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뒤늦은 소개

- 고병권(수유너머R)

1.

그는 학인이었습니다. 2009년 수유너머의 <대중지성>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1년간 맑스도 읽었고 스피노자도 읽었습니다. 벤야민도 읽었고, 베르크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양명도 읽었지요. 처음엔 회사일 때문에 지각과 결석이 다른 이들에 비해 잦았습니다. “회사원인 채로, 농부인 채로, 학생인 채로, 예술가인 채로 지식을 생산하고 지식을 흘러넘치게 하려는 연구실의 활동이라는 말에 무작정 덤볐는데 사실 만만치 않더라구요.” 때로는 강의가 끝나고 프로그램 운영을 맡은 선생님과 여러 복잡한 사정(?)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쳇바퀴처럼 회사와 집을 무의미하게 오가는 생활에 회의를 느껴 뭔가 도전하다가 다시 회사와 집안일을 핑계로 그 도전을 포기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거기서 벗어나겠다고 왔지만 거기를 다시 포기의 구실로 삼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도 그러려니 했는데, 그는 한마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였습니다. 배움을 포기하는 사람이 될 거라는 제 예측은 틀렸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를 통해 배움을 찾는 끈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소혜낭자. <전습록>을 보면 어리숙한 질문이나 견해로 양명에게 타박을 받는 소혜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소혜는 아이러니하게도 배움이 없는 학인이었지요. 그런데 오늘 소개하는 이 사람은 스스로 ‘소혜’를 자처했습니다. 그래서 생긴 아이디가 소혜낭자였지요. 그는 정말로 강의 때 엉뚱한 ‘생얼형’ 질문을 많이 던지고 그런 대답도 많이 했습니다. “아니 그럼 그게 인간이에요? 동물이지.” 그의 말을 들으며 모두가 크게 웃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미꾸라지’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가 아니라, 그가 휘젓지 않으면 배움이 활기가 없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소혜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혜가 구박받으면서도 간절히 배우고자 했던 마음처럼,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언제나 의심나면 생질문 날리렵니다.”

<대중지성> 프로그램을 모두 마친 어느 날,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하와이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회사에서 꽤나 입지를 다진 사람이 그것을 그냥 놓아버렸습니다. 지금이 ‘때’임을 알았던 겁니다. 수유너머를 과감히 밀고 들어왔듯이 그렇게 과감히 떠났습니다. 미국으로 떠나기 얼마 전, 저희가 카페에서 <위클리 수유너머> 창간을 기획하고 있을 때, 그 곁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갑자기 제안했습니다. 일을 맡아주지 않겠느냐고. 그런데 그런 급작스런 제안에 그는 흔쾌히 응했습니다. 자신에게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될 것 같다고.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장난기 섞인 말투와 우스꽝스러운 답변 때문에 인문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는 배움에 대한 상상하기 힘든 의지, 그리고 배움을 준비하는 큰 자기 비움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영원히 제자로 머문다면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제자를 자처한 사람, 영원히 학인이기를 자처한 그에게 저는 뭔가를 배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원한 학인, 그가 우리의 훌륭한 동료이자 선생인 이유입니다. 오늘까지 2년간 빠짐없이 <위클리 수유너머> 커버이미지를 디자인해준 정기화 선생님에 대한 뒤늦은 소개였습니다.

2.

<위클리 수유너머>의 주제들은 대략 한 달 정도 앞서 기획됩니다. 하지만 청탁한 원고들이 들어와야 구체적인 색깔이 드러납니다. 짐작하시듯 원고들은 데드라인, 말 그대로 사선을 타고 들어옵니다. 디자이너에게 긴박하게 내용을 설명하고 주제를 해설합니다. 미국에 있는 그와 때로는 스카이프를 통해 논의를 하고 때로는 게시판에서 긴급한 쪽지글로 대화를 합니다. 기획편집을 맡은 이들은 막판이 되면 울상이 되어 정기화 선생님을 찾습니다. “어떡하죠? 이런 기획인데 어떤 이미지가 되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울상을 지으며 읍소하다가 점점 퀴즈를 내는 사회자로 돌변하기도 합니다. “자, 이번에는 어떻게 이 주제를 풀어내실까, 기대!”

매번 커버이미지를 볼 때마다 그것이 하나의 시적 번역임을 알겠습니다. 시를 번역하는 것은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커버이미지는 비유컨대, 시를 번역하는 게 아니라 시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한편의 짧은 시로 우리가 쓴 글, 우리가 기획한 생각들이 압축되어 나타납니다. 압축은 요약이 아닙니다. 요약은 생명체의 피와 살을 제거한 앙상한 뼈들의 모둠이지만, 압축은 그 자체로, 엄청난 강도를 가진 생명 현상입니다. 따라서 커버이미지는 우리의 기획의도를 설명하거나 해설하지 않습니다(오히려 우리의 기획의도 아래 실린 글들이 그 커버이미지에 대한 설명이나 해설로 보일 지경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동원하는 분석적 이해의 틀을 위반하기에 애매해보이지만 묘하게도 아주 판명한 느낌을 줍니다. 다시 말해 어딘가 인식의 범주로 귀속시킬 수 없지만 그 자체로는 뚜렷한 메시지이며 강렬도 입니다.

커버이미지가 전달되면 기획편집자들은 항상 우리의 컨셉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그러나 곧바로 반대 과정이 시작됩니다. 커버이미지가 다른 것을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컨셉의 다른 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애당초 그것에 없었던 어떤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글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전달한다면 우리의 커버이미지는 우리의 감동을 드러냈습니다. 글은 우리를 이해하게했지만 이미지는 우리를 웃게 하거나 눈물 흘리게 했습니다. 우리가 무겁게 가면 디자이너는 심술이 난 듯 반대방향으로, 경쾌하게 갔습니다. 우리 생각이 표면으로 흐르면 디자이너는 그것을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게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 지난 2년간 우리 밴드의 일원이었던 디자이너 정기화 선생님이 이제 <위클리 수유너머>를 떠납니다. 선생님과 함께 한 시간만큼이나 소중한 시간이 또 다시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매주 피말리는 마감의 사선에서, 그것도 사선의 최후 자리에서 멋진 대문이미지로 한주를 마감하고 또 한주를 열어줬던, 정기화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 전합니다.

응답 4개

  1. 하루말하길

    생애 이렇게 멋지고 감동적인 소개 또 받을 수 있을까 싶어요..
    그동안 매주 마감시간까지 커버 이미지 애타게 기다려주고
    성원해 주신 편집진들의 노고와 격려 감사드려요!
    위클리 수유너머와 함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인연,
    이제 독자로서 이어 갈께요! ^

  2. 케이말하길

    정기화. 그동안 고생 많았네.
    오래 애써주고 함께해줘서 고맙고.
    호탕한 모습 많이 그립구나.
    근데, 아직도 하와이에 있는거야?
    언제 놀러와. 뉴욕의 봄도 꽤 볼만 해. ^^

    • 하루말하길

      권선생님! 넘 반가워요~~ ^
      위클리 시작하며 창간식때 잘 한번 해보라고 격려해 주셨었는데
      마지막도 이렇게 인사 전해 줘서 넘 고마워요! ^
      그렇잖아도 이본의 다락방 읽으면서 뉴욕 넘 가보고 싶었어요~~
      결혼기념일 때 하와이 오시면
      훌라쑈 티켓 두장 확보해 드릴께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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