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세상 모두로 하여금 그저 알게 하라

- 고병권(수유너머R)

작년 7월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에 ‘1급비밀 미국(Top Secret America)’이라는 기획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대테러, 국토안보, 정보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정부기관이 1271곳에 이른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안보 영역에도 시장(?)이 형성되어 거의 2천 개에 이르는 민간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군요. ‘탑 씨크릿’으로 불리는 1급 비밀을 다루는 사람만 85만 여명. 미국이 그야말로 거대한 정보 제국이 되었답니다.

며칠 전에도 <워싱턴포스트>에 비슷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미국정부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기관 4천여 곳을 동원해서 테러 방지를 이유로 수천 명의 민간인들을 사찰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세계 최강의 나라에 산다는 것, 세계 최고 수준의 안보 수단을 가진 나라에 산다는 건 그런 것인가 봅니다. 최고로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일이 나라 전체를 최고의 감옥으로 만드는 것이라니. (사실 미국을 걱정할 때가 아니죠. 거기 위정자들은 테러를 이유로 나라를 감옥으로 만들었지만, 여기 위정자들은 전쟁을 이유로 나라를 대형 참호로 만들고 있으니까요.)

어떻든 정보가 권력이고 상품이라는 건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음지의 국정원에서부터 불타는 증권시장까지, 모두가 정보 수집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권력과 부의 획득에서 정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소위 지식정보사회라고 하나요?), 사회 전체적으로 정보의 생산과 유통, 축적에 대한 국가 및 계급의 독점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한미FTA 협상 때도 봤지만 정부의 테크노크라트들은 고급정보들을 기밀이라는 이유로 독점하고, 기업과 언론은 내부 거래 정보를 활용해서 막대한 부를 챙깁니다. 중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통로에서 일반 대중들, 특히 가난한 자들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보가 그 자체로 권력이고 상품이라는 건 엄밀히 말해 틀린 말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정보가 권력이고 돈이기에 정보에 대한 독점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 진실은 반대입니다. 정보의 독점이 일어나기에 그것이 권력이 되고 돈이 되는 거지요. ‘정보(information)’라는 말에는 ‘알린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권력자와 자본가는 정보를 더 이상 정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다시 말해 그것을 자신에게만 알려진 비밀로 만듦으로써, 정보를 권력과 돈으로 변질시킵니다.

이 점에서 작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위키리크스’의 폭로는, 그 설립자에 대한 온갖 비방과 공격에도 불구하고(설령 그 악의적 비방이 사실로 밝혀진다 해도) 엄청난 의미를 갖습니다. 위키리크스 사이트(mirror.wikileaks.info)에 들어가면 머리에 이런 문장이 쓰여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정부와 기관들의 비윤리적 행위를 폭로하고자 하는 모든 나라의 사람들을 돕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정치적 타격을 가하고자 합니다.”

그 타격이 과연 세기는 센가 봅니다. 미국방부가 출간한 어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방부는 이미 2008년에 정부와 기업의 (대부분 추악한) 비밀 정보를 온라인에 올리는 <위키리크스>를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적의 리스트에 올렸다고 합니다(<뉴욕타임스>, 2010. 3. 17). 미국이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손으로 작성한 정보, 아무런 해석도 덧붙이지 않은 채, 미국의 해석만을 담은 그 정보들을 단지 공개한 것뿐인데, 그로 인해 미국 안보가 위협받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세상에 자기 모습을 비춘 거울을 ‘적’이라고 부르다니요. 어이가 없습니다. 미국은 최강대국입니다. 당연히 세상의 그 누구도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미국을 뒤흔들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미국뿐입니다. 그의 추함이 그의 강함을 무너뜨리는 거지요. 세상 모두를 비밀리에 지켜보는 그 권력자를 우리는 단지 지켜봤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사실을 못견뎌 하는 군요.

세상 모두로 하여금 그저 알게 하라! 세상의 어떤 권력자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 거기서 나옵니다. 권력자와 자본가는 정보를 숨김으로써 자기 힘을 과시합니다. 그런데 위키리크스와 같은 폭로 사이트는 자료를 인터넷 상에서 여러 번 돌려 흔적을 없앱니다. 즉 정보의 출처를 만인화함으로써 숨습니다(대중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식별불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방식입니다.). 독점을 통해 얻는 힘과 정보 개방을 통해 얻는 힘, 숨어서 과시하는 힘과 드러냄으로써 숨는 힘, 정보를 둘러싼 민주주의 전쟁이 마침내 개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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