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친구에게 남겨진 말

- 고병권(수유너머R)

1970년 11월 13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전이군요. 전태일이라는 이름의 ‘어느 청년 노동자’가 일 년 내내 동토였던 서울 한 복판에서 제 몸으로 뜨거운 불을 피워낸 것 말입니다. 지난 40년간의 겨울공화국에서도 불은 꺼질 줄 모르며 정신의 계주를 이어왔습니다. 불을 이어받은 정신들은 각자의 공화국에서 늙어갔지만 그 불길은 처음 그대로, 청년 나이 그대로 도무지 늙지를 않습니다. 역사적 인물 전태일이 발화한 시점에서 나이 들지 않고 있는 불꽃, 이번 주 위클리 수유너머의 주제는 청년 전태일입니다. 40년 동안 지속된, 아니 매번 되살아나는 우리 사회의 불꽃 전태일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전선인터뷰>에서는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대표 김승호 선생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선생은 전태일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토록 찾았던 대학생 친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은유님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전태일의 삶이 중지된 그 자리로… 뚜벅뚜벅 걸어가” 전태일이 걸었을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김승호 선생은 대학을 나와 그렇게 40년을 노동 현장에서 보내셨습니다.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라는 전태일의 유언에서 전태일은 ‘나의 전체의 일부’라는 걸 아셨다고 합니다. 선생은 전태일과 더불어 ‘인간의 고귀함’을 깨달으셨다고 하지만, 독자들께선 선생을 통해 ‘고귀한 인간’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제야 그 옛날 전태일의 나이에 접어드는 오용택님의 글도 있습니다. 전태일을 어렸을 적 본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통해 기억한다는데요. 그는 <전태일 평전>을 어떻게 읽었을까요. 더 이상 “죽음으로 점화되지 않는”, 산 자들의 불꽃에 대한 그의 기대와 다짐이 눈길을 끕니다. 그리고 제가 작년 <전태일 평전> 재발간과 관련한 행사에서 발표한 글을 이번호에 덧붙였습니다. <전선인터뷰>의 은유님은 <전태일 평전>을 다시 읽으면서 최근에 또 울었다고 하시던데, 저 역시 눈시울을 붉히긴 했지만, 그래도 예전과는 전태일의 삶이 많이 달라보였습니다.

위클리 수유너머에 <밍글라바 코리아>를 연재 중인 소모뚜님도 <전태일 평전>에 대한 소감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번 위클리 원고 중 제 가슴을 가장 후벼 판 글입니다. 그는 얼마 전 법무부의 단속추방 과정에서 숨진 베트남 노동자 Trinh Cong Quan씨와 그의 네 살배기 아이 이야기로 독후감의 대부분을 채웠습니다. 평화시장 어느 한편에서 불타죽은 전태일의 소식을 손에 쥐고서 여기저기를 뛰어다녔을 1970년의 노동자와 학생들 심정이 지금 소모뚜님과 같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네 살배기 아이가 말을 배워 아버지에 대한 무서운 진실을 묻기 전까지 우리는 무언가를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모뚜님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독자여러분, 전태일의 유언을 읽어보셨습니까.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그의 유언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유언이란 글자 그대로 ‘남겨진 말’입니다. 유언이란 역사가 ‘지울 수 없는 말’이며, 권력이 시대를 어떻게 움켜쥐든 ‘남을 수밖에 없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받아 읽는’ 사람이 있는 한에서, 그것을 독해하는 사람이 있는 한에서 ‘유언’은 역사를 가로질러 남습니다. 그래서 모든 시대는 결국 자신이 원치 않는, 이 포섭되지 않는 말을 자신의 일부로서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이, ‘반지의 무게’로도 눌리지 않고 ‘총칼의 질타’에도 주눅 들지 않는 그 말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정신 속 성냥개비를 확 긋고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응답 2개

  1. 고추장말하길

    너무 오랫만이에요.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반가움 반, 그리움 반 입니다. ㅎㅎ

  2. kim jeong seon말하길

    매번 위클리를 받아보면서도 꼼꼼하게 읽지를 못하다가 몰아서 읽고 있습니다. 가슴떨리게…건강하고 따뜻한 글들 접하면서 다들 건강하고 따뜻하게 지내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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