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런던의 뜨거운 겨울

- 고병권(수유너머R)

영국 집권 보수당의 당사 건물의 유리를 부수고 있는 시위대(11월 10일)

지난 11월 10일 런던에서 그동안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무려 5만에 이르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의 연합 정부가 내놓은 대학등록금 인상과 재정지원 감축 방안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아일랜드와 그리스가 무너진 이후 이제는 스페인과 영국 차례가 아니냐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처럼, 2년 전 세계를 큰 위기에 빠뜨렸던 금융위기는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부는 재정이 악화되자 복지를 대폭 삭감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에 따른 재정 적자 비용을 납세자들에게 떠맡긴 셈인데, 무엇보다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금이 크게 삭감되었다. 최근 의회가 통과시킨 정부 재정삭감안에 따르면 대학에 대한 국고보조금은 80% 정도 줄어들 것이고, 그 대신 대학의 등록금은 2-3배 인상될 것이다. 이에 학생들은 이미 수십 개의 대학을 점거해서 농성중이며, 수천 명이 참여한 시위가 런던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일반 복지예산 삭감과 관련해서 지역 주민들이 시청으로 몰려간 항의한 일도 일어났다.

금융위기가 정부 재정적자를 매개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인데, ‘미래를 지켜야 한다’는 가난한 이들의 구호가 말 그대로 영국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아래는 영국의 여러 대학 교수들이 연서해서 <가디언>지에 게재한 시위 지지 글, 그리고 이탈리아 미디어 이론가이자 활동가인 비포(Bifo)가 영국 런던 시위를 본 뒤 쓴 글이다. -(편집자)

우리는 등록금 인상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싸울 것이다

(*다수의 교수들이 영국 신문 <가디언>(2010. 11. 22)에 연서해서 게재한 글)

우리는 지난 11월 10일 학생들과 직원들이 보여준 당당한 시위에 이어 이번 수요일에 예고된 등록금 관련 시위를 지지한다. 우리는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비판 교육에 대한 파괴와 브라운 리포트(Browne report)에 성스럽게 모셔져 있는 시장에 의한 교육의 대체를 절대 거부한다. 우리는 우리의 일자리를 지키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우리를 고등교육으로 이끌어준 가치들, 사회에 교육이 미치는 막대한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그 가치들이다. 예술과 사회과학, 인문학에 대한 기금 지원을 대폭 삭감하려는 연합정부의 계획은 한 세대의 예술가들만이 아니라(11월 15일, 리포트),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상가들의 한 세대를 사라지게 만들 위험이 있다.

현재의 등록금 인상안은 고등 교육 영역에서 노동하는 사람들(그리고 재정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납세자의 상당수)을 추방하는 효과를 가질 것이다. 저소득층교육보조금(EMA)과 성인학습기금(ALG)을 폐지하는 것은 저소득층에게 교육에 대한 접근권을 계속 보장할 것이라는 연합정부의 주장이 거짓임을 보여준다. 저소득층 학생들은 16세 이후 고등교육에 진학하는 데 필요한 자격을 보장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 연합정부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으로 추동된 계급 규칙을 만드는 데 어떤 위임도 받은 바 없으며, 따라서 학생들의 분노는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과학과 인문학, 그리고 예술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더 고등한 교육, 더 심도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대학들에서 그들과 함께 사울 것이다.

새로운 런던 덥스텝 (The New London Dubstep)

-Franco Bifo Berardi (2010. 12. 10)

(*주) 덥스텝은 영국 크로이던 지역에서 생겨난 전자 댄스 음악의 한 장르인데, 비포는 크로이던 덥스텝처럼 런던 덥스텝이 생겨났다고 말하고 있다.)

학생들의 강력한 시위가 일어났다. 수년 동안 우리가 도무지 본 적이 없는 규모다. 정말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군중들은 찰스와 카밀라 왕세자 부부가 탄 차를 둘러싸고 문을 걷어찼다. 이것도 사실이지만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경찰의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대응했다. 그들은 재무부를 공격해서 아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의 진정한 새로움은 음악적인 것이다. 가장 빈곤한 런던의 남서지역에 있는 펙함(Peckham)과 크로이던(Croydon)의 버려진 창고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던 그런 음악의 깊이 있는 리듬과 독창성에 새로움이 있는 것이다. 새로움, 과거의 시위보다 특히 이번 시위에서 두드러진 새로움은 마침내 잉글랜드의 학생들이 리더십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번 시위는 지식인들이나 학자들, 전문적 정치가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위(Avant Garde)는 창을 부수고 차를 불태우면서 덥스텝(Dubstep)을 춘다. 전위는 검고 어리다. 그들은 사납게 소리를 지르지만 또한 잃을 것은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영국의 대학생들은 책처럼 생긴 판지로 만든 방패를 들고 공격에 나섰다. 이탈리아 대학생들이 그렇게 했듯이. 멋지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 극렬한 시위, 경찰과 대결하는 이 전선의 선두에 있는 이들이 런던의 남서쪽에서 온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에게 쓰레기(scum) 취급을 받았던 이들은 어떻게 말을 탄 경찰들에 맞서 물러서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지, 아니 최소한 그렇게 서 있어야 했는지를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보여주었다. 그들은 확성기의 볼륨을 키웠고 벤치들에 불을 붙였으며, 나무판자에 불을 붙여 경찰을 향해 던졌다.

이 점이, 바로 이 점이 새로운 것이다. 지금까지 박탈당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부르주아 부모들이 품은 야망에 놀아나면서, 통합을 간절히 바라면서, 자신들만의 게토에서 지내왔다. 하지만 이제 모든 상황이 변해버렸다. 많은 이들은 후드로 자기 얼굴을 가렸었지만, 이제 그들 대부분이 자기 정체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비가시적이지 않다. 그들은 이제 그렇게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영국과 유럽 곳곳에 나타난 이 새로운 봉기자들에게 우리는 배울 것이 참 많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제 때가 온 것이다: 길거리 범죄의 선상에 있던 이 젊은이들이 영국 운동의 전위가 되었다. 나폴리의 부랑아들과 문제아들이 이탈리아 운동의 전위가 된 것처럼 말이다.

*주) 이 글은 Anarchist news dot org에 게재된 비포(Bifo)의 글(http://anarchistnews.org/?q=node/12906)을 옮긴 것이다. 참고로 비포(Franco Berardi, 별칭 Bifo)는 이탈리아의 미디어 이론가이자 활동가이며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아우토노미아 운동에 참여했고, 최초의 자유 해적 라디오 방송국인 ‘라디오 알리체(Radio Alice)’에 스텝으로 참여한 바 있다. 잡지 A/traverso(1975-81)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아 프랑스로 도피했을 대는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와 공동작업을 하기도 했다. 현재는 밀라노의 아카데미아 디 벨 아르띠(Accademia di belle Arti)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사회사를 강의하고 있고, 잡지 Derive Approdi를 공동 발간하고 있다.

* 영국의 상황을 보다 잘 전하기 위해 일부 영상을 소개합니다.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번역문을 함께 올립니다. 홈페이지에서 더 많은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번역: 소하영)

11월28일 저항 연방 설립 회의에서
Video from the Coalition of Resistance Founding Conference(원문링크)

연설자: 로키

왜 그들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대학 학비로 9 그랜트를 내지 않는가. 니클러씨가 권력을 잡은 후에 꾀하려던 변화는 학비에 관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일자리, 이득, 유럽 통화 협정의 축소다. 동시에 이 나라는 아프가니스탄을 점거하고 있으면서 이스라엘과 중동에 지원하고 있다. 우리(저항 연방)는 아프가니스탄과 전쟁하는 정부와 싸우기 위해서 결합할 것이다. 지금 밖에서 학생들이 하고 있는 일은 멋지다. 우리는 그들을 마음을 다해 도와야 한다.

12월 1일 SOAS 학생 점거 현장의 켄 리빙스턴
Ken Livingstone at the SOAS student occupation(원문링크)

이번 점거 사태는 나를 40년 전으로 돌아가게 한다. 베트남 전쟁과 인종학살에 반대하는 운동에 나도 참가했었다. 그때 우리 세대는 점진주의 좌파와 진보적인 정치를 생각했다. 복지가 구축되고 확장될 거라고 생각했다. 슬프지만 우리는 틀렸다.

가장 큰 질문은 우리가 연방 정부의 공공 서비스의 비용을 어떻게 지불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연방 정부에 대해선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빚을 갚기 위해 이렇게 거대하게 재정을 삭감하는 예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지금이 위기라는 말은 쓰레기다. 정직하지 않은 정직하지 않은 미디어의 책임도 크다. 사람들을 패닉상태로 만들고 개인들 스스로를 빚지게 만든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들어가는 돈을 모두 교육에 집중한다면 모두가 무상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이 가능하다. 정부는 교육에는 돈을 더 쓸 수 없다고 말하면서 미국의 제국적 모험에는 지원한다.

나는 두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모든 개개인이 그들이 버는 것에서, 그리고 그들이 버는 곳에서 세금을 내야 한다. 모든 회사는 자기 이윤에 대한 세금을 그 이윤을 창출하는 국가에 내야 한다. 변화를 위해서 항의하는 것을 멈추지 말라. 우리가 했던 실수를 다시 하지 말라.

12월 9일 “야비한 정당”에 반대하여 점거 운동을 벌인 캠든 여학교
Camden School for Girls occupies against the “Nasty Party” (원문링크)

뉴스 프로그램에서 캠든 여학교 학생 소피(17)와 노먼 램이 논쟁하는 동영상.

소피: 우리 세대는 정부에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계획에 우리는 완전히 반대한다. 다음 투표에서 당신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학생들의 표를 잃었다. 당신들은 야비한 정당이다. 우리는 시위와 점거를 계속할 것이다.

노먼 램: 사람들이 왜 걱정하는지 이해한다. 하지만 사실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공략하는 대상은 가난한 학생들이다. 학비를 선불로 내지 않아도 되고, 나중에 지불할 능력이 생겼을 때 학비를 갚을 수 있도록 하면, 가난한 학생들에게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이다. 지금은 가난한 학생들의 비율이 10% 이하이지만 4-50%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그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변호사, 의사와 같이 고소득 직종에 취직할 수 있게 된다.

응답 2개

  1. 말하길

    글 잘 보았습니다..
    얼마 전에 청강한 수업에서 영국에 자녀가 유학가 있는 어머니께서 현재 영국에 대한 심각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는데..
    상황이 정말 안 좋더군요.
    이라크 전쟁에 관한 내용도 나오고..

  2. 말하길

    글 잘 보았습니다..
    얼마 전에 청강한 수업에서 영국에 자녀가 유학가 있는 어머니께서 현재 영국에 대한 심각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는데,
    사실 그대로를 넘어 생각할 지점을 짚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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