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혁명가와 도적과 노예의 파괴에 대하여

- 고병권(수유너머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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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최초의 영화는 영화관에서 본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적 나는 꽤나 시골에 살았던 모양이다. 예닐곱 살 무렵이 아니었나 싶은데, 어른들이 공터에 울타리를 만들고는 검은 휘장을 둘렀다. 그날 밤에 영화를 본다는 거였다. 무슨 식민지 시절 이야기도 아니고 70년대 후반이니 영화가 사람들에게 대단한 신문물은 아니었겠지만, 어떻든 나 같은 어린애나 일부 어른들에게는 그것에 필적하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가설극장을 세우는 일에 참여했던 작은 아버지 덕택에 나는 초대권을 얻었고, 저녁 어둑해졌을 때 풀밭에 앉아 형들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닐곱 살 먹은 아이가 볼 영화는 아니었지만, 어차피 ‘작품’이 아니라 ‘영화’라는 장르를 ‘구경’하는 것이었기에, 동네 어른들은 나를 아주 좋은 자리에 앉도록 배려해주었다. 그 영화의 제목도, 감독이나 배우 이름도 모르지만, 몇몇 장면들은 기억하고 있다. 백사가 어떤 남자를 사랑했고, 어떤 스님이 도술을 부렸고, 물난리가 났다는 것 등. 확실치는 않지만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본 결과(특히 영화 포스터를 볼 때) 그것이 1978년에 나온 <백사전>이라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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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루쉰의 글 <뇌봉탑의 도괴에 대하여>(1924)를 읽다가 대략 35년 전쯤 내가 본 영화가 중국의 ‘백사전설’에 근간을 두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허선이라는 사람이 백사와 청사 두 마리의 뱀을 살려주었는데, 백사가 은혜를 갚기 위해서 여자로 변신해서 허선에게 시집을 왔다고 한다. 청사 역시 그녀의 하녀로 따라와 허선을 도왔다. 그런데 법해라는 선사가 허선의 얼굴에 드리운 요기를 발견하고 그를 금산사에 숨긴 모양이다. 백사는 남편을 찾아 금산사에 오면서 홍수를 일으켰다. 그러나 백사는 법해의 책략에 속아 작은 사발에 갇혔고, 법해는 사발을 땅에 묻어 버렸다. 그리고 그 위에 ‘뇌봉탑’을 세웠다고 한다.

루쉰의 글 <뇌봉탑의 도괴에 대하여>는 중국의 ‘서호10경’이라는 뇌봉탑의 붕괴 소식을 들은 후의 짧은 감상을 적은 것이다. 여기서 루쉰은 쓸 데 없는 참견으로 허선과 백사의 사랑을 망쳐놓은 백해를 책망했다. “승려는 원래 그 나름으로 독경에 전념하면 된다. 백사가 스스로 허선에 반하고 허선이 사람으로 화한 그녀를 아내로 삼는 것이 남에게 무슨 관계가 있는가? 부질없이 불경을 내던지고 남의 일에 나서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는 것이 질투가 나서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쓸 데 없는 참견으로 둘의 사랑을 망친 법해에게 옥황상제가 벌을 내리려 하자, 법해는 게의 딱지 속으로 도망쳤는데, 다시는 거기서 나오지 못해 지금도 거기 갇혀 있다고 한다.

2.

어릴 적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서두가 너무 길어져버렸는데, 사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글은 <다시 뇌봉탑의 도괴에 대하여>(1925)이다. 앞서 말한 <뇌봉탑의 도괴에 대하여>를 발표한 3개월 후에 루쉰이 발표된 글이다. 앞서 발표한 글이 뇌봉탑의 전설을 인용해서 ‘쓸 데 없는 참견’에 대해 한마디 한 것이라면, 나중에 발표한 글은 뇌봉탑의 붕괴에서 떠오른 ‘파괴’에 대한 단상을 적은 것이다.

당시 뇌봉탑 붕괴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것은 항주 농민들의 미신적 행동이었다. 탑신의 벽돌을 집에 두면 평안해진다는 미신 때문에 농민들이 벽돌을 조금씩 떼어갔다는 것이다. 너도 나도 조금씩 조금씩 떼어갔는데 이런 ‘인화작용’이 ‘풍화작용’보다 빨리 그 탑을 무너뜨린 셈이다. 루쉰은 아주 샘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디어디 ‘10경’이나 ‘8경’이니 하는 식으로 이름붙이기를 좋아하는 중국 사회의 병에 한방 먹인 사건이다. 뇌봉탑이 무너졌으니 이제 ‘10경’은 ‘9경’이 된 것 아닌가. 하지만 ‘10경 병’이 그렇게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은 루쉰도 잘 안다. ‘10경’은 또 만들어질 것이고, 뇌봉탑이든 뭐든 다시 올라갈 것이다.

물론 루쉰이 문화재 보존에 대해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혁이든 혁명이든, 낡은 것들을 뜯어고치려고 할 때, 우리가 혁명가(혁신적 파괴자)와 도적, 노예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새로운 사원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낡은 사원을 부수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우리는 ‘건설 없는 파괴의 무익함’에 대해 듣는다. 당신은 ‘기와장만 널린 허허 벌판’을 원하는가. 모든 것을 파괴하기만 한다면 어떻게 새로운 건설이 있을 수 있는가. 듣고 보니 이것도 그럴 듯하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자는 낡은 것을 대강만 파괴해야 하는가.

루쉰에 따르면 그것이 중국이다! “루소, 슈티르너, 니체, 톨스토이, 입센 … 그들은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청소까지 했다. 돌격해 가며 발에 걸리는 오래된 궤도이건 그 파편이건 모조리 쓸어냈다. … 그와 같은 인간이 중국에는 없다. 설사 있다고 해도 사람들이 뱉은 침 때문에 익사해버릴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는 비극도 희극도 없다. “비극은 인생의 가치있는 것을 파괴해 보이는 것이며 희극은 인생의 가치없는 것을 찢어 없애 보이는 것”인데, 어떤 파괴도 불철저한 중국에서 어떻게 그런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저 비극적이지도 희극적이지도 않은 인물만이 무대에 서는 것이다.

만약 혁명가가 낡은 것을 대강만 파괴한다면 어찌 될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실상 그가 파괴하는 것은 ‘새로운 것의 새로움’이다. 즉 혁명은 외양에서만 일어나고 슬로건에서만 일어나고 집권세력의 얼굴에서만 일어나고 말 것이다. 거죽에서 일어난 요란한 혁명 아래서는, 부서진 조각들을 모아 낡은 것들을 재건하는 일이 진행된다.

그렇다고 중국에서 가차 없는 파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혁명가가 아니라 도적들에 의해 일어났다. 외부의 적이나 내부의 흉폭한 강도들은 여러 번 중국을 파괴했다. 새로운 것을 건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존의 것을 약탈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나라가 ‘기와조각들이 널린 들판’만을 남길 정도로 파괴되었는데도 중국인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장에는 공포에 떨지만 결국은 그 적을 주인으로 모시거나 아니면 주인으로 모셔낼 다른 이를 찾아 내 자기의 부서진 기왓장 속에 있는 재료로 낡은 관습을 수선한다.”

그런데 도적의 파괴만큼 악질적인 것은 노예의 파괴이다. 외적의 침입이 없는 태평한 때에도 파괴가 일어난다. 앞서 뇌봉탑의 붕괴가 그것이다. 탑에서 벽돌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 도서관의 책에서 삽화가 하나씩 잘려나가는 것. 공동의 것을 조금씩 조금씩 떼어가는 것이다. 혁명가처럼 낡은 것을 일소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강도처럼 공공연하게 약탈하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게, 아주 작은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슬금슬금 상처를 입히는 것. 공동의 것인 탑은 사라지고 사람들에게는 그저 한 장의 벽돌만 남는 것. 루쉰은 그것을 노예적 파괴라고 불렀다.

그래도 민중들의 좀도둑질은 귀여운(?) 축에 든다. “날마다 중화민국의 기둥과 초석을 빼어내 가려고 하는 노예들이 얼마나 있는가?” 외적이나 길거리의 강도는 우리를 공공연하게 약탈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솔직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 공동의 재산을 그럴듯한 명분을 붙여 뒤에서 빼내어가는 나라의 도둑놈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악랄한 파괴자들이다. 한 사회가 이런 파괴를 당하면 우리 공동의 ‘뇌봉탑’은 언제 누가 그랬는지 모르게 사라질 것이다. 외적에 침략을 당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어느 날 우리에게 남은 것이 ‘기왓장이 널린 허허로운 들판’ 뿐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루쉰은 말했다. 슬퍼해야 할 것은 ‘기왓장이 널린 허허로운 들판’이 아니다. 진짜 슬퍼해야 하는 건 들판에서 그 조각들을 모아 낡은 것을 재건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다시 낡은 것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이야말로 슬프다. 우리는 혁신적 파괴자, 즉 혁명가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를 알아보려면 우리는 무엇보다 그를 도적이나 노예와 구별해야 한다. 앞에 내세운 이상이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답다 해도 그의 언동이 공동의 것을 사유의 것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 놈은 도적놈이고,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그 놈은 노예이다. 그것이 루쉰의 구별법이었다.

3.

덧붙일 것도 없는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철도 민영화[사유화]의 움직임이 딱 그렇다.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운 논리라 해도, 그러니까 철도의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재정을 건전하게 만들겠다는 아름다운 선동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공동의 것을 사유화하는 움직임을 선동하는 것이라면, 그 놈은 도적놈이고, 눈앞의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거기에 협력하는 놈이 있다면, 그 놈은 노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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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1개

  1. 여하말하길

    그런 점에서 사대강이 운하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삽질=판다는 게 중요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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