 거기서 생겨나는 위험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두 달 전 핵폐기물 전문가인 케빈 캠프(Kevin Kamps)의 연설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가 얼마 전 당국자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하더군요. 현재 미국 내 핵폐기물 시설의 저장용량과 안전성에 문제가 나타나 당국자에게 따져 물으니 다른 폐기장소를 찾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세계는 공식적으로 핵폐기물에 대한 근본 해결책이 없으며, 그냥 안전하게 보이는 곳에 ‘묻어두는 것’ 뿐이라는 겁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매립지는 정말 ‘안전한 곳’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반대가 적은 곳(한국에서는 경주가 선택되었죠?)이고, 과거에 ‘안전해 보였던 곳’일 뿐이라고 하더군요. 미국만 하더라도 최대 매립지인 유카(Yucca) 산에,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지하수가 발견되었고 지진 활동도 일부 포착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번 노원구에서 꽤 높은 수준의 방사능이 측정되어 서울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습니다. 특별한 방사능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일반 도로에서 방사능이 검출된 겁니다. 그런데 끔찍하게도 그 원인을 모릅니다. 방사능이라는 게 원자로 안에 잘 갇혀 있다가, 우리가 도저히 닿지 않는 어디 먼 곳에 매장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바로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는 모릅니다.

현재 많은 나라들에서 원전 증설을 포기하고 가동 중인 원전도 점차 멈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땅덩어리도 작은 나라 한국에는 무려 21개의 원전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전밀집도가 세계 최상위권인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현재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2024년에는 34개의 원전을 갖게 되면서 명실상부 원전밀집도 세계1위에 올라서게 됩니다. 원전 자체의 기술적 위험이나 폐기물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지진 등의 자연 재해, 거기다 한반도의 군사적 위험까지 고려한다면(원전에 대한 국소적 공격도 원폭의 효과를 낼 겁니다), 정말 ‘죽지 못해 안달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 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당장에 돈만 벌 수 있다면, 위험은 은폐하고 매장하고 미래에 떠넘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를 둔 나라입니다(왜 지난호 주제인 한미FTA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네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전 없이 살 수 있냐고.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어렸을 때부터 질리게 들었던 말입니다. 하지만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 중에 우리처럼 원전을 마구 지어대는 나라는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원전의 불가피성을 추인하면서 사실은 원전에서만 가능한 삶의 형식을 발전시켜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원전의 대안을 생각하기는커녕 원전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10월 말 뉴욕에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일본의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뉴욕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위클리수유너머>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14’). 그때 일본 <현대사상>의 편집자였던 이케가미씨는 ‘원전 없이 살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건 문제가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일본 대중들은 지금 거기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대중들이 나서서 원전을 폐쇄시키고 있습니다. 밤에 조금 어둡다는 것, 몇몇 가전제품을 못 쓴다는 것, 그건 문제도 아닙니다.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정말 걱정인 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간다는 겁니다. 내부피폭이 문제입니다.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먹는 음식을 통해 우리는 피폭될 것이고 수십 년 간, 우리 자신과 아이들은 ‘암’ 등에 시달리며 죽어갈 겁니다. 우리는 죽음을 낀 채로 일상을 살게 될 겁니다. 과거 우리가 원전을 용인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일본의 주부들은 직접 측정기를 들고 다니며 식재료의 방사능 수치를 재고 아이들이 자주 다니는 곳의 방사능수치를 체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국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로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한다고도 합니다. 정부와 언론, 전문가들에게 삶을 맡겨 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서울 노원구에서 방사능을 측정했던 것도 ‘차일드 세이브’라고 하는 단체의 평범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이제 시민들이 삶을 수호해야 할 때인가 봅니다. 원전을 국가의 전략적 수출상품이라고 규정하는 나라, 시민의 삶을 수익모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 삶이 얼마나 큰 위험에 처해 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갈 시간,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시간을 ‘미래’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에 우리 시대의 폐기물을 묻어두었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은폐하고, 미루고, 심지어 문제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런 대책 없이 그냥 모든 것을 미래에 묻어둘 뿐입니다. 이제 그 미래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미래, 그것은 우리가 살아갈 시간인가요, 죽어갈 시간인가요.

응답 2개

  1. 여하말하길

    1만년, 현재까지의 의학에 따르면, 방사능이 인체에 무해한 정도로 감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한국은 생긴지 60년 남짓, 미국은 200년 남짓… 황하문명부터 따져도 4천년 정도… 신석기부터 따져야 가까스로 채우겠네요, 만년을… 이러다가 신석기로 돌아갈 수도 있겠네요… 그게 나을 지도 모르죠. 그럴 수라도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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